◈ 남한산 계곡 광지원리에서 남한산성 동문까지의 계곡은 4계절마다 특색을 지닌 멋진 계곡이다. 초입부터 맑은 물에 바위와 돌들이 개울 바닥에 깔려 있고 8㎞의 도로변에 벚꽃 가로수가 아름다우며 야영장 및 주필암 부근의 소(沼)와 작은 폭포는 한여름 더위를 식혀준다. 4대문은 옛 모습으로 복원되어 오색이 창연하고 성곽은 잘 다듬어져 아름답고 송림이 울창하며 성곽 일주를 하는 도로가 나 있어 정겨운 연인들과 등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수어장대에서의 낙조는 한 폭의 그림으로 발아래 깔린 서울, 성남, 하남의 시가지를 동시에 내려보면 장관을 이룬다.
◈ 팔당호 퇴촌면과 남종면의 법정 10개리가 호반에 얼굴을 비추며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호반 주위에 민물 매운탕 맛 또한 찌든 마음을 달래기에 부족함이 없고 물가에 드리운 각종 고목들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다. 팔당댐(배알미리)에서부터 수청리 까지의 드라이브 코스가 유명하다.
◈ 무갑산 사방으로 뻗친 계곡이 깊고 물이 맑다. 북으로 팔당호가 깔려 있고 동으로는 능선을 따라 앵자봉이 이어지고 남으로는 산자락이 동리를 감싸면서 멀리 원적산과 대층한다. 등산코스로 무갑리에서 건업리 쪽과 앵자봉과 천진암을 타고 내려오는 코스도 있다. 봄이면 풍성한 봄나물, 여름이면 우거진 녹음, 가을이면 곱게 단풍이 아름답다. 특히 겨울 눈꽃은 한라의 그것과 견줄만한 명산이다.
◈ 남한산성 남한산성은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에 위치하여 국가사적 제57호로 경기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백제인들에게 있어서 남한산은 성스러운 도읍지로서 백제 470년 역사의 중심 무대였다. 조선왕조 시대 인조 임금에 의해 현재의 석성이 완성되어 우리나라 1,700여개의 성 중에서 최대의 산성이며 조선 축성술이 절정에 달한 17세기에 만들어진 가장 대표적인 한국의 산성이다.
산성 축성에 팔도 승군이 참여하였으며 조선 팔도 사찰과 진충 보국하는 호국 정신의 정신적 도량을 삼기도 하였다. 조선 왕조 시대에는 산성 행궁(상필 73칸 반, 하필 154칸)에서 여름 정무를 보았고 종묘사직을 위한 좌전과 우실을 설치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것으로 서장대(수어장대), 현절사, 연무관, 지수당, 침괘정, 영월정, 영춘정, 숭렬전, 남문, 동문, 장경사, 국정사 등과 보(堡), 누(壘), 돈대(墩臺) 따위 뿐이다.
이 산성은 병자호란 당시 인조 임금이 거처하였으며 몽고군이 수차례 쳐들어 왔으나 성내에는 들어오지 못한 민족의 자존을 지킨 역사의 땅이자 민족의 정기가 응결된 장소이다.
이 성의 전체 면적은 159,859평인데 1939년 10월 18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가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27호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수어장대(守禦將臺) 경기도 지정 유형문화재 제 1호,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 소재. 이 건물은 남한산성 축성과 함께 축조된 동, 서, 남, 북의 사장대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장대로 산성내 초고봉인 일장산정에 위치하고 있어 성내와 인근의 양주, 양평, 용인, 고양 및 서울, 인천까지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인조 2년(1624)에 단층으로 축조한 것을 영조 27년(1751)에 2층 누각으로 증축하였다.
◈ 숭열전(崇烈殿)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호로 인조 17년(1639)에 건립하여 정조 19년(1795)에 숭열이라 명하였으며 백제시조 온조왕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 청량당(淸凉堂)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호. 이회는 조선 인조 2년(1624) 남한산성 축성때에 동남쪽의 축성공사를 맡아 하였으나 축성 경비를 탕진하고 공사에 힘쓰지 않는다는 무고한 모략을 받고 무참히 사형을 당하였다. 그후 그가 이룬 공사를 재조사 해보니 견고하고 충실하게 축조되어 있어 그의 죄가 없음이 밝혀져 서장대 사당을 지어 그의 넋을 달래게 하였다. 본당은 6·25사변때 분실되고 지금 있는 것은 그후로 만든 것이다.
◈ 현절사 경기도 지정 유형문화재 제4호 / 경기도 광주군 산성리 소재 / 병자호란때 적에게 항복하기를 끝까지 반대했던 윤집, 오달제, 홍익한 등 3학사 및 김상헌과 정온의 충절을 기리는 곳이다.
◈ 침괘정 조선 영조 27년(1751) 광주 유수 이기진이 증수하고 침괘정이라 명명한 것이고 무기고 혹은 무기 제작소의 사무를 관장하던 곳이다.
◈ 연무관 경기도 지정 유형문화재 제6호 /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 소재 / 조선 인조 2년(1624) 남한산성을 축성할 때 건립한 것으로 성을 지키는 군사들이 무술을 연마하던 곳이며 이곳에서 무예가 뛰어난 사람을 뽑아 한양으로 보내기도 하였다고 한다.
◈ 지수당 경기도 지정 유형문화재 제14호 /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 소재 / 조선 제18대 현종 13년(1672)에 부윤 이세화가 세운 건물로서 이 건물의 앞뒤로는 세 개의 연못이 있었으며 당시 고관들이 낚시를 즐기던 곳이다. 지금은 연못 하나가 매몰되고 두 개의 연못만이 옛 모습을 남기고 있다.
연못 가운데 지수당이라는 정자가 있으며 제3의 연못터로 추정되는 지역은 현재 논으로 되어있다.
◈ 남문 성남시에서 들어오는 남한산성 남쪽의 성문으로 정식 명칭은 지화문이다.
중앙에 홍예문을 두고 그 좌, 우로는 자연석을 막돌 쌓기로 면바르게 쌓되 수평 줄운을 맞추어 쌓았으며 그 높이가 매우 높아 성벽의 안전을 위해 위로 올라가면서 석축면에 구배를 두어 점점 안으로 들여 쌓았다.
◈ 동문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 광주에서 들어오는 동쪽에 있는 성문으로 정식 명칭은 좌익문이다. 조선 인조 4년(1626) 남한산성 축성과 함께 건립되었으며 정조 2년(1778) 성첩을 개축 보수하였다.
◈ 맹사성 묘 경기도 기념물 제 21호, 경기도 광주군 광주읍 직리에 소재, 조선 세종 때의 재상 맹사성 선생은 어려서 효성이 지극하여 7세 때에 어머니가 돌아가자 7일간 단식하고, 3년간 죽을 먹으면서 묘 앞에서 상을 치러 고향에 효자문이 세워졌다.
고려 우왕 12년에 문과에 장원급제하였고 조선조에 들어와 대사헌을 거쳐 세종 때에 우의정과 좌의정을 지냈다. 평소에 청렴결백하여 공과 사를 엄히 구별하여 이름이 후세에 전해졌다. 태종실록을 감수하고 팔도지리지를 찬술하였으며 음률과 향악을 정리하고 악기를 제작하여 조선초기의 문화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경내에는 상석과 망계석, 석등과 묘비가 있다.
◈ 제1코스 남한산성 → 조선백자 도요지 → 맹사성 묘 → 안정복 선생 이택제 → 백련암 부도 →유정리 석불좌상
◈ 제2코스 팔당호 → 분원 도요지 → 신흥 묘 → 이벽묘 (천진암) → 최항묘 → 해공신익희 생가 → 유정리 석불좌상
◈ 광주군청 공보실 광주읍 송정리 군청내 ☎ (031)760 - 2068
◈ 곤지암 수련원 곤지암 천 변의 밤나무 숲속에 위치한 가장 현실적이고 교육적인 수련원은 1,193명을 수용할 수 있다. 강당, 수영장, 생활관, 야외무대, 자연학습장, 도예관, 체력 단련장, 산행코스가 마련되어 있다. 곤지암 IC에서 광주방면으로 오다가 성남, 이천 간 산업도로에 접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골프장 현황> • 강남 C.C - (18홀) 광주읍 목리 497-6 / (031)719-0300 • 뉴서울 C.C - (36홀) 광주읍 삼리 산 1 / (031)762-5673 • 중부 C.C - (18홀) 실촌면 곤지암리 산28 / (031)762-6588 • 곤지암 C.C - (18홀) 도척면 도웅리 산41 / (031)760-3555 • 경기 C.C - (18홀) 실촌면 오향리 34 / (031)764-887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