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성농요(결성면 일대) 결성농요는 충남의 대표적인 농요의 하나로서 특히 ‘얼럴럴 상사디’라는 반복형의 모심는 소리는 결성면이 본고장으로 인근의 예산군·보령시 일부지역에까지 전파되었다. 이러한 유서깊고 자생력있는 농요의 고장이니만큼 어렵고 유창한 논매는 소리가 80세에 가까운 촌노인의 기억속에 여태까지 남아 있어 오늘의 결실을 보게 되었다. 지금은 결성농요보존회 (회장 황성창)가 구성되어 있다.
◈ 성촌토기 삼국시대 이전부터 전승되어온 옹기는 우리 민족 특유의 음식저장용구로 간장, 된장, 고추장, 김치 등의 독특한 식생활 문화와 그 제조기능이 면면이 이어져 내려왔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 연료난으로 인하여 가마가 개량되고 기름가마까지 등장하면서 재래식 가마는 거의 소멸되고 현재 우리나라에는 몇 개소에 불과한 실정이다. 기능보유자인 이종각씨는 1993년에 사망하고 지금은 아들인 이완수씨가 그 기능을 전수 보전하고 있다.
◈ 지승공예 한지를 꼬아 엮어서 만든 그릇을 지승공예(紙繩工藝)라고 말한다. 발생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에 지승제기(紙繩製器)가 성행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보아 그 이전부터 전해진 민속공예임에는 틀림이 없다. 현재 지승공예는 거의 단절 직전에 있으나, 홍성읍 오관리에 사는 인간문화재 최영준에 의해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만드는 방법은 한지를 잘라 새끼를 꼬듯이 물에 적셔서 꼰 다음 반으로 접어 매듭가락에 멍석 짜는 식으로 한올씩 엮어간다. 무늬나 형태는 자유자재로 변형할 수 있다. 작품 하나를 제작하는데 약 20일이 걸리며, 재료가 종이이므로 깨질 염려가 없고 촉감이 부드럽다.
◈ 장성리 은행나무 본래는 두그루가 있었으나 홍주목사(김병억)가 한그루를 벌채하여 그 때문에 그의 처가 병사했다고 전하며 주민들이 기도하는 예가 있었다. 연사(年事)를 예측할 수 있는 나무로서 풍년이 들면 잎이 다 피고 흉년이 들면 밑에만 잎이 핀다고 전한다.
◈ 태조 이성계와 왕지동(旺至洞) 수란리(왕지동)에 수령 수백년된 높이 12.2m, 둘레 4.7m, 면적이 80㎡나 되는 느티나무가 있다. 이 느티나무는 오경사와 이성계의 인과가 있었다는 전설을 갖고 있다. 오경사(五經詞)가 두문공 72인으로 있다가 조용한 홍주의 수란리 고향에 은거하고 있었다. 역성혁명에 성공한 이성계가 인재를 발탁하여 쓰려고 옛날 친지 이성(오경사)을 찾으러 왕지동에 왔었다. 왕지동 느티나무 밑에 와서 진(陣)을 치고 부하를 시켜 오경사를 모셔오게 했다. 집을 에워싸고 군졸들이 왕이 와서 초빙함을 아뢰었다. 3일후에야 오경사가 개구멍 밑으로 나오면서 개와 같이 깨공깨공 하더니 도로 자기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죽은체 하였다는 일화가 전해져 오고 있다. 왕이 왔었다는 전설지명이 왕지동(旺至洞)이다.
◈ 용티의 무덤 오서산 중턱에 용제날터라고 부르는 기우제(祈雨祭)의 제단이 있다. 이 근처에 묘(墓)를 쓰면 몇 년이고 가문다 하여 서로 묘를 못쓰게 말리고 있다. 200여년전 일이다. 이 동리의 최부자집에 노승이 동냥을 왔는데 이 집의 최부자가 백미 한말을 시주했다. 노승은 깜짝 놀라며 무슨 소원이 있느냐고 물었다. “명당을 볼 줄 아시면 어디 한자리 좀 가리켜주시오”. 이윽고 명당 탐색이 시작되었다. 왼쪽에서는 청룡이 운무를 거느리며 용트림을 하고 있고 오른쪽에서는 백호 한 마리가 바람을 더불고 조화를 부리니 이 자리를 차지한다면 300년이나 평화복록이 연면할 것이라고 자세한 묘방을 일러주고 갔다. 그날 밤 최부자는 하인을 서너 명 데리고 종산으로 올라갔다. 하인의 손에 의하여 시신은 용티(龍峙)로 옮겨졌다. 비밀리에 끝난지라 일체를 숨겼다. 용티에 최부자가 이장한 뒤로 기우제며 치성을 아무리 지내도 비가오지않고 한달 이상 가물었다. 동네에서는 소동이 났다. 급기야는 최부자의 짓이라는 결론이 내려져 용티의 무덤은 원자리로 다시 이장되었다. ※ 峙 산우뚝 설 ‘치’이나 지역민의 발음에 따르고자 ‘티’로 하였음.
◈ 만수산의 신험 홍북면 노은리 서원말 앞쪽으로 나즈막한 산이 있다. 옛날 300년 전에 돌림병이 생겼다. 왕무당 한사람이 개성 덕물산에 최영장군이 모셔져 있는데 충남 이곳에 유행병이 생기므로 이 산신님께서 전생의 생가 근처(만수산)에 와서 계시니 이 병자는 이곳으로 피신하면 역병의 화를 모면할 것이라는 신명의 예언을 선포하니 수일 내에 2,000명이 만수산과 삼봉산에 와서 역병의 환을 모면하였다는 전설이다.
◈ 명동골목 홍성읍 오관리 시내에는 어느새 명동골목이라는 번화가가 생겼다. 누구에 의해 불리워지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으나 서울의 명동처럼 사람이 많이 붐비고 장사가 잘된다고 해서 명동골목이라고 한다. 지금은 상권의 중심지로 되어 있다.
◈ 우시장 충남지역 일대에서 가축시장으로 홍성의 우시장은 유명하다. 홍성군의 전체 가축수가 충청북도의 가축 전체수와 맞먹을 정도다. 우시장의 규모와 활동은 그에 버금간다.
◈ 전통 5일시장 1일, 6일에는 홍성의 대교리 4구에 전통 5일장이 선다. 현재 오관리 읍사무소자리에서 이곳으로 옮겨와서 몇 년전 화재로 시장의 상당부분이 소실되었지만 신축건물이 들어서 새로운 상권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