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시험장에서 부정행위 수법에 대해 이미 알아보았고, 오늘은 단원 김홍도가 그린 6인조 과거시험 비리단에 대하여 알아봅니다. ▣과거 시험 대기록(조선왕조 실록)
1800년(정조 24) 3월 21일에 시행된 정시(庭試) 초시의 응시자 수는 111,838명이었고, 이날 거둬들인 시권(답안지)은 38,614장이었다.
이튿날인 3월 22일 창덕궁 춘당대에서 열린 인일제(人日製. 한양 수석자와 시골 거주자의 수석자 둘 다 전시殿試 응시자격 부여)의 응시자는 103,579명, 수거 답안지는 32,884장이었다. 이틀에 걸쳐 무려 251,308명이 한양에서 과거를 본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당시 한양 인구가 20만~30만 명 사이였던 것을 생각해 보면, 엄청난 인원이 과거시험을 치른 것이다. 이처럼 과거시험에 많은 응시자가 몰리다 보니, 출제 문제를 보고 베껴 시험을 보니, 최대한 출제 문제가 걸린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기 위하여 선접(先接)꾼들이 시험 며칠 전부터 진(陣)을 치다가 문이 열리면 시험장으로 달려가는데, 상대편 선접꾼과 몸싸움을 벌이다가 사망하거나 다치는 일이 종종 발생하였다.
또한 과거시험 결과를 당일 채점해 발표하는데, 약 4만 명의 답안지를 하루에 채점하는 게 불가능하니, 먼저 제출·접수한 300장의 시험지만 채점하는 편법도 등장했다.
▣ 과거 부정행위(농간) 비판의 글(1809년, 윤기尹愭)
시관(감독관)과 거자(응시자)가 속셈이 똑같아 / 試官擧子處心同 사욕 따라 공도를 잊어 풍속을 무너뜨리네 / 徇欲忘公作弊風 겸종(시중꾼)이며 군졸도 모두 듣고 보는데 / 廳傔庭軍皆耳目 글자 표시 칼자국은 연통한 것일세 / 字標刀擦捴關通 첫 구절 베껴서 서찰로 알려주고 / 句頭錄納仍傳札 밖에서 지어 들이거나 봉투째 바꾸네 / 塲外書呈或換封 대리시험이며 시제 유출, 교묘한 속임수가 많으니 / 代入預題多巧詐 누가 이런 사정을 성상(순조)께 아뢸까 / 誰將此語徹宸聦 -又詠科塲弄奸-
▼ 공원춘효도(貢院春曉圖. 봄날 새벽의 과거시험장)
"봄날 새벽 과거시험장, 수많은 사람들이 과거를 치르는 열기가 무르익어, 어떤 이는 붓을 멈추고 골똘히 생각하며, 어떤 이는 책을 펴서 살펴보며, 어떤 이는 종이를 펼쳐 붓을 휘두르며, 어떤 이는 서로 만나 얘기하며, 어떤 이는 행담(책가방)에 기대어 피곤하여 졸고 있는데, 등촉은 휘황하고 사람들은 왁자지껄하다." - 표암 강세황 -
▣ 6인조 비리단
단원 김홍도의 "공원춘효도"를 자세히 보면 먼저 초롱불을 켠 새벽임을 알 수 있는데요. 자리를 맡아놓은 파라솔 같은 우산과 말뚝, 쇠몽둥이, 평상, 짚자리, 책가방 등을 들어온 선접과 수종, 노유 등의 모습이 보여요.
문장이 뛰어난 ‘거벽(巨擘)’은 출제자의 의도에 따라 답안의 내용을 전문으로 지어주는 역할입니다. ‘사수(寫手)’는 거벽이 지어준 문장의 글씨를 빨리, 잘 써주는 사람입니다. ‘거벽’이 책가방에 숨겨온 예상 답안지나 참고서를 꺼내 발리 답안을 지어내면 ‘사수’는 촌각의 지체 없이 글씨를 써서 제출했습니다. 정작 시험을 치르는 응시자인 거자(擧子)는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 문장에 능숙한 자를 거벽(巨擘), 글씨에 능한 자를 사수(寫手), 자리와 우산 같은 기구를 나르는 자를 수종(隨從), 수종 중 천한 자를 노유(奴儒), 노유 중 선봉이 된 자를 선접(先接)이라 한다.
※ 거벽(문장 전문가)이 과거 시험을 보지 않은 이유는 금전적 이득이 크거나 응시자격 미달자 신분
일상화된 부정행위를 통해 과거에 급제한 사람들은 대부분 당시 권력을 독점하고 있던 권문세가의 자손들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과거에 급제한다 해도 출세는 남의 이야기였고, 새로 관리가 되면 치르는 신고식 비용도 엄청 많이 들었다. 그러니 가난한 양반이나 애초에 출세가 막혀있던 서얼 출신의 경우, 과거 급제보다 거벽으로 돈을 버는 것을 택했던 것이다.
출처 : 법률신문,국가유산청,구글, 조선왕조실록, 민족문화 대백과, 네이버, 안산시, 한국 고전 종합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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