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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박씨부인전(朴氏夫人傳)
◈ 제1회. 이공이 선인을 만나 바둑과 퉁소로 서로 화답하며 ...
조선시대 인조대왕 시절에 한양성 안 북촌 안국방에 한 재상이 있었는데, 성은 이(李)씨이고 이름은 귀(貴)였다.
제 1 회.
이공이 선인을 만나 바둑과 퉁소로 서로 화답하며
시백이 금강산에 들어가 박씨와 혼례를 치르다.
 
 
조선시대 인조대왕 시절에 한양성 안 북촌 안국방에 한 재상이 있었는데, 성은 이(李)씨이고 이름은 귀(貴)였다.
 
어려서부터 공부에 힘써 열 살 전에 총명함이 보통사람을 넘어섰고, 문식(文識)과 무략(武略), 재주와 덕행이 온 나라 안에서 가장 뛰어났다. 벼슬이 한 나라의 재상에 이르렀는데, 나라를 충성으로 섬기고 백성을 인의로 다스려 위엄과 그 훌륭한 이름은 온 세상에 진동하였다.
 
상공이 어질고 무던한 마음씨와 재주와 덕으로 귀한 아들을 두었는데, 그 아들의 이름은 시백(時白)이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영리해서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고 열다섯 살이 되어서는 소두(小杜)라 일컬어지는 두목(杜牧)의 풍채를 갖추고, 문장은 시선(詩仙)이라는 이백과 시성(詩聖)이라는 두보보다 뛰어났으며, 필법은 진(晉)나라 때의 유명한 서예가 왕희지를 본받고, 지혜는 촉한(蜀漢)의 승상인 제갈량을 본받아 따랐으며, 그에 겸비하여 초패왕이라 불리는 항우(項羽)와 같은 용맹을 가졌으니, 공이 금과 옥같이 사랑하였고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그의 명망은 조정과 민간에 덮여 있었다.
 
한편, 공이 바둑두기와 퉁소불기와 달 아래서 고기낚기를 좋아하였는데, 한 도인이 찾아 퉁소 다루는 솜씨를 비교해 보니 조화가 끝이 없어 밝은 달을 가지고 노니 꽃밭에 피었던 꽃들이 퉁소 소리에 흥을 못 이겨 떨어지는데, 이런 재주는 한 나라에 한 사람 뿐이라.
 
바둑두기와 퉁소불기에 맞상대가 없음을 아쉽게 여기고 있는데, 하루는 어떤 사람이 다 떨어진 옷에 찌그러진 갓을 쓰고 파리하고 창백한 모습으로 와서는 하룻밤 머물고 가기를 청하므로, 공이 자세히 보니 비록 차림은 남루하나 보통사람과 달라 보였다. 공이 밝고 높은 식견으로 이런 도인을 몰라볼 리가 없었다. 한 번 보고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저 사람의 근본이 촌사람이라면 어떻게 당돌하게 마루 위로 올라오겠는가. 분명히 보통사람은 아니로다.’
 
하고 상공이 말하기를,
 
“어떠한 귀객인지 모르지만 이처럼 누추한 곳을 찾아주시는 황공합니다.”
 
하고 마루에 오르라고 요청하니, 그 사람이 마루에 올라 자리를 잡고 앉은 다음 서로 자신의 성과 이름을 알려주며 인사를 하는데, 그 사람이 말하기를,
 
“저는 본래 부산 사람으로 이름난 산의 큰절들을 찾아다니며 돌부처를 벗삼아 세월을 보내고 있었사오나, 지금은 쓸데없이 나이만 많아져서 널리 나아가 놀지 못하고 한갓 금강산에 머무르며 죽기만을 바라고 사옵는데, 성은 박이고 세상 사람들이 부르기를 처사라고 하나이다.”
 
공이 말하기를,
 
“나의 성은 이요, 세상 사람들이 부르기를 덕춘이라 합니다.”
 
하고 무릎을 가다듬고 말하기를,
 
“귀하신 손님이 어쩐 일로 이렇게 누추한 곳에 오셨사옵니까?”
 
처사가 대답하기를,
 
“나는 산 속에 있어서 바둑두기와 퉁소불기를 좋아하옵는데, 소문에 듣자오니 상공께서 저처럼 바둑두기와 퉁소불기를 좋아하신다 하옵기에 천리를 멀다 않고 상공의 문하에 구경하려고 왔나이다.”
 
공이 그 사람의 말이 정직함을 보고 흔쾌히 기이한 사람인 줄 알고 공이 윗자리를 피하여 내려와서 말하기를,
 
“어찌 보잘것없는 보통사람이 신선의 문답에 대꾸를 하겠습니까?”
 
하고 공이 겸손하게 말하기를,
 
“평생에 적수가 없는 것을 한탄하였는데 처사를 대하오니 반가움을 이기지 못하고 있는 차에, 선생의 높은 퉁소 소리를 어찌 따라 화답하겠습니까만, 용렬한 사람을 가르치심을 본받을까 하여 주인인 제가 먼저 시험해 보겠습니다.”
 
하고 한 곡조를 부니 청아(淸雅)한 소리가 구름 속에 사무치는데, 그 노래에 이르기를,
 
“창 앞에 모란꽃 송이 다 떨어져 화단 위에 가득하도다.”
 
하였다.
 
처사가 그 노래를 다 듣고 칭찬하여 마지않다가 말하기를,
 
“객이 주인의 노래만 듣기 미안하오니 퉁소를 빌려주시면 객도 미숙한 곡조로 화답할까 하나이다.”
 
공이 불던 옥피리를 전해 주니 처사가 받아서 한 곡조를 화답하니, 그 노래에 이르기를,
 
“푸른 하늘에 날아가는 청학․백학이 춤추고, 화원에서 꽃이 피어 가득가득하도다.”
 
하였다.
 
듣기를 다하고 매우 칭찬해 마지않으며 말하기를,
 
“저같이 용렬하고 둔한 재주로도 세상의 칭찬을 듣습니다만, 나의 퉁소 소리는 다만 꽃송이만 떨어질 뿐인데 선인의 피리 소리는 봉황이 춤추고 떨어지는 꽃을 다시 피어나게 하시니 옛날 한고조를 도와 천하를 통일한 장자방의 곡조로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고 못내 칭찬하였다. 이로써 주인과 손님이 되어 바둑과 퉁소로 여러 날을 보내더니 하루는 처사가 상공에게 부탁하기를,
 
“듣자하니 상공께 귀한 아드님이 있다 하오니 한번 보기를 부탁합니다.”
 
공이 허락하고 아들 시백을 부르니 공자가 명을 받들고 들어와 인사를 하는데, 처사가 인사를 받고 자세히 보니 만고의 영웅이 될 재목이고 일대 호걸이며 어지러운 때에는 싸움터에 나가 장수가 되고 평시에는 재상이 되어 정치를 할 기상이 아름다운 얼굴에 은은히 나타나니, 마음에 기쁨을 이기지 못해서 즉시 상공에게 청하여 말하기를,
 
“미천한 사람이 상공을 찾아온 것은 다름이 아니라 상공께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입니다.”
 
공이 듣고 대답하기를,
 
“무슨 말씀이신지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처사가 말하기를,
 
“제게 딸이 하나 있는데 나이가 열여섯 살로 부부가 될 인연을 정하지 못하였으므로 두루 널리 구하다가 다행히 존귀한 가문에 들어와 귀하신 아드님을 보니 마음에 드는군요, 저의 못난 자식이 어리석고 둔하고 단순하고 순박하지만 존귀하신 가문에 받아들이실 만하오니 외람되오나 혼사를 정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상공이 생각해 본즉,
 
“박 처사의 도리와 인덕이 저러하다면 딸도 평범할 리는 없을 것이다.’
 
처사가 다시 말하기를,
 
“상공은 한 나라의 재상이시나 저는 산 속에 묻혀 사는 보잘것없는 촌사람인데, 저의 딸아이를 존귀하신 집안과 혼인을 청하는 것이 안 될 일이지만 제 뜻을 저버리지 않으시면 여한이 없을 것 같습니다.”
 
상공이 기뻐하여 혼인을 허락하므로 처사가 반겨하며 즉시 택일을 하니, 석 달 뒤가 되었다.
 
혼인을 완전히 정하고 술과 음식을 내어서 서로 권하며 바둑두기와 밝은 달이 비치는 창가에서 옥퉁소를 불기를 즐기다가, 하루는 처사가 떠나가려고 하므로 상공이 못내 슬퍼 상심되지만 어쩔 수 없이 작별하여 보내니, 처사는 산 속으로 돌아갔다.
 
한편, 상공이 여러 가족들을 모아 놓고 처사의 딸과 정혼한 것을 이야기하니, 부인과 여러 가족들이 혼인을 정하였다는 말을 듣고 크게 책망하여 말하기를,
 
“혼인은 인륜지대사입니다. 어찌 재상 집안에서 산중 처사의 근본도 모를 뿐 아니라 가족들도 모를 일이 많으니, 잘 모르겠습니다. 어찌하신 일입니까?”
 
상공이 웃고 말하기를,
 
“들으니 처사의 딸이 재주와 인덕이 많고 사람 됨됨이가 요조숙녀라 하기에 결혼을 승낙하였다.”
 
고 하며 가족들의 식견이 모자람을 한탄하였다.
 
결혼날이 닥쳐 혼사를 준비할 때에, 몸가짐과 차림새를 위엄 있게 갖추고 혼사에 필요한 행렬이 신부집으로 출발하는데, 공이 직접 신랑을 이끌고 가는 후배를 서서 행렬을 이끌고 길을 떠났다. 신랑이 훌륭한 말에 관복을 갖추어 입고 큰길 위로 떳떳하게 가니 어린 소년의 풍채가 신선이나 다름없었다.
 
여러 날 만에 금강산에 다다라 보니 산천경개도 빼어나고 갖가지 색깔의 화초들은 활짝 피었는데, 벌과 나비는 쌍쌍이 날아들어 꽃송이를 보고 춤도 추고, 푸른 버들가지가 늘어졌는데 황금 같은 꾀꼬리는 조화로운 목소리를 높여 벗을 불러 사람의 흥을 돋우었다.
 
경치를 구경하면서 점점 들어가니 인적이 뜸하고 간 바 흔적이 없으므로 찾을 길이 없어 주점을 찾아 쉬고 이튿날 다시 걸어서 산골짜기로 들어가니 인적은 전혀 없고 층층이 늘어선 바위들이 병풍을 두른 듯하고 산골짜기의 물은 잔잔하게 흘러 남청을 부르는 듯, 박새는 슬피 울어 허황한 일을 비웃는 듯, 두견새 소리는 처량하여 사람의 어리석은 회포를 돕는 듯하였다.
 
공이 자신의 일을 돌아보니 오히려 허황하여 후회해도 소용없으므로 마음속으로 어찌된 일인지 몹시 의아해 했다. 어느 사이엔가 해는 서산으로 지고 달이 동쪽 고갯마루로 떠오르니 어쩔 수 없이 또다시 주막을 찾아가 쉬고, 이튿날 산골짜기로 찾아 들어가는데 깊은 산골짜기에 갈 곳을 생각하니 어디로 가야 할지 전혀 방법이 없어 나아갈 수도 없고 돌아갈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공이 동쪽을 바라보고 생각하기를,
 
“중국 한나라 종친이었던 유비는 남양 땅에 삼고초려(三顧草廬)하여서 와룡 선생이라는 제갈량을 만났다고 하더니 내게는 허황된 일이로다.’
 
하고 잠시 망설이는데, 문득 산골짜기에서 유인곡(幽人曲)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목동 세 사람이 내려오므로 공이 반겨서 말하기를,
 
“저기 가는 아이들아, 거기 좀 섰거라.”
 
하고 공이 그 아이들에게 말하기를,
 
“앞길을 가리켜 주어 지나가는 사람의 약한 마음을 맑게 이끌어 주는 것이 어떻겠는가?”
 
초동이 대답하기를,
 
“이곳은 금강산이고 이 길은 박 처사 사는 곳으로 통한 길인데, 우리가 박 처사 사는 곳에서 내려오는 길입니다.”
 
공이 반가워하며 묻기를,
 
“지금 박 처사 댁에 계시더냐?”
 
초동이 다시 대답하기를,
 
“계시다는 말씀은 옛 노인이 들으시기를 ‘수백 년 전에 이곳에 있는 사람이 나무를 얽어서 집을 만들고 나무 열매를 먹으며 생활하면서 높으신 이름을 박 처사라 일컬으시고 사시는데 잠자는 곳을 모른다’하고 말씀하시는 것만 들었을 뿐이고, 지금 살고 계신다는 말은 처음 듣는 말입니다.”
 
하는데 공이 들으니 정신이 아득하였다. 또 묻기를,
 
“처사가 그곳에서 산지는 몇 해나 되는가?”
 
동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하기를,
 
“거기서 사신 지는 삼천삼백 년이라고 하더군요.”
 
다시는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 가므로, 공이 이 말을 들으니 더욱 의심이 되어 하늘을 쳐다보고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세상에 허황되고 미덥지 않은 일도 많구나!”
 
하고 망설이다가, 다시 생각하고 주점에 돌아와 머무는데, 시백이 또한 부친을 위로하는데,
 
“지나간 이야기로 후회하실 것 없이 도로 돌아가시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공이 웃으며 말하기를,
 
“그저 돌아가도 남의 웃음을 면치 못할 것이고 돌아가지 아니하자고 하니 허황되기 이를 데 없구나. 내일은 바로 혼인을 하기로 한 그날이다.”
 
하고 그 이튿날 노복들을 데리고 길을 재촉하여 반나절을 산 속으로 왔다갔다하여 기진맥진할 정도로 찾고 있자니, 오후쯤 되어서 한 사람이 허름한 옷차림으로 대나무 막대기를 짚고 산 속에서 내려오니 이가 곧 박 처사였다. 처사가 상공을 보고 반기며 말하기를,
 
“저 같은 사람과 인연을 맺어 여러 날을 깊은 산골짜기에서 마음이 매우 불편하게 지내셨을 것 같으니 죄송스러워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공이 웃고 서로 이야기를 한 후 처사가 공을 데리고 산 속으로 들어가니 이때는 바로 한창 무렵의 봄이라. 화초는 좌우에 만발하여 있는데 범나비는 쌍쌍이 날아들어 꽃을 보고 반겨 춤도 추고, 늙은 소나무는 늘어지고 수양버들은 실버들이 되고, 그 가운데 황금 같은 꾀꼬리는 실버들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거문고 소리 가득 울려 퍼지니, 공이 생각하기를 정말로 속세를 떠나서 신선 세상에 들어선 듯하였다.
 
처사가 공에게 말하기를,
 
“저는 본래 가난하여 손님을 접대할 객실도 없고 달리 머무시게 하면서 대접할 것도 없사오니 돌 위에나마 잠시 편안히 앉으십시오.”
 
하고 낙락장송 밑에 돌마루를 정결하게 다듬어 놓았는데, 자리를 정하고 앉아서 처사가 말하기를,
 
“산중에서 예의와 도리를 갖출 수는 없는 것이라 미안하기가 헤아릴 수 없사오나, 혼인의 예식을 되는대로 합시다.”
 
하고 결혼식을 올리는데, 공이 시백을 데리고 교배석(交拜席)에 들어가니 처사가 신랑을 인도하여 내당으로 들어가고 난 뒤, 공은 돌마루로 나아가 바로 앉으니 이윽고 처사가 나와 송화주를 권하여 말하기를,
 
“산 속에서 나는 음식들이라 별 맛은 없을 것이지만 흉보지 마십시오.”
 
하고 여러 잔을 서로 권하였다. 처사가 저녁밥을 차려 먹인 후 다시 또 공에게 술을 권하니 술이 몹시 취하여 다시 먹고 싶은 생각이 없게 되었다. 공과 노복들이 술을 이기지 못하여 정신없이 졸았는데, 조금 뒤에 깨어 보니 날이 이미 밝아 있었다. 처사를 불러서 말하기를,
 
“어제 먹은 술은 정말로 인간 세상의 술이 아니고 신선의 술인 듯합니다.”
 
처사가 웃으며 말하기를,
 
“송화주 한잔에 그렇게 취하여 계십니까?”
 
공이 대답하기를,
 
“인간 세상의 평범한 사람이 신선의 한잔 술을 겁 없이 마셨으니 정말로 과분하더군요.”
 
하고 서로 이야기를 하다가 이 날 돌아가겠다고 말하니 처사가 말하기를,
 
“이곳은 산골이 깊고 머니 이번 길에 제 딸아이를 데리고 가십시오.”
 
공이 옳다고 여겨 허락하고, 처사가 행랑을 꾸리는데, 신부의 얼굴은 얇은 비단천으로 가리어서 전신을 남이 보지 못하게 하고는 공에게 말하기를,
 
“가신 후에 다시 만납시다.”
 
 

 
다음 편을 기대하시라.
【소설】 박씨부인전(朴氏夫人傳)
• 제1회. 이공이 선인을 만나 바둑과 퉁소로 서로 화답하며 ...
• 제2회. 온 집안 식구들이 신부의 외모가 추한 것을 비웃으며 ...
(2021.06.25. 14:53) 
【작성】 가담항설 - 떠도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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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