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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순
2024.01.18
【인문】 Tip. 독문학과 교수진이 가장 질문과 문제를 내는데 선호하는 시기는 질풍노도의 시기, 낭만주의 시기를 뽑을 수 있다. 특히 질풍노도의 시기는 괴테의 젊은 시절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대변되는 격변기이며,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을 기점으로 독일문학의 황금기로 일컬어지는 신고전주의 시대로 넘어간다. 낭만주의는 괴테, 쉴러 등의 대문호들을 낳은 시기이자, 괴테의 경우에는 이탈리아 여행으로부터의 과거 르네상스의 인문주의가 문학에 연동되면서 풍성한 대작의 시기로 넘어감을 보여준다. (Ex: 파우스트)
2024.10.24
【문화】 화현에 ‘솔치고개’가 있는데, 지도에는 ‘송재’라고 나와 있다. 옛날 거기에 솔치주막이 있었다. 장에 갔다 오거나 술을 마시거나, ‘솔치고개’를 넘을 사람들은 이 주막에서 묵었다. 다리가 아프거나 해가 지면 거기서 쉬면서 놀음들을 했다. 그게 포천에서 화현으로 넘어가는 길이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2024.09.24
【문화】 【파주옛이야기(파주문화원)】조리면 봉일천에서 서북쪽으로 샛길을 따라 1km정도 걸어 들어가면 20여가구가 모여 사는 조그만 마을이 있다. 이곳은 예로부터 도깨비 촌으로 탑삭골이라고 불리어왔다. 옛날 이 탑삭골 능선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려던 젊은이가 있었다. 공릉 장터에서 산 물건을 잔뜩 지게에 짊어지고 걷다보니 귀가시간이 늦어 버렸던 것이다.
2024.10.23
【문화】 옛날 서울에 소장터가 있었다. 소며, 돼지며, 개를 잡는 곳이었는데, 사람들에게 저녁이면 귀신이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몇 사람들이 모여 술을 먹다가 그 귀신 이야기가 나왔다. 그 중에 한 사람이, “그게 말이 되느냐? 귀신이 어디 있느냐? 말도 안된다.” 고 하자, 다른 사람이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2023.02.01
【논문】 유물이나 유적이 있는 곳에는 그것에 따르는 전설이 있게 마련이다. 원래 전설이란 황당하고 터무니없는 것이라서 전혀 믿기 어려운 내용이 많고 귀담아 듣기 싫은 때도 있으나 할머니 무릎에 누인 손자를 잠재울 때나 깊은 겨울밤 사랑방 노인들이 한담거리로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건이다
19 (+2) |
2025.06.16
【문화】 同志社大学学術リポジトリ (2014) - 社会科学 第 44 巻 第 1 号 北に渡った言語学者・金壽卿の再照明 / 본고의 목적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공화국’)의 한국어학에서 구소련 언어학의 어떠한 영향이 있었는지, 특히 정치-사상적 측면과 문법론적 측면에 관해 고찰하는 것이다.
2025.06.12
【문화】 鄭泰辰 (記念物課長), MUNHWAJAE Korean Journal of Cultural Heritage Studies, 1990.
2024.10.24
【문화】 포천 방향으로 약 2킬로미터 나가면 고개 하나가 있는데 예전에 그곳에 어머니가 아들 하나를 데리고 살고 있었다. 이 어머니가 딸 하나 달린 돈 많은 홀아비한테 시집을 가게 되었다. 그런데 이 아들이 보니 새아버지 재산이 많은지라 하루는 그 딸에게 양장을 해준다고 꾀어내서는 고갯길에 데리고 나가 돌로 찍어 죽이고는 몰래 묻어버렸다. 그 이후 밤이면 그곳에 귀신이 나타난다고 하여 사람들이 오가지를 못했다고 한다.(完)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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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1
【문화】 조선 왕조의 세종대왕은 학문에 열중한 탓에 눈병을 앓아 온천물로 목욕하기를 원했다. 그런데 한양 도성에서 가까운 곳에는 온천이 없기 때문에 궁궐을 떠나 여행하기가 쉽지 않았다.
2025.09.01
【문화】 지금의 부개동은 옛 지명이 마분리(馬賁里)였다. 아마도 큰 말무덤이 있어서 그렇게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지금의 부평동 일대는 대정리(大井里)였는데 그 뜻으로 보면 큰 우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25.09.01
【문화】 원적산은 깊고 숲이 우거져서 호랑이가 살았다. 그리고 맛좋은 산나물이 지천으로 많아서 음력 삼월부터 석 달 동안 여인네들이 쑥부쟁이와 두릅에서부터 시작하여 하루하루 날이 지남에 따라 원추리, 취나물, 고비, 홑잎나물 등을 뜯었다.
2025.09.01
【문화】 부평구 산곡동과 서구 석남동 사이에 뻗어 내린 계양산의 지맥이 봉우리로 우뚝 솟은 것이 원적산이다. 조선 시대에 경인 운하를 파는 공사를 할 때, 이 산을 뚫지 못해 실패했다 하여 원통함을 쌓았다는 뜻으로 원적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뒤에 한자 표기가 ‘원(元)’자로 바뀌었다는 말이 있다.
2025.09.01
【문화】 안하지 고개는 부평구 청천동과 서구 가정동 사이에 있는 고개를 말한다. 이 고개의 이름에 관해서는 그럴 듯한 여러 가지 전설이 있다. 첫째는 이곳의 지형이 마치 기러기가 날아드는 모습이라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즉 청천동 동쪽에서 바라보면 서구 가정동 앞바다에서 기러기가 날아드는 것이 보였다.
2025.09.01
【문화】 부평 지역의 중요한 지명으로 남아 있는 굴포천과 원통현은 옛날부터 여러 차례 시도했던 경인운하 사업과 관련된 이름이다.
2025.09.01
【문화】 기미년 3월, 한반도는 독립 만세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인천에서도 3월 6일 인천상업중학과 인천공립보통학교가 시위를 하고 동맹 휴학에 들어갔으며, 같은 날 강화에서도 1천 명의 군중이 만세 시위를 벌였다.
2025.09.01
【문화】 계양동의 다남동 마을은 여자에 비해 남자가 많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인데 다랑리라고도 불리웠다. 역시‘다남’처럼 남자가 많다는 뜻이었다. 이 마을 에서는 옛날부터 남자 아기가 많이 태어났다.
2025.09.01
【문화】 계양동의 오류동 마을은 부평 땅의 고려 때 지명인 수주(樹州)의 소재지였다고 전해진다. 이 마을은 조선 시대에 효자의 마을로 명성이 높았다. 임진왜란 직후 부평 부사를 지낸 윤명선이라는 사람이 자리잡아 파평 윤씨 가문이 대대로 살아 왔는데 일가 모두가 효성이 깊었다.
2025.09.01
【문화】 옛날 부평 고을에 신관 사또가 부임해 왔다. 관아에서 하루를 묵고 아침을 먹으려 할 때였다. 고을의 방범 경찰 업무를 맡은 병방이 헐레벌떡 달려 들어와 보고하는 것이었다. “나리, 징맹이 고개에서 도둑 떼가 행인의 짐을 털었습니다요.”
2025.09.01
【문화】 계양산 남록에 장사굴이라고 불리는 작은 굴이 있었다. 입구가 땅바닥에 붙어 있는 데다가 앞에 소나무와 관목들이 무성해서 여간해서는 발견하기 어려웠다. 입구가 좁아서 허리를 숙이고 들어가야 하지만 안에 들어서면 바람이 없이 아늑하고 빛도 적당히 들어오고 예닐곱 명이 앉을 수 있었다.
2025.09.01
【문화】 조선의 16대 왕 인조가 아버지 원종대왕의 능을 옮기려고 묏자리를 잘 보는 지관 한 사람만 데리고 계양산 근처에 왔다. 그가 대왕인 줄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인조대왕과 지관은 산기슭에 관을 놓고 묏자리를 파고 있는 가난한 사람을 목격했다. 그런데 거기는 수맥이 흐르는 험한 묏자리였다.
2025.09.01
【문화】 고려 충렬왕은 태자 시절을 몽고에서 보내면서 원나라 세조의 딸 홀도로계리미실 공주와 결혼했으며 부왕이 죽자 공주와 함께 귀국해 왕위에 올랐다. 고려에서는 몽고 공주 출신의 왕비를 제국대장공주라고 불렀다. 또는 줄여서 제국공주라고도 했다.
2025.09.01
【문화】 계양산은 해발 395미터로 인천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수주악, 안남산, 아남산, 노적봉, 환여금, 용장자산 등의 이름을 갖고 있었다. 이규보가 지은 『망해지』에는 산정에 올라가 보면 삼면이 모두 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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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1
【문화】 서곶과 검단의 해안은 밀물과 썰물의 차가 커서 썰물 때면 끝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넓게 갯벌이 드러났다. 주로 부녀자들이 이 시간에 갯벌로 나가 낙지, 게, 소라, 조개, 맛조개 따위를 잡았다.
2025.09.01
【문화】 백석동의 한들방죽은 거지방죽이라고도 부른다. 서곶과 검단의 해안 쪽이 거의 다 그러하지만 이곳도 지난날 바닷물이 드나드는 드넓은 갯벌이었다. 한들 마을 앞의 갯벌은 경사도가 낮아 썰물 때면 어머어마하게 넓게 드러났다.
2025.09.01
【문화】 검단 사거리의 옛 이름은 원현(院峴)이다. 그곳은 역참이 있었고 지난날 지방 관장이나 중국으로 가는 사신이 반드시 하루를 묵어갔다.어느 해 새로 부임해 오는 신관 사또가 이곳 원현에서 묵었다.
2025.09.01
【문화】 경서동에는 도자기를 구울 수 있는 좋은 흙이 있어 삼국 시대부터 가마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이 마을에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녹청자 도요지(사적 제211호)가 있다. 그리고 경서동 해안에서 서곶로 국도까지 이어진 길 좌우에는 30년 전까지만 해도 옹기를 굽는 가마가 십여 개 있었
2025.09.01
【문화】 검암동 앞산을 허암봉이라 부르는데 그것은 조선 전기의 강직한 관리이자 도학자이며 차(茶)와 술에 심취해 많은 일화를 남긴 정희량의 호에서 유래한다. 지금도 산의 북쪽 중턱에는 그가 찾아와 조용히 숨어 살았던 암자 흔적이 남아 있다.
2025.09.01
【문화】 조선 세종 때 일이었다. 현재의 경서동 범머리산에 갑자기 말을 탄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베로 만든 건을 쓴 사람들도 있었고 언젠가 이 마을에 나타난 적이 있는 부평 관아의 이방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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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전문 추천
【평론】 문학의 본질
1936년 9월 / 김남천
문학의 본질이라는 제목을 걸고 며칠 동안 여러분께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대체로 문학이니 예술이니 . 하는 소리는 우리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듣고 또한 그것은 현재의 중류 이상의 가정에 있어서는 이미 보편화된 상식적 인용으로 화(化)해 버렸는데 이렇게 주고 받고 하는 말을 뚝 따가지고 ‘문학이란 대체 어떠한 것이냐?’ 하고 물으면은 너나 할 것 없이 ‘이렇다’ 하고 또렷이 대답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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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1.11 / 채만식
‘생활의 문학’ 에 충실하겠소.

나는 한 뿌띠 부르 인텔리요, 내가 농촌의 중산가(中産家)에서 태어나 이래 반생을 그 환경에 순응하는 생활을 해온 때문이오.‘생활’의 힘으로가 아니라 서적으로써 이론적으로 프롤레타리아적 세계관을 파악은 했소. ─ 대부분의 인텔리의 예대로 ─ 그러나 그러므로 나는 노동자·농촌과 같은 세계관을 가지기는 했을지언정 그들의 생활과 감정은 가지지 못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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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독서(讀書)
1938.9 / 김남천
가을이 되어 날씨가 상량(爽凉)해지면 무엇보다도 독서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등화가친(燈火可親)이란 말은 낡은 말이면서, 가을이 되면 누구나 한마디씩 해보는 말이다. 신문의 사회면, 학예면이 각각 한번씩은 뇌어보고야마는 말이고, 신문사설이 으레 한 번쯤은 걸어보는 말이다. 소학교, 중학교의 교단이 시간마다 타이르는 말이며, 서울로 유학을 보낸 시골 있는 아버지가 편지 사연 마지막엔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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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추천)] > 문학 > 한국문학 > 고전 시가 > 가사
1802년 / 연안 이씨(延安 李氏)
황졍경 일자를 엇지타 그릇 알고
인간에 적강하여 평생에 병이 만하
북창 하에 누웟스니 려위여 역불위라
복희씨를 꿈꾸던가 금조에 희작성이 과연히도 신영하다
경주인 한임 소리 느러지게 나난고야
갑인연 방소랜 듯 을묘년 감시런 듯
홍문관 직중 아해 평서를 올리거늘
소수를 엇풋 드러 방함을 떼여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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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