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회 박씨부인이 하루아침에 허물을 벗으며 이시백이 박대한 죄를 사과하고 금실지락이 흡족해지다
한편, 하루는 박씨가 목욕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가다듬어 껍질을 바꾸는 술법을 부려서 변화하니 허물이 벗어졌다. 날이 밝자 계화를 불러 들어오라 하니, 계화가 대답하고 들어가 느닷없이 예전에 없던 매우 아름다운 사람이 방 안에 앉아 있는데, 계화가 눈을 씻고 자세히 보니 아리따운 얼굴과 기이한 태도는 달나라 궁궐에 숨어산다는 항아가 아니면 중국 무산에 살았다는 선녀라도 따르지 못할 것 같았다. 한 번 보고 정신이 아득하여 숨도 못 쉬고 멀찌감치 앉았는데, 박씨가 꽃과 달 같은 얼굴을 들고 붉은 입술을 반쯤 열어 계화에게 말하기를,
“내가 지금 껍질을 벗었으니 밖에 나가도 야단스럽게 다른 사람에게 떠벌리지 말고, 대감께 아뢰어 ‘옥으로 된 상자를 만들어 주십시오’ 하여라.”
계화가 명을 받들어 급히 바깥채로 나오며 기쁜 빛이 얼굴에 가득하므로 공이 반가워하며 묻기를,
“너는 무슨 좋은 일을 보았길래 그렇게 기쁜 빛이 얼굴에 가득하냐?”
계화가 아뢰기를,
“피화당에 신기한 일이 있으니 급히 들어가 보십시오.”
공이 이상하게 여겨 계화를 따라 급히 들어가 방문을 열어 보니 향기로운 냄새가 코를 찌르며 한 소녀가 방안에 앉아 있는데, 아리땁고 화려하고 인품이 점잖고 정조가 곧아 보이는 것이 이른바 요조숙녀이고, 정말로 뛰어나게 아름다운 여인이라, 그 여자가 부끄러움을 머금고 일어나 맞는데 공이 또한 마음속으로 이상함을 이기지 못하여 오히려 아무말없이 쳐다만 보고 있으니, 계화가 상공께 아뢰기를,
“부인이 어젯밤에 허물을 벗으시고, 대감께 청하여 옥함을 구하여 쓸 곳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공이 그제야 가까이 나아가 말하기를,
“네가 어떻게 오늘 절대가인이 되었느냐? 천고에 본 적이 없는 이상한 일이로구나.”
박씨가 고개를 숙이고 아뢰기를,
“제가 이제야 액운이 다 끝났기에 누추한 허물을 어젯밤에 벗게 되었으니, 옥함 하나를 만들어 주시면 그 허물을 넣어 두겠습니다.”
공이 그 신기함을 감탄하고 즉시 나와 옥을 다루는 기술자를 불러 옥함을 만들어 며칠만에 들여보내고 아들 시백을 불러 말하기를,
“얼른 들어가 네 아내를 보아라.”
시백이 명에 따라 들어가는데, 얼굴을 찡그리며 생각하기를,
‘그런 추하고 볼품없는 사람을 무슨 까닭으로 들어가 보라고 하셨을까?’
하며 여러 번 망설이는데, 계화가 급히 나와 난간 밖에서 맞으니 시백이 계화에게 묻기를,
“피화당에 무슨 까닭이 있길래 너의 기쁜 빛이 겉으로 드러나느냐?”
계화가 대답하기를,
“방에 들어가면 자연히 알게 되실 것입니다.”
시백이 듣고 더욱 의심스러워 급히 들어가 문을 열어 보니, 어떤 부인 한 사람이 단정히 앉았는데, 달나라 항아와 같고 정말로 요조숙녀라. 한 번 보고는 정신이 아득하고 마음이 취한 것도 같고 미친 것도 같아 얼른 들어가 말을 하고 싶으나, 박씨의 얼굴을 잠깐 살펴보니 가을바람과 추운 눈발같이 차가워 말을 붙일 수가 없으므로,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나오며 계화에게 묻기를,
“그런 흉한 인물은 어디 가고 저런 달나라 항아가 되었느냐?”
계화가 웃음을 머금고 아뢰기를,
“부인이 어젯밤에 둔갑하고 변화를 부려서 항아와 같이 되시었습니다.”
시백이 듣고 깜짝 놀라며 스스로 사물을 바로 알아보는 눈이 없음을 한탄하고 삼사 년을 박대한 것을 생각하니 오히려 미안하고 부끄러워 바깥채에 나와 아버님을 뵈었는데, 공이 묻기를,
“지금 들어가 보니 네 아내의 얼굴이 어떠하더냐?”
시백이 두려워 대답하지 못하므로 공이 다시 이르기를,
“사람의 화복과 길흉은 마음대로 못하는 것이다. 네게 맡긴 사람을 삼사 년 박대하였으니 무슨 면목으로 아내를 대하려고 하느냐? 사물을 꿰뚫어 보는 눈이 저렇게 없고서야 공을 세워 널리 이름을 떨치기를 어떻게 바랄 수 있겠느냐. 모든 일을 이와 같이 하지 말아라.”
시백이 엎드려 명을 듣고 더욱 두렵고 감격스러워하여 아무 말도 못하고 나갔는데, 날이 저물어 시백이 피화당으로 들어가니 박씨가 촛불을 밝히고 얼굴빛을 엄숙하게 갖추고 앉아 있으니, 기운이 서리 같아서 감히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박씨가 먼저 말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나 끝내 말이 없으므로 시백이 지난 일을 후회하고 스스로 책망하며 말하기를,
“부인이 이렇게 하시는 것은 내가 여러 해를 박대한 탓이로다.”
하며 스스로 한탄하기를 마지아니하는데, 부인이 옳다 그르다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므로, 시백이 어쩔 수 없어 촛불 아래에 앉아 있었더니 어느덧 닭 우는 소리가 먼 마을에서 ‘꼬끼오’ 하였다. 바깥채로 나와 세수를 하고 어머님께 문안하고 물러나 글방에서 지내고 종일토록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저물기를 기다리다가, 밤이 되어 다시 피화당에 들어가니 박씨가 또 엄숙함이 전날보다 더하여 갈수록 심하였다. 시백이 죄지은 사람같이 있으면서 박씨가 말을 할 때만을 기다리고 앉았는데, 밤이 또다시 새니 말없이 나와 양친께 문안하고 물러나 서당에 나와 생각해보니, 이제 와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라. 이렇게 밤이 되면 피화당에 들어가 앉아서 밤을 새고 낮이면 서당에 나와 한탄하기를 이미 여러 날에 이르니 자연히 병이 되어 촛불 아래 앉아서 생각하기를,
‘아내라고 얻은 것이 흉한 모습을 하고 있어 평생에 원이 맺혔는데, 지금은 달나라에 산다는 선녀가 되었으나 말 한마디 주고받지 못하고 뼛속 깊이 병이 되었으니, 첫째는 내가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없었던 탓이고, 둘째는 내가 어리석고 둔한 탓이고, 셋째는 아버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탓이로다.’
하고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피화당에 들어가 박씨에게 사죄하여 말하기를,
“부인의 잠자리에 여러 날 들어왔으나 오로지 얼굴을 굳히고 마음을 풀지 않으니 이것은 모두 다 나의 허물인데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부인으로 하여금 삼사 년 빈 방에서 혼자 외로이 지내게 한 죄는 지금 무엇이라 말할 길이 없으나, 부인은 마음을 풀어서 사람을 구하십시오. 죽는 것은 섧지 않으나 두 분 부모님의 앞에 불효를 끼치어 젊은 나이에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으면 불효함이 매우 깊을 것이고, 죽어서 지하에 간다 한들 무슨 면목으로 조상님들을 뵈올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생각하면 매우 곤란한 지경이니 부인은 깊이 생각하십시오.”
하고 슬픔을 못 이겨 눈물을 흘리므로, 박씨가 그 말을 들으니 불쌍하고 가여운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어서 꽃과 달 같은 얼굴을 더욱 또렷이 하고는 책망하여 말하기를,
“조선은 예의가 바른 나라라고 하였는데 사람이 오륜을 모르면 어떻게 예의를 알겠습니까? 그대는 아내가 못생겼다고 하여 삼사 년을 천대하였으니 부부유별은 어디에 있으며, 옛 성현들이 이른 말에 ‘가난할 때 함께 고생한 아내는 내치지 못한다’ 하였는데, 그대는 다만 아름다운 얼굴만 생각하고 부부간의 오륜은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덕을 알며, 여자들의 깊고 얕음을 모르고 출세하여 이름을 세상에 드날리며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편안하게 할 재주가 있겠습니까? 지식이 저렇게 없는데 효와 충성스러운 마음을 어떻게 알며 백성을 편안히 할 도리를 알겠습니까? 이 다음부터는 효도를 다하여 몸을 바로 닦고 집안을 다스림을 마음속에 깊이 새겨 두십시오. 저는 비록 아녀자이나 낭군 같은 남자는 부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니 그 말이 올바르고 말에 나타나 있는 마음씀이 엄절하므로 시백이 들으니 자신이 저지른 일을 생각하고 입이 있어도 할말이 없었다. 미안한 마음을 억지로 참으며 자꾸 사죄할 뿐이었다. 박씨는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한참 후에 말하기를,
“제가 본래 모양을 감추고 추한 얼굴로 있었던 것은 서방님으로 하여금 꾀이지 못하게 하여 한마음으로 공부하게 한 것이고, 그 사이 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은 서방님으로 하여금 지나간 잘못을 스스로 뉘우치도록 하게 함입니다. 지금 본래 얼굴을 찾았으니 한평생 마음을 풀지 않으려고 하였으나, 여자의 연약한 마음으로 장부를 속이지 못하여 지나간 일을 풀어 버리는 것이니 부디 이 다음부터는 명심하십시오.”
시백이 말을 다 듣고 나서 매우 기뻐하며 말하기를,
“저는 속세의 무식한 사람이고 부인은 하늘에 사는 선녀의 풍채와 태도로 마음이 넓고 생각이 깊어 보통 사람과는 다르기 때문에 정신이 밝고 말이 순리에 맞으며 올바르고 크고 씩씩하시니, 나 같은 사람이야 신세가 누추한 인물로 지식이 얕고 짧아 착한 사람을 몰라보았으니 어떻게 신선 세상의 사람에 비교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부부간에 화락하지 못하여 사람의 도리를 폐지할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니 지나간 일을 다시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하물며 옛 성현이 이르시기를 ‘아무리 슬기로운 사람이라도 많은 생각 가운데는 한 가지쯤 실책이 있게 마련’ 이라고 하였으니, 당신의 존귀한 마음에 맺힌 마음을 풀어 버리십시오.”
박씨가 앉은 자리에서 물러나와 말하기를,
“지나간 일은 다시 말씀하지 마시고 마음을 놓으십시오.”
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니 밤이 이미 자정 무렵이 되었다. 아리따운 손을 이끌고 잠자리에 나아가 삼사 년 그리던 회포를 풀고 부부간에 즐거움을 함께 나누니, 그 정이 새로이 산과 같고 바다와 같았다.
이 다음을 차차 해석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