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회 오랑캐 왕이 조선에 신인과 임경업을 두려워하여 일류 여자객을 뽑아 보내다
한편, 즐거운 일이 지나면 슬픈 일이 온다는 것은 사람에게 흔한 일이라. 이공의 춘추 팔십에 홀연히 병을 얻어 점점 위중해지니 백 가지 약이 효험이 없었다. 공이 마침내 일어나지 못할 줄 알고 부인과 시백 부부를 불러 말하기를,
“나는 죽은 후에라도 집안 일을 소흘히 하지 말고 후사를 이어 조상님을 모시는 제사를 극진히 하여라.”
하시고 이어 세상을 버리니, 한 집안이 몹시 애통하고 슬프게 울어 상사를 치르고, 모부인이 매우 슬퍼하다가 몇 달만에 세상을 버리니, 시백의 부부가 일 년 내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이 큰 슬픔을 당하므로 어찌 끝없이 슬퍼하지 않겠는가. 처음부터 끝까지의 모든 범절을 극진히 하여서 선산에 안장하고 부부가 애통하여 마지않았다. 세월이 물과 같아 삼년상을 마쳤으므로 부부와 아래위 노복의 애통함을 이루 측량치 못하겠더라.
한편, 북방 오랑캐들이 강성하여서 북쪽 변경을 침범하는데, 임경업이 백전백승하여 물리치고 북방을 살피니, 무지막지한 오랑캐 황제가 조선을 치려고 만조백관들과 의논하기를,
“우리 나라는 지방이 광활한데도 조선의 장수 임경업을 이겨 억누를 사람이 없으니 이 어찌 답답하지 않겠는가. 어떻게 하면 조선을 쳐서 차지할 수 있겠는가?”
여러 신하들이 묵묵히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오랑캐의 귀비는 비록 여자이지만 비길 데 없는 영웅이었다. 위로는 천문에 관한 일을 통달하고 아래로는 지리를 통달하여, 앉아서 천 리 일을 헤아리고 서면 만 리 밖의 일을 아는 것이었다. 오랑캐 황제에게 아뢰기를,
“조선에 큰 신기한 사람이 있사오니 임경업을 꺾어도 조선은 차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므로 오랑캐 황제가 크게 놀라서 말하기를,
“짐(朕)이 평생 임경업을 꺼리기를 한나라 유방과 초나라 항우가 팔 년 동안 패권을 다툴 때 산을 뽑을 정도의 힘을 지녔다던 초나라 패왕 항우와, 삼국 시절에 다섯 관문의 수비대장들을 참수하여 뚫고 나아갔다는 관우와, 당양의 장판에서 홀몸으로 조조의 백만대군 속을 휘젓고 다녔다던 조자룡과 같이 알았는데, 그 위에 더한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조선을 넘볼 마음을 두겠는가.”
스스로 탄식하기를 마지않는데, 귀비가 다시 아뢰기를,
“천기를 보니 조선에 액운이 있습니다. 백만대군을 일으켜 보내도 그 신인을 잡기 전에는 꾀하기 매우 어려우므로, 제가 한 가지 계교를 생각하오니 자객을 구해서 조선에 내려보내어 신인을 없앤 후에 조선을 침범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오랑캐 황제가 말하기를,
“어떤 사람을 보낼까?”
귀비가 아뢰기를,
“조선은 재물을 탐내고 여색을 좋아하오니 계집을 구하되, 인물이 매우 뛰어나고 문필은 왕희지 같고, 말주변은 전국시대의 정치가였던 소진(蘇秦)과 전국시대의 변론가였던 장의(張儀) 같고, 재빠르기는 조자룡 같고, 생각하는 것은 제갈공명 같고, 지혜와 용맹을 고루 갖춘 계집을 보내면 일을 이룰 수 있을 듯합니다.”
오랑캐 황제가 듣고 옳게 여겨 즉시 여러 사람들과 의논하여 두루 구하였는데, 이때 육궁의 시녀 가운데 기홍대라 하는 계집이 있으니 인물은 당나라 명종황제의 애첩인 양귀비 같고, 말주변은 소진과 장의를 비웃으며, 검술은 당할 사람이 없고, 용맹은 용과 호랑이 같았다. 귀비가 오랑캐 황제에게 아뢰기를,
“기홍대는 검술과 용맹이 뛰어나고 도량과 지혜와 용맹을 고루 갖추어 딴 사람이 당해 내지 못할 용맹이 있사오니 기홍대를 보내십시오.”
하거늘 오랑캐 황제가 크게 기뻐하여 기홍대를 불러 보고 말하기를,
“너의 지용과 재모는 이미 알았거니와, 조선에 나아가 성공할 수 있겠느냐?”
홍대가 대답하여 아뢰기를,
“소녀가 비록 재주는 없으나 나라의 은혜가 망극하오니 어찌 물과 불이라도 피하겠습니까?”
황제가 말하기를,
“조선에 나아가 신인의 머리를 베어올진데, 이름을 천추(千秋)에 유전(遺傳)하게 하리라.”
하거늘 기홍대가 아뢰기를,
“소녀가 비록 재주는 없사오나 충성을 다하여 조선에 나아가 신인의 머리를 베어서 폐하의 근심을 덜어 드리겠습니다.”
하고 즉시 하직하고 나오니 귀비가 홍대를 불러 말하기를,
“조선에 나아가면 말이 생소할 것이다.”
하고 조선의 언어와 풍속을 가르친 후에 또 이르기를,
“조선에 나아가면 자연히 신인을 알게 될 것이니, 문답은 이렇게저렇게 두 번 하고, 부디 재주를 허비하지 말고 조심하여서 머리를 베어 가지고 돌아오는 길에 의주로 들어가 임경업의 머리마저 베어 가지고, 돌아올 때에도 부디 조심하여 대사를 그르치지 않도록 하여라.”
하므로 기홍대 명령을 듣고 나와서 행장을 차려 가지고 오랑캐 땅을 떠나 바로 조선국 경성에 곧장 도착하여 들어갔다.
이때 박씨가 홀로 피화당에 있었는데, 문득 천문을 보고 깜짝 놀라 승상을 청하여 당부하여 말하기를,
“몇월 며칠에 계집 하나가 집에 들어와 말은 이렇게저렇게 길게 할 것이니, 조심하여 친근하게 대접하지 마시고 이렇게저렇게 하여 피화당으로 이끌어 보내시면 저와 할 말이 있습니다.”
하거늘 승상이 말하기를,
“어떤 여자이길래 찾아온다는 것이오?”
부인이 대답하기를,
“그것은 나중에 알게 되실 것이거니와 다른 사람에게 말이 나가게 하지 마시고 저의 말대로 하시어서 낭패를 보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 계집은 얼굴이 기이하고 문필이 유창하고 아름다우며 백 가지 자태를 갖추고 있으므로, 만일 그 용모를 사랑하시어 가까이하시면 큰 우환을 면치 못할 것이니, 부디 그 간계에 속지 마시고 피화당으로 보내십시오.”
하고,
“그 사이 술을 빚어 담그되, 한 그릇은 쌀 두 말에 누룩 두 되를 해서 넣고, 또 한 그릇은 딴 것을 섞지 않은 순수한 술을 담아 두고 안주를 장만하여 두었다가 그날이 되면 저의 말대로 이렇게저렇게 하십시오.”
승상이 듣고 한편으로는 이상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과연 그날이 되니 한 여자가 집에 들어와 문안을 하므로, 승상이 그의 용모를 자세히 보니 과연 절대가인이요 요조숙녀라, 승상이 묻기를,
“어떤 여자이길래 감히 남자가 거처하는 사랑에 들어오는가?”
그 여자가 대답하기를,
“소녀는 서울서 먼 지방에 사는데, 마침 한양 구경을 왔다가 외람되게 상공께 오게 되었습니다.”
승상이 묻기를,
“너는 근본이 어디 살며 성명은 무엇이라고 하느냐?”
그 여자가 대답하기를,
“소녀가 살기는 강원도 회양(淮陽)에 사는데,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다가 우연히 관청에 잡히어 여종으로 등록이 되었사오니, 성은 모르고 이름은 설중매입니다.”
공이 그 여자의 거동을 보니 예사 사람이 아닌 줄 알고 사랑에 오르라 하니 그 여자가 황공해 하며 사양하다가 올라가 자리를 잡고 앉으니, 공이 몹시 마음에 들게 여기어 묻고 답하는 것이 물과 같이 막힘이 없으니 그 여자가 글재주와 말주변이 청산유수(靑山流水)와 같고 뜻과 생각이 넓은지라, 승상이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장안에 재상이 많지만 저 여자와 같은 언변과 문필이 가히 당할 사람이 없을 것 같으므로, 진실로 먼 지방의 천한 기생으로 있기가 아깝구나.’
하고 감탄하여 마음에 들어 하다가, 문득 부인이 당부하던 말을 생각하니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어 다시 이르기를,
“지금 해가 서산으로 지고 달이 동쪽 고개로 떠올라 밤이 깊어졌으니 후원의 피화당에 들어가 편히 묵도록 하여라.”
하니 설중매가 대답하기를,
“소녀의 몸이 천한 기생으로 이미 사랑방에 들어왔사오니 사랑에서 묵으며 대감을 모시고 아득한 마음의 회포를 밝히려고 하옵니다.”
승상이 말하기를,
“나도 마음 한구석으로 쓸쓸하여 적적함을 달래고 싶은 마음이 있으나, 오늘밤은 나랏일에 긴급한 일을 볼 것이 있고 관원들이 올 것이니 너와 함께 밤을 지내지 못하겠구나.”
그 여자가 대답하기를,
“소녀처럼 천한 몸이 어떻게 감히 부인을 모시고 하룻밤이라도 묵을 생각을 하겠습니까?”
승상이 말하기를
“너도 여자이니 부인과 함께 묵는 것이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하며 계화를 불러서 말하기를,
“이 여자를 데리고 피화당에 들어가 편히 쉬게 하여라.”
계화가 명령을 받들고 즉시 그 여인을 데리고 피화당으로 들어가 사연을 아뢰었는데, 부인이 듣고 그 여자를 불러들여 자리를 내어주며 묻기를,
“그대는 어떤 사람이길래 내 집에 찾아왔는가?”
여인이 대답하기를,
“소녀는 먼 지방의 천한 기생인데 서울에 구경왔다가 외람되게 높으신 댁을 왔사오니, 황송하고 감사한 마음을 이길 수 없습니다.”
부인이 말하기를,
“그대의 형색을 보니 평범한 사람과는 다르구나. 어찌 헛되이 시간과 힘을 허비하고 내 집을 부질없이 찾아왔는가?”
하며 계화를 불러서 말하기를,
“지금 손님이 왔으니 술과 안주를 들여라.”
하니 계화가 명을 받들고 나가더니, 이윽고 맛좋은 술과 풍성하게 차린 안주상을 갖추어 들여놓고 독주와 순수한 술을 구별하여 놓으니, 부인이 계화에게,
“술을 따르라.”
하니 계화가 명을 받들고 독주는 그 여인에게 권하고 순한 술은 부인에게 드리니, 그 여자는 먼길을 오느라 피곤하여 목마름이 심하던 차에 술을 보고 사양하지 않고 한 말 술을 두어 잔 도는 사이에 다 먹으니 그 거동이 보통사람과 달랐다. 저마다 그 술과 안주를 먹는 모양을 보고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 여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뒷 이야기는 다음 회에서 보시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