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형제(兄弟)
골령(鶻嶺)은 졸본 서울 근방에서 경개 좋기로 이름나고, 때때로 황룡이 와서 춤춘다고 길한 곳으로 이름난 곳이다.
뒤(남쪽)로는 아로 새긴 듯한 기암(奇岩)과 괴석을 등지고 거기는 숲과 꽃이 우거지고, 앞으로는 졸본내의 푸르른 물을 안고 두루미 길게 울며 날아다니며, 아래로는 바야흐로 늘고 커 가는 졸본 서울의 오색칠채로 꾸민 새 거리가 연연한 장성(長城)안에 아늑하게 잠겨 있어서, 대고구려 출발의 상서로운 땅임을 말하는 듯하다.
이즈음 몇 해째 졸본 서울 사람들이 놀러 다니느라고 그 발길에 새로 생긴 길이, 바라보는 경개좋은 곳을 따라서 이리저리 닦여 있고, 좀 과히 가파로운 길에는 발 짚을 자리며 손 붙들 자리도 생겨 있다.
이 길을 따라서 주몽왕은 두 왕자(비류와 온조)의 손목을 잡고, 산으로 놀러 오르고 있다. 심복 막료 합부 장군 단 한 사람이 뒤를 따른다.
"숨 차냐?"
"아니오"
"그럼 저기 보이는 부리까지 뛰어올라가자느냐?"
"네."
두 왕자를 앞세워 달려오르게 하고 임금은 뒤로 성큼성큼 따라 올라갔다.
두 소년은 꽤 가파롭고 긴 벼랑을 내내 달려 올라갔다. 그리고 아버님이 아까 가리킨 곳(몇 사람이 앉을 수 있을 평평한 바위였다)까지 가거 발을 멈추고서 그때야 숨이 꽤 찬지, 아래 감감히 굽어보이는 강을 향하여 돌아서서 가슴을 하 ― 하 ― 뛰놀리고 있다.
왕자들이 거기 서자 아버님도 곧 뒤따라 왔다. 합부 장군도 와서 조금 뒤 떨어진 곳에 선다.
"자, 앉아 좀 쉬자."
가정에서의 주몽왕은 천하 일의 행복자였다. 현철한 왕후에 영특한 왕자에 ― 부족한 곳이 없는 이였다.
임금은 단출하니 두 왕자와 심복 부장 한 사람만 데리고 이 영(嶺)으로 산보를 나선 것이다. 그들이 발을 멈추고 쉬는 곳은, 이 영의 마루턱이 거진 다 올라온 데였다. 영의 마루턱을 넘어서 늦은 봄 상쾌한 바람은 산꽃 〔山花〕 의 향기를 풍겨다 준다.
"좋지? 산 아름답고 물 맑고 사람 휼륭하고 - 좋은 나라이 아니냐. 이렇게 좋은 나라가 또 어디 있을 줄 아느냐. 참 하늘나라로다."
이 좋은 나라의 임금이로라는 긍지가 임금의 마음을 더 흥그럽게 하였다.
"나는 이곳 임금이요 너희는 내 아들이로구나. 좋지 않으냐? - 장군도 이리 가까이 나오구료."
그러나 지금 쉬는 바위는, 합부 장군까지 함께 앉기에는 부족하다. 부자(父子) 는 서로 붙안고 혹은 무릎에 앉고 할 수도 있지만, 군신(君臣)지간이라는 지위상의 차이가 있는 합부 장군은 그렇게 할 수도 없고, 따라서 장군은 겨우 한 걸음 나와서는 거기 서 버렸다.
"자, 앉아서 이야기들이나 하자 -. 장군. 우리가 동부여에서 도망해 우발수 건너 이리로 온 게 벌써 십 - 팔년 전이구료. 그때 셋이서 떠난, 그 세 사람 가운데 마리 장군은 옥저(沃沮)에 잃고."
"나랏님께서 하시려는 큰 일 다 되거든 함께 즐기려던 동무 하나는 그만…."
마리 장군을 옥저벌에서 잃은 것을 군신은 새삼스러이 조상하였다.
"하기는, 나두 여러 동무들과 오래 더 있지 못할 것 같소. 나도 얼마 더살지 못할 것 같소."
"그게 - 무슨 말씀이세요? 나랏님은 천만 세 살아 계서야 하옵지."
"나도 그러고 싶지만, 하늘이 부르시면 할 수 없지. 하늘이 나를 시켜서 하시려던 일은 대개 터전은 닦아 놓았으니까, 내가 해야 할 일은 다 끝난셈 이외다. 이제 부여에 있는 아이(유리 왕자)가 이리 와서, 나 하던 일 뒤 맡아 주기만 하면, 내 일은 다 끝났으니까. 내가 없는 뒤라도, 그 아이를 잘 거두어 주시오. 이게 내 부탁이외다."
"참 그 태자님은 -."
유리 태자는 그의 어머님 예씨와 함께 그냥 동부여에 있다. 시어머님인 유화부인 세상떠난 뒤에는 곧 이리로 불러야 할 것인데, 어름어름 하는 동안에 동부여 임금 금와왕이 승하하였다.
금와왕은 주몽왕이 한낱 이름없는 소년으로 어머님 유화부인과 함께 몸을 의탁하고 있을 동안도 이 모자를 각별히 대접했고, 그 뒤 주몽왕이 이 리로 떠난 뒤에도 유화부인을 왕모(王母)로서 융숭히 대우했고, 유화부인 세상 떠난 뒤에도, 주몽왕의 부인인 예씨와 그 소생인 유리 소년을 여전히 융숭 하게 대접했다.
그러나, 금와왕의 아들의 대소(帶素) 태자는 일찍부터 주몽왕(그때는 이름 없는 한 개 소년에 지나지 못했다)을 꺼리고 미워하고, 죽이려까지 한 사람이다.
지금 금와왕 승하하고, 대소가 등극한 부여에서는, 예씨며 예씨 소생의 소년에게 대한 대접은 여간 고약한 것이 아니고, 혹 고구려로 도망갈세라 감시 또한 여간 엄중하지 않다 한다. 예씨인들 품에 유리라는 소년까지 있으니, 얼마나 이리로 달려오고 싶으랴. 못 오는 것은 단지 대소왕의 감시가 엄중한 탓일 것이다.
"그 부여에 계신 태자께서 이리 오시면 -."
함부 장군은, 눈을 구을려, 아버님 앞에 가지런히 앉아 있는 두 왕자를 보았다.
"- 여기 계신 비류님과 온조님…."
이 합부 장군으로서는, 아직 보지도 못한 유리 왕자(태자)보다, 그 강보적부터 함께 모시었고, 손수 손잡아 무예(武藝)를 가르치고, 지도하고, 함께 놀고하여 오늘날까지 키운 이곳 왕자께 정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곳 왕자가 사람이 덜 나기라도 했으면여니와, 영특하고 비범하여 아버님의 위업을 넉넉히 계승하여 감당할 만한 기상인데, 그리로는 전연 생각도 안 두는 임금의 심사가 합부 장군으로서는 잘 알 수가 없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부여에 있는 왕자도 위인이 영절하다고는 하지만, 그 정도가 어떤지. 이곳의 두 왕자는 참으로 영특하고 비범한데, 부여의 왕자는 이곳 왕자만 하기나 할까.
인제는 주몽왕이 목적하는 위업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 사업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또한 얼마나 필요성이 큰 것인지 알고 있는 합부 장군으로서는, 그 목표 달성에 장군 자신도 진심으로 제 힘 다 바쳤으며, 장차도 그 목표 달성에 우수한 후계자가 있기를 바라는 적성으로서, 이곳 왕자를 지지하는 것이다. 정리로도 또한 이곳 왕자의 계승을 바란다.
그런데 주몽왕은, 아직 보지도 못한 부여 옛 왕자를 튼튼히 믿고, 그 왕자 오기만 하면 당신이 하여 나아가던 위대한 업을 마음 놓고 그 왕자께 계승 시키고자 하고 있으니, 그러고 마음이 놓이는지.
인제는 주몽왕께 배양된 생각(민족의식)이 합부 장군의 마음을 지배하는 바이라, 불안까지 느꼈다.
또한 이곳 두 왕자도 다 십사오에서 육칠로, 더우기 숙성한 소년들이라, 당신네 들의 현재의 지위가 어떤지, 또 장차 부여엣 왕자가 오면 어떻게 될지 짐작이 갈 것이다. 즉 이대로면, 아버님의 이룩한 나라도 장차 이곳 왕자께 계승될 것이로되, 부여엣 왕자가 오면, 이곳 왕자들은 그냥 여전히 ‘왕자’ 혹은 ‘왕제’ 로 있고, 아버님의 만든 위업은 부여엣 왕자께 계승될 것이다. 얼마나 불안하고 섭섭하랴.
"그래 - 비류와 온조가?"
"네…."
"어떻겠다고?"
"네…."
"섭섭하겠다고? 혹은 불안하겠다고?"
"…."
장군은 대답하기 좀 곤란하였다. 이전에, 소서노(召西奴) 왕후의 동기되는 이(왕자들의 이모다)가 이 문제를 가지고 왕자께 경솔히 말하다가, 형님되는 왕후께 노염을 사서 사사(賜死)된 일까지 있다.
주몽왕은 개의치 않는듯, 용안에 미소를 띠며 장군을 보고, 다시 두 왕자께로 눈을 돌렸다 -.
"이애들아."
"네?"
"합부 장군이 너희를 근심하누나. 부여에서 형이 오면 너희들은 섭섭하게 되겠다고. 그러냐? 형이 오면 너희는 섭섭하게 되겠느냐? 어디 대답해 보아라. 너희의 마음을…."
"왜 섭섭해요? 형님이 생기면 더 튼튼하지요."
- 이것은 아우 되는 온조의 대답이었다.
"저는 동생 노릇 못해 보는 게 섭섭했는데 형님이 생기면 저는 동생이 되니, 천하 반가운 일이올시다."
- 이것은 형 비류의 대답이었다.
왕자 형제의 이 대답을 들으며 합부 장군은, 아아, 소년의 마음은 물같이 맑구나, 그 누리던 위를 잃고, 또는 부여엣 왕자가 마음이 포악한 사람이면(게다가 못된 신하의 참 소질까지 있으면) 혹은 당신네들(왕자네)의 신상이 위태로울지도 알 수 없는 - 그런 방면은 생각이 못 미치는 단순한 귀인들이여. 합부 장군은 머리를 숙이고 잠자코 있었다. 주몽왕은 왕자들의 대답을 들으며 머리를 다시 합부 장군에게 향하였다.
"이 애들의 어머님 되는 왕후의 가르침이오. 형제의 의좋게 - 배다른 형제라는 생각은 예전부터 두지 말고, 내내 형제간의 좋으라는 왕후의 가르침이오. 아무리 배다른 형일지라도, 나를 따르는 동생을 괄시할 못된 형은 없을 게요."
"지당하오신 말씀이옵니다."
이렇게 아뢰기는 하였다. 그러나 합부 장군의 마음에는 여전히 미흡한 데가 있었다.
"장군과 내가 부여에서 피해 나온 것이 - 그때 내 나이 스물둘이었소. 이 애들이 열일곱과 열다섯인데, 내가 부여에서 도망해 와서 여기 나라를 세운 스물두 살까지 이제 사오년 - 이 애들이 사오 년 뒤에는 한 나라의 임금이 될 수 있을 만치 자랄까. 하기는, 나는 장군이라 그 밖 좋은 동무들이 좌우에서 도와 주었기에 이런 큰 일을 달성한 것이지만…."
이 말에 대하여 온조 왕자가 곁에서 말하였다 -.
"흥 . 아버님은 아버님만 잘나 보이시나베. 사오 년은커녕, 오늘이라도 저희에게 한 나라를 맡겨 보서요. 어떻게 잘 능란하게 다스리나…."
"온조님, 지당한 말씀이옵니다."
합부 장군이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자 주몽왕도 웃으면서 말하였다 -.
"맡겨 보아? 누가 맡겨? 아버지는 누가 맡겨서 나라를 다스린 줄 아느냐.
내 손으로 세우고 이룩하고, 내가 이룩한 내 나라를 내 손으로 다스려야지."
"그럼 아버님. 저희를 저 남쪽으로 보내 주셔요. 그러면 남쪽 한(韓) 땅에 저희가 나라를 세우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낙랑으로라도…."
"그런 먼 데 가서는 젖 생각 나서 며칠을 못 있을 꼴에 -."
아버님 주몽왕은 농담으로 이렇게 웃어 버렸다. 그러나 이 순간 가슴에 선뜻 박히는 무엇이 있었다. 아들의 웃음의 말 - 희롱의 말 가운데서, 가슴에 박히는 커다란 암시가 있었다.
"참 -."
같은 암시를 받은 듯, 합부 장군은 말을 꺼내다가 끊쳐 버렸다.
이 왕자들이 좀 더 자라서, 좀 더 지혜가 생기면, ‘그 일’이야말로 할 만한 일이다. 해야 할 일이다.
남쪽 지방에는 ‘조선의 부스러기’가 한 덩어리 있다. ‘조선’이란 큰 덩어리가 지나인에게 허리를 끊겨서, 원 몸뚱이는 이곳에 남아 있지만, 가운데를 잘린 저쪽 덩어리는 멀리 남쪽에 굴러가 있다.
그 덩어리에까지, 지나인인 기씨(箕氏)가 내려가서 왕 노릇을 하고 있다 한다.
지나 본토에서 현토(玄菟)로 낙랑(樂浪)으로, 이 지나인에게 잃은 이 땅들은, 지나 본국의 직할지(直轄地)로서 지나 본국에 직속되었고, 그 이남 땅은, 역시 지나인인 기씨〔기준(箕準)이다〕가 같은 지나인(위씨)에게 쫓겨 그리로 가서, 순후한 토민을 속이고 협박하고 하여, 그곳(마한이라 한다) 의 왕 노릇을 하고 있다 한다. 장차 고구려에서, 거기까지 힘이 자라면, 우선 현토 낙랑을 복멸하고 차례로 순서대로 한(韓)땅까지 복멸하여, 우리의 옛 터에서 지나인을 뿌리째 뽑아 버리고 우리 땅 찾으려던 계획이었다.
그런데 일 진행의 순서를 달리하여, 마한(馬韓)을 먼저 복멸하여 마한을 우리 것으로 만들고, 그곳을 근거지로, 중간에 남아 있는 지나 영토 낙랑을 남북에서 합세하여 치면 어떨까.
낙랑은 지나에 직속된 지역이라, 우리의 힘이 썩 자란 뒤가 아니면, 치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지나 본토에서 내내 육지로 접속된 땅이라, 낙랑이 공격받으면 본국에서 구원병이 달려갈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낙랑을 꺾기는 좀 노력이 들것이다.
그러나 마한은 지나인(기씨)이 왕 노릇을 하고 있다 하나 지나 본국과는 천여 년 전에 관계 없이 된 기씨이며 그곳 주민(住民)도, 본토인인 흰 옷 입는 백성과 및 기씨가 위씨(偉氏)에게 쫓겨갈 때 데리고 간 근소한 지나인으로 구성되었을 것이니, 그 근소한 지나인만 꺾으면 마한은 힘 안들이고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여기서 시작하여 낙랑으로 마한으로 이런 순서로 꺾어 가자면, 우선 낙랑에서 부터 큰 저항을 받을 것이요 지나 본국에서 구원병까지 달려 올지도 모를 것이요, 요행 숱한 공을 들여 낙랑을 꺾고 뒷차례로 마한을 친다 하면, 그때는 마한에는 낙랑서 쫓겨간 무리까지 마한에 투신하여 마한이 강화(强化) 도 될 것이니, 그렇게 되면 마한도 꽤 힘들이어야 꺾을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마한부터 꺾고, 낙랑은 남북에서 합세해서 치면 - 마한도 보잘 것 없을 것이요 낙랑도 손쉽게 될 것이다.
"좌우간 합부 장군. 장군은 핏덩어리 - 물덩어리 적부터 이 두 아이에게 정 들였으니까, 그 정의가 크고 깊을게요. 여간 -"
계속 하는 주몽왕의 말에, 합부 장군이 끊으며 끼여들었다 -.
"소신도 나랏님을 모신 뒤, 나랏님 덕분으로 처자도 생기옵고, 그 생긴 자식이 또한 남의 아이 못지 않게 영리하와, 금옥으로 바꿀 수 없도록 소신께는 귀하옵지만, 두 분 왕자님께야…."
"내 이미 잘 아우. 장군이 이 애들에게 대한 지성을 잘 알지만, 나 또한 내 자식이니, 내가 이 애들을 사랑하는 마음 또 결코 장군보다 못하지 않을게 아니오? 그 내가 다 생각하는 바이 있으니 장군은 염려는 말고, 이 뒤이 애들의 신상에 어떤 변화가 생기면, 그때도 그냥 이 애들을 위해서 힘 아끼지 말고 보아 주시오."
"다시 분부 없사온들…."
"야, 너희들도 장차, 나 있건 없은 뒤건 모든 일을 장군과 의논해라. 너희 아버지가 아직껏 믿어서 함께 일해 왔고, 장차도 그냥 믿고 힘입어야 할 튼튼한 장군이니, 마음놓고 믿고 힘입어라."
"네…."
아까 작은아드님 온조 왕자의 웃음엣 소리에서 암시를 얻어 주몽왕의 마음속에 생긴 생각은 이러하였다 -.
즉 동부여에서 유리 왕자가 어머님 예씨와 함께 이곳으로 오면, 그 왕자의 인품을 보아서 정 치물(痴物)만 아니거든 그를 태자로 봉한다. 그리고, 장차는 고구려나라를 맡기고 아울러 주몽왕 당신이 하려던 위대한 업무 - 이 땅에서 딴 인종을 내쫓고 이 땅을 도로 찾는 일 - 까지 아울러 맡긴다. 인제는 나라의 틀도 잡아 놓았으니, 정 치물만 아니면, 좋은 보필자(輔弼者) 만 곁에 보필하면 넉넉히 감당을 할 것이다.
이 나라를 그렇게 하고, 그러고는 작은 왕자(비류와 온조)는 좋은 보필자를 붙여서, 이 나라를 떠나게 한다. 떠나서는 남쪽으로 가서, 소위 ‘기씨’라는 지나인 임금을 내쫓고 그들(두 아들)로써 그곳을 잡게 한다. 마한도 자기네의 힘(실력)이 하도 약하니(약할 것이다) 북쪽 신왕(神王)의 아들이 왔노라 하면 맞아 싸우기를 피하고 한 귀퉁이 땅을 빌려 주어, 거기 자리 잡을 터를 줄 것이라 보았다. 만약 그리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애전에 여기서 부터, 약소한 무력과 보필자(輔弼者)를 데리고 떠나고, 또 그곳에 가서는 왕검님의 후손 해모수님의 손주라는 것을 외치면 그곳 토민들도 지금의 미약한 왕권을 배반하고 돌아붙을 자 태반이리라.
그 곳 왕이 아첨 영합하느라고 땅을 빌리면 더 할 말 없고, 이 편이 무력으로 한 귀퉁이 얻어 잡는다 할지라도, 약간한 근거지가 생기기만 하면, 그 곳 주민을 불러서 곧 크게 될 것이요, 얼마만치만 크게 되면, 그 남쪽에 생긴 힘과, 현재 북쪽에 기르는 힘을 합쳐서는, 그 뒤는 낙랑을 부수기도 훨씬 쉽게 될 것이다.
다만 문제는, 이곳 왕자가 어서, 그만한 일 감당할 수 있을 만치, 몸과 마음이 커지는 것이다.
지금 부모의 아래서니 응석도 부리고, 어린애 노릇을 하려 하나, 간간 신하들과만 대해 있을 때 엿보면, 제법 어른다이 지낸다.
"너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이다. 네 위에는 하늘이 있을 뿐이요, 네 아래는 억조의 창생이 있느니라." 는 관념은 일찍 주몽왕의 어머님인 유화부인이 주몽왕을 기르는 동안, 내내 아드님의 머리에 부어 넣고 배양한 사상이었다. 비류와 온조의 두 왕자는, 위에 ‘유리’라는 형(형은 또 겸해서 태자다)이 있으니, 그 사상 그대로 부어 넣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아래를 긍휼히 여기는 사상을 배양하기 위하여 두 왕자에게도 웃사람 노릇의 교양을 하여 두었었다.
따라서 웃사람이 되기게 소질도 넉넉하거니와 소양도 넉넉하였다.
그 소질과 소양을 가지고, 비류와 온조의 두 왕자를 남쪽 나라로 내려 보내려고 구체적으로 그 생각을 해보고자 하였다.
"이 애들아. 너희들도, 아버지가 언제까지든 너희와 함께 있을 사람이 아니요, 아버지는 너희보다 먼저 죽어 없어질 사람이라는 것은 알게다. 지금 아버지의 아래이니 다 한지붕 밑에 한솥 밥으로 살아 가지만, 아버지 없은 뒤에는, 비류는 비류 집 주인이요, 온조는 온조 집 주인으로, 제각기 한 집의 주인이 될 터이니, 주인 노릇하는 법도 배워 두어라. 주인 노릇도 감당키 힘든 것이다."
형왕자 비류는 잠잠히 아버님의 말씀을 듣고 있다. 그러나 아우왕자 온조가 그 눈을 저으기 치떴다.
"아버님. 저희도 아버님의 자식이올시다. 저희 어머님도 또 아버님의 어머님만 못하지 않게 애써서 저희를 기르셨어요. 저는 간간 혼자 몰래 생각했어요. 이 고구려나라는 물론 맏형님이 오시면 맏형님께 올릴 것입니다. 맏형님이 어찌해서 못 오시면 가운데 형님의 것이옵고…. 하여간 장래에도 제 것은 되지 않을 것이지요. 저는 언제까지나 형님 모시고 형님의 애나 태우며 있어야 할 물건입니다."
소년왕자가 뜻밖에도 장중한 태도로 엄숙한 말을 꺼내는데, 형 되는 비류왕자는 물론이요 합부 장군이며, 아버님 되는 주몽왕까지 일종의 위압감을 느끼며 귀를 기울렸다. 그 가운데서 온조 왕자의 말은 계속하였다 -.
"그래서 언제까지나 밥버러지로 형님의 애나 태우며 지내야 하나, 혹은 무슨 다른 길은 없을까고 간간 생각해 보았어요. 아버님께서 세 장수를 데리시고 부여에서 피해 나오셔서 이런 훌륭한 나라를 세우신 것처럼 그런 재간은 피울 수 없을까고도 생각해 보았어요. 그런 새 나라를 세우려면 어디를 터 잡을까, 빈 땅, 주인 없는 땅은 어디 없을까, 이렇게 생각하다가 문득, 저편 남쪽 - 낙랑도 건너서 더 남쪽에, 우리나라 사람과 같은 사람이 사는 땅이 있다는 생각이 나자, 또 아버님께서는, 같은 옷 입고 같은 말 쓰는 사람은 다 한데 모여야 한다고 늘 말씀하시는 그 생각이 나서, 제가 그리로 갈까, 그리로 가서 거기 나라를 세우고, 이곳 형님의 나라와 서로 의좋게, 지낼 수 있는 나라를 세워 볼까, 이렇게 생각해 본 일이 있어요. 그런 생각이 난 다음부터는, 저는 장차 그렇게 하리라고 마음으로 작정하고, 어서 좀 더 자라서 혼자 멀리 떠난대도 아버님께서 허락하실이만치 크기만 기다리고 있는 중이올시다. 아버님, 제가 좀 더 자라거든 그렇게 허락해 주서요."
소년답지 않은 이 위대한 발언에, 주몽왕은 놀라운 표정으로 아드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네 지혜냐, 혹은 어머니든가 다른 사람의 가르침이냐."
"아버님! 저를 아버님의 아들이라는 점을 생각치 않으서요? 아버님이 열다섯 적에 얼마나 한 생각이거나 욕심을 가졌었는지 생각해 보서요."
왕자의 지적을 받아 주몽왕은 과거 열다섯 살쯤의 기억을 회상하여 보았다. 그다지 먼 과거도 아니다.
어머님 유화부인의 사랑 아래서 응석도 부리고 어리광도 부렸지만, 당신 홀로의 야심과 공상과 욕망은, 천하를 삼켜 보겠달이만치 컸었다. 당신의 과거를 미루어 따지자면, 온조 왕자의 야심도 그럴 만하였다.
주몽왕은 이 아드님께 진심으로 감복하였다. 그리고 벌써 이만한 아드님이면 장차 남쪽 땅에 가서 한 개의 일을 넉넉히 달성할 것으로 보았다.
"온조야. 가까이 오너라."
손을 들어 아드님의 등을 두드렸다.
"마음 튼튼하구나."
그리고 합부 장군을 돌아보았다.
"장군. 이 애가 나보다 앞서 생각하는구료. 마음 튼튼하오."
아버님께 칭찬받고, 얼굴이 벌겋게 되며 기뻐하는 - 역시 아직 소년이었다.
그로부터 주몽왕은, 비류와 온조 두 왕자를 장차 남쪽 땅으로 보낼 것을 목표로, 그런 방침 아래 훈육하고, 장차 좋은 보필자가 될 신하 십여 명을 골라서, 두 왕자에게 직속하게 하여, 늘 토론도 하고 경기도 하게 하였다.
마리, 합부, 극씨, 중실씨, 소실씨, 부분노 등의 건국의 원훈들은 주몽왕도 놓기 싫고 그들(신하들)도 마찬가지여서, 내내 주몽왕을 모시게 하고, 장차 유리 왕자가 오거든, 이어서 유리께 보필하게 하고, 다른 명신들은 대개 두 왕자에게 속하게 하였다.
그러나, 왜 두 왕자에게 따로 그들의 몫을 갈라 내어 따로 하는지는, 임금과 왕후와 두 왕자와 건국 원로 및 건국 원로 몇 사람 밖에는 까닭을 몰랐다. 따로이 분리되어 왕자께 직속된 막료들도 까닭을 몰랐다. 임금의 분부이니 시행할 따름이었다.
병졸도 삼천 명을 갈라서 직속케 하였다. 이 병졸들을 가지고, 왕자께 직속된 무장이 매일 교외에서 훈련하였다. 극씨와 중실씨가 짜낸 진법(陳法)으로서 홍백군으로 나누여서 맹훈련을 하였다.
영문 모르는 백성들이며 신하들은, 장차 무슨 큰 전쟁을 치르려고 그 준비를 하는 것으로 알았다. 이즈음 한동안 고구려는, ‘전쟁’이라는 칭호를 붙일 수 없는 조그만 사변(부락국가를 몇 개 합병한 것) 밖에는 전쟁다운 전쟁이 없어서 태평한 세월을 보냈는데, 이 군사연습은 또한 건국 이래의 가장 큰 것이라, 무슨 큰 전쟁을 준비하는 줄 알았다.
낙랑일가. 동부여일까.
그들은 의아히 궁금히 여기었다.
졸본 서울도 처음보다는 놀랍게 커져서, 교외라 하면 꽤 멀다. 씩씩한 병졸들이 교외에서 하루 진일 전법(戰法)을 익히고 저녁에 서울로 돌아오는 활발스러운 모양을 보고는, 백성들은 저 씩씩한 젊은 발에 밟힐 자는 낙랑일까 부여일까 궁금하게 여기었다.
백성들이 궁금히 여기는 군사훈련을 계속하여 시키며, 주몽왕은 또한 나라를 가멸게 하기 위한 방책을 늘 모신(謀臣)들과 의논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