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類利) - 1
그것은 고구려 건국 제십구 년 ― 왕의 즉위 제십구 년 여름이었다.
여름이라 하나 첫여름인 사월 어떤 날, 임금은 정청에 앉아서 원로 대신(원로 대신이라 하나, 임금이나 원로 대신이나 모두 사십 세 안팎의 장년들이었다) 들과 무슨 의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외전에서 일보고 있던 원로 대신 오이 장군이, 장군답지 않은 흥분한 태도로 들어왔다. 흥분 ― 흥분 가운데도 기쁜 흥분인 모양이었다. 사십 장년 답지 않게 얼굴에 홍조까지 띠고, 옥좌 앞에 와서 한 무릎 꿇어 절하며,
"나랏님 아뢰옵니다."
한다. 임금은 미소하며 고요히 머리를 들었다 ―.
"무슨 좋은 소식을 내게 들리려우?"
"나랏님. 소신 사십 평생 가장 기쁜 말씀을 올리겠읍니다."
"그게 무슨 소식이요? 장군 사십 평생 가장 좋은 소식이면 내게도 마찬가질 터인데, 무엘까. 혹 유리가 졸본에 왔소?"
"나랏님!"
"어서 말을 하구료."
"나랏님. 나랏님께는 왕자님 이리 오신다는 게 가장 기쁜 소식이옵니까?"
"내 팔자가 천하 일로서, 늘 반가운 소식 밖에는 모르는 형편이니, 지금이야, 보고 싶은 그 애 왔다는 소식 이상 더한 소식이 있겠소? 장군은 대체 무슨 좋은 소식을 가지고 왔소?"
"나랏님! 태자님이 오셨읍니다."
주몽왕의 용안은 순간 진실로 빛났다. 참으로 아드님이 이즈음은 보고 싶었다. 당신의 해야 할 일은 다 끝냈고 인젠 다만 태자께 계승시킬 일만 남았고, 또한 다른 왕자(비류와 온조)에게 맡길 일도 준비되었고, 비류와 온조두 왕자도 남방을 목표로 한 행진이 시작된 뒤부터는, 그냥 남아 있던 어리광 태며 소년색도 사라져 없어지고 외모며 마음이 어른같이 홀변하여, 넉넉히 큰 임무 감당할 꼴이 분명해져서, 이곳 주인(유리)을 어서 데려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아드님 보고 싶은 마음이 갑자기 간절하여져서 이즈음 그 생각이 가속도로 커 가고 간절해 갔다. 사람을 부여로 보내고 싶기까지 하였다.
아직 보지 못한 아드님 ― 그러나 영특하다는 소문은 늘 들은 아드님.
"이리로 ― 불러들여 주시오."
다시 나갔다가 들어오는 오이 장군의 옆에는, 한 청년이 동반했다. 그 청년은 성큼성큼 들어와서 임금 앞에 꿇어 절하였다.
나이는 열아홉일 것이다. 그러나 장대한 몸집, 침착한 눈찌, 열 아홉으로 보긴 힘들도록 원숙하다.
아직 거울이 없는 시절이라, 당신의 용안을 거울에 비추어 보지는 못하였지만, 잘 간 검이나 빛나게 닦은 기명이나, 그릇의 물에 비치는 그림자로써 당신 면영을 짐작은 한다.
"나랏님. 소신이 처음 모실 때의 꼭 그 시절의 모습이옵니다."
오이 장군이 곁에서 보증하는 말은 에누리 없는 것으로 임금은 믿었다.
"네가 유리냐?"
"네이. 나랏님의 아들 유리옵니다."
"무슨 증표가 있느냐."
이십 년 전 주몽왕이 동부여에서 떠날 임시에, 안해 예씨에게, 장차 아들을 낳거든 여사여사한 물건을 증표 삼아 내게로 보내라고 부탁했었다. 그런 증표 없을지라도, 오이 장군의 증명이 있고 또 임금 당신의 직각 등으로 의심할 바는 아니지만….
"네이. 있읍니다. 여기 있읍니다."
유리 왕자는 품에서 보자기를 하나 꺼내어 끌렀다.
그것을 보면서 임금은 시종을 안으로 보내서 무슨 물건을 가져오기를 분부 하였다.
유리 왕자가 품에서 꺼낸 것은 한 개 부러진 칼날이었다. 시종이 안에서 내 온 것은 한 개 날부러진 칼자루였다.
임금은 그 물건들을 들어 오이 장군에게 주었다.
"맞는가 맞추어 보시오."
그러고는 그것을 맞추어 보는 오이 장군 쪽은 보지 않고, 그냥 왕자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랏님. 요것, 요렇게 꼭 들어맞습니다."
오이 장군의 이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임금은 그의 억센 두 팔을 길게 뻗치었다.
"야, 유리야. 평생 처음 한번 너를 안아 보자. 이 아비의 팔에 한번 안기거라!"
이십 청년을 임금은 마치 어린애인 듯 힘있게 품에 안았다. 그리고 당신의 뺨을 아드님의 얼굴에 겹지 않고 부벼대었다.
유리 왕자는 아버님의 품에 안겨서, 아버님의 귀에 입을 가까이 하고 속삭였다 ―.
"아버님. 이번 어머님도 저와 같이 오셨어요."
"무얼? 어머니도?"
무론 같이 올 것이요, 안 왔다 하면 묻기라도 했어야 할 것이다. 아드님을 만난 반가움에 잠깐 잊었던 것이다.
"어디 계시냐?"
"밖에 기다리십니다."
이십 년 전 동부여를 피해 탈출할 적에 홀홀히 작별한 이래, 이십 년을 보지 못한 아내 ― 적지(敵地)나 다름없는 곳에서, 시어머님 모시고, 유복자나 일반인 유리 왕자 기르며, 갖은 신고 다 맛본 아내다. 당신은 이곳서 한나라를 이룩하고 그 나라의 시조왕으로 영화 누리며, 새 아내 맞아서 자식까지 낳고 온갖 영화 누릴 동안, 아버지 없는 자식을 홀시어머님 모시고 적지에서 기르노라니 얼마나 고생하였으랴.
임금의 분부로 달려나간 시종은 궁문 밖에 기두르는 예씨 부인을 맞아 모시고 돌아왔다.
"오오"
이십 살에 작별하여 사십 살에 만나니, 감개무량하여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저 안으로 ―."
유리 왕자가 오거든 거처하게 하려고 지어 둔 태자궁이 있다.
주몽왕은 이십 년 만에 보는 예씨 부인과 유리 왕자를 데리고 그 태자궁으로 들어갔다.
동부여에서 예씨와 유리 왕자가 왔다는 말이, 소서노 왕후에게 들어가자, 소서노 왕후는 곧 태자궁으로 달려나와서 예씨를 절하였다.
"먼길 오시느라고 애쓰섰겠읍니다."
그 말눈치와 옷차림으로 보아서, 예씨는 상대자의 신분을 알아보았다.
"그맛게 무슨 애? 소문에 듣기에는 왕자가 계시다고 들었는데 어디 놀러 가섰읍니까?"
부여의 풍습은 여인의 시기를 엄금한다. 시기하는 자는 죽음으로 벌한다.
시기를 여덕(女德)의 가장 큰 수치요 죄로 여기는 습관에서 자란 예씨 부인은, 시앗이라 볼 수 있는 소서노 왕후에게 따듯한 정으로 인사하였다.
그 날로 정식으로 유리를 태자(太子)로 봉하였다.
그 뒤, 뒤따라 위까지 유리 태자께 물리고, 주몽왕은 뒷대궐로 물러앉았다. 이것은 두 가지 까닭 때문이었다.
첫째는 물론 유리 신왕께, 고구려 건국의 대이상(理想)을 알으켜서 이 국시(國是)에 따라서 나라를 운용하게 하며 겸하여 신왕께 임금 노릇을 하는 법을 손목 잡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또 한 가지 까닭은 이 종족에게는 괴상한 풍습이 있어서, 남편이거나 주인이 거나 임금이거나 죽으면, 그 아래의 안해거나 아랫사람이거나 신하거나는 순사(殉死) 하는 습관이 있다.
주인을 사모하는 적성으로 뒤따른다는 것이야 그 무엇이 나쁘랴마는, 이 새 나라에서, 일꾼이 얼마 있어도 넘친달 수 없는 이 형편 아래서, 쓸모 있고 긴한 재상들이 임금 따라 순사하면, 다음 임금께 시종할 인물이 축난다.
그래서 주몽왕 당신이 배양한 명신들을, 모두 신왕께 속하게 하여, 이 뒤 불행 주몽왕 당신이 승하하는 날에도 순사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신왕 등극을 축하하는 뜻으로, 사(赦)를 내려서, 옥문을 열고, 또한 포로로 잡혀와서 종살이하는 외국인들을 모두 속량케 하였다. 속량된 포로들은 자유로 제 본국 혹은 본 고향에 돌아가기를 허가했지만, 그들은, 그냥 이 나라에 머물러 있기를 자원하였다. 미약하거나 모호한 본 고장에 돌아가느니, 이 바야흐로 하늘을 찌를 듯 창성하는, 명군 치하의 태평성국에 그냥 머물러 안온한 생활을 유지하고자 함이었다.
주몽왕은 인젠 당신이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업무는 다 끝난 것으로 여기었다.
나라의 기초도 섰다. 종족 기초의 목표도 확립되었다. 그리고 그 업무를 계승할 태자(신왕)도 왔다.
비류와 온조 두 왕자를 남방으로 보낼 준비도 되었다.
그 업무의 계승자들은 모두 넉넉히 업무를 이해하고 책임맡아 나갈만한 소질로 충분하였다.
이만했으면, 하늘이 당신께 짊어지워 준 책임은 다한 것으로 여기었다. 그리고, 뒷대궐에 물러앉아 잔무 처리만 하면서, 이십 년 만에 만난 안해 예씨와 즐겁고 안온하게 날을 보냈다.
안해 예씨는 아직 그냥 친정에 있는 시절에 작별하였었는지라, 주몽왕께는 그냥 애인이었다. 이곳서 다른 안해(왕후)를 맞아 왕 노릇을 하는 이십 년 내내, 애인으로서의 예씨는 그리웠다. 그 그립던 예씨가 왔는지라 무한 기뻤고, 무한 사랑스러웠다.
소서노 왕후는, 모든 것을 예의로 사양하고, 지아버님 주몽왕은 왕의 옛날 애인 예씨에게 맡기고 왕후는 장차 당신 소생의 두 왕자와 함께 남방으로 갈 준비에만 마음 두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