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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서라벌
◈ 조선(朝鮮)
김동인의 역사소설. (1947년작) 대체 ‘조선’이란 것은, 지역의 이름이요 나라의 이름이요 겸하여 종족의 이름이요 또한 시대의 이름이다.
조선(朝鮮)
 
대체 ‘조선’이란 것은, 지역의 이름이요 나라의 이름이요 겸하여 종족의 이름이요 또한 시대의 이름이다.
 
단군 왕검님이 동방 종족을 규합하여 나라를 세우고 조선이라 하였으니, 그때는 ‘조선’이라는 것은 나라의 이름이었고 ‘조선인’이라 하는 것은 단군 백성의 칭호였고, 또 ‘조선’이라 하는 것은 단군 건국부터의 ‘시대’ 이름을 겸한다. 그리고 또한 지역의 칭호까지도 겸하여서, 북방 불함(不咸) 산기슭에서 발상하여 조선인 조선종족이 발전함에 따라서 ‘조선땅’도 넓어져서, 온 동방이 ‘조선’이 되었다.
 
그 뒤, 기씨가 이 땅으로 들어오매 주(周)나라에서는 이 땅을 조선이라 하여 기씨를 조선땅의 왕으로 ‘조선왕’으로 봉하였다. 그때부터, ‘기씨조선’이라는 ‘시대’ 가 시작되었다.
 
본시는 조선은 종족의 칭호인 동시에 나라의 이름이요, 그 종족이 살고 있는 지역의 이름이라, 이것은 단군에게 전속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우주를 지나인의 것으로 인정하는 지나 천자는, 기씨가 조선 ‘땅’에 오자 기씨를 조선 ‘땅’의 왕으로 봉하였다. 이 ‘때’ 부터, ‘조선’ 은 정체가 모호하게 교착(交錯)되어 들어갔다.
 
 
기씨가 단군조선땅에서 동진(東進)하고 남하(南下)하는데 따라서 기씨의 지역이 차차 넓어 가고, 기씨의 지역은 조선왕이 지역이라 기씨조선이 차차 넓어 갔다.
 
조선의 땅이 주인이요 나라의 주인이요 종족의 주인이던 단군 대대의 임금은 조선이란 칭호의 소유 행사권을 아득바득 다투지 않고, 기씨에게 침식 되는 대로 차차 압축되며 분해(分解)작용까지 일어서, 밀리고 줄어 들어갔다.‘조선’이란 칭호도 아주 잃고 말았다.‘조선’이라는 칭호는 기씨에게 아주 넘어가고 말았다.
 
지나인이며 지안인의 한 사람인 기씨가 ‘조선왕’이매 기씨의 나라가 ‘조선국’이며 기씨의 세력범위 안에 있는 땅이 ‘조선 지역’(그것은 계속적으로 동으로 남으로 확대되었다)이며, 그 지역 안에 사는 주민을 ‘조선인’ 이라하였다.‘조선족’이라 하는 것은 기씨의 아래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동방 지역, 기씨의 세력 이외의 지대(본시 단군의 지역에서 기씨에게 앗긴 지역을 제한)는 ‘동이(東夷)’의 땅이라 하고 그곳의 주민을 ‘동이’라 하였다.
 
본시의 조선족은 이리하여 기씨의 세력 아래 있는 데 사는 자는 ‘조선 백성’ 이 되고, 그 밖은 ‘동이’가 되었다.
 
그런지라, 기씨의 시절에는 ‘조선국’과 ‘조선족’은 관계가 없었다. 조선족은 일부는 ‘동이’가 되고 일부는 ‘조선인’이 되었다. 단군의 옛터는 일부는 기씨조선이 되었고, 나머지는 ‘동이’가 되었다. ‘동이’는 또 부여(扶餘) 를 비롯하여 여러 개의 작은 나라로 나누였다.
 
‘조선’이란 칭호는 이 ‘종족’을 떠난 것이었다.
 
백성의 대부분이 조선족으로 이루어진 조선국(기씨의)은 그래도 순조롭게 발전 되고 성장되었다. 나라의 수뇌부는 그 뒤 위씨로 바꾸이고 또 그 뒤 지나에 직속된 고을로 되었지만, 수뇌와 관계 없이 백성(토민)은 순조롭게 길러나고 있었다. 지나 본국은 계속되는 혁명과 난리에 늘 안돈되지 못하였지만 조선 지역은 그것과는 아무 관련이 없이 독립된 지대라, 오직 문화적으로 향상의 일로만을 더듬었다. 더우기 지나 본토의 소란을 피하여 육속부절로 지나의 망명인들이 동방으로 피난해 오는지라, 조선(기씨의) 지역에도 꽤 많이 넘어왔고, 그들이 올 때 지니고 오는 문화는 이곳 토민에게 전수되고 토민에 의지하여, 이곳 민족성에 따르는 문화로 개량되고 변조되어, 낙랑 때에는 최고도로 발달되어 만날 난리에 시달리는 지나 본토에 비길 수없이 위대하고 지고한 문화를 이룩하고 있었다.
 
이 발달된 문화는 또한 지경을 접하고 있는 고구려로 이출되고, 고구려에서는 또한 고구려식으로 발달되고 ― 이리하여 동방문화는 지나 본토보다 훨씬 앞선 빛나는 것이 되었다.
 
기씨조선은 위씨에게 망하고 위씨조선은 한(漢) 본국에 망하여, 그 땅(조선) 은, 지나의 네 고을〔四郡〕이 되었지만, 거기 거주하는 ‘조선족’은 기씨건 위씨건 지나 본국이건 관계 없이 여전히 이 땅의 주인이었다.
 
그 새 천여 년 간 지나인에게 교란 받아, 중부 지대에서 허리를 끊겨서, 나라 이름을 빼앗기고 국토의 대부분과 백성의 대부분을 빼앗기고, 허리 끊긴, 그 남쪽 덩어리 ― 남부는, 역시 지나인 ‘마한’의 주권 또는 역시 지나인 ‘진한’ 의 주권, 잡종인 ‘변한’의 주권 아래 들고, 발상(發祥) 땅인 북방은, 백 조각에 부스러져서, 예, 맥, 옥저(濊,貊,沃沮) 등 역시 지나의 세력이 꽤 침투한 자와, 그 밖, 단군 백성의 수백 꼬마나라로 부스러져 있었고, 다만 부여(扶餘) 홀로이 종주국 비슷한 형태로 겨우 단군 후손 잔명을 유지하고 있는 참담한 형편이었다.
 
조그만 바람만 불어도 꺼질 듯한 위태로운 형태였다.
 
그러나 ‘언어’가 생명을 갖고 있는 동안은 그 ‘언어’의 종족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 언어를 쫓아다니는 ‘습관’이 있고 ‘신앙’이 있고 ‘종교’ 가 있어서 , 언제든, 다시 살아날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민족의식’에 부채질해지는 주기(週期)만 만나면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부여땅에서 고주몽이 일어서 고구려나라를 세우고, 그 아들로 하여금 천리의 적지(敵地)를 넘어 남방에 내려가서 백제를 세우게 하였다. 나라 이름과 나라 땅을 잃고, 그 종족만 ‘조선 백성’과 ‘동이’로 되어 천여 년 지내 오던 이 종족에게도 민족의식의 선풍은 불어든 것이다.
 
동남방에서 이루어진 서라벌나라, 이도 역시 이 주기를 만나서 튀어져 나온 한 개 결정이었다.
【역사소설】 서라벌
• 유리(類利) - 4
• 조선(朝鮮)
• 서라벌(徐羅伐) - 1
(2021.08.24. 11:00) 
【작성】 가담항설 - 떠도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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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