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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서라벌
◈ 서라벌(徐羅伐) - 6
김동인의 역사소설. (1947년작) 황룡국 사건이 있은 이듬해(제이십팔년) 봄이었다. 황룡국 근처를 다녀온 사람에게서 이런 말이 들렸다.‘고구려에서는 태자가 힘깨나 쓴다고, 그것으로 외국의 임금까지도 업수히 여긴다’는 말이 황룡국 안에 많이 돌아서, 황룡국 백성들은 고구려에 대하여 적개심을 품고있다고.
서라벌(徐羅伐) 6
 
 
황룡국 사건이 있은 이듬해(제이십팔년) 봄이었다.
 
황룡국 근처를 다녀온 사람에게서 이런 말이 들렸다.‘고구려에서는 태자가 힘깨나 쓴다고, 그것으로 외국의 임금까지도 업수히 여긴다’는 말이 황룡국 안에 많이 돌아서, 황룡국 백성들은 고구려에 대하여 적개심을 품고있다고.
 
내 나라에 관하여 좋지 않은 소문이 외국에 돈다는 이 소식은 아버님인 유리왕을 혁노케 하였다. 힘깨나 쓰노라고 그것을 자세하여 버릇없이 굴어, 외국에게 욕까지 사다니 무슨 일이냐. 그렇지 않아도 태자를 사랑하지 않던 유리왕은, 태자 때문에 내 나라에 돌아오는 이 비방에 참지를 못하였다.
 
태자를 책망하는 책임을 띤 한 신하가 졸본성으로 갔다. 신하들 새에 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왕은 모든 간과 충고를 물리쳤다.
 
‘짐(朕)이 서울을 옮겨서, 방업(邦業)을 공고케 하고 백성을 안도(安堵)케 하려 했거늘, 너는 네 조그만 힘을 믿고 아비를 따르지 않고 옛 서울에 남아 있어, 이웃나라의 마음을 잃고 원수를 사니, 이것이 신도(臣道)에 어떠며 자도(子道)에 어떠냐, 네 나이 벌써 스물하나라 아주 어린애도 아니니, 여기 보내는 한 자루 칼은 무엇에 써야 할지 네 짐작 가리로다. 하늘과 나라와 아비에게 지은 죄를 스스로 깨끗이 씻어라.’
 
자재(自裁)하라는 뜻이다.
 
태자는 그 아버님의 꾸중을 듣고 하사하는 칼을 받았다.
 
칼을 뽑아 보았다, 푸르른 빛이 번쩍 하는 명도였다. 고구려 건국에 많은 피를 머금은 칼이었다. 한참 칼을 들여다보았다. 그 안광이 심상치 않은 것을 눈치챈 한 시신이 태자의 팔을 잡았다.
 
"태자님, 칼 어디 잘 간수합시다."
 
"그게 무슨 말이냐. 아버님께서 자재하라고 보내신 칼을 어디 간수하느냐.
 
다만 나라 세운 데 공이 큰 이 칼을 이런 데 쓰기가 아까와서 좀 보던 것이다."
 
"태자님, 무슨 말씀이서요? 지금 사자(使者)의 한 개 전갈에 태자님 그리하시면 너무 경솔치 않사오리까. 한번 다시 나랏님의 뜻을 알아보시고 일을 결정하십사."
 
"칼을 놓아라 "
 
"소신 죽을지라도 이 칼은 못 놓겠읍니다. 태자님 경경히 일을 처리하시와, 욕이 나랏님께 돌아가면 도리어 불효가 아니오니까."
 
"아니니라. 향자 황룡왕이 강궁을 보내서 나를 시험할 때, 그 기를 죽여주려고 활을 분질러 버렸더니, 아버님께서 불효로서 책망하시고 칼을 주시어 자재하라시니, 어찌 부명을 거역하랴. 이 칼을 놓아라."
 
"소신을 먼저 죽여 주소서. 소신 죽기 전에는 칼을 못 놓겠읍니다."
 
아아, 길이 한숨 쉬며 태자는 몸을 일으켰다.
 
창(槍)을 하나 얻어 들고 뜰로 나갔다. 창은 자살에 쓰일 무기가 아니라 보아서, 시신은 태자가 울울한 심화라도 펴려고 사냥이라도 나가려는가 해서 태자의 적적한 뒷모양을 바라보며, 다만 기다랗게 탄식을 하였다.
 
태자는 말을 한 마리 끌어 내어, 말게 올라서 창을 비끼고 궁 밖으로 나갔다.
 
태자가 나간 조금 뒤에, 태자의 동생인 무휼 왕자가 숨을 헐떡거리며 달려들어 왔다.
 
"형님! 형님! 형님 어디 계시냐."
 
"지금 막 밖에 나가셨읍니다."
 
"혼자시냐?"
 
"네이. 창을 비끼시고……."
 
"어디로 가섰느냐."
 
"모르겠읍니다. 여진 동원(礪津 凍原) 방향으로 가섰는데요."
 
"말 타시고?"
 
"네"
 
무휼왕자는 태자의 시신(侍臣) 한 사람을 따라오라고 분부하면서 달려 나갔다.
 
왕자와 시신을 함께 말을 달려 동원 쪽으로 갔다.
 
벌에 나서자, 넓은 벌 저편 건너 맞은편에 태자를 보았다.
 
태자는 말을 달리는 것이었다.
 
"형님! 형니-임."
 
무휼왕자는 청을 다하여 큰 소리로 형님을 부르며, 태자 보이는 곳을 향하여 말을 몰았다.
 
태자는 들리지 않는 듯 당신의 말만 앞으로 달렸다. 그러나 얼마 닫지 못하여 태자는 말에서 땅에 떨어졌다.
 
그 떨어지는 모양이 예사롭지 못하여, 무휼 왕자는 전속력으로 그리로 달려갔다.
 
태자는 말께서 떨어진 채, 그 자리에 엎드려 있다. 일어나지도 않고 그냥 엎드려 있는것이 수상하여 가까이 달려들면서, 말에서 뛰어내렸다.
 
"형님! "
 
웬일이냐, 태자의 앞에는 창(槍)이 넘어져 누워 있고, 태자의 밑에는 피가 쿨쿨 솟고 있었다.
 
"형님! "
 
탁 형께 쓰러졌다. 태자는 눈을 떴다. 힘이 없이….
 
"오오, 너 왔는냐. 어떻게?"
 
"형님! 무슨 일이서요?"
 
태자는 창을 땅에 꽂고, 말을 달려 스스로 창에 찔린 것이었다.
 
"형님! 이런 일이나 있지 않을까 해서 국내 서울서 지금 달려오는 길이 올시다. 한 걸음 늦었읍니다그려."
 
"아버님의 뜻이시다."
 
"형님! "
 
"인제 네가 나라의 주인이다. 나라 키우고 백성 사랑하거라."
 
"형님, 다르게라도 아버님 뜻을 펴드릴 길이 있을 것을. 이게 무슨 일이서요?"
 
"내 뜻을 받아서 나라 잘 키워라."
 
"형님! "
 
태자는 힘없이 눈을 감았다. 무휼왕자는 안타까이 태자를 흔들었으나, 태자의 눈은 다시 뜨이지 않았다.
 
이리하여 해명 태자는 스물한 살로 영원의 나라로 떠났다.
 
태자가 살아 있을 무휼왕자의 방해라 하여 미워했지만 세상 떠나고 보니 유리왕은 어버이로서의 애정이 없을 수가 없었다.
 
"아까운 놈 죽이었다."
 
내어던지듯 이렇게 말하는 유리왕이 모양에는 아들 잃은 어버이로서의 슬픔이 역역히 들어 있었다.
 
태자로서의 예를 갖추어 동원(凍原)에 후히 장례하였다. 묘(廟)를 세워서, 제사케 하였다.
 
그 땅은 그 뒤로부터 창원(槍原)이라 하였다.
 
무휼왕자는 형님의 사당에 뵙고 천지신명께 맹서하였다. 나라를 키우기 위하여 아버님의 뜻을 받아서 스스로 목숨을 희생하신 형님께.
 
"아버지께서 미처 못 처리하시고 남기시면, 제가 맹서코 할아버님 때부터 숙망을 달성하와, 제 자식의 대(代)까지는 그냥 끌지 않기를 천지신명을 두고 형님께 맹서합니다."
 
황룡국 이하 개마국(蓋馬國) 구다(句茶)국 갈사(曷思) 조나(藻那) 주나(朱那) 등 무수한 꼬마국가가 아직 주변에 수두룩하고, 낙랑 부여등 큰 덩어리가 그냥 남아 있다. 이것들을 반드시 멸해서 고구려나라를 동방의 종국(宗國)으로 동방의 주인으로 만들고야 말기를 형님 묘에 굳게 맹서한 것이었다.
 
 
해명 태자가 무참히도 스스로 목숨을 바친 뒤에 아버님 되는 유리왕은 무휼 왕자를 태자로 대접하였다.
 
형을 대신할 자리에 선 무휼 왕자는 아직 소년의 몸이었지만 자기의 어깨에 짊어지어진 사명이 어떤 것이며 얼마나 중대한 것인지를 충분히 이해하여, 형님이 죽음으로 하여금 헛 죽음이 되지 않게 하려고 굳게 결심 하였다.
 
유리왕 이십팔년(해명 태자가 스스로 제 목숨을 끊은 해) 팔월에 북쪽 웅국(雄國)인 북부여에서 고구려 대하여 시비를 걸어 온 일에 대하여 소년 무휼 왕자가 조정을 대표하여 그 난(難) 문제를 어렵잖게 해결지어 소년답지 않은 정치적 수완을 보였다.
 
그로부터 삼 년이 지나서 유리왕 삼십일년에 지나(支那)에서는 왕망(王莽)이라는 호걸이 생겨나서, ‘한(漢)’나라를 둘러엎고 스스로 ‘신(新)’ 나라를 세우고,(‘신’나라이 서기는 유리왕 이십칠년이다) 천자(天子)가 되어 주위의 오랑캐 나라들을 정벌을 하는데 고구려에게도 군사를 내어서 협력하기를 명하였다. 왕망으로서는 자기는 지나의 천자가 되었으니 세계 만방을 자기의 속국(변방)으로 여기고 자기의 명령이면 으레히 고구려에서 복종할 줄로 여기고 호령했을 것이다.
 
그러나 고구려는 지나종족과 단군종족의 별립(別立)을 주장하고, 고구려 자기네는 단군족의 종주(宗主)고 자임하느니만치 왕망의 명령에 복종할 까닭이 없었다.
 
여기 화가 난 왕망은 군사를 고구려에 보내서 고구려의 변경을 침노하는 한편, 고구려는 나라 이름〔國號(국호)〕이 괘씸하고 ‘고구려 왕’이라는 것이 건방지다 하여, 나라 이름을 ‘하구려(下句麗)’라 깎고,‘고구려 왕’을 ‘하구려 후(候)’로 내리친다고 이 뜻을 천하에 포고하였다.
 
그러나 왕망이 내리쳤다고 ‘고구려가 ’하구려’로 된 것이 아니요, 도리어 이로써 고구려의 노염을 사서, 고구려의 복수적 침공 때문에 변경(邊境) 만 더 어지럽게 되었다.
 
고구려가 ‘하구려’로 깎인 이듬해에 부여세서는 도 고구려를 침노하였다.
 
아버님인 유리왕은 이 부여의 대거 내침에 대하여 무휼 왕자에게 적은 군사를 맡기어 대응하게 하였다. 때는 동짓달이었다.
 
적은 군사로써 적(敵)의 대군을 격퇴하라는 어렵고 중대한 임무를 아버님에게서 받은 무휼 왕자는 기계(奇計)를 써서, 부여의 구름 같은 많은 군사를 산 골짜기로 유인해 몰아 넣고, 미리 매복하였던 군사로 엄살하여 부여의 대병을 산곡 간에 아주 전멸시켰다.
 
이 장재(將才)를 아버님 유리왕은 높이 보았다. 무휼 왕자가 부여의 대군을 잔멸시키고, ‘국내’ 서울로 당당 개선할 때에 아버님은 이 개선 소년 장군을 멀리 교외에 맞고 거기서 개선 장병은 위하여 큰 잔치를 열었다.
 
그리고 무휼 왕자의 역량을 충분히 본 유리왕은, 무휼을 ‘태자’로 책봉하고 군국의 모든 중요한 일을 태자에게 일임하였다.
 
유리왕 삼십칠년 칠월, 왕은 두곡(豆谷) 이궁(離宮)에서 승하하였다.
 
그 유년시절과 소년시절을 북부하여 금와(金蛙)왕의 아래서 아비 모르는 고독한 생애를 보냈고, 그 뒤에는 아버님이 세운 고구려 나라로 들어와서, 고구려의 태자로 다시 아버님의 뒤를 이어 고구려의 제이대 임금으로 초창기(初創期)의 국가를 맡아 가지고 삼십칠 년간 고구려 임금으로 고구려 나라의 주춧돌을 벌려 놓고, 영걸 아드님 무휼 태자께 뒤를 맡기고 고요히 승하한 것이었다. 낙랑 복멸과 지나인 구축, 부여국 병탐, 주변의 꼬마 국가 흡수, 아우님의 나라 백제(百濟)와의 연락 등등 위대한 국가사업이 지표만 세워 놓은 뿐 아직 그냥 남아 있지만 태자 무휼이 비범한 기상의 주인이매, 당신(유리왕)이 미처 결말짓지 못한 사업은 아드님 대(代)에 영락없이 달성이 되리라는 굳은 믿음 가운데서 마음 고요히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 세째 아드님 무휼 태자〔뒤에 대무신왕(大武神王)이라 불러 모신〕가 뒤를 이어, 고구려 제삼대 임금으로 위에 올랐다.
【역사소설】 서라벌
• 서라벌(徐羅伐)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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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9.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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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