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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궁인창의 독서여행
◈ 임란 때 임해군 아들 일본 건너가 13세 출가 일연종 대표 인물 성장
일본 正行寺 사명당 부도와 영정
1592년 금강산 유점사 말사인 중내원(中內院)에서 수도하던 사명당은 임진전쟁(壬辰戰爭)이 일어나자, 유점사로 내려가 승병(僧兵)을 조직했다. 당시 왜군은 조선의 국방이 쇠약한 틈을 이용해 바다를 건너 두 달도 채 못 되는 사이에 한양(漢陽) 도성(都城)에 이르러 선조는 의주로 파천(播遷)하였다.
일본 正行寺 사명당 부도와 영정
 
 
1592년 금강산 유점사 말사인 중내원(中內院)에서 수도하던 사명당은 임진전쟁(壬辰戰爭)이 일어나자, 유점사로 내려가 승병(僧兵)을 조직했다. 당시 왜군은 조선의 국방이 쇠약한 틈을 이용해 바다를 건너 두 달도 채 못 되는 사이에 한양(漢陽) 도성(都城)에 이르러 선조는 의주로 파천(播遷)하였다.
 
한양 도성에서 갈라져 나와 동쪽으로 진출한 가토 기요마사(加藤清正, 1562~1611) 군대는 6월에 강원도 금강산 유점사까지 쳐들어와 승려를 붙잡고 금은보화를 내놓으라고 난동을 피웠다.
 
이에 사명당은 “초의(草衣)를 입고 채식하며 사는 중들이 어찌 금은보화를 쌓아두었겠느냐?” 따졌다. 이에 당황한 왜군은 승려들을 풀어준 뒤 이 절에 도승(道僧)이 있으니, 모든 군사는 절에 들어오지 말라고 글을 써두고 사라졌다. 사명당은 적장과 담판하여 금강산 부처님 도량에서 왜군을 몰아냈다. 유점사 주변에 느릅나무가 많아 느릅나무 유(楡) 자가 붙여졌다고 한다.
 
 
▲ 사명대사 영정(사진 위키백과)
 
 
함경도로 피난을 떠난 선조의 큰아들 왕자 임해군과 6번째 왕자 순화군(順和君), 김귀영, 윤탁연 등은 1592년 9월 의병을 모집하러 회령에 갔다가 국경인(鞠景仁) 등의 반란으로 왜군에 넘겨졌다. 함경도로 진출한 왜군은 계속 올라가면서 호랑이를 사냥했다.
 
함경도 의병과 승려들의 의승군이 활약하고 명나라 군대가 참전을 결정했다. 이에 위기를 감지한 가토 기요마사 군대는 남하하여 울산 서생포왜성(西生浦倭城)을 쌓고 주둔하며 온갖 횡포를 부렸다. 사명당은 1593년 서생포왜성에서 가토 기요마사를 만나 강화회담(講和會談)을 하였다.
 
선조의 맏손자로 태어난 4살 어린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1593년 포로가 되어 부산에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넜는데 아버지 임해군은 회의가 진행되면서 1593년 7월 조선으로 돌아가고, 어린 아들과 딸은 일본에 그대로 남게 되었다. 가토 기요마사 군대는 정유재란 때는 왜선 300척을 이끌고 침공하여 전라도 지역을 공격했다.
 
 
▲ 향정사(香正寺) 본당(사진:古蹟寫眞帳)
 
 
일본에 남게 된 어린 왕자는 13살이 되던 해 1601년에 일련종 법성사(法性寺)에서 출가하여 태응(台應)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왕자는 성장하여 3년 뒤 교토의 본국사(本國寺) 구법단림(求法檀林)에서 3년간 불교 교리를 공부한 후 정식 학승(學僧)이 되었다.
 
이후 관동 치바(千葉) 반고사(飯高寺) 반고단림(飯高檀林)에서 심도 있는 교육과정을 마친 후 가관원(可觀院)이라는 당호 및 일연상인(日延上人)이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21세 되던 해 승려 일연(日延, 1589~1665)은 임해군이 1608년 진도로 유배되었다가, 1609년 강화도에서 35세 나이에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어린 왕자 일연은 4살 때 일본에 건너온 뒤 13세에 출가하여 포교와 수행에 더욱 몰두하여 26세의 나이에 치바의 탄생사(誕生寺) 제18세를 역임하면서 일연종을 대표하는 인물로 성장하여 포교와 계율정신 전달에 온 힘을 쏟았다.
 
일연상인은 1614년 후쿠오카에 용잠사(龍潛寺)를 건립하면서 불교의 가르침을 대중화하며 사람들이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도록 교화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후쿠오카 3대 번주 쿠로다 미츠유키(黑田光之, 1628~1707)가 스님에게 귀의해 향정사(香正寺)를 지어 바쳐 일연상인은 그곳에서 20여 년간 수행과 교화에 전념하고 민중들에게는 성인으로 추앙받는다. 일연상인은 72살이 되자 “조국 조선 땅이 보이는 땅에 거주하고 싶다.”라는 뜻을 쿠로다 후쿠오카 번주에게 전했다.
 
 
▲ 후쿠오카 해복산(海福山) 묘안사(妙安寺)(사진:古蹟寫眞帳)
 
 
이에 쿠로다 번주는 일연상인(日延上人)이 주석할 곳을 해복산(海福山)에 정하고 1660년 묘안사(妙安寺)를 건립해 주석하게 했다. 일본 후쿠오카에는 쿠로다가 바둑 애호가인 스님을 만나기 위해 만든 상인교(上人橋)가 4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건재하고, 묘안사를 비롯한 그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곳에는 고려일연상인(高麗日延上人) 표식이 남아 있다.
 
 
▲ 도쿄 각림사(覺林寺)(사진:古蹟寫眞帳)
 
 
일연상인이 창건한 후쿠오카 향정사(香正寺) 문서인 〈향정사 연기(緣起)〉에 기록이 있다. 일연상인은 조선 땅을 쳐다보면서 1665년 1월 26일 77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
 
통도사 제27대 주지 정우 스님, 해인사불교대학 남현화상 등은 2010년에 사명당 대사 입적(入寂) 400주년을 맞이하여 일본에서의 행각(行脚)을 조사하러 일본의 대마도, 구마모토(熊本), 교토(京都) 동본원사(東本願寺) 등을 방문했다.
 
이때 동행한 규슈 正行寺 주지는 TV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이후 정행사 다케하라도모야키(竹原智明) 주지는 조선과 일본의 역사를 새롭게 공부하고, 사명대사를 널리 알리기 위해 사명대사현창회(四溟大師顯彰會)를 조직하고, 한국에 건너와 한국의 표충사, 통도사를 비롯한 사명당 진영 소재지 24곳을 참배하고, 자료를 수집하여 2012년 10월 12일 일본에서 《四溟堂松雲大師》 책을 발간했다.
 
 
▲ 《四溟堂松雲大師》
 
 
사명대사는 1605년 일본 교토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만나 일본에 강제로 끌려간 민간인 피로자 삼천여 명의 송환을 실현하고, 교토 체류 중 많은 일본 승려와 유학자를 만나 교류를 하였다.
 
정행사 주지는 사명당이 종전 교섭에 그치지 않고 조선과 일본 두 나라의 항구적 평화를 위해 애써주신 노력에 깊이 감명을 받았다. 주지는 매일 아침 독경할 때 불단 옆 사명대사 영정에 반야심경을 한글로 독송하고 사명대사 영정에 향을 올리며 예경 한다.
 
 
▲ 일본 규슈 정행사 사명대사 영정 (2015.10.20.火)
 
 
정행사 주지는 사찰에 사명당의 부도를 건립하여 신도들에게 사명당 대사의 헌신으로 일본과 조선이 화해의 길로 들어섰다고 신도들에게 알리고 있다. 정행사는 삼국시대 백제에서 전해준 백제 아악을 전승해 오고 있는 사찰로, 백제 아악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을 초월한 부처님에 대한 감사의 울림과 화(和)의 음악으로 사람의 마음을 울려 평안을 준다고 한다.
 
 
▲ 정행사 사명당 부도 陸海空軍豫備役先任法師 참배
 
 
일본 정행사에서 법회에서 시현하는 당나라 아악(雅樂)과 백제 아악은 부처님 경전인 불경(佛經)과 동시에 일본에 전래가 되었다. 정행사에서 아악이 제대로 보존되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사찰의 제13세 다케하라 미네네(竹原嶺音) 주지가 전통적인 아악이 모두 사라질까 봐 전쟁 기간에 소실되는 생(笙), 용적(龍笛), 피리(篳篥, 히치리키), 북(太鼓), 갈고(鞨鼓), 정고(鉦鼓) 등 아악기를 모두 구입했다.
 
그리고 100명의 단원을 모집하고 수련 교육을 거듭해 법요 봉납악을 옛날 모습 그대로 보존하였다. 종전 후 1957년에 정행사 아악부가 발족하고, 1989년 〈지쿠시라쿠소〉로 발전하여 궁내청 악부의 악사방의 지도를 받아 문호를 열고 신불(神佛)에게 아악을 올리고 있다.
 
 
▲ 일본 정행사 아악 시현(사진:正行寺)
 
▲ 일본 정행사 아악 시현(사진:正行寺)
 
 
현재 〈지쿠시라쿠소〉의 아악은 보은강(報恩講), 영대경(永代経), 피안회(彼岸會), 오봉(お盆) 등을 전 세계를 돌며 시연하고 있다. 아악의 음색은 희로애락을 넘어선 부처님에 대한 감사의 울림으로 알려져 사찰 법회에서 법요로 연주된다. 재정은 1673년에 창업한 大賀酒造에서 시주(施主)하여 원만하게 진행되고 있다.
 
 
▲ 大賀酒造 청주
 
 
필자는 2015년 10월에 일본 규슈 성지순례에 참여하여 정우(頂宇, 구룡사 주지) 교구장과 선후배 법사들과 함께 일본 규슈에 있는 정행사 템플스테이, 아미타불 동산, 히코산, 백제아악-가스가야마아악당착, 다야 생활 및 납골당, 大賀酒造, 구마모토성, 태승사(泰勝寺), 아소산, 히코산, 그린피아 미나미아소 등 불교 성지를 순례하였다. 성지순례 기간에 정행사 사부대중과 호소카와 전 총리 부인이 각별하게 환영과 친절을 베풀어주셨다.
 
 
▲ 아소산(사진:그린피아 미나미아소(南阿蘇))
 
 
성지순례에는 정우 군종교구장, 자광(임봉준), 양일(박화선), 권기종(명철), 故 권오현(지관, 법호), 故 김봉식(정묵), 故 장만수(지륜), 故 이지행(원성), 김덕수(재원), 황은식(현관), 김정길(길상), 최명준(해운), 송병욱(원명), 이양길(범일), 허성구(법경), 윤덕호(각만), 안중철(삼덕), 강남석(자곡), 이희용(현칙), 승원, 미광(김석남), 궁인창(성묵), 정홍찬(도찬), 장성화, 이학송(청봉), 정국생(진상), 허인, 이재일, 김상길(진명) 29명이 아름다운 동행에 참여하여 일본 규슈 정행사 주지의 선행과 신도들의 성원을 찬탄했다.
 
 
▲ 정행사 가스가야마아악당(春日山雅樂御堂), 四溟堂松雲大師眞影 參拜
 
 
일본 정행사는 퇴계 이황(李滉, 1501~1570) 현창비(顯彰碑)를 2003년 11월 30일에 ‘이퇴계 선생에게서 배우는 회’의 호소카와 가요코(細川佳代子) 회장과 회원들이 일본 신시대 교육의 이념이 된 퇴계 학풍을 높이 기리기 위해 성금을 모아 건립하였다.
 
 
〈李退溪 先生 顯彰碑 建立趣意書〉
 
李退溪 先生은 韓國에서 나신 近世 最高의 大儒學者셨다.
 
우리나라의 近世 儒敎 文化에도 多大한 貢獻을 하셨으며 江戶時代 初期에 日本 儒學 中興의 業績을 남긴 藤原惺窩나 儒敎 文化形成의 基礎를 確立한 林羅山 등은 모두 退溪 先生의 深厚한 學德을 맞이하였고 時代의 새로운 情神的 支柱가 된 새로운 人間性을 터득하셨다. 또한 江戶時代에 培養된 退溪 先生의 學風은 明治維新에 이르는 思潮의 原動力도 되었다. 특히 退溪先生을 「古今絶無의 眞儒」라고 尊崇하였던 肥後實學派에서 敎育을 받아 新時代의 敎育方針을 確立하였던 敎育勅語의 草案者로 認定되는 元田永孚는 깊은 學恩을 입은 바 있다. 우리나라의 學問文化는 古來로 漢字漢文에 의하여 敎育되었으며 一衣帶水인 韓國과는 같은 「漢字文化圈」에 屬하여 順逆의 歷史를 共有하였다. 그것은 바로 「儒敎文化圈」으로서 儒敎 文化에 의해 敎育되고 또한 같은 「漢譯佛敎圈」으로서 宗敎 ․ 倫理 道德은 그 理念을 같이하고 있다. 오늘날의 우리나라의 現狀을 살피건대 하염없이 經濟 中心과 物質 生活의 滿足을 求하여 人間으로서 精神的 安定의 基礎가 상실되어 있습니다. 그 때문에 國家社會 構成의 根源을 이루는 家庭의 崩壞와 敎育의 混亂은 눈을 가려야 할 정도이며 슬프기가 한량없습니다. 여기에 古今을 통해서 잘못이 없고 中外에 시행하여 그릇됨이 없는 人間으로서 最高로 중요한 人倫道義의 復活만이 우리나라에 요청되는 最大의 急先務이며 나아가 全人類가 찾고 있으나 아직 自覺하지 못한 참된 平和의 實現에 대한 根本的 寄與라고 믿고 있습니다.
 
退溪 先生께서 實踐躬行하신 「敬」의 一字만이 家庭 成立의 原理이며 新時代 敎育의 理念이라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日 ․ 韓 親善과 文化 交流가 큰소리로 외쳐지는 오늘날 退溪先生의 學德偉業을 顯彰하는 것은 日 ․ 韓 兩 國民의 自省 敎養의 實踐 機緣이 되며 그리하여 兩國의 友誼를 敦篤히 하며 마침내 人類 最高의 道義와 平和를 위한 커다란 貢獻이 될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東方의 朱子」 李退溪 先生을 日 ․ 韓 兩國이 師表로 하여 永遠히 그 學恩을 顯彰하고 後世에 勸하여 學德이 一端에 報恩하고자 하오니 아무쪼록 우리들의 적은 뜻을 받아들여 주시기를 再三 願하는 바입니다.
 
李退溪 先生에게서 배우는 會 (계속 이어집니다)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궁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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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8. 11:12) 
【작성】 궁 인창 (생활문화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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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