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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궁인창의 독서여행
◈ 9번 과거에 장원한 율곡도 ‘백세의 인물’이라고 극찬
매월당 김시습(金時習)의 금강산 여행 (중)
경주에서 세미나 발표를 마친 필자는 다음날 경주국립박물관을 관람했다. 그리고 시내버스를 타고 기림사를 찾아갔다. 기림사는 경주 남쪽에 있는 절로 교통이 불편해 평일에는 찾아가는 이가 없어 한적했다.
매월당 김시습(金時習)의 금강산 여행 (중)
 
 
경주에서 세미나 발표를 마친 필자는 다음날 경주국립박물관을 관람했다. 그리고 시내버스를 타고 기림사를 찾아갔다. 기림사는 경주 남쪽에 있는 절로 교통이 불편해 평일에는 찾아가는 이가 없어 한적했다.
 
기림사는 인도 천축국에서 건너온 승려 광유(光有)가 선덕여왕 12년(643) 임정사(林井寺)를 세우고, 원효대사가 중창하여 기림사로 개칭한 절이다. 기림사의 명칭은 석가모닌 부처님이 설법하셨던 기수급고독원에서 따온 말이다.
 
기림사는 임진왜란 때는 승병과 의병의 중심지였고, 대흥사 천불전의 불상이 인근 불석산 자락에서 캔 옥돌로 조성되어 바닷길로 이운한 것이다. 예전에는 기림사가 경주 일대의 본산이었다. 기림사 주차장에서 종무소를 걸어가는데, 소나무 향기가 매우 좋고 천년고찰의 은은한 향기를 품어져 나왔다.
 
 
▲ 경주 기림사
 
 
기림사 대웅전에 들려 삼배하고 경내의 매월당 김시습 영당을 참배하였다. 날이 어느덧 어두워져 대나무가 우거진 산사는 아주 고요하고 적막했다.
 
필자는 새벽 예불을 마치고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김시습 영당을 찾아갔다. 매월당 영정을 바라보았다. 경주 기림사에 머물면서 천년 고찰의 은은한 향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 경주 기림사 김시습 영당
 
 
아침을 먹고 기림사에서 함월산으로 이어지는 왕의 길을 산책했다. 왕의 길은 신문왕 호국행차길'로 전 코스를 답사하지 못하고 일부 구간만 걸었다.
 
왕의 길은 경주시 반월성에서 시작하여 문무대왕을 화장했다는 경주능지탑지를 지나서 황복사(皇福寺)지를 통과한다. 황복사는 창건 연대는 모르지만 《삼국유사》 권4의 의상 전교에서는 "의상이 나이 29세에 황복사에서 승려가 되었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644년 전에 세워진 사찰임을 알 수가 있다.
 
당시 문무대왕의 장례행렬은 보문호 앞에 있는 명활산성을 거쳐 덕동 댐이 있는 지역을 통과하여 추원마을을 지나 계속 오르다 보면 추원사가 나오고, 인자암에 이른다.
 
 
▲ 경주 호국행차길(왕의 길)
 
 
예전 마차가 다니던 길이라고 하여 마차골이었으나 현재는 모차골로 부른다. 수랫재와 숯가마 길을 통과하여 내리막길을 30분 정도 내려가면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용연폭포(기림폭포)를 만난다.
 
용연폭포를 지나가면 천년 사찰 함월산(584m) 호암리 호국사찰 기림사에 이르고, 다시 1시간 정도 걸어가면 선무도로 유명한 골굴사가 나타난다.
 
 
▲ 용연폭포
 
 
이 길은 신문왕이 아버지 무덤인 문무대왕릉을 찾아가는 길이며, 왜구를 방어하던 국방의 길이었다. 북의 대종천을 따라서 계속 나아가면 감은사가 나오고, 조금 더 걸어가면 동해 문무대왕릉이 있다.
 
 
▲ 신문왕 호국행차길
 
 
필자는 경주 기림사에 머물면서 천년고찰의 은은한 향기를 그대로 느꼈다. 기림사를 떠나기 전에 매월당 영당에 들려서 큰절을 올리며 주련 글씨 안내판을 천천히 읽었다.
 
乍晴還雨雨還晴 (사청환우우환청)
天道猶然況世情 (천도유연황세정)
譽我便是還毁我 (예아변시환훼아)
逃名却自爲求名 (도명각자위구명)
花開花謝春何管 (화개화사춘하관)
雲去雲來山不爭 (운거운래산불쟁)
寄語世人須記認 (기어세인수기인)
取歡無處得平生 (취환무처득평생)
 
잠깐 갰다가 다시 비 오고 비 오다 다시 갬이여
하늘의 도(道)도 오히려 그러한데, 하물며 세상 실정이야
나를 칭찬하다 문득 도리어 나를 헐뜯고
이름을 피한다 하지만, 도리어 스스로 명예를 구함이 됨이다.
꽃 피고 꽃 지니 봄을 어찌 관리하겠는가?
구름이 가건 오건 산은 다투지 않네.
세상 사람들에게 말을 붙여서 모름지기 기억하고 알게 하노라
기쁨을 취해도 평생 동안 얻을 곳이 없음이로다.
 
기림사 매월당 주련 안내판
 
 
조선의 천재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는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7살 때 사서삼경을 통달하고 8세에 화석정에 올라 시를 짓고 13세에 진사과에 합격했다.
 
23세 때부터 29세까지 9번 과거에 나가 장원하여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 일컬어졌다. 율곡은 오천 원 화폐에 등장하는 인물로 천재인 율곡은 김시습을 ‘백세(百世)의 스승’이라고 극찬하며 본받을 만한 점이 많다고 했다.
 
 
▲ 철원 3경 매월대폭포(사진:한국관광공사)
 
 
김시습은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잠곡리 복계산 기슭 595m 산꼭대기에 누각을 짓고 은거했다. 현지 주민들은 대대로 내려오는 전설을 2003년 민속조사를 나온 연구원에게 구술하여 자료는 채록되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는 향토문화전자대전에 올리고, 채록된 내용을 책에 넣었다. 매월대폭포에서 7km 떨어진 곳에 충절을 기원했던 선비들을 모신 사당 구은사(九隱祀)가 있다. 철원군은 2016년 9월 27일 구은사를 향토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하였다.
 
 
▲ 철원 구은사(九隱祀)
 
 
구은사에 모신 선비는 김시습, 조상치와 영해 박씨 칠의사(七義士) 박도, 박제, 박규손, 박효손, 박천손, 박인손, 박계손이다. 철원 유림에서 순조 18년(1818)에 구은사를 창건했으나 1864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
 
고종 3년(1894)에 다시 단을 세우고 배향하였다. 사당은 한국전쟁 중에 완전히 소실되었다가 1977년 재경 박일홍 선생의 발의로 새롭게 사당을 중건하고 매년 음력 3월과 9월에 제향하고 있다.
 
매월당은 살아 있을 때 자화상 두 폭을 남기고 찬을 썼다. "네 모양은 너무도 막연하고, 네 말은 너무도 미련하다. 언덕 밑 구렁텅이로 너를 밀어 넣는 것이 마땅하다.“
 
 
▲ 김시습 시(성균관박물관), 김시습 초상화(보물 제1497호) (사진:문화재청)
 
 
필자는 경주 함월산 기림사 방문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김시습이 지은 전기체(傳竒體) 소설이자 한문 소설인 《금오신화(金鰲新話)》의 <만복사저포기(萬福寺摴蒲記> <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 <남염부주지> <용궁부연록> <전우치전(田禹治傳>를 읽었다. 소설의 내용에 놀라고, 인물에 감탄하고, 매월당의 천재성과 독창성에 감탄했다.
 
 
▲ 금오신화
 
 
필자는 《금오신화》를 읽다가 서가에 있는 책이 한 번도 읽지 않은 책이 있어 나 자신을 반성하는 계기로 삼았다. 김시습이 자기의 생각을 삶에서 체화하고 살아간 모습을 찾기 위해 고려대 한문학과 심경호 교수의 책을 읽고 <[동양고전] 천재의 광기, 매월당집과 금오신화> 유튜브 강의도 듣고, 금강산 정양사 헐성루(歇惺樓)에서 남긴 시를 조사하여 읽었다.
 
김시습은 단종 1년(1453) 세조의 계유정난(癸酉靖亂) 당시 황보인과 김종서 장군이 살해되고 정적이 제거되는 엄청난 혼란 속에서 깨어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실천적으로 보여주었다. 매월당 김시습은 고고(孤高)한 조선의 승려이자 유학자이며 도인으로 만인의 스승으로 존경받았다. (계속 이어집니다)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궁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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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0. 02:10) 
【작성】 궁 인창 (생활문화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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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