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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궁인창의 독서여행
◈ 제주 정착 소설가 데뷔 후 김석익 저술 탐라기년 읽고 표류 관심... 2018년 표류탐방단 결성, 로드 건설 제안
이방익 《표해가》를 따라가 본 권무일 작가
경기도 화성시에서 태어나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한 권무일(1942~ )은 산업 일꾼으로 포스코, 현대그룹 임원, 국제조명 사장을 역임하고 은퇴하였다. 2004년에 제주도에 이주 정착하며 집필활동을 시작해 2008년 〈문학과 인식〉을 통해 소설가로 데뷔하고, 제주 향토사를 공부하며 2009년에 의녀 김만덕의 장편역사소설, 헌마공신 김만일의 업적을 글로 발표했다.
이방익 《표해가》를 따라가 본 권무일 작가
 
 
경기도 화성시에서 태어나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한 권무일(1942~ )은 산업 일꾼으로 포스코, 현대그룹 임원, 국제조명 사장을 역임하고 은퇴하였다. 2004년에 제주도에 이주 정착하며 집필활동을 시작해 2008년 〈문학과 인식〉을 통해 소설가로 데뷔하고, 제주 향토사를 공부하며 2009년에 의녀 김만덕의 장편역사소설, 헌마공신 김만일의 업적을 글로 발표했다.
 
권 작가는 제주 향토사를 배우면서 향토사학자 김석익(金錫翼, 1885~1956) 선생을 처음 알았다. 金錫翼 선생의 본관은 광산. 자는 윤경(胤卿), 윤경(允敬), 홍점(鴻漸), 호는 심재(心齋), 일소도인(一笑道人), 해상실사(海上佚史)이고 초명은 김석조(金錫祚)이었다.
 
제주 향토사학자 김석익(金錫翼)(사진:제주의 소리)
 
김석익의 아버지는 김창규(金昌圭)로 조선 말기에 의병운동을 벌였던 승려 김석윤(金錫允, 1877~1949)의 동생이다. 김석익은 여덟 살 때부터 할아버지로부터 한문의 기초를 배웠다. 열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열세 살 때 할아버지가 사망했다. 16세 때인 1920년에 아석(我石) 이용호(李容鎬)에게 한문을 배웠다. 我石 이용호는 충북 보은군 사람으로 교리(校理)를 지냈으나 고종 33년(1896)에 유배 7년 형으로 제주도에 귀양을 왔고 고종 38년(1901) 6월에 전라남도 완도군 신지면 신지도로 이배되었던 漢學者이다. 이후 김석익은 조천읍 조천리 출생으로, 아버지 안달삼(安達三)을 따라 일찍이 광주 동구 서석동에 살았던 유학자 부해(浮海) 안병택(安秉宅, 1861~1936)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다.
 
김석익은 항일투쟁에 관여하다 민족혼을 진작(振作)할 계책을 찾기 시작해 《탐라기년(耽羅紀年)》 저술에 몰두하여 1918년에 4권을 편찬하였다. 이후 한문 서당을 열어 강창보(姜昌輔, 1902~1945), 한상호, 김택수(金澤銖), 김정순, 김정로, 고경흠(高景欽, 1910~?), 박경훈, 의학박사 홍순억 등 많은 문하생과 독립투사를 양성했다. 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에 의하면 향토사학자 김석익(金錫翼) 선생은 《탐라기년(耽羅紀年)》, 《탐라기년속편》, 《탐라인물고(耽羅人物考)》, 《파한록(破閑錄)》, 《유리만필(儒理漫筆)》, 《북행록(北行錄)》, 《근역시화(槿域詩話)》, 《천주교란기》, 《양경천전(梁擎天傳》 등 많은 책을 펴내고 찬시(讚詩)를 발표했다.
 
국립제주박물관 특별전시회 (사진:국립제주박물관)
 
《탐라기년(耽羅紀年)》은 고려왕조 태조 21년(938)부터 조선왕조 광무(光武) 10년(1906)까지의 탐라의 역사를 편년체(編年體:연대순 기록)로 기술한 책으로 제주도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탐라기년속편》은 1906년(광무 10)부터 1955년까지의 제주의 현대사를 재정리한 것이다.
 
구한말 한 지식인의 일생- 심재 김석익(사진:국립제주박물관)
 
김석익의 셋째 아들 김계연은 암울한 시대를 살며 한약방을 경영했던 부친의 유품 1,000여 점을 2002년 5월, 동년 10월과 2004년 4월 3차례에 걸쳐 국립제주박물관(관장: 구일회)에 기증해 2004년 7월 250여 점을 선별하여 특별전시회 〈구한말 한 지식인의 일생- 심재 김석익〉이 개최되었다. 이 무렵 제주도에 정착한 권무일은 김석익이 저술한 《탐라기년》에 나오는 이방익에 대한 표류 이야기를 읽고 흥미를 갖기 시작해 관련 자료를 찾아내 2017년에 평설 《이방익 표류기》 단행본을 펴냈다.
 
작가 권무일(사진;제주의 소리)
 
권 작가는 책 출판기념회에서 주제주 중국총영사관에 총영사로 2016년 1월 부임한 펑춘타이(冯春太)를 만나 대화하고 식사 초대를 받았다. 펑춘타이 총영사는 1989년 중국 외교부에 처음 발을 들인 이후 한국에서 15년, 평양에서 8년, 총 23년을 한반도에서 근무한 한국통이었다. 총영사 초청 만찬 자리에서 권 작가는 이방익의 길을 따라가는 여행 답사 구상을 밝히자, 총영사가 작가의 구상을 반기며 “중국 내 답사를 지원하겠다.”라고 의사를 표명해 2018년 4월 ‘이방익 표류 탐방단’을 구성하여 첫 탐방지인 타이완 구간은 본인들 비용으로 방문하고, 2차 푸젠성과 3차 저장성 답사는 주제주 중국총영사관이 지원했다.
 
2018년 8월 중국 福建省 상무위원 일행이 제주도를 방문해 이방익의 인연을 토대로 제주도와 福建省 두 지역의 경제, 관광, 인재 등 교류를 강화하자고 제안했다. 권 작가는 앞서 중국 방문에서 이방익의 송환 노선을 토대로 福建省 일대를 잇는 이방익 로드를 만들자고 먼저 제안했었다. 권 작가는 福建省 지방지편찬위원회와 외사판공실 관계자를 만날 때 고려와 송나라의 관계가 화두로 삼고 말했다. 당시 이굉 부주임은 고려와 송나라에 이어 福建省을 거쳐 간 이방익의 존재에 관심을 나타내며 제주와 福建省의 교류를 활발히 이어가자고 말했다. 권 작가는 2019년 4월에 9박 10일 일정으로 한라일보 진선희 문화부장과 심규호 교수, 유소영 제주국제대 교수 등과 함께 방문하며 선하령과 선하고도(仙霞古道)를 방문했다. 이때 중국 각 성의 외사판공실, 福建省 외사판공실의 왕이펀 선생, 상해시 박철수 선생이 큰 도움을 주었다.
 
권 작가는 표해록 답사기를 쓰면서 『이방익 표류기(2017)』와 2019년 8월 제주도연구 제52집에 발표한 〈제주 표류인 이방익의 노정에 관한 지리 고증〉 논문을 참고했다. 그리고 2020년에 《제주 표류인 이방익의 길을 따라가자》 책을 발간했다.
 
《제주 표류인 이방익의 길을 따라가자》(사진:평민사)
 
이방익은 표해록에 “인화관을 지나 선하령에 이르니 산봉우리가 하늘에 닿을 듯 험악하여 검각(劍閣)과 다름이 없었다. 노끈으로 허리를 동여매고 앞으로 끌고 뒤에서 밀며 간신히 정상에 오르니 정신이 황홀하여 몸이 우화등선(羽化登仙)하는 듯하였다.”라고 蘇東坡의 적벽부(赤壁賦)를 인용해 표현했다.
 
권 작가는 《제주 표류인 이방익의 길을 따라가자》를 발간하면서 “박지원은, ‘방익이 동정호 악양루를 보았다는 것은 꿈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사실과 다르다.’라고 치부해 버렸는데, 현장에 가본 사람이 보았다는 것을 보지 않은 사람이 부정하는 것을, 내가 밝힌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중국 답사를 실행에 옮겼다.”라고 말했다.
 
 
益州府 進德縣은 嚴子陵의 녯터이라
七里灘 긴구뷔에 釣臺가 놉핫스니
漢光武의 故人風采 依然이 보앗는듯
船上에서 經夜하고 荊州府로 드러가니
綠衣紅裳 무리지어 樓上에서 歌舞한다
天柱山은 東에잇고 西湖水는 西便이라
錢塘水 푸른물에 彩船을 매엿는대
朝鮮人 護送旗가 蓮우에 번득인다
皓齒丹脣 數三美人 欣然이 나를마자
纖纖玉手로 盞드러 술勸하니
鐵石肝腸 아니여니 엇지아니 즐기리오
岳陽樓 遠近道路 護行에게 무러알고
順風에 돗츨다니 九百里가 瞬息이라
採蓮하는 美人들은 雙雙이 往來하고
고기잡는 漁父들은 낙대메고 나려오네
鄂州南城 十里밧게 岳陽樓 놉핫스니
十字閣 琉璃窓이 半空에 소사낫다
洞庭湖 七百里에 돗달고 가는배는
瀟湘江을 向하는가 彭蠡湖로 가시는가
巫山 十二峰을 손으로 指點하니
楚襄王 朝雲暮雨 눈압헤 보앗는듯
蒼梧山 점은구름 시름으로 걸녓스니
二妃의 竹上窓淚 千古의 遺恨이라
十里明沙 海棠花는 불근안게 자자잇고
兩岸漁磯 紅桃花는 夕陽漁父 나려오네
杜工部의 遷謫愁는 古今에 머물넛고
李靑蓮의 詩壇鐵椎 棟樑이 부서졋다
이江山 壯탄말을 녯글에 드럿더니
万死餘生 이내몸이 오늘날 구경하니
결인가 참이런가 羽化登仙 아니런가
西山에 日暮하고 東嶺에 月上하니
烟寺暮鍾 어대매뇨 金樽美酒 가득하다
十九日 배를여(워) 九江으로 올나가니
楚漢적 戰場이오 鏡浦의 風棹로
虎邱砥柱 다지나서 蘇州府에 배를매니...... 이방익 〈표해가〉
 
 
표류인 이방익의 길(사진:평민사)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주민들은 북촌 출신으로 중앙에 진출해 임금을 호위하는 충장위장을 지낸 역사적 인물 이방익(1757~1801)을 널리 알리는 활동을 시작하여 2023년 북촌리 향토지 《북포천년》에 이방익 관련 자료를 수록했다. 1,040 페이지의 컬러판으로 2.100여 점의 사진이 수록된 향토지에는 북촌리의 역사와 문화, 지리, 인물 등 다양하고 방대한 자료가 집대성되어 있다.
 
제주 향토지 《北浦千年》(사진:컬쳐제주)
 
제주 향토지 《北浦千年》 에는 3,000여 년 전 신석기시대 선사주거지 바위그늘 유적 ‘고두기엉덕’의 주거 역사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오랜 역사가 오롯이 담기고, 조선왕조에서 무과 급제한 18명 선인의 발자취를 비롯해 제주 4.3의 광풍을 이겨낸 조천읍 북촌리 마을 사람들의 삶을 재조명했다.
 
제주 선사주거지 고두기엉덕(사진:제주아카이브)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고두기엉덕바위 그늘 집터’는 1990년 5월 30일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42호로 지정되었다. 선사시대 주거 유적은 고두기엉덕 북촌리 마을에서 해안일주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150m쯤 가면 남쪽으로 올라가는 좁은 포장도로가 나타나는데 이 길을 따라 300m쯤 올라가면 왼쪽에 있다. 선사유적지는 해안에서 거리가 약 600m, 해발 20m의 들판 가운데에 용암동굴의 천정부가 무너져내려 직경 50m의 함몰지(陷沒地)가 형성되었고 그 동북쪽 절벽 아래에 있다. 바위 그늘 집터의 정면 길이는 11m, 최대 높이 2.5m, 입구에서 안쪽까지의 거리 3m로 입구는 정남향으로 트였다.
 
제주 선사주거지 고두기엉덕(사진:문화재청)
 
선사유적지는 선사시대부터 耽羅에 이르기까지 긴 세월 동안 사람들이 사용한 석기, 골각기 등의 인공유물과 동물 뼈, 조개껍질, 숯이 된 열매 등 자연유물이 출토되었는데, 신석기시대 말기형인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되어 탄소측정연대를 한 결과 2950+_25년이다.
 
제주도 고산리문화(사진:궁인창)
 
제필자는 2019년 7월 제10회 전국해양문화학자대회 답사를 통해 제주도 삼양동 선사유적지를 비롯해 환해장성(環海長城) 등 여러 곳을 방문했다. 제주특별자치도 한경면 수월봉 앞 해안단구 대지에 넓게 형성되어 있는 신석기시대 전기의 선사 유적인 사적 제412호 제주 고산리 유적에서는 석기 99‚000여 점‚ 토기 조각 1‚000여 점이 발굴되었다. 특히 원시형 적갈색 섬유질 토기 조각은 아주 독특한 토기 형태로 ‘고산리식 토기’라고 불리는데, 연대는 인류가 농경과 목축을 시작한 11,000~10,000 BP(Before Present)이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궁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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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8. 10:54) 
【작성】 궁 인창 (생활문화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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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