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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포전양승첩지도(唐浦前洋勝捷之圖)과 우수(禹壽) 장군
조선 선비 노인(魯認)은 오·초(吳楚) 주·진(周晋) 한·위(韓魏) 제(齊)를 거쳐 노(魯)에 이르러 관이(關里)에 들어 공자묘(孔子廟)와 주공묘(周公廟)에 참배하고 제군자(諸君子)와 더불어 경학(經學)을 문답(問答)했다. 노인(魯認)이 연경(燕京)을 떠나 山海關으로 향하자, 무이(武夷)의 수유(首儒)인 니스허(倪士和)와 셰자오선(谢兆申, ?~1629) 등이 먼 산하이관까지 와서 그를 전별하였다. 랴오둥(遼東)을 거쳐 이듬해 봄인 1599년(선조 32)에 조선에 돌아와 역마(驛馬)를 타고 고향에 귀가(歸家)하니, 부모는 이미 별세해 여묘(廬墓)하고 추복(追服)하였다.
당포전양승첩지도(唐浦前洋勝捷之圖)
노인(魯認)은 1603년(선조 36)에 무과(武科) 급제(及第)하여 이듬해 여도(呂島: 전남 고흥군 흥양현) 만호(萬戶)로 부임했다. 1604년 6월 4일 국적을 알 수 없는 검고 큰 서양배(黑色大船) 1척이 조선 해안을 계속 왔다 갔다 했다. 그 배는 조선 수군 본영이 있는 당포(唐浦: 경남 固城縣, 현재 통영시 산양면) 해안으로 서서히 접근해 조선 수군은 이를 비변사에 보고했다.
당시 삼도수군통제사 이경준은 정유재란 이후 전쟁을 대비하여 전투 훈련 태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판옥선을 여러 척 출동시켰다. 통제영 소속의 신여랑 장군의 수군이 평화적인 투항을 여러 차례 요구했지만, 이에 응하지 않고 계속 저항하며 공격해 교전은 하루 밤낮 격렬하게 계속되어 마침내 조선 수군은 괴선박을 포격하여 배를 진압하고 항복하는 자를 생포했다. 선조 임금은 여도 만호인 노인 등을 칭찬하여 승전도(勝戰圖)를 그려 주고 말하기를 “노인(魯認)이 전함(戰艦)을 수리하고 사졸(士卒)을 구원하여 기이(奇異)한 시책(施策)으로 매양 복수(復讐)에 힘쓰는 것은 사직신(社稷臣)과 다름이 없다.”라고 말하고 수원(水原)과 옹진(瓮津) 두 진(鎭)의 책임을 맡겼다.
Mar Coria(사진:최선웅)
괴선박 선주 황정(黃廷)에 따르면 이 배는 일본 쇼군(將軍)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명령에 따라 캄보디아(크메르 왕실)와 교역을 체결하기 위해 파견된 무역선(주인선)으로 배는 강력한 무기로 중무장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쇼군이 지급한 은 500냥을 가지고 캄보디아에 가서 진귀한 상아, 코뿔소 뿔 등을 구해 일본 나가사키(長崎) 항으로 항해하던 중에 심한 폭풍을 만나 조선 해안까지 표류해 온 것이다. 무역선에는 중국인 선주 황정(黃廷)을 비롯한 중국인 16명, 일본인 남자 30명, 일본인 여자 1명, 남만인 1명, 포르투갈(寶東家流) 상인 주앙 멘데스(Joao Mendes, 之褑面弟愁) 1명 등 49명이 생존했다.
이후 주앙 멘데스가 포르투갈에 돌아가 조선의 존재를 알려 1615년 포르투갈의 지도제작자 마누엘 고디뉴 데 에레디아(Manuel Godinho de Eredia)가 제작한 아시아 지도에 ‘한국해’를 뜻하는 ‘Mar Coria’ 명칭이 표기되었다. 에레디아는 1563년 말레이반도 말라카(Malacca)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중세 후기 이베리아 반도 북동부에 있었던 아라곤 왕국(Reino de Aragn)의 귀족 혈통을 지닌 포르투갈 인이고, 어머니는 술라웨시 섬 마카사르(Makassar, 현재의 우중판당)의 수장(Raja)인 조앙 데 수파(D. Joo de Supa)의 딸이다. 우리가 즐겨 먹는 고추는 포르투갈 상인들이 브라질, 남아메리카를 항해하다 남아메리카의 고추(아히, aji, chili)를 구해 일본을 거쳐 조선에 전래된 것이다.
고추(사진:농촌진흥청)
사학자 박태근 박사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된 비변사 기밀문서인 《등록유초(謄錄類抄)》를 1987년~2004년에 걸쳐 발굴 및 고증하면서 주앙 멘데스(Joao Mendes, 당시 34세)가 한국 문헌에 기록상 1604년 6월 15일(선조 37년), 공식적으로 확인된 최초의 서양인이라고 밝혀냈다. 《등록유초(謄錄類抄)》에는 주앙 멘데스가 포르투갈인 ‘지완면제수(之緩面第愁)’ 기록되어 있다. 멘데스 일행 중에는 흑인 1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통영시는 학계의 고증을 통해 2006년 통영 산양읍 삼덕항(당포항)에 최초의 서양인 도래인 주앙 멘데스 기념비를 건립하여 역사적 사건을 기념했다.
통영 삼덕항 주앙 멘데스 기념비(사진:대한일보)
2021년 한국과 포르투갈은 수교 6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 조형물을 통해 화합과 양국 교류 발전의 기원을 추진했다. 이에 2023년 포르투갈의 세계적인 조각가 빌스(Vhils. Alexandre Farto)가 작품을 기부하여, 남녀 한 쌍의 조형물을 제작하여 주앙 멘데스 기념 조형물은 통영 당포항이 보이는 언덕에 세우고 포르투갈 타구스 강 자르딩 도카스 다 포테(Jardim Docas da Ponte) 공원에 한국 여인상을 설치하였다,
포빌스(Vhils)가 만든 주앙 멘데스 얼굴(사진:통영시)
한국 여인상 인근에는 항해사 엔히크 왕자 서거 500주년을 기념해 탐험가, 예술가, 선교사 32명이 조각된 높이 52m의 발견기념비가 있다. 엔히크 왕자 기념비는 웅대한 범선 모양으로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어 인기가 좋다. 역사학계와 천주교계에서는 1593년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종군 신부로 경남 진해에 상륙했던 스페인 출신 세스페데스(Cespedes) 신부를 첫 서양인으로 보지만, 조선 측 관찬 문헌에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1604년의 당포 해전은 조선 영해를 침범한 괴선박에 대해 신속히 대응을 취한 조선 수군의 작전 준비 태세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수군은 화살과 돌을 쏘며 화공 작전을 가해 기선을 잡고, 조총으로 항거하던 왜인들은 화살에 맞아 죽고 백병전이 벌어져 조선 수군이 제압했다. 이 사건은 여러 나라가 얽힌 사건이었다. 통제영의 군사가 선원들을 심문한 결과 중국인들은 조선 수군의 정선 명령에 응하려 했으나, 일본 상인들이 조선 수군이 자기들을 살려 두지 않을 것이라 짐작하고 겁먹어 중국인 선원을 살해하기까지 했다. 조선 조정은 배 선주가 명나라인이라 생존자를 중국으로 강제 송환했다. 명나라 조정은 적국인 일본의 교역에 종사한 선박을 나포한 조선의 대응이 타당했다고 인정하고, 조선 수군통제사에게 은 20냥을 상금으로 지급했다.
〈당포전양승첩지도〉는 남해에서 무장한 상선을 나포한 사건을 담은 기록화로 전남유형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된 함평 노씨 문중 소장본과 전남유형문화재 제147호로 지정된 국립광주박물관 소장본, 전남 장흥 노홍(魯鴻) 등 여러 점이 전해 오고 있다. 선조는 <당포전양승첩지도(唐浦前洋勝捷之圖)>를 당시 해전에 참전한 우수(禹壽)를 포함해 28명의 공신에게 하사했다. 당포승전도제명(唐浦勝戰圖題名)에 공신 이름이 있다. 그림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상단에는 “唐浦前洋勝捷之圖”라는 제목이 전서체(篆書體)로 쓰여 있으며, 제목의 우측에 “甲辰六月(갑진 유월)”이라는 간기(刊記)가 적혀 있고, 중단에는 당포해전을 상징하는 해전도가 그려져 있고, 하단에는 해전에 참여했던 인물 28명의 좌목(座目)이 적혀 있다. 그림은 위에서 내려다본 부감법(俯瞰法)으로 그려져 있으며, 화면 중앙에는 일본의 서양식 무장한 상선과 4척의 조선 배가 전투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배에는 영기(令旗)를 달았으며, 무장한 상선을 향해 돌격하는 조선 수군의 기세 당당한 모습이 묘사되어 있어 조선 수군의 대표적인 전투선인 판옥선이 그려진 그림 중 가장 오래된 그림으로 추정이 된다. 당포 해전에 참여했던 인물 28명을 조사했다.
통영 세병관(洗兵館)(사진: 박근세)
(1) 가선대부 겸 충청경상전라삼도통제사 행 경상우도수군절도사 이경준(李慶濬, 字 심원), 1561년 출생, 한산 이씨, 서울 거주(嘉義大夫兼忠淸慶尙全羅三道統制使行慶尙右道水軍節度使 李慶濬 深源辛酉 韓山人 居京) 남원과 무주지역의 전투에서 왜적을 크게 무찌르는 공을 세웠다. 통영 세병관(洗兵館) 객사는 제6대 통제사 이경준이 충무공 이순신의 전공을 기념하기 위해 1605년 1월에 짓기 시작하여 7월 14일에 상량하였다. 이후 세병관은 290년 동안 삼도 수군을 총지휘했다.
조선은 유학자들은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 712~770)를 존숭해 1443년(세종 25) 4월에 착수하여 38년 만인 1481년(성종 12)에 두보의 시 1647편에 승려 의침(義砧), 柳允謙, 柳休復 등이 주석을 달고 풀이해 초간본 《杜詩諺解》를 번역했다. 두보는 759년의 일어난 안녹산의 난을 통해 백성들이 겪은 고통과 전쟁의 참상을 한탄하며 전쟁이 빨리 끝나 지친 말들을 쉬게 하며 백성이 일상으로 복귀하기를 간절히 염원하며 세병마행(洗兵馬行) 시를 지었다. 이경준은 두보(杜甫)의 시 마지막 구절인 “어찌하면 장사(壯士)를 구하여 하늘의 은하수 끌어다가, 갑옷과 병기 깨끗이 씻어 영원히 쓰지 않게 할는지(安得壯士挽天河 淨洗甲兵長不用)”라는 마지막 구절의 세병(洗兵)을 인용하였다. 통영 세병관(洗兵館)은 2002년 10월 14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305호로 지정되었다. 세병관 사진을 사용하려고 여러 날 찾다가 포기하고 여수에 사는 박근세 사진가에게 전화를 드렸더니 손죽도에서 촬영하고 있어 늦은 밤에 사진을 보내주셨다.
【출전】 寸地尺天皆入貢 奇祥異瑞爭來送 不知何國致白環 復道諸山得銀甕 隱士休歌紫芝曲 詞人解撰河清頌 田家望望惜雨幹 布穀處處催春種 淇上健兒歸莫懶 城南思婦愁多夢 安得壯士挽天河 淨洗甲兵長不用
(2) 가선대부 경상우후 신여량(申汝樑, 字 중임, 1534~1606), 1534년 출생, 고령 신씨, 흥양 거주(嘉善大夫慶尙虞侯申汝樑 重任甲午 高靈人 興陽), 그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선조를 의주까지 호송하고 행주대첩에서 공을 세웠다. 정유재란 때는 통제사 이순신과 함게 해전에 참전했다. 1605년 12월 19일에 전라우수사로 임명되어 다음 해 1월 9일 부임했다. 신여량 장군이 남긴 유품으로는 보물 제1937호 「상가교서(賞加敎書)」, 보물 제1938호 〈밀부유서(密符諭書)〉(2017.5.8.지정), 〈주사선연지도〉, 〈당포전양승첩지도〉가 국립광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보물 제1938호 〈밀부유서(密符諭書)〉(사진:국립광주박물관)
(3) 절충장군 충청우후 송안정(宋安廷, 字 정향) 1554년 출생, 홍성 송씨, 서울 거주(折衝將軍忠淸虞侯宋安廷 正鄕甲寅 洪州人 居京) 1626년 별세.
(4) 사도진 수군절제사 우수(字 인수) 1557년 출생, 예안 우씨, 거제 거주(蛇渡鎭水軍節制使禹壽 仁叟丁巳 禮安人 巨濟) 부산포 칠천량 명량 노량해전 안골포 만호.
(5) 미조정진 전절제사 이섬(李暹, 字 태명, 太明) 1566년 출생, 전의 이씨, 서울 거주(彌助頂鎭全節制使李暹 太明丙寅 全義人 居京)
(6) 절충장군 신탁(申琢, 字 자미) 1571년 출생, 평산 신씨, 서울 거주(折衝將軍申琢 子美辛未 平山人 居京)
(7) 절충장군 이기남(李奇男, 字 대윤) 1553년 출생, 광산 이씨, 순천 거주(折衝將軍李奇男 大胤癸丑 光山人 順天) 거북선 좌돌격장.
임진왜란 거북선(亀船, 亀甲船) 삽화(사진:日本 山川出版社)
(8) 어모장군 송덕일(宋德馹, 字 치원) 1566년 출생, 남양 송씨, 흥양 거주(禦侮將軍宋德馹 致遠丙寅 南陽人 興陽) 1592년 훈련원첨정으로 의주까지 왕을 호종. 1597년 정유재란 때는 진도군수로 전공을 세웠다.
(9) 어모장군 임영립(林英立, 字 사웅) 1566년 출생, 진천 임씨, 진천 거주(禦侮將軍林英立 士雄丙寅 鎭川人 鎭川)
(10) 어모장군 맹우증(字 효백) 1566년 출생, 신창 맹씨, 울산 거주(禦侮將軍孟友曽 孝伯丙寅 新昌人 蔚山)
(11) 보공장군 조흡(趙潝, 字 호원) 1572년 출생, 평양 조씨, 서울 거주(保功將軍趙潝 浩源壬申 平壤人 居京)
(12) 진위장군 이희참(李希參, 字 이로) 1556년 출생, 전의 이씨, 서울 거주(振威將軍李希參 而魯丙辰 全義人 居京)
(13) 진위장군 두기문(杜起文, 字 시언) 1571년 출생, 만경 두씨, 만경 거주(振威將軍杜起文 詩彥辛未 萬頃人 萬頃) 임진왜란 권율(權慄) 장군의 휘하에 들어가 왜적과 싸웠으며, 웅치전투와 이치전투에 참가하여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14) 소위장군 윤기(尹琦, 字 여온) 1571년 출생, 해남 윤씨, 해남 거주(昭威將軍尹琦 汝溫辛未 海南人 海南)
(15) 정략장군 이명길(李命吉, 字 천석) 1569년 출생, 태안 이씨, 안산 거주(定略將軍李命吉 天錫己巳 泰安人 安山)
(16) 정략장군 노홍(魯鴻, 字 여신) 1561년 출생, 함평 노씨, 장흥 거주(定略將軍魯鴻 汝信辛酉 咸平人 長興) 남도포(南桃浦) 만호로 임진난 참전.
(17) 현신교위 노의남(盧毅男, 字 사강) 1574년 출생, 교하 노씨, 수원 거주(顯信校尉盧毅男 士剛甲戌 交河人 水原)
(18) 돈용교위 정흔(鄭昕, 字 경명) 1578년 출생, 계림 정씨, 서울 거주(敦勇校尉鄭昕 景明戊寅 鷄林人 居京)
(19) 진용교위 노인(魯認, 1566∼1622, 字 공식) 1566년 출생, 함평 노씨, 나주 거주(進勇校尉魯認 公識丙寅 咸平人 羅州)
(20) 병절교위 이희춘(李希春, 字 경순) 1562년 출생, 보은 이씨, 해남 거주(秉節校尉李希春 景純壬戌 報恩人 海南)
(21) 어모장군 김일개(金一介, 字 여신) 1562년 출생, 김해 김씨, 울산 거주(禦侮將軍金一介 汝臣壬戌 金海人 蔚山) 권관으로 임진난 참전.
(22) 어모장군 박옹(朴蓊, 字 무중) 1557년 출생, 서울 거주(禦侮將軍朴蓊 茂仲丁巳 居京) 직장(直長)으로 임진란 참전.
(23) 정략장군 김대관(金大寬, 字 언홍) 1566년 출생, 경주 김씨, 신령 거주(定略將軍金大寬 彥弘丙寅 慶州人 新寧)
(24) 병절교위 이자징(李自澄, 字 징지) 1554년 출생, 광주 이씨, 서울 거주(秉節校尉李自澄 澄之甲寅 廣州人 居京) 1604년 남해 현령 제수.
(25) 소함장군 박제(朴璾), 전주 박씨(昭咸將軍朴璾 全州人) 증 자헌대부(贈資憲大夫) 호조판서(戶曹判書) 증직.
(26) 병정교위 이광춘(李光春), 강진 거주(秉節校尉李光春 康津)
(27) 통정대부 옹진현령 윤흥룡(尹興龍, 字 중우) 1547년 출생, 파평 윤씨, 대흥 거주(通訓大夫 瓮津縣令尹興龍 仲遇丁未 坡平人 大興)
(28) 승훈랑전 장성현감 손응호(孫應虎, 字 경우) 1560년 출생, 밀양 손씨, 당진 거주(承訓郞前長城縣監孫應虎 景又庚申 密陽人 唐津)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
만력 갑신년 1604년 6월 일(萬曆甲辰六月日)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궁인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