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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임실의 재실
◈ 양지리 영사재(永思齋)
이 재실은 성수면 양지리 석현마을에 있다 . 석현과 중촌마을 중간 지점 도로변에 백구동(白駒洞) 암각서가 있는 바로 옆에 있다 . 1964년 10월에 세워진 충의형 심윤원(忠義衡 沈潤源)의 재실이다. 윤원(潤源)의 자(字)는 사징(士澄)이며 본관은 풍산(豊山)으로 증통훈대부가복사정(贈通訓大夫家僕寺正) 탁(棹)의 사자(四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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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리 영사재(永思齋)
 
이 재실은 성수면 양지리 석현마을에 있다 . 석현과 중촌마을 중간 지점 도로변에 백구동(白駒洞) 암각서가 있는 바로 옆에 있다 . 1964년 10월에 세워진 충의형 심윤원(忠義衡 沈潤源)의 재실이다. 윤원(潤源)의 자(字)는 사징(士澄)이며 본관은 풍산(豊山)으로 증통훈대부가복사정(贈通訓大夫家僕寺正) 탁(棹)의 사자(四子)이다. 재실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기와로 된 팔작 기와집으로 현판 1개, 주련이 4개 걸려있다. 그 안에는 최성식이 지은 영사재기(永思齋記)가 있다.
 
 
 
 

1. 석현 영사재기(永思齋記)

 
무신(戊申)년 봄 정월 16일에 풍산(豐山) 심진홍(沈鎭弘)과 형순(衡淳)이 나의 옥등산방(玉嶝山房)에 찾아와 말하였다. “운동(雲東)의 고덕(高德)에 하나의 줄기가 남쪽을 향하여 구불구불 이어져서 봉우리가 둘러싸고 물이 감아 돌아 마침내 한 구역의 백구동(白驅洞)이 되었으니 이곳에서 우리 가문이 대대로 살고 있습니다. 무덤 아래에 평평한 곳이 있어서 자리를 살펴 재각을 하나 지으니 이곳이 바로 우리 8대 조고(祖考)이신 충의위(忠義衛) 휘(諱) 윤원(潤源) 부군(府君)의 위패를 모셔놓은 곳134)이요, 묘는 시내의 남쪽으로 몇 걸음 떨어진 허신동(許鉮洞)에 있으니 건좌(乾坐)입니다. 원래 재력(財力)이 재각을 짓기에는 미치지 못하여 한스럽게 보낸 세월이 9년 이었습니다. 작년인 병오(丙午) 봄에 족질(族姪)인 희순(喜淳), 행순(幸淳)및 두만(斗萬), 대만(大萬), 병관(昞瓘)과 함께 종친들을 모으고, 돌아다니며 상의하여 형편에 따라 돈을 내기로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다음해 정미(丁未)년 가을이 지나자 체사(體舍)인 본 건물 세 칸과 정문(正門) 세 칸을 짓고, 영사(永思)라 이름 지었으니, 청컨대 기념하는 글을 지어주십시오.”
 
나는 적임자가 아니라고 굳이 사양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다음과 같이 말하노라. “또한 훌륭하지 않은가. 《시경(時經)》에 말하기를 ‘오래도록 효도하며 그리워하기를 생각하니 효도하고 그리워하는 것을 이에 본받는다.’라 하였고, 자사(子思)께서 말씀하시길 ‘신(神)이 강신(降神)하는 것을 헤아릴 수 없는데, 하물며 싫어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셨다. 이것은 자기의 정신과 선조의 정신이 하나 되어 틈이 없음을 말한 것이니 유명(幽冥,돌아가신 분)에 대해 생각을 취하여 붙인다면 이치에 가까울 것이로다.
 
대저 사람이 태어남에 근본에 보답하고 멀리가신 분을 추모하는 이치이니 천성(天性)이 인도(人道)에 근원한 것이 지극한 것이로다. 사람이 자기 자식이 아니면 모르되 자식이 태어남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누가 주었겠으며, 길러주고 키워줌에 누가 그 은혜를 알겠는가. 아버지, 할아버지로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기맥(氣脉)이 하나로 통하는 신묘함이 낳고 낳아, 서로 잇고 서로 전함이 아닌 것이 없어서 내 몸이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천리(天理)에서 떨어지지 않으니 백대(百代)에 비록 먼 조상이라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충의(忠義) 두 글자를 전승하는 뜻으로 삼아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 까지 힘써서 조상에게 욕됨이 없게 하는데 이르러야 할 것이다.
 
무릇 이와 같이 하였으니 그 효도를 행함에 공(公)을 생각함이 지극한 것이다. 그러니 공의 영령(英靈)도 또한 장차 강림(降臨)하시어 후손들이 세워둔 재실에 대해 기뻐하시며 말씀하시길 ‘나도 또한 훌륭한 후손이 있어 덕(德)이 산처럼 높아 아마도 무궁히 닳아지지 않고 이지러지지 않을 것이니, 풍산씨(豐山氏)의 명성을 또한 함께 헤아려 보리라.’하실 것이다. 그러니 아! 어찌 이에 더욱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하노라.
 
 
무신(戊申)년 정월(正月) 전주(全州) 최성식(崔性植)이 기록하노라.
 
 
 

1.1. 永思齋記

 
戊申春正月既望 豐山沈鎮弘與衡淳 訪余于玉嶝山房 而言曰 雲東高德 一脉向南 逶迤屈曲 峰回水抱 乃作一區白駒洞 是吾門世 阡下有平坦處 相宅而建一齋 是乃吾八世祖考忠義衛諱潤源府君妥靈之所 而墓在溪之南數武許鉮洞 乾坐 原財力未及齎 恨者九矣 去丙午春 與族侄喜淳幸淳及斗萬大萬昞瓘 會諸族徇謀 隨力損金 越明年丁未秋 竣工躰舍三間 正門三間 名曰永思 請為念之
 
余非其人 固辭不獲 而敘之曰 不亦善乎 詩曰永言孝思 孝思惟則135) 子思子云 神之格思 不可度思 矧可射思136) 蓋言自家精神與祖先精神 一般而無間 幽冥取而寓意 則可庶幾乎 夫人生 報本追遠之理 所以根天性諸人道者 其至矣乎 人非空桑137)而生則頂踵毛髮 有誰賜之 育鞠長成 是誰知恩 自父祖潔遡 而上之則氣脉一貫之妙 無非生生 相承相傳 而吾身之所自出 故天理之不可離 而百世雖遠 豈可忘乎 然而忠義二字為繼述之意 而夙夜征邁 以克底于無忝而已 夫如是則其為孝 思於公也至矣 而公之英靈 亦將陟降 悅豫於寘寘之中 而曰 余亦有後裔焉 德峀嵬嵬 其不磨不騫于無窮 豐山氏之名聲 亦與之輕重矣 於戲 盍於是加勗乎㦲
 
戊申 正月日 全州 崔性植 識
 
 

 
각주
134) 妥靈타령 : 죽은 사람의 위패를 일정한 곳에 잘 모셔 놓고 섬김.
135) 《시경· 대아(大雅)》〈하무下武〉에 보임.
136) 《시경》〈억抑〉의 “相在爾室, 尙不愧于屋漏, 無曰不顯, 莫予云覯 神之格思, 不可度思, 矧可射思.”라는 말을 차용한 것이다.
137) 空桑(공상) : 부모의 소생(所生)이 아니며 내력(來歷)이 분명치 못한 사람을 말함. 또는 불문(佛門)의 승려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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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2.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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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