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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임실의 재실
◈ 대명리 경성재(敬省齋)
이 재실은 오수면 대명리 산 130번지에 있다. 오수면에서 삼계면으로 가는 접경지역에 있으며 칠수제(七水堤) 방죽 안에 있다. 경성재(敬省齋)는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팔작지붕으로 시멘트기와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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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리 경성재(敬省齋)
 
이 재실은 오수면 대명리 산 130번지에 있다. 오수면에서 삼계면으로 가는 접경지역에 있으며 칠수제(七水堤) 방죽 안에 있다. 경성재(敬省齋)는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팔작지붕으로 시멘트기와를 하였다. 담장은 블록 담장에 재사를 한 후 하얀색을 입혀 말끔하게 정돈된 재실로, 청주한씨 문중에서 戊寅年(1938) 2월 16일 건립한 것이라고 한다. 이곳에는 현판 1개, 주련 5개가 있는데 글씨마다 원형으로 색칠을 하여 특이함을 보여주고 있다. 1939년 정월에 쓴 경성재기(敬省齋記)가 있다.
 
 
 
 

1. 대명 경성재기(敬省齋記)

 
부자산은 노산의 아래 있으면서 엄연히 우뚝 솟았는데, 흡사 공자의 높은 담장처럼, 멀고 가까운 산과 산록이 감싸 안은 사이에 종종 인가가 모여 있고, 이름난 사람의 선산이 있다.
 
명나라 만력 말에 우리 14대조 창원공(昌原公)께서 혼조가 들어서 정사가 어지러워지자 남원의 북쪽 부자산중의 집으로 은거하였다. 증손인 돈녕공(敦寧公)은 음충좌위부사직으로 휘는 충서(忠恕)이다. 온화하고 빼어난 자질로서 여러 가지 학문에 두루 통하는데 학문의 근원을 두고, 스승 및 벗들과 함께 강마(講磨)하고 힘써 지조를 지켰으되, 세상에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졸함에 이에 장사를 지내고, 공의 행장과 출생 및 돌아가신 날을 기록해서 비지(碑誌)에 실었다. 오직 묘궁(墓宮)만 두고, 몇 대가 지나도 서두르지 않았다.
 
대저 창원공의 재궁(齋宮)은 뒷산 서쪽 능선 아래쪽에 있는데, 매번 향기로운 제물을 펼쳐서 제사에 참여하는 때에는 자손들이 그 재실에 들어가서, 공의 존경하던 것을 높이고 공을 사모하였다.
 
이제 공의 후손들 또한 지파가 많아지고, 지손도 번성하였으니, 묘궁의 설치는 더 이상 늦출 수가 없다. 이에 무인년 2월에 창건하여 다음 해 정월에 준공하였다. 장차 일을 도모하려함에 12대손인 달석(達錫), 주현(朱鉉), 관석(瓘錫), 동지(董之), 성일(成日, 圭溶) 등이 종중에 말하였다. “돈녕공이 조술하고, 창원공이 이어받은 가정학(家庭學)은 공부자(孔夫子)의 도와 다르지 않고, 거처도 부자산(夫子山)에서 떨어져 있지 않다. 여기서 태어나 여기에 묻혔으니, 종신토록 공자의 도를 즐기고, 후손들도 이에 편안하였으니, 어찌 성대하지 않겠는가” 비록 그렇다고 하나, ‘괘자(卦子)가 육허(六虗)와 자리를 바꾼다’하니 또한 인사가 면하기 어렵다.
 
후손들이 혹 경향각지에 흩어져 살아도, 선조들이 공자를 경모하던 마음으로서 후손들도 선조의 도를 경모하고, 스스로 그 덕을 닦았다. 먼 곳을 알면 가까운 곳은 말할 것도 없고, 향내를 맡으면 선조가 혹 나타난 듯하니, 선조가 이른 줄을 알면 정성이 가득한 것이다. 그러니 거의 선조의 행적이 이른 곳이 부자산에 있을 것이다. 하물며 은밀히 이에 그 가르침을 통함에랴. 서로 힘쓰기를 바라며 이에 기록한다.
 
기묘년 정월
11대손 규용(圭溶)이 삼가 쓰고,
12대손 재석(才錫)이 삼가 기록하다.
 
 
 

1.1. 敬省齋記

 
夫子山 在魯山下 儼然 碩尊 似夫子宮墻164) 而遠近岑麓 藏抱之間 往往 有煙火165)聚居 名人邱隴 明萬曆末 我十四代祖 昌原公 見昏朝政亂 嘉遯于南原之北夫子山中家焉 曾孫 敦寧公 蔭忠佐衛副司直 諱忠恕 以溫粹之資 博洽之學 淵源師友 講磨厲操 而不大顯于世 卒葬于玆 公事行及月日生忌 載有碑誌 惟墓宮 累世未遑
 
盖昌原公齋宮 在後麓西岡下 每芬苾之事 展參之時 子孫入其齋 隆公之所尊而私于公也 今公之後孫 亦派衆而支繁焉 則墓宮之置 不可緩也 乃創建於戊寅二月 竣功於翌年正月 將事者 十二代孫 達錫 朱鉉 瓘錫 董之 成日(圭溶) 吿于宗曰 敦寧公祖述166) 昌原承襲家庭學 不異於夫子之道 居不離於夫子之山 生於斯 葬於斯 終身樂夫子道 寓來孫遺安於斯矣 敢不懋乎 雖然卦子之易位六虗167) 亦人事之難免 後孫或分居各鄉 以先祖敬慕夫子之心 為後孫敬慕先祖之道 聿修厥德 知遠之近熏膏悽愴168) 知祖來格誠意 翕如則庶幾先祖物事而隨所處有夫子山 況密通其訓于玆者耶 相勉而記之
 
歲己卯正月 十一代孫 圭溶 謹識
十二代孫 才錫 謹書
 
 

 
각주
164) 부자구장(夫子宮墻) : 공자의 학문이 매우 심오함을 표현한 말로, 《논어》 〈자장(子張)〉의 “궁장(宮墻)에 비유하자면, 사(賜)의 담장은 어깨 높이라 집 안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지만, 스승님의 담장은 몇 길 높이라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서는 아름다운 종묘와 수많은 백관(百官)을 볼 수 없다.〔譬之宮牆 賜之牆也及肩 窺見室家之好 夫子之牆數仞 不得其門而入 不見宗廟之美百官之富〕”라고 한 말을 변용한 표현이다.
165) 봉화(煙火) : 사람이 살고 있는 집에서 불을 때어 나는 연기라는 뜻으로, 사람이 사는 기척 또는 인가(人家)를 이르는 말.
166) 조술(祖述) : 선인(先人)의 주장이나 학설을 본받아 서술함.
167) 육허(六虛) : 《주역》 계사 하(繫辭下) 8장에, “변동불거 주류육허(變動不居周流六虛)”라는 말이 나오는데, 주자 본의(本義)에서 “주류육허(周流六虛)란 음양이 괘의 육위(六位)에 유행(流行)함을 이른다.”라고 하였고, 공영달(孔穎達)의 소(疏)에서는, “음양이 두루 유동(流動)하여 육위의 허(虛)에 있다. 육위를 허라고 말한 것은 위(位)는 본래 정체(定體)가 없고 효(爻)를 인하여 비로소 나타나기 때문에 허라고 한다.” 하였다.
168) 훈호처창(焄蒿悽愴) : 향(香)냄새가 나서 사람의 기분을 신비하게 만드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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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