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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 (목치)
【향토】 임실의 재실
◈ 오산리 경성재(敬誠齋)
이 재실은 오수면 오산리 금산동 마을 가운데에 있다.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 기와집으로 현판 2개, 주련이 5개 걸려 있다. 연안 김씨(延安 金氏)의 재실로 1942년에 지었다.
오산리 경성재(敬誠齋)
 
이 재실은 오수면 오산리 금산동 마을 가운데에 있다.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 기와집으로 현판 2개, 주련이 5개 걸려 있다. 연안 김씨(延安 金氏)의 재실로 1942년에 지었다.
 
 
 
 

1. 오산 경성재기(敬誠齋記)

 
둔터(지금 둔기리)는 현의 남쪽에 있다. 높은 산이 겹쳐져서 길게 교외까지 이어진다. 저 우뚝 높은 산의 정상은 예전 우리 5대조고 계당부군(溪堂府君)과 부인의 오래된 묘가 있다. 산밑자락을 둘러서 지금 우리 후손과 제종친이 수대를 걸쳐서 머물러 산 곳이다. 후손들은 이 곳에 살면서, 아침저녁으로, 밥 먹거나 쉬면서도 반드시 늘 선산과 마주하였다. 비록 부녀자나 젖먹이 어린애들까지도 익숙히 보고 듣도록 하니, 모든 사람들이 묘소를 살펴보고, 절하는 동안에 행한 일이었다. 그러나 자주하면 쉽게 싫증이 나고, 가까우면 곧 소홀하기 쉬운 것이 사물의 이치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경성재(敬誠齋)는 어찌 짓지 않는 것인가. 아직 짓지 않았을 때 “매번 비바람이 불면 곧 반드시 무엇으로 막을 것인가. 시제를 지낼 때 어떻게 제물을 올릴까”라고 하였다. 이처럼 모두가 한으로 여기며, 대대로 서로 경계를 하며 세월을 보냈다.
 
신미년 봄에 정령들이 묵묵히 도우사 중지를 모으고 뜻을 모아서 네 개의 도리와 다섯 개의 기둥을 갖춘 재실을 짓고, 띠를 베어 지붕을 덮었지만, 완성된 것은 아니라고 여겼다. 13년이 지난 갑신년 봄에 옛 재실을 증수하여 기와를 새로 올리고, 여기에 현판을 달았다. 비바람을 가리고 시제 때도 걱정이 없어서 예전의 효우암(孝友庵)에 비길 만 하였다. 그동안 모든 후손들이 수고로움에 초췌해졌으니, 이는 참된 정성이라. 방책을 주선한 이는 재종제 사범(思凡)과 삼종손 종억(鐘億)으로 더욱 힘을 쓴 공로가 있다.
 
아아. 우리 잔손들의 약한 힘으로 수년동안 큰 공사를 이루었으니, 이 도한 ‘경성(敬誠)’이라고 할 수 있다. 진실로 이 재실에 들어가서 이 마음을 가진다면, 곧 선조를 받드는 예가 돈독해지고, 종중의 논의가 저절로 번거롭거나 소홀히 지지 않을 것이니, 재실의 이름과 실질이 또한 무궁할 것이니 우리 후손들은 노력할지어다.
 
나 같은 불초손이 외람되이 문말에 있고, 누구와 공을 다툴만한 것이 털끝만큼도 없으나, 재실을 이룬 공에 감탄을 했다, 그러므로 대략을 파악해서 그 끝에 위와 같이 적어둔다.
 
갑신년 봄 이월 상한
계당공 오세손 사은이 절하며 쓰다.
유사 사윤, 종억
 
 
有邨在縣南曰金山□疊嶂 而挹長郊 彼巍然 於山之頂者 昔我五世祖考 溪堂府君及其孺人之千秋佳城也 匝然於山之趾者 今我後孫與諸宗之數世奠居也 凡後孫之居是者昕宵食息 必與山相接 雖婦孺孩提習熟見聞 皆在於省掃展拜之間 然數則易煩 近則易忽 物之理也 故今日之敬誠齋 安得不築乎 方其未築也 每風雨則必曰 何以庇之 蒸禴188)則必曰何以薦之 如是齎恨者 歷世相戒泩歲之
 
辛未春 精靈默佑 僉謀協同 搆得四架五楹之齋 誅茅覆之 猶以為未完也 後十有三年甲申之春 增修舊制 易之以瓦署189)之 以顏於是乎 風雨有庇 蒸禴無虞 庶可比於古之孝友庵也 其間諸孫之踼蹶勞悴均 是赤誠而周旋方策 惟再從第思凡 三從孫鐘億 尤極庸功焉
 
鳴呼 以吾孱孫之綿力成 此積歲之鉅工 此亦敬誠也 茍能入此齋而存此心 則奉先之禮敦 宗之誼不自煩忽而齋之名實 亦不變於無窮矣 惟我後人勗之哉 以余不肖忝在門末190) 雖無羽誰爭之功 猶有感功欽嘆之思 故畧記巴尾 如右云爾
 
歲在閼逢涒灘 春二月上澣
溪堂公 五世孫 思垠 拜記
有司 思允
鐘億
 
 

 
각주
188) 약사증상(禴祠蒸嘗) : 종묘에 지내는 사계절의 제사 이름이다. 종묘제사 약, 봄제사 사, 겨울제사 승, 가을제사 상. 중국 周(주)나라 宗廟(종묘)의 時祭(시제). 여름, 봄, 겨울, 가을의 순으로 되어 있다. 蠶殷(잠은)시대에는 봄을 禴(약), 여름을 禘(체), 가을을 嘗(상), 겨울을 蒸(증)이라 하였으나, 周(주)에 이르러 禘(체)를 殷祭(은제)로 했기 때문에 체를 빼고 사를 더하여 봄과 바꾼 것이라고 함. 출전 詩經(시경).
189) 와서(瓦署) : 조선시대에, 왕실에서 쓰는 기와, 벽돌을 만들어 바치던 관아. 태조 원년(1392)에 동요와 서요를 두었다가 뒤에 합하여 와서라고 하였다. 고종 19(1882)년에 없앴음.
190) 문말(門末) : 하나의 법문에 의해서 종지를 세운 일종일파(一宗一派)를 종문(宗門)이라고 하고, 그 종문에 속하는 것을 문하의 도제(徒弟)라고 하는 의미로 문도, 문제(門弟)라 한다. 또는 나무의 지엽에 비유해서 문엽(門葉), 문말(門末)이라고도 한다
【향토】 임실의 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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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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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