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천리 영모재(永慕齋)
이 재실은 오수면 주천리에 있다. 이 지역에 사는 현풍 곽씨의 재실이다. 정면 2칸, 측면 1칸의 벽돌 양옥집이다. 지붕은 팔작 기와로 현판이 1개 걸려있다.
현풍(玄風)은 경북 달성군에 있는 지명으로, 고려 초에 현풍현으로 개칭, 밀양에 속했다. 우리 곽(郭)씨는 송나라 귀화 성씨로 알려진 씨족(氏族)으로 중국 관서 홍농 출신인 시조 곽경(郭鏡)께서 고려 인종(仁宗) 때(1133년)에 우리나라에 들어 와 문하시중평장사를 지내고 금자광록대부로 포산군(苞山君)에 봉해졌으므로 처음엔 관향(貫鄕)을 포산으로 하였으나 조선조에서 현풍(玄風)으로 개칭됨에 따라 현풍을 본관으로 하게 되였다.
노산(鷺山)의 정기 받은 주천리에 약 오백년 전 학덕 높으신 곽도(郭都), 득형(得亨), 이수(李洙) 세 분이 정착하시어 대대로 영농으로 생활하며, 유교를 생활신조로 삼고 근면 성실한 생활을 하면서도 위선지심(爲先之心)과 경조애족(敬祖愛族)의 정신이 돈독하였다. 근간 세류에 따라 자손 등이 각지로 산거(散居) 숭조관념(崇祖觀念)이 해이되고 향사(享祀)를 할 재실이 없어 강풍설우시는 난감한 것을 개탄 종손 태훈(台勳)과 삼훈(三勳) 등이 발의, 재실 건립을 서두름을 알고, 부산에 있는 화훈(和勳)이 五천만 원의 거금을 독자출력, 1986년에 준공하여 영모재(永慕齋)로 명명, 오랜 숙원사업을 성취케 함은, 제종의 선조를 위하는 마음을 고취케 하는 효시가 되다. 숭조정신이 뚜렷한 화훈은 사회에 진출하여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각고의 노력 끝에 의료기기 산업을 창업하여 보건 분야에 공헌이 크다. 이는 문중의 자랑으로 영구히 기리고저 여기에 약기하노라
포산(현풍)곽씨(苞山(玄風)郭氏) 곡성공파(谷城公派) 문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