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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임실의 재실
◈ 뇌천리 척모재(惕慕齋)
오수역에서 동계로 향하는 13번 국도상 삼계면 진입 후 삼은, 뇌천 표석에서 좌회전하여 뇌천리 뇌내 마을 안 위쪽 산기슭에 있다. 척모재(.慕齋)는 이 지역에 거주하는 풍산심씨(豊山沈氏)의 재실로 맞배지붕 아래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지어졌다. 상량의 ‘숭정기원후4경인(崇禎紀元後四庚寅)’으로 보아 순조 30년(1830)에 중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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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천리 척모재(惕慕齋)
 
오수역에서 동계로 향하는 13번 국도상 삼계면 진입 후 삼은, 뇌천 표석에서 좌회전하여 뇌천리 뇌내 마을 안 위쪽 산기슭에 있다. 척모재(.慕齋)는 이 지역에 거주하는 풍산심씨(豊山沈氏)의 재실로 맞배지붕 아래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지어졌다. 상량의 ‘숭정기원후4경인(崇禎紀元後四庚寅)’으로 보아 순조 30년(1830)에 중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대청 안에 있는 ‘뇌계재사중수기(磊溪齋舍重修記)’에는 ‘숭정기원후삼무인(崇禎紀元後三戊寅)’이라 쓰여 있는 현판이 1개 있는데 영조 34년(1758)에 써진 것이다. 이곳은 최근에 지붕만 강판으로 교체한 상태이다.
 
 
 
 

1. 뇌천 척모재 뇌계재사 중수기(磊溪齋舍 重修記)

 
남원[龍城]의 치소에서 북쪽으로 30리 밖에 삼계석문(三磎石門)이 있다. 석문의 서쪽으로 6~7리 쯤에 뇌계(磊溪)가 있는데 시내의 위쪽으로 정향(丁向)인 곳이 우리 8세조의 묘소가 있는 곳이다.
 
아! 우리가 영락(零落)하여 남쪽으로 내려와 집안[門戶]이 쇠잔해지고 문장마저 적적해져 미처 조상을 받들지 못한 지 여러 해가 지났다. 옛날 우리 선조가 개연히 여기에 뜻을 두고 여러 종족들과 의논하여 재물을 모아 재사(齋舍) 6~7칸을 창건하였다. 세월이 이미 오래 지나 비가 내리고 바람이 쳐서 장차 무너지게 되었기에 내가 생각할 것도 없이 정축년에 종중의 추천을 받아 다시 지붕을 수리하였다.
 
돌아보건대 재력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썩은 마룻대를 새 서까래로 바꾸어 묵은 것을 치우고 대청 3칸과 재방(齋房) 2칸, 좌우에 협실을 낙성하고 척모재(惕慕齋)라고 이름 지었다. 대개 ‘출척상로(怵惕霜露)’는 선령(先靈)을 추모하는 뜻이다.275) 자손이 된 사람이 흐느끼며 입실하여 유연(油然)하게 효심을 일으켜야 하므로 여기에 크게 힘을 써서 중수하였으니276) 제수를 마련하여 제사를 지내는 데에는 서운함이 없을 것이다. 더욱 오래오래 더욱 새롭게 하여 선조를 위하는 정성과 후세에 물려줄 계책, 두 가지를 거의 삼가 이루지 않겠는가? 후사들도 수리하여 이 곳이 영원히 보존되기를 바란다. 사운시(四韻詩)를 지어 부족하나마 그 뜻에 대해 말한다.
 
 
修葺新齋設二房  지붕을 수리하니 재각이 새로워지고 두 칸 방이 생겼네.
層楹依舊又雕樑  겹겹 기둥은 예스러운데 아로새긴 대들보
歲徂猶愛杉松翠  묵은 해 지니 삼송(杉松)은 푸르네.
月會方知花樹香  월회(月會)에 바야흐로 화수(花樹) 매화꽃 향기 알겠네
 
盛服齋明將我事  심신을 정결하게 하고 의관을 갖추는 일은 장차 나의 일이니
先靈如在降斯堂  선령(先靈)께서 이 곳에 내려 앉으시듯 하네 .
宗親一體同祠祀  종친이 하나 되어 함께 제향을 드리니
詩禮傳家戒衆郞  시예를 대대로 전해주며 뭇 젊은이에게 타이르네.
 
숭정 기원후 세 번째 무인년(1758) 3월 상순
불초 용택(龍宅) 삼가 씀.
 
 
 

1.1. 磊溪齋舍 重修記

 
龍城治北三十里外 有三磎石門 石門之西 六七里許 有磊溪 溪上向丁之原 惟我八世祖藏衣之所也 噫我沈之南來門戶譾劣 文章寂寥 未遑於先事者 積有年所矣 昔我 先人 慨然有志於斯 與諸宗收議鳩財 刱建齋舍 六七間矣 歲月彌久 上雨旁風 將至頹圮 故嗟余不敏歲舍丁丑爲宗中所推 更爲修葺而顧以財力之不贍 棟之杇者易以新椽之摧者 去其舊 而大廳三間 齋房二間 挾而左右至於落成 名曰 惕慕齋 盖怵惕霜露 追慕先霛之意也 爲子孫者 僾然入室 油然興孝則 肯構之力於斯爲大而庶乎 無憾 粢盛之供 香火之儀 愈久愈新 則爲先之誠 貽後之謨 幾乎兩全可不慎哉 幸望來後嗣而 葺之則可期此舍之永保也歟 系以四韻 聊爲言志
 
崇禎 紀元後 龍集 三戊寅 三月 上浣 不肖 龍宅 謹敍
 
 

 
각주
275) 돌아가신 부조(父祖)에 대한 생각을 말한다. 『예기(禮記)』 〈제의(祭義)〉의 “가을에 서리와 이슬이 내리면 군자가 그것을 밟아 보고 반드시 슬픈 마음이 생기나니, 이는 날이 추워져서 그런 것이 아니다. 또 봄에 비와 이슬이 내려 땅이 축축해지면 군자가 그것을 밟아 보고 반드시 섬뜩하게 두려운 마음이 생기면서 마치 죽은 부모를 곧 만날 것 같은 생각이 들게 된다.〔霜露旣降 君子履之 必有悽愴之心 非其寒之謂也 春雨露旣濡 君子履之 必有怵惕之心 如將見之〕”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276) 원문의 긍구(肯構)는 긍구긍당(肯構肯堂)의 준말로, 『서경』〈대고(大誥)〉에, “만약 아버지가 집을 지으려 작정하여 이미 그 규모를 정했는데도 그 아들이 기꺼이 당기(堂基)를 마련하지 않는데 하물며 기꺼이 집을 지으랴.〔若考作室 旣底法 厥子乃弗肯堂 矧肯構〕” 한 대목에서 온 말로, 자손이 선대의 유업을 잘 계승하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는 고가(古家)를 자손들이 중수(重修)한 것을 가리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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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2.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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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