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월리 영송재(永松齋)
이 재실은 삼계면 두월리 뒷골 마을 가운데에 있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연안 김씨(延安 金氏)의 선조 지헌(止軒) 김이주(金以疇)의 재실이다. 처음에는 김이주가 서재로 조선 인조 때 지었으며 4280년(1947) 중수하였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 기와집으로 현판이 1개, 주련이 6개 걸려있다.
‘바친다[獻]’라는 것은 새로운 공물(貢物)을 드린다는 것이고, ‘정성을 드린다[誠]’라는 것은 충심(衷心)에서 우러나는 것으로 혈연을 지키는 것이며, ‘기록한다[錄]’는 것은 정성을 다하여 잊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 정성을 드려 바친다는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고성(固城)의 시달리(時達里)293) 선영(先塋)은 의창황씨(義昌黃氏)가 매년 조촐한 제물로 제사를 올리는 곳이니 후손이 되어 은혜를 입은 사람은 누군들 부끄러움과 한스러움이 없겠는가? 그러므로 대종중(大宗中)에서 거론하여 성의껏 각 파별로 추렴하여 전답을 바쳐서 그 한스럼을 면하였다. 그 뒤 후동(后洞)에서 남은 정성으로 명성재(明盛齋)를 증수하여 새롭게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땅은 비록 다른 곳이지만 정성은 한 가지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시달리(時達里) 선영에서 지내는 세천(歲薦)이 조금 나아지고 원천이 되는 재각이 정결해졌으니 우리 종족의 경건하게 정성을 드린다는 뜻이 후손들에게 계승될 것이니 매우 다행이겠다. 제통(祭統)을 마련하여 갖추었고294) 재명(齋明)을 성대하게 다시 새로워졌으니295) 누군들 정성을 드리지 않았겠느냐마는 준영(準泳)과 동영(東泳)이 더욱더 온 마음을 다하였다. 헌성록의 여러 종파의 후손들이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도리로써 덕에 나가고 덕을 닦아 간다면 어느 세대인들 나아가지 않겠는가?
후일에 지금 일을 보는 것이 지금 옛날의 일을 보는 것과 같을 것이니 흥야(興也)이든 부야(賦也)이든296) 서로 딱 맞으면 애윤(愛倫)하는 이치가 한 국가에 미치어 흥인(興仁)하게 되고, 원근의 친속은 화당(和堂)에 모두 돌아와 흥제(興悌)할 것이다. 그러므로 종족의 정성으로 더욱 공경하고 효를 다하고297) 화수당(花樹堂)에 높이 걸어 둔다. 뒷산에 늦도록 푸르른 소나무와 일천 가지 일만 잎새가 번창하리니 대대로 이어가며 강장(講場)에서 독서하여 조상을 존모하며 융화하는 기운이 영원토록 날마다 펼쳐질 것이다.
정묘년 10월 15일[下元] 동지 후 정축일(丁丑日)에 종중의 이야기를 필부 일덕(一德) 종윤(鍾兌)이 삼가 받아 적다
獻은 獻供之貢新也요 誠은 衷心之所發 血性之所守며 錄은 盡誠之不忘也 然則 其獻誠之用이 安在오 固城 時達里 先塋 義昌黃氏 歲薦之俎豆 薄略으로 爲後所蒙者孰不愧恨이리오. 故로 大宗中 擧論으로 有誠者 各醵派別 而獻畓免恨한 後日后洞之餘誠만이 又及 明盛齋하야 增修加新하니 地雖所異나 誠在一也라 故로 時達里 歲薦之僅羞와 源泉齋閣之 精潔은 此宗之虔獻誠之志가 隨後繼承이 幸甚幸甚이로다 이로써 祭統設而 可俱와 齋明誠而更新에 誰或不出乎誠이리요마는 더욱이 猶得專心者는 卽準泳與東泳이라 錄中諸族之後裔가 以心傳心之道로 進德修德之行이면 何代無進이리요 後日之視今이 如今之視昔矣리니 興也며 賦也라 若合符節이 愛倫之理 達乎一國家而興仁하고 遠近親疎는 同歸乎 和堂而興悌라 고로 敬起于宗族之款誠하야 擎揭于花樹堂하니 後山永松之晩翠와 千枝萬葉之繁昌이 世世年年讀書講場에 尊祖融和之氣 永願與日方暢이로다 龍集下元 丁卯 亞歲之後 丁丑日에 此宗中說을 庸夫一德鍾兌謹受記
각주 293) 시달리(時達里)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 연지리 지동(芝洞)이라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294) 『예기』 〈제통(祭統)〉에 “제사 지낼 적에 반드시 부부가 친히 행하는 것은 내외의 제관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니, 제관이 갖추어지면 제물도 갖추어지게 마련이다.〔夫祭也者 必夫婦親之 所以備外內之官也 官備則具備〕”라는 말이 나온다. 『소학』 〈명륜(明倫)〉에도 이 글이 인용되어 있다. 295) 재명 성복(齋明盛服)은 경건하게 제사를 담당해야 하는 전의시의 일이 지금은 엄두가 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지극한 효성에 입각해서 일을 해 나가다 보면 차츰 완전하게 할 수 있으리라는 말이다. 재명 성복은 재계(齋戒)를 하여 심신을 정결하게 하고 성대하게 의관을 갖추어 입는다는 뜻으로, 『중용장구』에 “재명 성복하여 제사를 받든다.[齊明盛服 以承祭祀]”는 말이 나온다. 조차(造次)는 ‘조차필어시(造次必於是)’를 줄인 말로, 『논어』 이인(里仁)에 “군자는 밥 한끼를 먹는 동안이라 할지라도 인(仁)을 어기는 일이 없어야 하니, 아무리 다급한 때라도 반드시 이 인에 입각해서 행해야 할 것이다.[造次必於是]”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296) 육의(六義) : 『시경(詩經)』의 6가지 분류. 즉, 풍(風-민요)ㆍ아(雅-궁중 악)ㆍ송(頌-제사 때의 악)과 부(賦)ㆍ비(比)ㆍ흥(興) 6가지인데, 풍ㆍ아ㆍ송은 내용상의 구별이고, 부ㆍ비ㆍ흥은 표현상의 구별이다. 여기서는 시의 장(章)마다 흥이면 ‘흥야(興也)’, 부면 ‘부야(賦也)’라고 붙여 읽는 것을 말함. 297) 『예기』〈내칙(內則)〉에 “부모님께서 잘못한 일이 있으면 기운을 가라앉히고 표정을 화평하게 하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해서 말씀드리고, 만약 받아들이지 않으면 더욱 공경하고 더욱 효성을 다해서 기뻐하신 뒤에 다시 말씀드린다.〔父母有過 下氣怡色 柔聲以諫 諫若不入 起敬起孝〕”라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선왕의 뜻을 거역하지 않고 효성을 다하려는 뜻으로 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