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천리 영덕재(永德齋)
영덕재(永德齋)는 관촌면 덕천리 덕곡마을 안에 있다. 영덕재는 이 지역에 거주하는 전주이씨의 재실이다. 1921년 3월에 건립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편액은 성수 출신 이광의 선생이 썼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 슬레이트 지붕이며, 건물 내에는 현판 1개가 걸려 있다.
대저 재실을 지어 영덕(永德)이라고 이름을 내건 것은 조상이 남기신 덕(德)을 잊지 말자는 뜻이다. 우리 8대조 충의위공(忠義衛公)은 효령대군의 7세손이시다. 대군 이후에 3세가 군(君)으로 봉해졌으며 호은공(壺隱公)에 이르러 사화로 인하여 남하하여 운수(雲水)의 남쪽 주천으로 물러나 머물렀는데 이분이 충의위공의 증조이다. 집안의 가르침과 효도하는 마음을 영원히 이어갔다. 공의 문학과 덕행은 남녘 땅의 모범이 되셨다. 천수(天壽)를 누리고 주천에서 생애를 마쳤다. 우리 고을 상북면(上北面) 덕곡촌(德谷村) 뒤에 있는 임좌(壬坐)에 안장하였는데 그 봉분이 충의위공의 무덤이다.
무덤 아래 비바람을 피하며 영령이 편히 쉴 곳이 없어서 봄의 이슬과 가을 서리를 맞으며 서글프지 않은 적이 없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이번 봄에 집안에서 의논하여 뜻을 같이 하여 재실 3칸을 세우기로 하였다. 재각의 규모는 검약하지만 맑고 밝고 환하여 눈비를 피할 만하니 앞으로 여기에서 전념할 수 있을 것이다. 아! 어느 시대이나 정자나 재각을 창시하는 것은 쉽지만 지켜나가는 것이 어려운 것이니 우리 후손된 사람들은 선조의 덕업을 영원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이어가며 이 재각을 지켜낸다면 이 재각은 오래도록 새로워져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니 선조를 욕되게 하지 않으리라.
신유년 국월(菊月) 중양일(重陽日) 8세손 태우(台宇) 삼가 짓다. 유사 춘우(春宇) 유사 경우(卿宇)
夫齋建丙舍 揭之以永德 是永慕祖先 不忘遺德者也 惟我八代祖 忠義衛公 卽孝寧大君之七世孫 大君以後三世封君 至壺隱公 以士禍南下 遯跡于雲水之南酒泉 寔忠義衛公之曾祖也 世▣家誡 永言孝思 公之文學德行 爲南土之衿式矣 以天年考終于酒泉 而兆于本縣之上北面 德谷村後 壬阡封若堂者 忠義公所的世之壽藏也 墓下無風雨之庇 妥靈之所 春露秋霜 未尙不愴悒者久矣 何幸 今春 族議 僉同刱建三間 齋制甚約 而亦傷淸楚明朗 足以庇雨雪 可以將事於斯矣 噫無論何代亭齋刱始易守成難 爲我後昆者 永思先德 至誠紹述 嗣以葺之 此齋之愈久 維新永可以不朽 庶可以無忝也夫
辛酉 菊月 重陽日 八世孫 台宇 謹識 有司 春宇 有司 卿宇
임실현의 북쪽 오원강(五院江)의 동쪽 강변 덕곡(德谷)의 임천(壬阡)에 곧 9세조와 충의위공(忠義衛公) 두 분의 묘소가 있다. 무덤 아래 비바람을 피하고 우러러 앙모할 수 있는 곳이 없어서 근심하고 슬퍼한 지 오래되었다. 신유년 봄에 종족들이 의논하여 뜻을 같이 하여 재목을 구하고 공력을 모아 재각을 창건하기로 하여 3개월이 지나 공사를 마쳤다.
동서로 안에 끼워 두니 그 만듦새는 매우 검약하지만 맑고 밝고 환하니 묘제를 지낼 때에 비나 눈이 내려도 여기에서 전념할 수 있을 것이다.
아! 우리 호은공은 효령대군의 현손이고 충의위공의 증조이시다. 공께서는 선조의 뜻을 이으셨으나 무오사화를 당하여 남하하여 운수(雲水)의 남쪽 주천(酒泉)에 머물렀다. 재상으로 조정에 세 번이나 천거되었으나 나아가 벼슬하지 않으셨다. 충의위공은 스스로 이러한 작은 맥을 이어 받아 집안의 훈계를 익히며 효행을 생각하며 문학과 덕행으로 시종일관하여 그 음덕이 영원히 드리워졌으니 그에 대해서는 집안에서 간직한 유집(遺集)에 실려 있다.
아! 우리 후손이 지성으로 이어받아 버리지 않는다면 이 재실을 오랫동안 이어가게 될 것이니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재각에 영덕(永德)이라는 편액을 내걸었으니 성묘하는 날에 묘역에서 거닐다가 이 재각에서 자적하며 지내며 그 이름을 지은 뜻을 돌아본다면 선조의 이름을 더럽히지는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마을의 이름 덕곡(德谷)은 재각의 편액의 두 번째 의미이니 그 덕을 살펴서 그 뜻을 영원히 해야 할 것이리라.
신유년 중양일 9세손 광의(光儀) 삼가 짓다.
任實縣北 五院江之東邊 德谷壬阡 卽我九世祖 忠義衛公 兩世之壽藏也 阡下無風雨之庇 瞻慕之所故後昆之愴悒久矣 歲辛酉春 族議念同 鳩材集工 刱建丙舍 凡三閱朔 功告訖 東西爲奧中介大應制甚約而亦以淸楚明郞 若墓祭時有雨雪 則可以將事於此矣 嗚呼 惟我壺隱公 卽孝寧大君之玄孫 忠義衛公之曾祖也 公以克述讓 國之不德 遭戊午禍 南下遯跡 于雲水之南酒泉 而以卜相三薦朝 署不屑進取 忠義衛公 自小脈習家誡永言孝思 文學德行 終始惟一 其垂蔭也亦永久 事載家藏遺集 嗟我後孫至誠紹 勿替引之 則此齋之愈久 嗣葺不足意矣 故揭齋以永德 省掃之日 彷遑乎兆域 因復遊息于玆齋 顧名思義 則庶可以無忝夫 且其洞名之德谷 扁齋之第二義也 觀其德而永其思乎
辛酉重陽日 九世孫 光儀 謹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