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곡리 영모재(永慕齋)
덕치면 사곡리 자경마을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 함안조씨 사인공파의 재실로 입향조인 조평 선생을 위한 재실로 관리되고 있다. 정면 4칸에 측면 2칸의 팔작 함석지붕으로 비교적 튼튼하고 고풍이 서려 있으며 현판이 1개, 주련이 5개 걸려있다.
통훈대부(通訓大夫) 장령공(掌令公)의 묘비는 지금까지 약 4백 년동안 석비[石質]를 세우지 못하였다. 비바람으로 닳고 갈라져서 자획이 문드러졌다. 또 병화(兵禍)마저 입어서 예전의 면모가 사라져 버렸다. 자손되는 사람들이 서로 돌아보고 탄식한 지가 십년이 되었다.
작년 겨울 정기총회(定期總會) 자리에서 다행히 유사(有司) 동래(東來), 석래(碩來) 현달(顯達), 현섭(顯燮)이 새로 세우려는 뜻을 모으고 모든 종족들이 일심으로 일어서 앞다투어 의연금을 내어서 오석(烏石)에 새로 새겨서 무덤을 지키고432) 옥천공(玉川公)의 석상(石床)에 함께 나아가 삼가 전날에 미처 하지 못하였던 일을 이루었으니 어찌 아름답지 아니한가?
무릇 선현을 봉사는 도리는 반드시 자손들의 정성이 있어야 하는 것으로 이제 판에 새겨서 처마위에 걸어, 하나는 여러 종중에서 의연금을 낸 정성을 표시하고 하나는 후손들에게 풍범(風範)의 바탕이 될 것이다. 아래 그 이름을 적어둔다.[이하 생략]
通訓大夫掌令公之墓碑 距今近四百年 石質不竪 以風磨雨泐 字畫漫漶 中且受兵禍模 無昔日之儀 爲其子姓 相顧興嘆者 累十年矣 昨冬定期總會席上 幸因有司東來碩來 顯達顯變 謀改竪之議 僉宗一心 興起爭先義捐輸烏石而新刻 以衛隧道並進玉川公之石庠 謹遂前日未遑之役 豈不休哉 夫奉先之道 必有子孫之誠 故今以板書懸于楣上 一以表諸宗義捐之誠 一以爲來裔風範之資 錄芳名于左
각주 432) 원문의 수연(隧羨)은 수도(隧道)와 같은 말이다. 수(隧)는 천자(天子)의 장례(葬禮) 때 굴을 뚫어 재궁(梓宮)을 운반하는 지하 통로이고, 연(羨)은 제후(諸侯)의 장례 때 재궁을 운반하는 참호(塹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