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리 영사재(永思齋)
지사면사무소에서 오수 쪽으로 가다가 중간 지점에 계산리 의암마을이 있으며, 마을에서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영사재(永思齋)는 팔작 기와지붕으로 정면 4칸, 측면 2칸 구조로 양쪽에 공방이 있으며 현판이 5개 주련이 7개 걸려있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전주 최씨 선조 인의헌(仁義軒) 최여달(崔汝達)의 재실로 문중에서 1927년에 중수하였으며, 옆에는 최여달의 신도비가 있고, 바로 위에 최여달과 그의 처 함양 박씨 묘비와 문관석이 있다.
1. 계산 영사재 모선포미기(永思齊慕先褒美記)
천하에 오전(五典)의 질서로부터 친족이 먼저 있는 바가 되고 구경(九經)이 세상이 행해짐에 돈목(敦睦)이 우선되어야 하니 하늘이 맺어준 혈족간의 사랑과 종족간의 친함은 옛 성현들이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것이요 지금의 사람들이 흠모하는 바이다. 그런 까닭에 천하에 나무가 뿌리가 없거나 물가의 근원이 없지 않는 것과 같이 하물며 인간 세상에 어찌 선조로부터 생명이 이어지는 이치가 있지 않았으랴.
오직 우리 전주최씨 시조 군옥(群玉)은 고려 선종조에 경도변리찬화동덕공신(經度變理贊化同德功臣) 평장사(平章事) 추밀원지사(樞密院知事) 진현관태학사(進賢館太學士) 증대현진사(贈大賢進士)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문충공(文忠公)이시다. 7세 만육(晩六) 선조 양(瀁)은 충익공(忠翼公)의 손자 인의헌(仁義軒) 여달(汝達) 자헌대부(資憲大夫) 공조판서공(工曹判書公)의 아들 목사공(牧使公) 집의공(執義公) 생원공(生員公) 3파의 후손들이 문무를 계승하면서 남원에 뿌리를 내리고 각처로 흩어져 거주한 까닭으로 보통 남원종중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만육 선조의 전해내려 온 향사전을 분배하거나 다시 싸게 사거나 하여 더보탤 예정이며 판서공의 향사 비용 제반이 부족한 까닭으로 보충할 대책을 예상하였다. 그러한 즉 이 두 일이 모두 막중한 일이지만 3파의 자손들이 널리 번성하여 많이 있으므로 힘을 모으고 마음을 모은다면 산을 허물어 수레가 다니는 땅을 만들 수 있거든 하물며 우리 자손들이 근본의 도에 보응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 근본을 궁구해보면 한 뿌리에서 나온 나무이며 한 근원에서 흘러나온 강물이니 선조를 숭모하는 후예의 지경에 있어서 감히 가르침이 막중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각각 정성을 다하고 뜻을 모아 찬조하였다. 이로써 선조를 우러러 받드는 것이 위로는 눈이 내리는 듯하며 아래로는 구름이 드리워 있는 듯하니 조상을 숭모하는 도가 어찌 아름답다 아니하리오! 모두가 힘을 다하여 많거나 적게 성의로 의연한 종원은 各盡多少誠意義損宗員은 慕先案에 일일이 명료하게 기입하고 특별하게 정성을 다하여 재물을 더한 종원과 특별하게 정성을 다한 임원들은 현판을 기재하도록 한다. 종손 재식(在植) 도유사 원식(原植)
신축(辛丑)년 중동(仲冬) 하완(下浣) 성식근지(性植謹識)
自五典叙於天下而親族이 在所先하고 九經이 行於世間이敦睦이 居其首하니 天属之愛와 宗族之親은 古聖之所貴重이요 今人之所欽慕者也 故로 天下未有無根之木兒源之水커든 况人於其間에 豈有旡先祖能生之理哉아 惟吾全州崔氏始祖諱群玉 高麗宣宗朝 經度變理贊化同德功臣 平章事樞密院知事 進賢館太學士贈大賢進士 輔國崇祿大夫文忠公七 傳晩六先祖諱瀁 忠翼公之孫仁義軒 諱汝達 資憲大夫工曹判書公之子 牧使公執義公 生員公 三派之孫 文武繼承하야 根於南原散居 各處故로 普稱南原宗中이라 然晩六先祖 由來享祀田이 依偌兮配하야 更加賤買豫定而又判書公享祀備諸般이 不足故豫爲補充之策 則兩件事莫重巨大而 三派子孫이 蕃衍多數라 衆力合心則山可車陸般커든 况吾子孫當然報本之道乎아 究其本則如木之同根 水之同源하니 其在慕先裕后之地에 敢不敎且重哉아 因各盡誠意協力贊助하다 仰以慰祖先 在上之空하고 下以叙雲仍慕先之道則 豈不美哉아 各盡多少誠意義損宗員은 慕先藥에 一一明瞭記入하고 特誠增資宗員과 及特誠超事任員은 板上記載如左云 宗孫在植 都有司原植
辛丑仲冬下浣 性植謹識
特誠增資員芳名錄 在植 牧使公派 雁下里 英鉉 仝派 全州 良吉 仝派 求禮位安 容進 仝派 順天三巨洞 官植 仝派 羅州榮山浦 鳳植 大司諫公派 鎭安銅鄕面 鳳植 生員公派 雁下里 柱漢 仝派 沃溝伏橋里 鍾龜 仝派 仝所 容順 仝派 只沙面
特誠趨事任員錄 鍾淦淳昌 完植雁下 淳洪只沙 容完馬靈
우리 인의헌(仁義軒)433) 부군(府君)의 복택(卜宅)이 대방(帶方;남원)의 옥산(玉山) 아래 건좌 손향(負乾之原;乾坐巽向)434)에 있는데 병사(丙舍)435)가 계정(癸丁) 방향으로 지은 지가 벌써 여러 해 되었다. 하지만 출입문을 오래도록 갖추지 못하여 두렵고 근심한 마음이었으나 재력이 미치지 못하여 진한이 떨어져 있는 것과 같이 이미 오래되었다. 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무릇 사물이 가지런하지 못한 것은 사물의 7정에 그치지 않는 것이라. 운은 그 운이 있음이고 때는 그 사람이 있어서 이니 이는 바뀌지 않는 이치이다. 이에 인의헌공의 주손(胄孫)인 재식(在植)이 마음을 잡고 혼혈을 기울였으나 여러 해 동안 쉽지 않더니 대사간공 반(潘)의 후손 한석(漢錫)과 생원공 발(潑)의 후손(相玉) 둘이서 재물과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문랑(門廊) 3동을 세우니 완전하고 아름답도다. 어쩌면 그리도 성하고 어쩌면 그리도 위대로운가!
비록 그러하더라도 검약함으로써 이를 완수하고 효우로써 이를 행한 오랫동안 전함을 첨윤(詹尹)436)의 점괘가 필요 없더라도 널리 드높임을 또한 분별할 수 있으리라 이로써 종중의 의론이 모두 한가지로 이를 포창한다.
병진년 9월 상완(上浣) 후손 민식(旻植) 삼가 씀
仁義軒府君卜宅이 於帶方之玉山下負乾之原일새 丙舍于癸丁之向으로 旣成이 數年이로되 門庇를 未具에 久心이 怖忦나 然이나 由財力不逮로 秦漢之相距가 已遠矣라 雖然이나 夫物之不齊난 不啻物之七情矣라 運有其運하며 時有其人이니 寔不易之理也라 至於 仁義軒公冑孫在植甫하야 心獲血凅나 彌年不易러니 大司諫公諱潘後孫漢錫과 生員公 諱潑之後孫相玉二甫가 另以物心으로 彈誠是日에 門廊三棟이可以爲完矣美矣로다 何其盛矣何其偉哉아 雖然이나 守之以儉約하며 行之以孝友則傳之久遠을 不須卜於詹尹이라도 其崇其廣을 亦可辦之矣리라 是以로 宗議協同하야 玆擧褒彰焉
歲丙辰菊月上浣 后孫旻植謹書
정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독선(篤善)을 잘하는 것이 재물을 잘하는 것이라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나는 독선(篤善)을 잘하는 것이 이익에 정성을 다하지 않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족친들에게 잘하는 것을 반드시 처음부터 기록하여 소위 스스로 친함으로 너그럽고 스스로 조상들에게 잘하는 것은 모두 오로지 자신에게 지극한 것이다. 오직 우리 인의헌(仁義軒)437) 선조를 추모하는 일은 담장에 풀이 부끄럽게 나뒹굴고 있음이며 우거진 풀을 뜯어내어 끊고자 함이다.
마음을 구름과 같이 한가지로 하여 돈독히 하면 아프고 슬프지 않으니 전 참봉 병현이 자기의 몸과 힘을 다하여 문설주를 고치고 토지의 풍요로움을 버리고 따로 둠이라. 제사를 도두움이 항상 늘 남고 부족함에 넉넉하게 미치게 내놓음이라. 검소함으로 차고 비지 않게 하여 조상을 받들고 존경함이 이과 같음이라. 세상에서 종친들을 걱정하지 않거나 조상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다른 반승(飯僧)438)과 탑을 쌓는 것이다. 복을 비는 것이 어찌 다르거나 미루리요.
어느 것이나 다 집은 보기 좋게 잘 꾸며져 있고 밭은 이어져 있으며 의지할데 없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 공이 계셔서 이 땅에서 의가 능히 많은 자손들이 대대로 이어지며 살면서 나오고 이루지 않겠는가? 우리 종친은 해마다 봄바람이 다시불어 오듯이 우리 선조의 향기로운 제수의 남음이 곧 가득 따른 술잔의 넉넉함이다. 반드시 병현씨에게 축복을 더하여 사랑하는 복이 바닷물처럼 넘치며 산남의 문에 이르지 않으리오!
도유대황락(屠維大荒落;己巳年) 수요절(秀要節:여름)
의종(儀鍾) 순상(淳相) 치현(治鉉) 영석(永錫) 찬(撰)
程夫子有言曰 吾未見嗇於財而能篤善也 吾未見不誠而能篤善也 善之族必自誠之始而記 所謂自仁率親自善率祖者 盖曰權之於一身之誠也 惟我仁義軒先祖追慕之地 墻爲篤茨草之慘羮焉 絶采芼之薄矣 同一雲仍孰不졸愴而前參奉秉鉉依出已力 奥然修閣別置去田豊乎 助祭非由尋常衍餘損及而寔出乎 儉己自菲滿腔的尊祖敬宗之由中攸做也 世或有不䘏族不念祖者爲他飯僧築塔 以徼福則何其謬晏哉 比比潤屋連田無處萬千者 孰有如我公之存本土義能爲衆子孫累世 未邊之爲居然出乎 成之耶我花樹年年春風之回存吾祖先苾芬之餘 卽滿酌酸餘之盃必爲加祝曰秉鉉氏愛福洋洋不下於山南之門乎
屠維大荒落秀葽節
儀鍾 淳相 洛鉉 永錫 撰
각주 433) 인의헌은 전주최씨 판서공파조인 최여달(崔汝達:1417~1487)로 만육 최양의 손자이다. 434) 북서쪽을 등지고 남동쪽을 바라보는 방향 435) 병사는 무덤 가까이에 지은 집으로 제각(제실)을 말한다다. 436) 초나라의 정첨윤(鄭詹尹)으로 점을 잘 쳤다. 437) 인의헌은 최여달(崔汝達)의 호이다. 438) 불교에서 승려를 공경하고 받들어 모신다는 뜻에서 식사를 베푸는 종교행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