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촌 덕천리 영벽정(暎碧亭)
영벽정(暎碧亭)은 관촌면 덕천리 사선대 입구 산자락에 있다. 팔작지붕 아래 정면 2칸, 측면 2칸의 구조로 1935년에 지었으며, 영벽정기 등 9개의 현판이 있다. 누각 왼쪽에는 1989년도에 후손들이 청주인 한동석이 찬(撰)을 하고 김해인 김호균이 글씨를 써서 세운 ‘영벽정기적비’가 있고, 그 뒤편 바위에 영벽정을 창건한 기념으로 단기 4268년(1935) 乙亥 7월에 창건자 명단을 새긴 암각서가 있다. 오른쪽에는 관촌 병암리보(이심보)를 처음 막았다는 ‘최전과 최순 형제 시혜비’가 있는데, 이들은 신평면 대리보를 처음 막은 최반의 아들로서 비석은 거의 같은 시기에 지역 유지들에 의해 세워졌다.
우리 임실을 운수현이라 부르는 것은 산수가 아름답기 때문이다 군의 북쪽 봉황처럼 뻗은 산줄기는 남쪽으로 구비쳐 흘러 그 끝이 맺힌 곳에 높은 낭떠러지가 있고, 낭떠러지 위는 약간 평탄하여 언덕을 이루니 이곳을 예로부터 사선대라 이름하였다. 사선대 밑에는 한 줄기의 장강이 대를 감돌아 흐르고, 대 앞에 이르러서는 푸르고 깊은 물 바닥이 보이지 않으니 이 강이 유명한 오원강이다. 그 경치는 굽이굽이 감돌면서 천태만상의 가경을 이루는데, 그 아름다움은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으리 만큼 지상의 별천지를 이룬다. 그러므로 대상에는 탐승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노래와 춤이 일년내내 끊이지 않으니 진실로 호남의 명승지라 할 만하다.
그러나 이곳에 놀던 모든 유람객들이 이 좋은 경치에 정자 하나 없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왔다. 올해 7월 15일 밝은 달밤에 다음에 기록한 여러 선비들이 달 구경을 하면서 서로 의론하기를 여기에 정자를 짓기로 하고 명망있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 돈을 거출, 사선대 낭떠러지 밑 오원강 위에 자그마한 누정을 세워 영벽이라 이름하고, 나에게 정기를 써 주기를 부탁하여 왔다. 무릇 색에는 오색이 있는 중 푸른 물에 비춘다는 영벽을 취한 까닭은 만물의 색이 사시마다 바뀌는데 유독 푸른 물은 만고에 변함이 없고, 언제나 변함없는 오원강 푸른 물에 비칠 것이므로 이렇게 이름 지은 것이다.
이렇게 보면 영벽이란 이름은 이 정자에 딱히 어울리는 말이라 아니할 수 없다. 누정의 제도는 비록 넓지 않지만 사치스럽지 않고 아담한 데가 있어 다만 푸른 물에 비추이는 것이 한층 누정의 아름다움을 더해 주는 것이니 전일의 풍경에 비길 바가 아니다. 다만 옛날 이곳에 놀았다는 네 사람의 신선들을 볼 수 없으니 그것이 섭섭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들 여러 선비들이 잠시라도 속세를 잊고 이 누정에 올라, 옷은 옷깃을 바람에 휘날리고 혹은 술 한잔 마시며 놀고 본다면 또한 신선이 아니겠는가. 마치 중국의 저 유명한 악양루에 노니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1935년 9월 상산이씨 후손 이귀현 씀
雲水卽山水之鄕也 治之北鳳末一之南來 逶迤而其餘盡頭處 千仞石碧上 廣闊平坦而成坮 名曰四仙臺 下一帶長江環匯 其前深碧而不見其底 名曰 烏院江也 且以萬千其壯不可盡述 而惟仙坮之上 觴詠歌管 四時不絶 則湖南之名勝也 然凡遊人韻士之過此 每歎無其名亭焉 萬物之不全者此也 是歲秋七月旣望 左記君子來遊於此 詢謨僉同 名其出力 就仙坮之斷崖下 烏江之上 別起一亭 揭以暎碧 而屬余記之 余曰 凡色五而 以碧爲暎者 笑取焉 諸君子曰 萬物之景 四時不同而惟山光水之色 萬古不變而相暎此 亭故取名之也 余曰 善哉 亭之名名也 亭之制 雖不廣 不侈 山水之倍生色 地區之益 手+賣名不可與前日而語也 嗚呼 坮之四仙 去以久矣 當時遺世 羽化之遊 今不可以得見 然諸君子 登阜+色此亭 逍遙焉 以廣其心 婆娑焉 以坮其神 世間榮震 相與俱忌 待其酒力 醒茶烟歇 憑危欄 望斗北以古人 江湖進退之憂 相與不忌 則暎碧亭之遊 與岳陽陽樓之遊 相似 而諸君子之去 范父正也 不遠矣 勉旃之諸君子
乙亥 黃花節 商山 李龜鉉 記
烏原暎碧亭 오원(烏原)의 영벽정 日夜泛如舲 어두운 밤 작은 배가 떠 있누나. 遠水飛簷白 먼 곳의 물줄기 처마 아래 하얗게 흐르고 落霞遂帆靑 지는 노을은 돛단배 따라 푸르구나.
笛聲千嶂月 피리소리에 천 개의 고개에 뜬 딸 漁火一天星 고기잡이 등불 마냥 하늘에 뜬 별 曉榭江風細 새벽 정자에 부는 가느다란 강바람 疎鍾喚夢醒 성긴 종소리는 취한 잠을 불러들이네.
全州 朴正來 전주 박정래
仙界是何處 신선이 사는 곳 어디런가 江頭暎碧亭 강가의 영벽정일세. 寒月水同白 차가운 달빛 물 위에서 함께 희고 巉岩苔半靑 가파란 바위 반쪽에 이끼가 끼었네
風漸花影動 점점 부는 바람에 꽃그림자 일렁이고 日晩漁韻聽 해 저무니 고기잡이 소리 들려오네 臨高無限景 높이 오르니 무한히 펼쳐진 경치에 灑落夢如醒 상쾌하게 꿈에서 깨누나.
오헌(梧軒) 김태경(金台敬)
同志每歎無息所 동지들이 매번 쉴 곳 없어 안타까워 四仙台下築斯亭 사선대 아래 이 정자를 지었다네. 岩收地勢依山固 바위는 지세(地勢)를 거두고 산에 의지하여 굳건하고 簷壓天光接水靑 처마에 눌린 하늘빛 물에 닿아 푸르네.
晦日登慘名勝得 그믐날 정자에 오르니 명승(名勝)이러니 有時定會講論聽 때가 되면 모여서 강론하고 들었네. 衆襟皆是漁樵士 입성은 모두 어부와 초동이러니 何敢寒廚顧醉醒 어찌 감히 가난한 부엌에서 취했다 깨겠는가!
춘정(春汀) 박영섭(朴永燮)
山抱水回同一碧 산이 물을 끼고 휘이 돌으니 영벽정 斗南淑氣萃吾亭 북두 이남 맑은 기운 우리 정자에 모이네. 後圍佳木爲屛立 뒤에 두른 아름드리 나무 병풍처럼 늘어섰고 前擁和烟隔樹靑 앞에 끌어안은 연기는 나무 사이에서 푸르네.
芝明作伴幽香透 지초는 밝게 짝을 이뤄 그윽한 향기마저 지나가니 琹友登慘古調聽 거문고 뜯던 친구 올라 오래된 곡조 듣고 있네 曾此諸僚恒顧意 일찍이 이런 친우들 항상 그 뜻을 살피니 詩無絶咏酒無醒 시 없이 읊고 술 없이 깨누나.
적은(迹隱) 이윤호(李潤鎬)
奇巒許址曲江畔 기이한 뫼에 터에 굽어 흐르는 두둑에 十九人成一小亭 열 아홉 사람이 작은 정자 하나 완성했네. 巨石歲深荒蘚老 깊은 세월의 큰 바위에 거친 이끼 오래되어 佳松風大怒濤靑 아름드리 소나무에 성난 파도처럼 부는 바람 맑도다.
靈天霽月停盃問 비 개인 하늘의 맑은 달에 술잔 멈추고 묻고448) 暮寺流鍾隔檻聽 석양녘 절집 종소리 난간 사이에서 들려오네 詩賦敍嘯多相適 시부(詩賦)를 읊노라니 서로 잘도 맞네 役事間間懶夢醒 공사하는 틈틈이 게으른 꿈에서 깨누나
초은(樵隱) 이공근(李功根)
疊疊奇峰下 첩첩산중 기이한 봉우리 아래 翼然小一亭 날개 편 듯 작은 정자 波光天共碧 물결은 빛나고 하늘도 함께 푸르더니 霧色柳同靑 안개빛도 버드나무와 함께 푸르네
雲氣緣岩起 구름 기운에 산마저 일어나 江聲入檻聽 강 소리도 난간에 들어오는 소리 堪蟒二樂趣 두 가지 즐거움이 일어나니 塵夢孰先醒 꿈만 같은 세상에서 누가 먼저 깨리오
석당(石塘) 하재명(河在命)
6. 덕천 영벽정(暎碧亭) 창건년조(創建年條)
단기 4268년 을해(1935) 7월 일
창건인
연정(蓮汀) 이상만(李相萬) 학인(學忍) 이종근(李種根) 중암(仲菴) 이영만(李榮萬) 초은(樵隱) 이공근(李功根) 청람(淸嵐) 유문기(柳文琪) 석정(石井) 김용태(金容台)
각주 448) 이백의 〈파주문월〉 시 첫머리에 “청천의 저 달은 언제부터 있었는고, 내가 지금 잔 멈추고 한번 물어보노라.[靑天有月來幾時 我今停杯一問之]”라는 구절을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