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 주천리 화락정(和樂亭)
화락정은 오수면 주천리 마을 북쪽에 자리 잡고 있다. 주천리 노산아래에 자리 잡은 화락정은 현풍곽씨 문중에서 마을의 부노(父老)들이 서로 모여 저수지 위에 높고 시원한 땅을 골라서 물가 쪽에 돌을 쌓고 정자 하나를 세우고서 화락정(和樂亭)이라고 이름 하였다.
화락(和樂)이라는 것은 사계절이 내내 누정에 올라서 혹은 달을 감상하며 풍월을 읊기도 하고, 혹은 곡수(曲水)에 술잔을 띄우며 고금(古今)을 이야기하고, 맘대로 눕기도 하며 의좋게 서로 모여 여생을 즐겁게 보내자는 뜻에서 지어졌다고 한다.
노산의 수천 봉우리가 두루 돌아가며 안아주고, 남쪽으로 비옥한 들판을 열었다. 주천(酒泉)의 한 샘물이 구불구불 흘러서 동쪽으로 달려 맑은 웅덩이가 되었다. 앞으로는 천황봉에 해 떠오르는 장관을 마주 대하고, 뒤로는 응봉(鷹峰)의 맑고 빼어난 신령스런 기운을 짊어진 그윽하고 한가한 곳에 한 부락을 이루었으니, 부락 이름이 내촌(內村)이다.
500년 전에 우리 선조이신 곡성 현감 득형(得亨)공이 벼슬을 그만두시고 처음 거처를 정하여 은거하며 후학을 가르치니 곧 마을이 되었다. 중세에 호은(壺隱) 이수(李洙) 선생에게 예전부터 술이 나오는 샘물이 있다는 말을 전해들은 후에 주천(酒泉)으로 개명하였다.
곽·이 두 선생의 유풍(遺風)과 여운(餘韻)으로 인심이 순박하고 풍속이 아름답다. 국가에서 추진한 신촌증산(新村增産)의 혜택을 입어 마을의 모양새가 넉넉함에도 오히려 높은 곳에 올라서 쉴만한 곳이 없었다. 이때에 마을의 부노(父老)들이 서로 모여 저수지 위에 높고 시원한 땅을 골라서 물가 쪽에 돌을 쌓고 정자 하나를 세우고서 화락정(和樂亭)이라고 이름하였다.
화락(和樂)이라는 것은 사계절이 내내 누정에 올라서 혹은 달을 감상하며 풍월을 읊기도 하고, 혹은 곡수(曲水)에 술잔을 띄우며 고금(古今)을 이야기하고, 맘대로 눕기도 하며 의좋게 서로 모여 여생을 즐겁게 보내자는 뜻이니,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오직 우리 후손들은 힘써 뜻을 받들어 오늘 누정을 쌓는 지극한 뜻을 잊지 말고 잘 보전해준다면 다행일 것이다. 누정을 처음 지을 대에 어떤 사람은 땅을 기부하고, 어떤 사람은 성금을 기탁하여 기간이 많이 걸리지도 않아 누정이 지어졌으니, 이 또한 인심이 순박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이에 그들을 위해 기록한다.
기미년 새봄에 곽병륜(郭秉崙)이 쓰다.
魯嶽千笏이 週遭回抱하야 向南而開沃野하고 酒泉一源이 潺湲逶迤하야 馳東而瀦清湖라 面對天皇日出之壯觀하고 背負鷹峰清秀之靈氣하야 幽閑作一村하니 名曰內村이라
五百年前에 鄙先祖谷城縣監得享公이 解組始定居하야 隱而講學하니 因而成村하고 中世에 李壺隱先生洙가 因古來酒出源泉之傳言하야 改稱酒泉하다
郭李兩先生之遺風餘韻으로 人心이 淳厚하고 風俗이 良美하며 賴國家新村增產之恩策하야 村樣이 豐饒하나 尚無登臨息肩之所할새 於時에 父老相會發議하여 揀瀦上爽塏之地하야 臨水築石而起一亭하고 名曰和樂亭이라하니
和樂者는 循四時登臨하야 或賞月詠風하고 或流觴曲水하며 談論今古하고 任意偃臥하며 相聚相和하야 樂送餘生之意也라 豈不美哉아
惟吾後孫은 勉而承之하야 勿負今日築亭之幽趣而善保則幸也라 經營之初에 或獻敷地하고
或損誠金하여 不多期而成之하니 此豈非人淳俗厚之致耶아 因為之記하노라
己未新春日 郭秉崙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