Ⅶ. 나오는 글
이상으로 지표조사 및 발굴조사에서 축적된 고고학 자료를 중심으로 임실의 선사와 고대문화에 대해 살펴보았다. 전북 임실군은 금남호남정맥과 호남정맥 산줄기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데, 수계상으로는 섬진강 상류지역에 속한다. 섬진강 본류와 지류를 따라 크고 작은 평야와 구릉지가 발달해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임실 하가 구석기 유적을 설명하고 있는 조선대 이기길 교수
임실군이 자리한 섬진강유역은 금강과 만경강, 동진강, 영산강, 남강유역을 하나로 묶는 가교역할을 담당하였다. 선사시대 이래로 줄곧 사통팔달하였던 내륙교통로가 거미줄처럼 잘 갖춰져 교통의 중심지이자 전략상 요충지를 이루었다. 더욱이 임실군을 중심으로 그물조직처럼 잘 갖춰진 내륙교통망이 교차하여 일찍부터 거점지역으로 발전함으로써 문화상으로 점이지대를 이루었다.
전북 동부 산간지대에서 선사시대의 문화유적 밀집도가 높고 그 종류가 다양한 곳이 임실군이다. 특히 임실 상가 윷판유적이 자리하고 있는 신평면 일대에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의 문화유적이 밀집되어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를 토대로 선사시대부터 거점지역으로 발돋움하였고, 삼국시대 때는 백제와 가야문화가 공존하였다.
종래에는 임실 금성리 출토품인 목긴항아리를 근거로 가야계 소국인 상기문上己汶이 임실읍 일대에 있었던 것으로 비정되었지만, 그것을 증명해 주는 고고학 자료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백제의 대규모 분묘유적을 중심으로 산성 및 봉수가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한 동안 섬진강유역으로 가야의 진출과 함께 일시적으로 가야의 영역에 속하였던 것으로 보았다.
임실 도인리 유적 발굴 광경, 군산대 박물관
임실군의 역사성과 지역성을 최고로 높인 곳인 임실군 성수면 월평리 산성이다. 이 산성은 삼한시대 옛 성으로 학계에 보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진안 와정토성을 경유하여 진안고원을 종단하는 간선교통로와 만경강유역에서 호남정맥의 슬치를 넘어 온 교통로가 만난다.
신평면 발견 매장문화재 목긴항아리
백두대간의 치재를 넘어 운봉고원을 거쳐 경남 서부지역으로 나아가는 백제 한성기 간선교통로, 호남정맥의 석거리재를 넘어 종착지인 고흥반도까지 이어진 남북교통로, 동진강 하구의 가야포까지 이어진 내륙교통로가 나뉘는 분기점이다. 동시에 섬진강유역에 그물조직처럼 잘 갖춰져 내륙교통망의 관제탑과 같은 허브역할을 담당했던 곳이다.
동진강 하구의 가야포加耶浦를 가야의 거점포구로 비정하였다. 동진강유역에 그물조직처럼 잘 갖춰진 내륙 수로와 내륙 교통로의 종착지인 가야포는, 서해 연안항로의 기항지이자 제사유적인 부안 죽막동에서 그 위쪽으로 20km 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대가야를 비롯한 가야의 중국 사행이 서해의 연안항로를 따라 이루어졌다면, 섬진강 하구의 경남 하동 못지않게 동진강 하구의 가야포도 그 유력한 후보지로 보았다.
백두대간의 육십령과 치재를 넘어 임실 월평리 산성을 거쳐 가야포까지 도달하는 데 거리상으로 가장 가깝고 교통로의 필수 조건인 경제성과 안정성도 모두 충족시켜 주었다. 이를 근거로 대가야를 비롯한 영남 내륙지역과 전북 동부지역에 기반을 둔 가야계 소국이 남제 등 중국과 교류할 때 주로 이용했던 국제교역항으로 추론하였다.
호남 동부지역에 밀집 분포된 산성은 대략 100여 개소에 이른다. 섬진강과 남강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으면서 아영분지와 운봉고원의 서쪽 자연경계인 백두대간과 섬진강 중류지역을 동서로 횡단하는 오수천을 따라 산성이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만경강유역에서 섬진강 상류지역으로 진입하는 길목인 호남정맥의 슬치 부근, 공주와 부여 일대에서 진안고원 등 금강 상류지역으로 진출하려면 주로 넘었던 금남정맥의 싸리재 부근, 금산분지의 북쪽을 휘감는 산줄기에도 산성이 밀집되어 있다. 가야계 분묘유적과 산성의 분포권이 서로 중복된 점에서 상당수의 산성은, 백제 및 영산강유역에 기반을 둔 세력집단에 대한 방어체계를 구축하는 과정에 대가야를 비롯한 가야세력에 의해 처음 축성된 것으로 보았다.
임실읍 금성리 제철유적 지표조사 광경
관촌면 덕천리 성미산성 발굴 현장 설명회 광경
성수면 도인리 유적 발굴 광경, 군산대 박물관
금강과 섬진강의 상류지역에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밀집 분포된 80여 개소의 봉수는 대체로 가야계 수혈식 석곽묘의 분포권과 일치한다. 특히 100여 기의 가야계 중대형 고총이 밀집된 장계분지와 장수분지에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으면서 그곳을 방사상으로 에워싸고 있다. 그리고 산성과 밀접한 관련성을 나타내며 장계분지와 장수분지로 통하는 여러 갈래의 내륙 교통로가 잘 조망되는 산봉우리에 입지를 두었다. 봉수에서 수습된 토기의 속성과 봉수의 분포양상만을 기준으로 추론한다면, 봉수의 설치주체는 대가야 혹은 장계분지와 장수분지에 지역적인 기반을 두고 발전했던 가야세력과의 관련성이 깊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이전까지 줄곧 임실군에 속하였던 진안 도통리·외궁리 초기청자 요지는 후백제에 의해 운영된 것으로 보았다. 후백제 견훤이 45년 동안 중국청자의 본향인 오월과 돈독한 국제외교의 결실로 오월의 월주요 청자 제작기술이 후백제에 전파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임실 진구사지에서 나온 초기청자는 진안 도통리 초기청자 요지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았다. 우리나라 초기청자 요지는 그 역사성을 높게 인정받아 대부분 문화재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전북 진안군 성수면 도통리·외궁리 경우만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아 아직도 행정당국의 관리 손길이 전혀 미치지 않고 있다. 진안 도통리의 정식 발굴조사와 함께 전라북도 등 행정당국에서 문화재 지정 논의가 시작되었으면 한다.
2007년 임실군 전 지역을 대상으로 종합적인 지표조사를 실시한 뒤 그 결과를 일목요연하게 담아낸 책자도 발간되었다. 이를 계기로 임실군은 선사시대부터 역사시대까지 수많은 문화유적이 밀집 분포된 문화유적의 보고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임실 상가 윷판유적과 그 서쪽에 자리한 하가 구석기유적은 임실군의 선사시대를 대표한다. 임실 금성리·도인리·석두리에서 백제토기와 가야토기가 함께 출토되어, 삼국시대 때 문화상 점이지대로서 임실군 고대문화의 지역성을 보였다. 향후 임실군의 선사 및 고대문화를 보다 더 심층적으로 규명하기 위해서는 역사의 실체로까지 평가받고 있는 매장문화재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함으로써 이를 근거로 종합적인 규명작업이 다시 행해져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