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의 선사유적
고분군
방현리 고분군
강진면 방현리 산 61번지 일대에 산재되어 있다. 청웅면과 강진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백련 산(754.5m)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내린 지류의 말단부에 방현리 수동마을이 자리한다. 방현리 고분군은 수동마을 북동쪽에 남북으로 뻗어있는 구릉상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비교적 완만한 지형을 이루고 있으며 동쪽과 남쪽에 일부 경작지를 제외하면 대부분 임야지대를 이루고 있다.
수동마을 주민들에 의하면 20여년전 이곳에 사람들이 창을 들고 와서 고름장을 파갔으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파헤친 흔적이 있었으나 밭으로 경작하는 과정에 유실되었다고 제보해 주었다. 현지 조사에서 고분과 직접적으로 관여된 유구는 확인하지 못했으나 구릉의 동쪽과 남쪽 하단부에서 경질토기편 등이 다량으로 수습되었으며 곳곳에 고분의 축조에 이용된 것으로 보이는 석재들이 산재되어 있는 점 등으로 보아 고분이 자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지역이다.
백련리 고분군 A
백련리 신기마을 북쪽에 있다. 이 마을에서 북쪽으로 200m가량 떨어진 웃터골과 독산골 사이의 구릉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이 구릉지의 정상부에 이미 민묘 구역으로 조성된 구역을 제외하면 대부분 논과 밭으로 개간되어 있다. 이 고분은 밭으로 개간된 구릉지의 정상부와 남쪽 기슭기에 자리한다.
이곳에 고분이 분포된 것은 답사를 통하여 밝혀졌는데 지금부터 30여년 전에 도굴로 3기 내외의 고름장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당시 고름장에서 돌을 빼내어 논둑을 쌓기도 하였다고 한다. 유구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고분의 벽석으로 추정되는 할석이 논둑에 박혀있는 것을 보았다.
백련리 고분군 B
강진면 백련리 산 81-1번지일대로 백련리 신기마을과 대강진 마을 사이에 남북방향으로 뻗은 산줄기가 있다. 이 산줄기의 상단부인 북쪽에 백련리 고분군 B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의 북동쪽에는 노나무골과 개등산골, 남서쪽에는 개동산골이 있는데 이들 골짜기를 감싸주는 산줄기에 고분이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다.
이들 산줄기의 정상부와 남쪽 기슭기에 고분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는데 남쪽기슭기인 개동산골에 고분의 밀집도가 비교적 높다. 오래전 도굴과 민묘 구역을 조성하는 과정에 유구가 심하게 훼손내지 유실된 것으로 추정되며 유물은 기벽이 비교적 두꺼운 회청색 경질토기편이 산재되어 있다.
백련리 고분군 C
강진면 백련리 산 20번지일대로 백련리와 청웅면 두복리 경계인 백련산 남동쪽 기슭 말단부에 웃강진 마을이 있다. 이 마을 북쪽에 위치한 백련제 북쪽에 광범위하게 펼쳐진 완만한 구릉지에 백련리 고분군 C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백련산 남동쪽 기슭의 하단부로 일부 민묘구역을 제외하면 대부분 임야지대를 이루고 있으며 백련리 고분군 B와는 웃 강진 골이 경계를 이룬다. 이 일대에 고분이 분포된 것은 지금부터30여년 전에 고름장을 파 헤치는 도굴이 극성을 부렸는데 당시에 많은 유물이 고름장 에서 나왔다고 한다.
백련리 고분군 D
대강진 마을에서 남서쪽으로 200m 가량 떨어진 성적골에 백련리 고분군 D가 있다. 이곳은 백련산 남쪽 기슭 하단부인 백련리 산 34번지 일대로 성적골 골짜기를 중심으로 양쪽이 비교적 완만한 지형을 이룬다. 성적골의 남동쪽과 남서쪽 기슭에는 고분이 폭넓게 분포되어 있는데 고분은 남서쪽 기슭에 집중적으로 밀집되어 있다. 이 일대가 대부분 밭으로 개간되어 유구의 흔적을 확인하지 못했지만 고분의 벽석으로 추정되는 석재가 밭둑에 얼마간 쌓여있었다. 성적골을 막아 조성된 부흥제의 서쪽 도치장골과 용골에도 도굴로 모습을 드러낸 고분이 믾았지만 현재 잡목과 잡초가 무성하여 유구의 흔적을 확인하지 못하였다.
필봉리 고분군
필봉리 상필마을 상필제가 있는곳 필봉리 763번지 일대 상필제의 동쪽에 자리하고 있다. 상필마을의 북동쪽에 독립된 구릉지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의 말단부에 해당된다. 유적은 마을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20~30년전에 도굴꾼들이 많이 다녀간 지역이라고 한다. 당시 질그릇 등을 많이 캐갔다는 증언이 있었다. 현재는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졌고 낙옆이 쌓여 유구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러나 평탄한 정상부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고분이 충분히 존재할 것으로 추정된다.
회진리 고분군A
회진리 오두목 마을 동쪽에 남북으로 완만하게 뻗어내린 구릉지의 정상부와 남쪽 경사면에 해당된다. 구릉지의 정상부는 해발 220m 내외의 비교적 평탄한 지역을 이루고 있으며 밭으로 개간된 서쪽지역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임야지대로 형성되어 있다. 구릉지의 남쪽 경사면은 경사가 완만하며 중단부에는 민묘 구역이 조성되어 있다.
오두목 마을 주민들에 의하면 이곳은 본래 고려장터라고 전해지고 있으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도굴꾼들이 찾아와 고려장을 파갔다고 한다. 현장 조사에서는 고분과 관련된 직접적인 유구는 확인할 수 없으나 밭으로 개간된 구릉의 정상부에서 회청색 경질 토기편 등이 일부 수습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고분이 자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회진리 고분군B
장동마을의 북서쪽에 있는 나지막한 구릉지에 자리하고 있다. 오두목 마을에서 남서쪽으로 장동마을 까지 이어진 소로를 중심으로 동서쪽에 해당된다. 이곳은 본래 임야지대를 이루고 있었으나 현재에는 대부분 논이나 밭으로 개간되어 경작지를 이루고 있다. 이곳에 고분이 있었다는 사실은 장동마을 주민들의 증언으로 알 수 있었다.
이곳에 개간되기 전까지만 해도 돌로 쌓은 고름장이 있었으나 현재는 그 위치를 찾을 수 없다. 현지 조사에서도 고분과 관련된 유구가 확인되지 않았는데 이는 개간 과정에서 훼손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본래의 지형이 잘 남아있는 일부 임야지대와 삭평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 구릉 상단부의 경우에는 고분이 자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부흥리 고분군
백련산 정상부에서 남서쪽으로 갈담 천까지 뻗어 내린 산자락의 말단부에 이목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마당매기 골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조성되어 있는데 남쪽에는 백이산에서 발원해 청웅분지를 적셔주고 줄곧 남서쪽으로 흘러온 갈담천이 30번 국도와 평행되게 흐른다. 갈담천 북쪽에 이목마을 동쪽을 감싸주는 산줄기의 정상부와 남쪽 기슭에 고분이 분포되어 있다. 이 산줄기의 소지 골이라 부르는 민묘 구역에 도굴로 개석과 벽석이 노출된 수혈식 석곽묘와 여기서 북동쪽으로 200m가량 떨어진 곳에도 도굴의 벽석의 모습을 드러낸 다른 고분이 있다.
고인돌
필봉리 고인돌군
갈담리에서 운암면으로 이어지는 27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1.0km가량 가다보면 도로의 서쪽에 있는 논에 고인돌 4기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었다. 고인돌의 동쪽에는 필봉농악 전수관이 위치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섬진강의 상류인 갈담천으로 흘러들어가는 지류가 남쪽으로 흐르고 있다. 그곳에 있었단 고인돌 4기는 모두가 남방식으로 상석의 길이가 2~3m 내외로 비교적 큰 편에 속하며 폭은 50~90cm 내외이다.
상석의 장축방향은 모두 섬진강 지류의 방향과 일치하고 있으며 상면에는 지름 5cm내외의 성혈이 확인되었는데 본래 많은 수의 고인돌이 자리하고 있었으나 경지정리과정에서 없어지고 현재는 하천개수작업으로 인하여 모두 없어졌다. 현재 상필 마을 입구 당산나무 아래에 고인돌 1기의 윗돌이 옮겨져 있다.
부흥리 고인돌
부흥리 고인돌은 부흥마을 안쪽 도로변 임씨들의 재실과 부흥교회의 중간 밭에 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임만주씨 밭으로 과거에는 10여기가 있었는데 차츰차츰 경작으로 인하여 없어지고 현재는 4기만이 남아있어 흔적만 보이고 있다. 이 고인돌들은 주인으로 하여금 밭 경작을 하면서 한곳에 모아놓은 형태로 되어 있다.
선 돌
백련리 선돌A
백련산에서 남동쪽 기슭 말단부에 백련리 신기 마을이 있다. 이 마을 남쪽에 백련산에서 갈담천까지 길게 뻗어 내린 산줄기가 마을을 감싸고 있는데 이 산줄기 남동쪽 기슭 말단부에 고인돌이 자리하고 있다. 강진면 소재지에서 30번 국도를 따라 청웅면 소재지 쪽으로 가면 백련교가 나오고 여기서 다시 신촌마을 쪽으로 100m정도 떨어진 제방에 자리한다. 선돌은 판석형 할석으로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그 폭이 좁아져 정상부가 뾰족하게 마감되었으며 선돌의 크기는 높이 160cm 너비 60cm 폭이 30cm 내외이다.
백련리 선돌B
백련산 남쪽 기슭 말단부에 백련리 대강진 마을이 있다. 이 마을 북동쪽 백련제에서 남쪽으로 150m 가량 떨어진 상다랑들 논둑에 백련리 선돌B가 있다. 선돌은 석주형 할석으로 하단부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그 폭이 약간씩 좁아진다. 선돌 크기는 높이 240cm 너비 40cm 폭이 30cm이며 이 선돌의 북동쪽 논둑에도 다른 선돌이 있었으나 몇 년전 경지정리 사업으로 유실되었다고 한다.
백련리 선돌C
백련리 선돌 A에서 남서쪽으로 100m가량 떨어진 도로변 논둑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백련리 대강진 마을 입구로 평지뜸골 북동쪽 기슭 하단부에 해당된다. 석주형 선돌은 그 단면이 장타원형으로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면 그 폭이 좁아져 상단부가 뾰족하게 마감되어 있다. 선돌의 크기는 높이 160cm 너비 60cm 폭이 40cm이며 이 마을의 안녕과 마을을 보호하기 위하여 선돌을 세웠다고 한다.
필봉리 선돌
필봉리 상필마을 회관의 남쪽으로 100m가량 떨어진 마을 입구에 선돌이 자리하고 있다. 선돌은 원래 수구막이용으로 세웠다고 하는데 언제 세워졌는지는 알 수가 없다. 선돌의 규격은 높이가 120cm 너비가 30cm 폭이 25cm로 되어 있다.
돌 탑
강진 상필 마을 돌탑
필봉리는 상필과 하필마을로 이루어졌는데 상필 마을 입구에 돌탑 2기가 있다. 본래는 성황당 형태로 있었으나 없어지고 새마을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때 다시 세웠다고 한다. 돌탑은 원추형 형태로 조성되어 있으며 오른편 돌탑은 큰 바위 위에 세워져 있다. 크기는 높이 2.3m정도 된다. 상필마을 돌탑은 마을 할아버지 당산 선돌과 함께 마을 당산으로 모셔진다. 돌탑에 특별한 의식은 없으나 마을 제사를 지내기 전에 왼쪽으로 꼬아진 집 새끼로 줄을 돌려 매는 풍습이 있다.
매년 음력 정월 보름날 마을 굿을 치며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도 하는데 이 돌탑은 마을 수구막이 역할을 한다고 한다. 필봉리는 서쪽으로 마을 산이 마치 붓 모양으로 하고 있어 필봉산이라고 한다. 풍수적으로 붓처럼 생긴 형상은 오성(五星)가운데 목성(木星)에 해당된다. 문필봉이 보이면 후손 가운데 학자나 선생이 많이 배출된다고 한다. 따라서 필봉마을은 호남좌도를 대표하는 필봉농악이 유명하다.
유물산포지
갈담리 유물산포지
갈담리 산 24번지 일대 임실 치즈과학고등학교 서쪽 구릉지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남북방향으로 뻗은 산줄기의 하단부로 일부 민묘 구역을 제외한 대부분 밭으로 되어 있다. 이 구릉지를 중심으로 동쪽에는 임실치즈 과학고등학교와 북쪽을 제외한 부분은 갈담마을로 조성되어 있다.
갈담 마을에서 구릉지 정상부로 올라가는 시멘트로 포장된 농로를 중심으로 양쪽에 자리한 밭에서 기벽이 비교적 두꺼운 회청색 경질토기편과 청자편 분청사기편, 백자편, 와편이 혼재된 상태로 수습되어 있다. 여기서 수습된 유물과 관련된 유구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는데 밭둑의 높이가 비교적 높지 않아 유구의 보존 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것 같았다.
부흥리 유물산포지
부흥리 236-3번지 일대 구릉지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남북방향으로 뻗은 산줄기의 하단부로 일부 민묘 구역을 제외한 대부분 밭으로 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유문암계 격지와 몸돌, 서영계 격지, 긁개 등이 수습되었다. 여기서 수습된 유물과 관련된 유구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는데 밭둑의 높이가 비교적 높지 않아 유구의 보존 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것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