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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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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1) 홍승한(洪承漢) 목사, 선교사 - 1917년 순행 / 호는 온암(溫庵)이며, 평북 의주에서 1881년에 출생하여 일찍이 교인이 되었고, 신학문의 전당인 숭실대학에서 공부한 뒤 교원생활을 하였다. 1907년부터 평북 철산군에서 조사로 활동하던 중 1908년 방효원 목사의 여동생 방승희와 결혼하였으며, 1909년 철산군 백량면 영동(嶺洞)교회의 초대장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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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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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은혜의 백년을 넘어 희망의 백년으로 / 신비의 섬 울릉도에 복음이 들어 온지 100년이 되는 해를 맞이하여 이렇게 울릉군선교100주년 기념대회를 열게 해 주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더불어 이 대회를 열기까지 수고하신 목회자들과 모든 성도님들의 노고를 진심으로 치하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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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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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1. 남양제일교회(南陽弟一敎會) 역사
1930. 4. 1. 울릉군 서면 남서동 107번지에서 안상수(安相秀) 영수의 인도로 남서동교회 설립예배를 드리다. 당시 본교회는 경북노회(노회장: 김충한 목사) 동편시찰(당회장: 권영해 목사)에 소속되었으며 직원으로는 안상수 영수와 김순기(金順基) 영수가 각각 시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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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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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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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경주중앙교회당에서 열린 제 17회 경동노회에서 시찰조직 허락을 받고 울릉시찰회가 조직되었다. 그러나 1회부터 73회까지는 문부가 손실되어 경동노회록과 포항노회록에 기록된 부분만 정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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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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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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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1882년 울릉도 개척령이 내려진 이후 육지에 살던 성도들이 생활고의 어려움과 문중친척의 박해로 인하여 울릉도에 입도(入島)하게 되자 포항지역에서 맹의와(孟義窩) 선교사를 도와 전도활동을 하던 황경선(黃敬善) 조사께서 입도 하여 육지에서 이주해 온 교인들을 돌아보며 복음전도를 하였으나 애석하게도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아니하고 그 존함만 문부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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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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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덕일(朴德逸) 목사 / 1870년 2월 27일 대구 출신으로 부청관리(아전=향리)였지만 33세가 되던 1902년 5월 사업의 실패로 인해 절망 하던 중 미국북장로교 선교사들에 의해 예수를 믿게 되었다. 1902년 세례를 받고 그해 12월 조사가 되어 여러교회를 시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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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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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카톨릭이 들어온 연대를 1784년으로 정한다. 그 이유는 한국 최초의 영세자 이승훈(李承薰)이 북경에서 영세를 받은 해가 1784년이기 때문이다. 카톨릭은 1884년에 알렌(Horace N. Allen)이 입국함으로 시작되는 개신교보다 1세기나 앞서서 한국에 들어온 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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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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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동해의 아름다운 울릉도에 100여 년 전 복음의 씨앗이 떨어져 신앙의 복된 섬, 신비롭고 풍요로운 축복의 섬에서 신앙을 영위할 수 있음에 먼저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감사드립니다. 울릉도에 신앙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주님의 사명을 위해 험한 바다를 넘나들고 험산 준령을 묵묵히 걸었던 그 발자취마다 얼룩진 피와 땀이 밑거름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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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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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9∼2009 ‘울릉도 복음 100년史’ - 울릉도에 교회가 처음 들어섰던 때부터 현재까지 선교 역사를 정리하여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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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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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1882년 울릉도 개척령이 내려진 이후 육지에 살던 성도들이 생활고의 어려움과 문중친척의 박해로 인하여 울릉도에 입도(入島)하게 되자 포항지역에서 맹의와(孟義窩) 선교사를 도와 전도활동을 하던 황경선(黃敬善) 조사께서 입도 하여 육지에서 이주해 온 교인들을 돌아보며 복음전도를 하였으나 애석하게도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아니하고 그 존함만 문부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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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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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동해의 아름다운 울릉도에 100여 년 전 복음의 씨앗이 떨어져 신앙의 복된 섬, 신비롭고 풍요로운 축복의 섬에서 신앙을 영위할 수 있음에 먼저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감사드립니다. 울릉도에 신앙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주님의 사명을 위해 험한 바다를 넘나들고 험산 준령을 묵묵히 걸었던 그 발자취마다 얼룩진 피와 땀이 밑거름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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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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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참고서적 목록 / 당회록 및 기타 회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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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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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올해는 울릉도에 주님의 복음이 전해진지 90년 되는 해이다. 1909년에 울릉도에 첫 교회가 설립된 것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기념해서 울릉도 시찰회에서는 `울릉도 기독교 90년사'를 발간했다. 그 책을 받아본 나의 감회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의 첫 목회지로서 젊음을 바친 기록과 사진이 고스란히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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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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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1. 울릉시찰 교회현황(통합측) / 2. 울릉시찰 장로 임직자 / 3. 울릉시찰회 역대 임원 명단 / 4. 울릉시찰 각교회 역대 시무교역자 / 5. 울릉시찰 여전도회연합회 역대 임원 / 6. 울릉도 출신 목회자 모임 「성목회」회원 명단(예장통합측) / 7. 울릉 통합신우회 역대임원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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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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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은혜의 백년을 넘어 희망의 백년으로 / 신비의 섬 울릉도에 복음이 들어 온지 100년이 되는 해를 맞이하여 이렇게 울릉군선교100주년 기념대회를 열게 해 주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더불어 이 대회를 열기까지 수고하신 목회자들과 모든 성도님들의 노고를 진심으로 치하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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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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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울릉성서학원은 1956년 12월 27일 개원되었다. 1953년 8월 울릉시찰장 이장영 목사의 울릉성서학원 인증 청원으로 1955년 9월 제24회 경동노회에서 허락되었고 수업은 3학기를 수료하여야 하고 졸업은 노회 고시부의 시험에 합격할 때 졸업증서를 부여하기로 한다는 시찰회의 결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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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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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경주중앙교회당에서 열린 제 17회 경동노회에서 시찰조직 허락을 받고 울릉시찰회가 조직되었다. 그러나 1회부터 73회까지는 문부가 손실되어 경동노회록과 포항노회록에 기록된 부분만 정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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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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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울릉도교회 교적부는 천부제일교회(소장자 이춘태 장로)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1938년 울릉도 도중(島中)교회 연합당회가 구성된 이후 연합당회 차원에서 1941년도(소화16년)에 각 교회별로 작성되어 1949년까지 약 9년간에 걸쳐 기록된 것으로써 당시 울릉도 7개처교회(장흥교회, 저동교회, 도동교회, 현포교회, 태하교회, 남서교회, 천부교회) 교인들에 대한 신상명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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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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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동해창파에 애립한 울릉도에 주의 복음이 전파되어 부록과 같이 교회설립한지 장구하되 당회가 조직되지 못함을 항상 유감으로 생각하다가 주후 1937년 6월 8일 경동노회 제2회시에 각교회 대표 이재원 이종운 김순기 안상수 임부춘 허경 허만 박기호 제씨와 전도사 안화종씨가 영일시찰회에 당회 조직하기를 청원한바 노회의 허락을 받고 순행목사 박영조씨가 주후 1937년 10월 9일에 도동교회당에 공동의회를 개최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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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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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1. 남양제일교회(南陽弟一敎會) 역사
1930. 4. 1. 울릉군 서면 남서동 107번지에서 안상수(安相秀) 영수의 인도로 남서동교회 설립예배를 드리다. 당시 본교회는 경북노회(노회장: 김충한 목사) 동편시찰(당회장: 권영해 목사)에 소속되었으며 직원으로는 안상수 영수와 김순기(金順基) 영수가 각각 시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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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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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덕일(朴德逸) 목사 / 1870년 2월 27일 대구 출신으로 부청관리(아전=향리)였지만 33세가 되던 1902년 5월 사업의 실패로 인해 절망 하던 중 미국북장로교 선교사들에 의해 예수를 믿게 되었다. 1902년 세례를 받고 그해 12월 조사가 되어 여러교회를 시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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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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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1) 홍승한(洪承漢) 목사, 선교사 - 1917년 순행 / 호는 온암(溫庵)이며, 평북 의주에서 1881년에 출생하여 일찍이 교인이 되었고, 신학문의 전당인 숭실대학에서 공부한 뒤 교원생활을 하였다. 1907년부터 평북 철산군에서 조사로 활동하던 중 1908년 방효원 목사의 여동생 방승희와 결혼하였으며, 1909년 철산군 백량면 영동(嶺洞)교회의 초대장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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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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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경상북도 동해 가운데 있는 울릉군은 동경 130°54′북위 37°29′에 위치해 있으며 총면적은 72.83㎢이다. 울릉읍과 서면, 북면을 행정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인구는 현재 1만명 정도이다. 울릉도와 뭍을 잇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곳은 137㎞ 떨어진 강원도 삼척군의 임원항이나 조선시대부터 뭍과의 거래는 주로 울진군 죽변항 이었으며 그 거리는 14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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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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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조선 예수교 장로회사기에 보면 1901년에 “연일군 괴동교회가 성립하다. 선시에 본리인 박군현이 일본에서 신주하고 귀가하야 자기가 협실에서 예배하며 열심 전도하야 안종필 박문찬 외 남녀와 아동 수십인이 상계 신종하야 례배당을 신축하니 교회가 수성하니라. 기후 조사난 황경선 금석범 금순여 김병호 송문수 조기철 이춘중 제인이러라.”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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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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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강원도의 남쪽이요 서쪽으로는 충청도 전라도와 접경했으며 북쪽에 태백산이 있어 지리적으로는 가장 좋다는 바로 영남지방이다. 태백산 북남 아래에 예안(禮安)이 있고 동으로 꺾어 서로 빠지면 안동(安東)이 있다. 상주(尙州) 동쪽에는 낙동강(洛東江)이 흘러 김해(金海)를 거쳐 바다로 빠지는데 이 강은 경상도의 중앙을 가로지른다. 강의 동쪽을 좌도라 부르고 서쪽을 우도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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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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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언더우드와 아펜셀라 선교사의 입국과 함께 미 북장로교와 감리교가 이 땅에 들어온 이후 1897년까지 장로교회의 호주 카나다 및 성공회 침례교 등 7개의 새 선교단체가 들어오게 되었다. 이에 따라 각교파 선교사간에 협력의 필요성을 느껴 1889년 처음 조직된 것이 미북장로교와 호주장로교 사이의 연합 선교공의회(The United Concil of Presbyterian Missions)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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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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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카톨릭이 들어온 연대를 1784년으로 정한다. 그 이유는 한국 최초의 영세자 이승훈(李承薰)이 북경에서 영세를 받은 해가 1784년이기 때문이다. 카톨릭은 1884년에 알렌(Horace N. Allen)이 입국함으로 시작되는 개신교보다 1세기나 앞서서 한국에 들어온 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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