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렁이 선비
옛날 한 할머니가 산 속으로 나물을 캐러 갔다가 풀숲에 알이 있어 주워 삶아 먹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불러왔고 그리고 얼마 후 아이를 낳게 됐는데, 아이가 아니라 구렁이었다.
이 구렁이는 나이가 들어 성년이 되자 할머니에게 건너 마을 김서방 집에 장가를 보내 달라고 떼를 썼다. 할머니는 어쩔 수 없이 김서방 집을 찾아갔다. 김 서방 집은 딸이 셋이었다.
할머니는
“아이고, 내가 아이라곤 구렁이 하나를 낳았는데 그 댁에 장가를 안 보내면 다시 내 뱃속으로 들어간다고 떼를 쓰는데 이 일을 어쩌면 좋겠습니까”
하고 말했다.
그러자 김서방은 세 딸을 불러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의견을 물었다.
하지만 사람도 아니고 구렁이에게 시집가는 게 싫었던 딸들은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셋째 딸이
“아버님 뜻이 그러시다면 어찌 거스를 수 있겠습니까”
하고 구렁이에게 시집을 가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혼인하기로 약속한 날이 찾아왔다. 구렁이와 김서방 집 셋째 딸은 첫날밤을 지내기 위해 신혼 방에 앉았다.
그러자 구렁이는 허물을 벗어 셋째 딸에게 건네며
“부인 내가 성공 할 때까지 이 허물을 버리지 말고 꼭 간직하고 있으시오”
하며 신신당부했다.
날이 밝자 구렁이는 간단히 인사를 하고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떠났다. 그런데 두 언니는 먼저 시집을 간 동생을 시샘해 구렁이가 셋째 딸에게 준 허물을 불에 태워버렸다.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간 구렁이는 급제해 벼슬길에 올랐지만 벗어 놓은 허물이 불에 타 김 서방 집 셋째 딸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구렁이는 한양에 있는 한 진사 집에 머물게 되고 구렁이는 결국 진사 집의 딸과 혼례를 올려 데릴사위가 됐다.
과거를 보러간 구렁이의 소식만 기다리던 김 서방 집 셋째 딸은 오랫동안 신랑이 돌아오지 않자 직접 신랑을 찾기 위해 한양으로 길을 떠났다.
김서방 집 셋째 딸은 한양에서 구렁이 서방을 찾기 위해 바랑(행낭)을 하나만 메고 곡식이나 음식을 얻어먹으며 생활했다.
어느 날 셋째 딸은 한 마을을 지나다가 배가 고파 구렁이 신랑이 새로 장가든 진사집인지도 모르고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문을 열고 나온 집주인은 김 서방 집 셋째 딸의 바랑에 곡식 한 말을 시주했는데 그 바랑은 밑이 찢어져 땅에 조가 다 쏟아지고 말았다.
마침 날이 저물고 어두워 땅에 떨어진 곡식을 줍기 힘들고 오랜 여행에 지쳐 있던 김 서방 셋째 딸은 집주인에게 하룻밤만 묵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사정이 딱해 보인 집주인은 셋째 딸을 대청방으로 안내했다. 셋째 딸은 대청방에 누워 있으니 밤하늘에 달이 훤하게 떠 있는 모습에 구렁이 신랑이 생각났다. 그리고 셋째 딸은 구렁이 신랑이 그리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달도 밝다, 달도 밝다 거제 땅에 금봉오리 저 달보다 좋을 텐데 언제 다시 만날까, 금덩어리 보려거든 이 방 저 방 건너서 대청방에 들어오소
그 시간 다른 방에 있던 구렁이 서방은 어디선가 흘러나온 노래 소리를 따라 대청방에 이르렀고, 그 자리에서 김 서방 집 막내딸을 만나게 됐다.
구렁이와 김 서방 셋째 딸은 그동안의 이야기를 밤새도록 나누고 서로의 오해를 풀었다. 각시가 둘이 된 구렁이는 두 부인 모두 함께 살 꾀를 생각하고는 다음날 진사집 장인과 장모에게 물었다.
“아버님, 어머님 간장은 오래된 것이 좋습니까? 아니면 새로 담은 간장이 좋습니까?”
하자, 장인은
“새 간장은 산뜻한 맛이고, 묵은 간장이 진미가 있다”
고 말했고, 장모는
“새 간장보단 묵은 간장이 더 좋다”
고 대답했다.
구렁이는
“그런 깊은 맛이 있고 좋은 전처(김 서방 막내딸)를 버릴 수 없으니 함께 살겠습니다”
하고 진사집에서 함께 잘 살았다.
- 거제전래설화집 (거제문화원 2019년 12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