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산과 세오암
옥포 2동 덕포의 뒷산을 강망산이라 부른다. 이 산 정상 아래엔 100년 전까지만 해도 '세오암'이라는 조금만 암자가 하나 있었다고 한다.
고려 원종 때 왜구들의 침입이 잦았다. 왜구의 본거지인 일본과 거제도는 거리가 가까워 왜구들이 제집 드나들 듯 했다. 왜구들은 거제 고을 곳곳에 침입해 온갖 행패를 부렸고, 마음에 드는 물건은 모두 약탈해 갔다.
하루는 왜구들이 강망산 아래 마을까지 침범했다. 마을엔 장 씨 부인이 살고 있었는데 남편이 나무를 하러 간 사이에 왜구들이 장 씨 부인을 겁탈하고 일본으로 잡아가려고 했다.
때마침 산에서 나무를 하던 남편이 이 광경을 목격하고 왜구들과 혈전을 벌였다. 장 씨의 남편은 죽기를 각오하고 달려들었지만, 왜구들에게 이기지 못하고 부인 대신 일본으로 잡혀갔다.
여인의 몸으로 정조를 잃은 데다 남편까지 빼앗기는 슬픔에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장씨 부인은 그 자리에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됐다.
스님이 된 장씨 부인은 일본에 잡혀간 남편의 무사기원을 염원하며 대마도가 보이는 강망산에서 매일 더럽혀진 몸을 씻고 밤낮으로 기도를 올렸다.
하지만 왜구에게 잡혀간 남편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장씨 부인도 한많은 눈물 속에 여생을 마감해야 했다.
그 후부터 사람들은 장 씨 부인이 머물던 산자락을 일본에 잡혀간 남편을 그리워하며 세월을 보냈다는 뜻의 '강망산(江望山)'이라 불렀다고 한다.
강망산 절터가 있던 곳을 '장사골'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장 씨 부인이 살았던 곳이라는 '장씨골'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 거제전래설화집 (거제문화원 2019년 12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