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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거제전래설화집
◈ 24. 방시순석(放矢循石)과 방시만노석(放矢萬弩石)
장목면에는 학을 닮은 이수도라는 섬이 있다. 이 섬에는 유명한 이야기 하나가 전하는데, 방시순석(放矢循石)비와 방시만노석(放矢萬弩石)비, 그리고 방시만노순석(放矢萬弩循石)에 관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조선조 말엽으로 거슬러간다. 이수도는 원래부터 황금어장인데다, 식수도 풍부해 시방마을보다 살기 좋은 곳이었다.
방시순석(放矢循石)과 방시만노석(放矢萬弩石)
 
 
 
 
장목면에는 학을 닮은 이수도라는 섬이 있다. 이 섬에는 유명한 이야기 하나가 전하는데, 방시순석(放矢循石)비와 방시만노석(放矢萬弩石)비, 그리고 방시만노순석(放矢萬弩循石)에 관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조선조 말엽으로 거슬러간다. 이수도는 원래부터 황금어장인데다, 식수도 풍부해 시방마을보다 살기 좋은 곳이었다.
 
특히 일제 강점기시대 이수도는 일본인의 어장이 생기면서 더욱 시방마을보다 번성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언제부턴가 이수도가 건너 마을 시방보다 나은 게 없는 형편이 되자 이수도 사람들은 시방마을 보다 잘살기 위한 대책마련에 나섰다.
 
때마침 풍수지리에 통달한 도사가 이수도 사람들에게 이수도는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으로 명지지만 건넛마을 시방이 활 같이 생겨 이곳을 겨누고 있기 때문에 시방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막을 수 있는 방패 비석을 세우면 잘 살수 있다고 알려줬다.
 
이수도 사람들은 도사가 시키는 대로 뒷산에 비석을 세우고 거기에 방시순석(防矢循石)이란 글을 새겼다. 하지만 비석을 세운 이후 이수도가 번성한 반면, 시방 마을은 점점 쇠퇴하기 시작했다.
 
시방마을 사람들은 마을이 쇠퇴하는 이유가 이수도의 방시순석 (防矢循石)비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방시순석비를 부수려 했다. 하지만 이수도 사람들의 강력한 저지로 비석을 부수지 못했고 그 전까지 이수도에서 길어 먹던 물까지 길러가지 못하게 막자 두 마을 사람들은 원수지간이 됐다.
 
시방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 마을이 쇠퇴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고심 끝에 만개의 화살(쇠뇌)을 쓴다는 뜻의 방시만노석(防矢萬弩石) 비를 세우기에 이른다.
 
방시만노석비가 세워진 이후로 시방마을이 다시 번성하자 이수도 마을 사람들은 방시순석비 위에 만개의 화살을 막을 수 있는 방패라는 뜻의 방시만노순석(防矢萬弩循石)비를 덧세워 오랜 분쟁이 일단락 됐다는 이야기다. 방시순석비 위에 덧세운 방시만노순석비는 1950년대 말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이수도의 방시순석(放矢循石)비와 방시만노순석(防矢萬弩循石)비는 이수도 왼쪽 길을 따라가면 나오는 '이수섬펜션' 인근 언덕에 위치해 있고, 방시만노석(放矢萬弩石)비는 이 비석이 세워진 섬 맞은편 시방마을 뒤편 옥포대첩로와 거가대로 사이 대나무 군락지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거제문화원이 편찬한 '거제문화 4권(이수도·황덕도)'에 따르면 이수도에 위치한 방시순석(放矢循石)는 1932년(임신년)에 세워진 것으로, 시방마을 의 방시만노석(放矢萬弩石)비는 1953년(계사년) 세워진 것으로 조사됐다.
 
 
- 거제전래설화집 (거제문화원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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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