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지암 전설
거제도 가장 동쪽 끝자락인 능포항 해안에는 양지암이라는 바위가 우뚝 솟아 있다. 절벽 끝에는 등대가 있어 사람들 사이에서 바다전망이 좋은 곳으로 유명한 이곳은 일운면의 서이말등대와 함께 거제도에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등대다.
양지암은 예로부터 사람들이 상사바위라 불렀다. 양지암이 상사바위로 불려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400여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지금부터 400여년 전 조선시대 이상서라는 한양 살던 양반이 죄를 지어 관직을 빼앗기고 거제도로 유배됐다.
이상서는 유배 올 때 외동딸 국화와 몸종 삼돌이를 데리고 능포마을 근처에서 초막을 짓고 살았다.
이상서의 딸 국화는 일곱 살에 천자문을 열다섯 살에 사서를 다 배울 정도로 총명하고 얼굴은 보름달처럼 희고 예뻐 거제 고을에서도 소문난 규수였다.
국화는 아직 장가가지 않은 거제 고울 청년이면 누구나 한번은 짝사랑 했지만 실제로 국화에게 사랑을 고백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국화의 가문이 지금은 몰락하긴 했지만 한 때는 한양에서 벼슬 꽤나 하던 양반가였기 때문이다.
이상서의 몸종인 삼돌이도 종의 신분이지만 국화를 짝사랑했다. 하지만 신분 사회가 엄격했던 조선시대에 종이 주인을 사랑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주인과 몸종의 차이는 하늘과 땅 사이로 몸종은 목숨까지도 상전의 손에 달려 있을 정도로 주인의 소유물로 취급 받던 시절이었다.
유배생활은 외롭기 짝이 없었다. 죄인의 몸으로 유배와서 매일 만나는 사람이래야 이상서와 국화 그리고 삼돌이뿐이었다. 이상서는 귀양살이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면서 밤낮으로 서책만 읽으며 세월을 보냈고 국화는 아버지를 뒷바라지하는 데 온 정성을 다했다.
세월이 지나 국화와 삼돌이가 어엿한 성인이 될 무렵 여전히 삼돌이는 국화를 짝사랑하고 있었고, 국화는 아버지가 벼슬에 있을 때 미리 약속한 김판서의 아들과 결혼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삼돌이는 국화와의 사랑을 이루지 못함을 알면 알수록 더욱 국화를 사랑하고 그리워했다.
삼돌이의 머릿속에는 온통 국화 생각뿐이었고 종으로 태어난 자신의 처지가 한스러울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삼돌이는 극단적인 생각을 했다. 어차피 이승에서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이라면 차라리 저승에서라도 가서 이뤄야겠다는 생각으로 음식을 먹지 않은 채 죽을 날만 기다렸다.
삼돌이가 음식을 먹지 않아 피부와 뼈가 달라붙을 정도로 말라가자 삼돌이를 가엾게 여긴 국화가 죽 한 그릇을 끓여 삼돌이의 입에 넣었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국화를 본 삼돌이는 반가워 눈물까지 흘리면서 국화가 끓여준 죽 한 그릇을 비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고 말았다.
사실 삼돌이가 종이긴 해도 거제 고을에서도 제일 잘생긴 청년에다 마음씨도 착했다. 그래서 거제 고을 사람들은 상사병을 앓고 죽은 삼돌이를 불쌍하게 여졌다.
삼돌이가 죽은 후 사흘째 되는 날 밤이 됐다. 잠결에 이상한 기운을 느낀 국화가 잠에서 깨어보니 실뱀 한 마리가 국화의 몸을 칭칭 감고 있었다.
깜짝 놀란 국화의 아버지가 뱀을 떼 놓으려고 안간힘을 써도 어찌된 영문인지 뱀은 국화의 몸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소문은 삽시간에 거제고을로 퍼져나갔다. 고을사람들은 국화의 몸에 붙은 뱀을 구경하기 위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선 소문 하나가 퍼지기 시작했다.
“국화를 사랑한 삼돌이가 한을 안고 죽어서 상사뱀 됐네그려”
고을 사람들도 국화의 몸에서 뱀을 떼어내기 위해 여러 가지 의견을 냈다.
“상사병에는 돼지 똥이 좋대요”
“아이구 삼돌이가 오죽 한이 됐으면 그랬을까. 귀신 달래는 데는 굿이 최고지”
이상서는 국화의 몸에서 뱀을 떼 내기 위해 무당을 불러 굿판을 벌이기도 하고 용한 의원을 불러 온갖 약재를 다 써봤지만 모두 소용이 없었다.
밤이 되면 뱀은 국화의 꿈에 삼돌이로 변해 국화를 데리고 멀리 달아나려고 했다. 국화는 그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꿈속에서 삼돌이는 국화와 함께 솜같이 포근한 무지개다리를 밟고 다녔다. 그러다가 무지개다리가 없어져 땅으로 떨어지는 국화의 팔을 삼돌이가 잡아 끌고, 국화는 발버둥을 치다 잠에서 깨어나기를 매일 반복했다.
국화가 비몽사몽 꿈속을 헤매던 어느 날, 바닷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
국화가 떨어져 죽자 실뱀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무지개 한 줄기만 하늘 높이 뻗었다고 한다.
그 이후부터 거제 고을 사람들은 국화가 떨어져 죽은 바위를 상사바위라 불렀고 처녀 총각들의 사랑이나 혼사가 잘 이뤄지지 않을 때 이 바위에 와서 소원을 빌면 잘 이뤄진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 거제전래설화집 (거제문화원 2019년 12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