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돌섬
일운면 구조라 해수욕장 옆 망치고개 밑에는 작은 섬이 하나 있는데 사람들은 이 섬을 윤돌섬이라 부른다.
구조라리 서쪽, 양지마을 남쪽 500m 해상에 위치한 윤돌섬은 조선시대부터 윤교리도(尹校理島), 윤돌도(尹乭島), 효자섬 등으로 불렸는데 이 섬의 지명은 효자아들의 이야기가 전하기 때문이다.
아주 오랜 옛날 이곳에 과부 노파가 성이 윤 씨인 아들 삼형제를 거느리고 이 섬에 와서 살게 됐다. 사람들은 이 노파를 윤 씨 부인이라 불렀다.
마침, 이때 북병산 밑 양지마을에 김씨 성을 가진 어부 한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어부는 이웃마을에 절세미인인 '해선'이라는 이름의 해녀와 결혼해 바닷가에서 전복, 소라, 미역, 멍게 등을 따다가 시장에 팔아 정답게 살고 있었다.
어느 날이었다. 하루는 해선이가 바다에 나가 물질을 하는데, 난데없는 태풍이 불어 깜짝할 사이에 해선이 탄 배가 떠내려가고 말았다.
아내를 잃은 노인은 저 멀리 사라지고 있는 배만 바라보며,
“해선아! 해선아!”
하고 애타게 불러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날부터 노인은 달 밝은 밤이면 해선을 그리워하며 해선이 마지막으로 물질했던 바닷가에 서 해선을 그리며 달만 멍하니 쳐다봤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이 붙여준 이름이 망월, 또는 김망월, 망월영감 이었다.
아내를 잃고 실의에 빠진 망월은 움막을 짓고 고기를 낚으며 해선이가 떠나 갔던 먼 수평선만 바라보면서 세월을 흘려 보냈다.
이즈음 망월의 움막 맞은편 바다 건너에는 윤 씨 부인이 삼형제를 데리고 섬으로 와 살고 있었다.
멀리서 또는 육지를 오가면서 얼굴을 익히게 된 망월과 윤 씨 부인 두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그리고 고목나무에 꽃이 피듯 어느 새 두 사람의 사랑은 더욱 깊어졌고, 윤 씨 부인은 바닷물이 빠진 간조(썰물) 때면 어김없이 섬을 떠나 망월을 만나러 갔다.
윤씨 부인이 살던 섬은 북병산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려 그 줄기가 하루에 두 번 썰물 때가 되면 물 위로 드러나 배를 타지 않아도 걸어서 맞은편 육지까지 쉽게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겨울이 되자 윤 씨 부인에게 고민이 생기게 됐다. 봄부터 가을까지 간조 때마다 버선을 벗고 육지로 갈수 있었지만, 한 겨울 엄동설한에는 쉽게 바다를 건널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윤씨 부인이 따뜻한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가 망월을 만나러 가는 모습을 애처롭게 생각한 윤 씨 삼형제는 어머니를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어머니가 추운 겨울에도 차가운 바닷물에 버선을 벗지 않고 또 발이 젖지 않도록 징검다리를 만들어 두 사람의 늦은 사랑을 응원했던 것이다.
그 후 사람들은 윤 씨 삼형제가 어머니를 생각하는 효심이 깊다고 해 효자섬 또는 윤교리도라 부르다가 윤 씨 삼형제가 살면서 돌다리를 놓았다고 해서 윤돌섬으로 불렀다고 한다.
- 거제전래설화집 (거제문화원 2019년 12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