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랑이 마을 유래
거제도에는 갯마을이 많아서 마을의 명칭이 무슨 포(浦)니 해서 '포(浦)’자가 들어 있는 마을 이름이 많이 있다.
다른 이름도 이상하리만치 까마기재, 무지개재, 꽃바구미, 함박구미 등 순수한 우리말 이름들이 있다.
원래 거제군은 동부면, 둔덕면, 사등면, 한산면, 일운면, 이운면, 연초면, 하청면으로 되어있었다.
한산면에서 제일 가까운 거제가 거제면 법동리 아지랭이 마을이다. 한산만을 지척에 두고 거제사람들은 이웃같이 왕래하며 살아왔다. 그 당시 결혼식은 서로 가까운 마을사람들끼리 중매를 해서 혼사를 할 때이다.
한산도와 거제도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로 뻔히 마주 바라보고 있어서 이웃같이 왕래하면서 혼사를 맺어 모두가 사돈지간이라 할 만치 많은 사람들이 인연을 맺고 살았다.
한산도 처녀 인물이 좋아, 거제총각 바람났내, 연해지 한바다에, 임을 찾아 떠난 배야, 임을 싣고 오실 적에 우리 님도 싣고 오소
이와 같은 노래로 보아도 한산도 처녀가 인물이 좋았던 것 같다. 그래서 거제도 총각들은 한산도 처녀들을 색시로 맞이하기 위해 안달이 났다.
한산도 처녀들은 얼굴도 곱고 마음씨도 착하고, 일도 잘했다. 지난 해 가을에 한산도에서 시집왔던 아가씨가 이른 봄에 첫 친정 나들이를 가게 되었다.
친정 부모님과 친척이며 이웃 사람들에게 대접할 음식을 바구니에 담아 이고 아지랭이에 와서 나룻배를 타야 한산도 친정에 갈 수 있었는데, 해는 서산에 기울고 한산도에서는 나룻배가 을 생각을 하지 않아서 할 수 없이 바위틈 밑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마침 이때 수도승 한 분이 한산도를 건너기 위해 나룻터까지 와서 배를 찾다가 배가 없으니까 바위틈을 찾아서 하룻밤 잘 곳을 찾고 있었다.
그 당시는 불교의 기강이 무너져 있을 때였다. 외진 나룻터에서 예쁘고 젊은 여인과 스님이 만난다는 것은 위험천만의 일이다.
그래서 여인은 뛰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켜 쥐 죽은 듯이 바위틈에 꼭 숨어서 밤이 얼른 새고 나룻배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룻밤 노숙할 만한 곳을 찾아 헤매던 스님은 여인이 숨어있는 바위위에 있는 작은 동굴을 찾아 들었다.
여인과 스님은 넓적한 바위를 사이에 두고 아래 동굴에는 여인이 있고, 그 위에 동굴에는 스님이 있는 가운데 밤은 차츰 깊어만 갔다.
바깥의 봄바람은 차가웠다. 여인은 쥐덫에 걸린 생쥐 모양으로 벌벌 떨고 있었다. 어느 듯 초생달이 살짝 웃으며 서산으로 기우는 것을 보니 새벽이 가까운듯 했다.
초봄이지만 이 지역은 남쪽으로 따듯한 지방이라 제일 먼저 봄꽃 소식이 전해져 온산이 진달래로 만발했다.
스님은 바람결에 풍기는 꽃향기와 여인의 화장냄새에 이성을 그리워하며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스님은 온갖 망상과 번뇌에 젖어들어 눈을 감고 죄의 업보에서 벗어나려고 열심히 기도를 했다.
어느 듯 날은 밝아 나룻배가 도착하였다. 또한, 여인과 스님은 나룻배에 승선했다. 스님을 본 여인은 한숨을 내쉬며 지난밤에 아무 탈 없이 보낸 것을 큰 다행으로 생각하였다.
예쁜 여인을 본 스님도 역시 순간의 욕망을 아찔아찔 하게 이겨낸 것을 천만 다행으로 생각하며 아미타불을 연호하며 합장을 했다.
그 후 부터 한 순간을 이곳에서 아찔아찔하게 넘겼다고 해서 '아찔이고개’라고 하다가 세월이 흘러 '아지랭이마을'이라고 한다.
또한, 전해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곳이 우리나라 최남단에 위치한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어 제일 먼저 봄이 오는 곳으로 제일 먼저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는 곳이다 하여 아지랭이 마을이라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 거제전래설화집 (거제문화원 2019년 12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