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제국 성립의 무대 원구단 1897년 2월 아관(러시아 공사관)에서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한 후 고종과 정부는 나라 밖으로 자주독립국임을 강조하고 갑오개혁 이후 실시된 근대적 개혁을 계속 추진하려고 대한제국의 성립을 선포하였다. 고종은 그 해 8월 연호를 광무로 정하고 황제 즉위를 준비하여 10월 12일 원구단(중구 소공동 87-14)에서 황제 즉위식을 가졌다. 나라 이름도 조선에서 대한제국이라 고치고 임금도 '왕’대신 '황제’,‘전하’대신 '폐하’라고 부르게 하였다. 대외적으로 완전 독립국임을 선언한 대한제국은 행정·법률 등 각종 체계를 고쳐 나가는 이른바 ‘광무개혁’을 추진하였지만 제국주의 열강 사이의 세력 균형정책이 강하였기 때문에 매우 불안한 출발이었다.
◈아관파천 고종황제가 러시아 공사관(중구 정동 15-3)으로 거처를 옮겨 1년을 지낸 사건. 일본은 청일전쟁이 끝난 후 명성황후가 친러적인 태도를 취하자 1895년 명성황후를 시해(을미사변)하고 친일적인 김홍집 내각을 세웠다.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황제는 일본의 만행을 피해 이범진, 이완용 등 친러파와 함께 1896년에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겨가 1년을 머무르면서 그 곳에서 모든 정치를 행하였다. 그 동안 많은 이권이 러시아를 비롯한 열강에 넘어갔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1545∼1598) 의 탄생지 임란을 승리로 이끈 명장으로 한성부 건천동(현 중구 인현동1가)에서 탄생하였다. 장군은 사천해전, 당항포해전, 한산도해전 등에서 적의 수군을 격파하여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다. 이어 정유재란 때 명랑해전에서 적의 수군을 격파하는 도중 유탄에 맞아 순국하였다. 글에도 능하여 『난중일기』와 시조 등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 장군의 출생지를 알리는 표석이 명보극장 앞에 있다.
◈한음 이덕형(1561∼1613) 임란 당시 한양의 치안을 수습한 한성부 판윤으로 약전중동(중구 봉래동)에서 태어났다. 임란 당시 명나라에 원병을 요청하는 등 임란 극복에 큰 역할을 하였다. 임란 후 경상, 전라, 충청, 강원도 4도의 도체찰사가 되어 전쟁 후의 민심수습과 군대의 정비에 노력하는 한편 대마도 정벌을 건의하기도 하였다. 이항복과 절친한 사이로 많은 일화가 있으며 시호는 문익이며 저서에 『한음유고』가 있다.
◈ 박지원(1737~1805) 실학자로서 중구 묵정동에 살았다. 호는 연암, 본관은 반남이다. 30세에 실학자 홍대용에게 지구자전설 등 서양의 신학문을 배웠으며, 청국에서 이용후생과 신문학을 접했다. 홍대용, 박제가와 함께 북학파의 영수로 신문물을 받아들일 것을 주장했다. 저서로는 열하일기, 연암집, 허생전, 호질, 양반전 등이 있으며 작품에 실학사상을 소개했다.
■국보 ◈서울 숭례문 제1호, 남대문로4가 29
■사적 ◈서울성곽(광희문 포함) 제10호, 장충2가, 405 광희동2가 105 ◈덕수궁 제124호, 정동 1-23 ◈원구단 제157호, 소공동 87-14 ◈약현성당 제252호, 중림동 149-2 ◈구러시아 공사관 제253호, 정동 15-3 ◈정동교회 제256호, 정동 32-1 ◈명동성당 제258호, 명동2가 1-8 ◈한국은행 본관 제280호, 남대문로3가 110 ◈서울역사 제284호, 봉래동2가 112
■중요무형문화재 ◈서도소리(이은관) 제29호, 황학동 1527
■유형문화재(시 지정) ◈장충단비 제1호, 장충동 197 ◈성제묘 제7호, 방산동 4-96 ◈수표교 제18호, 장충동2가 197 ◈숭정전 제20호, 필동3가 26-1 동국대 ◈서울성공회성당 제35호, 정동 3 ◈중명전 제53호, 정동 1-11 ◈구 제일은행 본점 제71호, 충무로1가 53
■기념물(시 지정) ◈손기정월계관수 제5호, 만리동2가 6-1 손기정공원내 ◈남산봉수대지 제14호, 예장동 8-2
■민속자료(시 지정) ◈와룡묘 제5호, 예장동 산 5-6 ◈관성묘 제6호, 장충동2가 186-140 ◈오위장 김춘영가옥 제8호, 필동2가 84-1 ◈부마도위 박영효가옥 제18호, 필동2가 84-1 ◈도편수 이승업가옥 제20호, 필동2가 84-1 ◈해풍부원군 유택영댁제실 제24호, 필동2가 8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