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지식놀이터 ::【광진구 서울특별시 광진구 정보
서울특별시 광진구 정보
(보기 : 목록별구성)
2005년 6월
2005년 6월 3일
광진구의 역사문화자원
about 서울특별시 광진구 정보
[광고]
[100 세트 한정] 행운의 2달러 스타노트+네잎클로버 컬렉션 35% 19,800원 12,800원
내서재
추천 : 0
(2005.06.03. 01:02) 
◈ 광진구의 역사문화자원
목   차
[숨기기]
 

1. 역사문화자원

 

1.1. 역사적 사건과 현장

◈ 삼국의 쟁패와 삼국 통일의 기초가 된 광진땅
한강 유역은 우리나라 고대의 삼국시대에 고구려·백제·신라가 나라의 운명을 걸고 싸우던 곳이다. 한강 유역에 나라를 세우고 발전한 것은 백제이다. 백제의 초기 서울인 하남 위례성(河南 慰禮城)이 정확하게 어느 곳인가는 아직도 분명하게 밝혀져 있지 않지만, 대체로 서울 강동구의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일대가 그곳이라는 학설이 가장 유력하다. 이곳에서 가까운 송파구 방이동·석촌동 일대에는 백제 시대의 왕릉으로 추정되는 수많은 옛 무덤이 있어서 더욱 신빙성이 있다.
 
그렇다면, 강동구의 한강 건너편인 광진구 일대, 특히 아차산 일대는 백제의 수도 방위를 위해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 된다. 북쪽의 강대국 고구려로부터 수도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아차산 일대에 산성을 쌓고 이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지금도 아차산 일대의 아차산성과 기타 산성 흔적 주변에서 백제의 토기, 기와 조각 등이 많이 발견되고 있는 것은 백제가 이 지역에 중요한 군사 시설을 두고 있었음을 잘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밖에도 광진구 일대에서는 백제의 옛 무덤 유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5세기에 고구려 장수왕이 강력한 남진정책(南進政策)을 취하자 백제는 고구려의 힘을 막지 못하고 충남 공주로 수도를 옮겨 내려가고, 한강 유역은 고구려의 영토가 되는데, 이때에 광진구 일대도 고구려의 영토로 편입된다. 한강 유역을 차지한 고구려는 신라와 백제 두 나라의 세력을 동시에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곳으로 광진구 일대에 대대적인 군사 시설을 설치하여 방어하게 된다.
 
구의동에서 발견된 고구려 군사 유적이라든지, 아차산 일대 능선을 따라 줄지어 발견되는 보루성(堡壘城 : 봉우리나 능선에 설치한 초소 성격의 작은 성) 흔적들에서는 고구려의 토기, 철제 무기류 등이 다량으로 발굴되어 그러한 추정을 신빙성 있게 한다. 실제로 아차산에 올라 보면 한강과 강남 일대가 한 눈에 보일 뿐 아니라 멀리 경기도 양수리 일대까지 바라다 보여 남쪽의 신라와 백제 두 나라에서 올라오는 군사를 감시하기에는 가장 좋은 위치임을 알 수 있다.
 
6세기에 이르러 진흥왕 때에 신라는 백제와의 동맹 관계를 이용하여 고구려와 정면 승부를 벌여 승리함으로써 일시적으로 광진구 일대를 비롯한 한강 유역을 백제가 다시 차지하였으나, 곧 신라는 이 지역이 삼국 통일의 가장 중요한 발판임을 알고 백제와 일전(一戰)을 벌여 한강 유역을 차지하였다. 이러한 진흥왕의 한강 유역 진출은 북한산 비봉(碑峰)에 세워진 진흥왕 순수비(巡狩碑 : 진흥왕이 새로 차지한 한강 유역을 순시하면서 세운 비석)를 통해 입증된다. 이때 광진구 일대도 신라의 영토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광진구 일대를 비롯한 한강 유역을 차지하여 삼국 통일의 기반을 다진 신라는 주로 고구려의 침공을 방어하기 위하여 아차산 일대에 백제나 고구려가 쌓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산성 및 장성(長城)을 보강하여 방어 기지로 삼고 이를 장한성(長漢城)이라 이름하였으며, 「장한성가(長漢城歌)」를 지어 불러 승리를 축하하고 호국정신(護國精神)과 삼국통일의 의지를 불태웠다. 오늘날, 지하철 5호선의 장한평역(長漢坪驛) 이름과 광진구 일대를 장한벌(혹은 장안벌)이라 부르는 것은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물론, 신라의 장한성이 아차산 일대의 장성을 가리키는지, 혹은 다른 곳을 일컫는지에 대해서는 학문적으로 다른 의견들이 많아 아직 단정할 수는 없다.
 
이처럼 광진구 일대는 우리나라 삼국시대에 세 나라가 나라의 운명을 걸고 여러 차례 전쟁을 벌이던 자리, 군사적 요충지(要衝地)로서 중요한 역사의 현장이었던 곳이다.
 
 

1.2. 내 고장의 문화유산

■국보
◈ 동국정운(東國正韻) 제142호, 모진동 건국대학교 도서관
 
■보물
◈ 율곡이이 선생가 분재기 제477호, 모진동 건국대학교 박물관
 
■사적
◈ 아차산성 제234호, 광장동 산16-46, 구의동 산1-2
 
■중요무형문화재
◈ 종묘제례악 예능보유자(김종희) 제1호, 구의동 16-30
◈ 가사 예능보유자(정경태) 제41호, 자양동 608-23
◈ 송파 답교놀이 기능보유자(한천복) 제3호, 구의동 691-1
 
■중요민속자료
◈ 전 고종 익선관 제44호, 군자동 세종대학교 박물관
◈ 전 고종 갓 제45호, 군자동 세종대학교 박물관
◈ 전 고종 패옥 제46호, 군자동 세종대학교 박물관
◈ 별전 괴불 제47호, 군자동 세종대학교 박물관
◈ 동궁비 원삼 제48호, 군자동 세종대학교 박물관
◈ 전 황후 황원삼 제49호, 군자동 세종대학교 박물관
◈ 옥색 명주 장옷 제50호, 군자동 세종대학교 박물관
◈ 희운문 단 장옷 제51호, 군자동 세종대학교 박물관
◈ 광화당 원삼 제52호, 군자동 세종대학교 박물관
◈ 토황색 명주 저고리 제53호, 군자동 세종대학교 박물관
◈ 동궁비 적의 제54호, 군자동 세종대학교 박물관
◈ 동궁비 청석 제55호, 군자동 세종대학교 박물관
◈ 수복 칠보 석류문 황갈단 당의 제56호, 군자동 세종대학교 박물관
◈ 수복 칠보 석류보상화문황갈단 당의 제57호, 군자동 세종대학교 박물관
◈ 곤룡포 부룡문 보 제58호, 군자동 세종대학교 박물관
◈ 전 왕비 당의 제103호, 군자동 세종대학교 박물관
 
■서울시지정 문화재
◈ 사직동 정재문가(경원당) 민속자료 제9호, 모진동 145 건국대학교 내
◈ 화양동 느티나무 기념물 제2호, 화양동 110-32,34
◈ 낙천정지 기념물 제12호, 자양동 673
 
 

1.3. 내 고장의 역사적 인물

◈ 온달(?∼590)
온달은 고구려 평원왕 때의 장군으로 몹시 가난하여 구걸로써 눈먼 어머니를 봉양하였으나 평원왕의 공주를 처로 맞아들여 국왕의 사위임을 공인 받고 대형(大兄)이라는 관위를 받았다. 590년 영양왕이 즉위하여 신라에게 빼앗긴 한강유역 탈환을 위한 군사의 출정에 지원하여 아차성(지금의 광진구 아차산성이라는 설과 단양의 아단성이라는 설이 있음)에서 전사하였다.
 
◈유석창(劉錫昶, 1900∼1972)
의사·교육가, 함경남도 단전출생으로 11세 때 아버지를 따라 만주로 망명하여 장백현·간도성 등지에서 독립운동에 가담하였다가 21세 때 귀국하여 서울 경신학교를 거쳐 1928년 경성의학 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서울 낙원동에 있던 건국의숙을 정규대학인 건국대학교로 발전시켜 초대총장에 취임하였다.
서울특별시 광진구 정보
• 광진구의 생활문화자원
• 광진구의 역사문화자원
• 광진구의 어제와 오늘
【작성】 null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광고]
제주 클레르 드 륀 펜션 제주시 애월읍, M 010-6693-3704
페이스북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로그인 후 구독 가능
구독자수 : 0
▣ 정보 :
미정의 (보통)
▣ 참조 지식지도
▣ 다큐먼트
▣ 참조 정보 (쪽별)
▣ 참조정보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 참조정보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