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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강서구 서울특별시 강서구 정보
서울특별시 강서구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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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2005년 6월 13일
강서구의 역사문화자원
2005년 6월 3일
about 서울특별시 강서구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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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13. 23:51) 
◈ 강서구의 역사문화자원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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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문화자원

 

1.1. 내 고장의 역사적 인물

◈ 허준(許浚, 1546∼1615)
본관은 양천, 호는 구암, 『동의보감』을 저술한 의학자. 선조때 어의가 되어 임진왜란 중 끝까지 임금을 모셨다. 보국승록대부에 오름, 『동의보감』을 저술하여 세계적인 명의로 이름을 떨침. 가양동이 고향이며, 말년을 가양동에서 보냈음
 
 

1.2. 내 고장의 문화유산

◈ 김덕원공 묘 출토의복 보물 제672호,
1980년 8월 23일 지정, 소유자 강서구민, 조선 중기의 것. 강서구에 현존하는 보물중 하나인 김덕원공 묘 출토의복은 1972년 3월 김덕원(1634∼1704)공과 그의 부인 전주이씨 합장묘에서 출토된 유물로서 총 53종 68점에 달하는데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여 거의 모두 완전한 상태로 남아있어 우리나라 조선 중기 상류 사회의 복식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있다.
 
한편 출토된 의복은 대부분 견(비단)으로 만든 것이다. 종류로는 운문단관복표리, 운문단천익을 비롯하여 창의9점, 운문단, 공단 등으로 짠 직령표 7점, 공단 운문단, 화문단, 명주등의 이불 5채와 토수, 중치막, 저고리, 바지 등이 포함되어 있어 17세기 조선시대의 복식연구에 중대한 의미를 주는데, 특히 남녀의복이 동시에 다수가 출토되어 하나의 뚜렷한 통계치를 잡을 수 있게 된 점이 괄목할 만 하다. 현재 후손들이 보존 관리하고 있다.
 
◈ 진산세고 보물 제1290호,
1998년 12월 18일 지정, 조선조 성종7년(1476), 저자는 강희안(1417∼1464)이다.『진산세고』는 강희안이 저술한 세계 최초의 화훼재배 전문 기술서적이다. 세조 때 단종 복위운동을 꾀하다가 성삼문 등과 함께 옥고를 치르던 중, 수양대군이 너무 아까운 선비라서 죽이지 못하고 풀어 주었다. 그는 혼자 살아남은 것이 부끄러워 초야에 묻혀 살면서 30년 이상을 오직 화훼재배만 을 연구하며 세월을 보냈다. 후에 강희안은 증조부, 조부, 부친의 문집을 한데 모아 정리할 때, 자신이 연구한 화훼재배 기술을 기록한 『양화소록』을 뒷부분에 덧붙여 『진산세고』라는 문집을 저술하였는데, 뒤에 화훼재배기술서인 『양화소록』만이 별도로 많은 수량이 인쇄되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양화소록』은 온갖 화초를 개량하는 기법을 자세히 기록한 책으로 세계 최초의 화훼재배 기술서적이었다. 그 중 『양화소록』 1권이 일본으로 건너가 현재 일본 국보로 지정되어 있으며, 오늘날 일본이 분재 등 화훼재배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국으로 발돋움하게 된 밑바탕을 바로 『양화소록』이 만들어 준 셈이다. 따라서 『진산세고』는 『양화소록』의 모체이며 원본인 것이다.
 
◈ 양천고성지 사적 제372호,
1992년 3월 5일에 지정, 관리자는 강서구청장, 백제시대, 강서구 가양동 산8-4외 14필지
 
가양동 양천향교 뒷산인 궁산에 위치하며 대략 29,390㎡ 넓이의 옛 성터이다. 궁산은 한강 올림픽대로변 해발 약 74m의 야산으로 서쪽과 남쪽은 완경사로 시가지와 연결되며 북쪽은 한강변 쪽으로 급경사를 이루고 있고 동쪽은 남쪽보다는 다소 급하게 경사져 새로 조성된 가양아파트 단지와 연결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문헌기록에 의하면 성산(지금의 궁산)에 고성이 있는데 그 둘레는 726척(약218m)이고 지금은 성으로서의 기능은 하지 않는다고 되어있어 조선 중종(1531) 때는 이미 폐성이 되었음을 알 수 있으나 축성시기는 언제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에 맞추어 추정해 볼 때 이 성은 백제가 축성한 성으로 백제 22대 문주왕이 웅진으로 천도(475년)하기 전, 강 건너 고구려를 견제하며 국경을 지키던 백제의 성으로 짐작되며, 이곳에서 백제 상고시대의 타날무늬 토기편이 발견됨으로써 백제 성이었다는 사실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 양천향교 서울시 기념물 제8호,
1990년 6월 18일에 지정, 관리자는 서울시 향교재단, 조선 태종11년(1411)의 것이며, 소재지는 강서구 가양동 234번지이다. 향교는 조선시대 우리의 교육문화를 주도해 온 문화유산으로 유가의 공자를 비롯한 동양 5성과 송조 4현 및 동국 18현 등 성현들의 제사를 모시는 문묘행사를 담당하며 또한 조선조 공립중등 교육기관으로 지방 향리들의 자제를 교육하는 기관이었다.
(註 성균관에서 전국234개 향교중 23개 향교를 조사한 결과 송조 6현을 모시는 향교가 간성, 강릉 등 6개 향교. 송조4현을 모시는 곳이 양천, 회덕 등 2개향교. 송조 2현을 모시는 향교가 동래, 대구, 칠곡 등 15개 향교로 나타났다. 따라서 향교마다 모시는 신위가 다름을 알 수 있다. 원래 성균관에서는 모두 133위를 모셨으나, 제례의식을 치루는데 너무 번잡하다는 폐단이 있어 1948년에 93위(공문10철, 송조6현, 아국18현)만 모시기로 결정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지방의 향교들도 성균관의 변혁에 동참하여 지방유림들의 자율적인 총의에 따라 향교마다 모시는 신위가 차이가 나고 있다. 이상은 양천문화원이 성균관에 문의하여 얻은 답변 내용이다. - 운영자)
 
◈ 풍산심씨 묘역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77호,
1991년 12월 24일, 관리자 풍산심씨 종친회, 조선시대, 소재지 강서구 방화동 산 152-5일대이다.
 
조선 11대 중종 임금 때 우의정 및 정국 공신인 심정과 그 자손인 심사손, 심사순 및 손자인 조선 청백리 심수경 등 풍산심씨 가문의 분묘 약 50여기가 있으며, 그중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4인의 분묘와 그에 딸린 묘비, 상석 등을 문화재로 지정, 보호하게 된 것이다. 정국공신 심정은 연산군 12년에 반정하여 연산군을 추방하고 중종을 옹립하였으며 황해도 관찰사, 개성유수, 형조판서, 예조판서, 한성판윤, 사헌부 대사헌을 거쳐 우의정, 좌의정을 등직하였다. 심정공 묘 1기, 심사순공 묘 1기, 심사손공과 부인의 묘 2기, 심수경공과 부인의 묘 2기와 같이 분묘 6기, 묘비 5개, 상석 4개, 문무관석 4개, 신도비 1개 및 사당 1동(심수경 공 사당) 등이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약사사 3층석탑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9호,
1980년 6월 11일에 지정, 관리자 약사사, 고려후기시대, 소재지 강서구 개화동 332-2번지이다.
 
개화산 내의 약사사 경내에 위치하며 단층 기단 위에 화강석으로 축조한 4m 높이의 3층탑으로서 고려 말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탑이 있는 약사사는 행주산성이 마주 보이는 강 안에서 동쪽으로 향한 사찰로서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오랜 사찰이다. 사찰의 석탑은 고려의 불교미술이 다소 퇴화하던 고려후기의 시대적 반영을 잘 나타내어 고려 중기의 탑파 건축의 변천과정을 알게 하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 약사사 석불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40호,
1980년 6월 11일 지정, 관리자 약사사, 고려후기시대, 소재지 강서구 개화동 332-2번지이다.
 
약사사 경내에 위치하며 높이 3.3m, 어깨폭 90cm, 보관의 직경 1m 규모의 화강석으로 만들어진 고려말기의 석불이다. 석불의 본래 형태는 기단을 마련하지 않고 아래쪽은 그냥 지하에 매몰되었으나 석불을 옮길 때 당시 기단석을 새로 만들어 올려놓았다. 두부에는 원형의 석조보관을 놓았는데 보관의 밑 부분에는 상당수에 달하는 명문이 있으나 판독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석불의 두 볼은 풍만한 편이며 코와 볼이 약간 손상된 흔적이 있지만 그런 대로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특히 두툼한 두 눈과 가는 미소를 머금은 엄숙한 입술 등이 인상적이고, 연꽃을 지닌 두 손을 앞가슴에 단정하게 모으고 있으며, 어깨에서부터 겹치면서 내려온 법의는 다소 경직함을 보이고 있다.
 
◈ 허가바위 서울시 기념물 제11호,
1991년 12월 24일 지정, 관리자 강서구청장, 삼국시대 이전, 소재지 강서구 가양동 산1-2번지.
 
허가바위는 탑산 아래 천연적인 바위동굴이다. 옛날 석기시대 사람들이 한강가에 조개들과 물고기를 잡으며 이곳에서 살았으리라 짐작되는 혈거동굴로서 연구가치가 매우 높은 이 굴은 올림픽대로가 건설되면서 육지로 변하였으며 현재는 영등포공고 정문 앞에 위치한다. 이 굴에서 양천허씨의 시조 허선문이 태어났다는 설화가 있기 때문에 이 굴을 양천허씨의 발상지라고 부른다. 또한 강서구의 최초 지명은 제차파의현으로 ‘제사 드리는 바위’라는 의미를 지님으로써 강서구 최초의 지명이 이곳 허가바위로부터 나왔음을 추측할 수 있다.
 
굴의 크기는 가로 약 6m, 세로 약 2m, 길이 약 5m이며 사람들 10명 이상이 들어갈 수 있는 동굴이다. 허가바위 굴은 구암(허준)선생이 『동의보감』을 집필하셨고 또 생을 마치신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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