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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울주군 울산광역시 울주군 정보
울산광역시 울주군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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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군의 역사문화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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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1. 01:00) 
◈ 울주군의 역사문화자원
◈ 역사적 사건과 현장 - 박제상과 망부석(望夫石), 김유신과 기도소(祈禱所), 위열공 김취려(金就礪)의 묘, 반구서원 유허비(盤龜書院遺墟碑) / ◈ 내 고장의 역사적 인물 - 김인후(金麟厚, 1510∼1560), 전응충(全應忠), 송석하(宋錫夏, 1904∼1948), 정인섭(鄭寅燮, 1905∼1983), 오영수(吳永壽, 1914∼1979) / ◈ 내 고장의 문화유산 - 천전리 각석,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목   차
[숨기기]
 

1. 역사문화자원

 
 

1.1. 역사적 사건과 현장

 
◈ 박제상과 망부석(望夫石)
영해박씨의 시조인 박제상은 신라 눌지왕때 고구려와 일본에 볼모로 붙잡혀가 있던 신라의 왕자를 탈출시키고 자신은 왕자가 무사히 도망할 때까지 대신 머물러 있다가 붙잡혔다. 왜왕이 그에게 일본의 신하가 되면 벼슬도 주고 편안히 살게해 주겠다고 하며 자기 신하로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왜족의 신하가 되느니 차라리 신라의 개, 돼지가 되겠다”고 말해 결국 살해되고 말았다. 한편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그의 부인 김씨는 세 딸을 데리고 동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치술령 바위에 올라 끝내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가 지쳐서 죽어 바위가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사람들은 이 바위를 망부석이라 불러 오고 있다. 현재 울주군 두동면 치술령에 이 바위가 있으며 그 인근에 있는 은을암은 세 사람의 혼을 달래기 위해 눌지왕이 세웠다고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그후 왕은 박제상에게 대아찬을 추증하고 김씨부인을 국대부인(國大夫人)에 추봉했으며, 사당을 짓고 그 뜻을 기리는 제를 봉행토록한 것이 현재 기념물 제1호인 치산서원(山書院)이다.
 
◈ 김유신과 기도소(祈禱所)
울주군 두서면 인보리 서쪽 백운산 산봉우리인 감투봉 아래에 신라 명장 김유신이 18세때(612)에 적을 물리칠 힘을 주도록 산신에게 빌며 수련하던 굴이 있다.
 
신라때에 백운산을 인박산(咽博山, 열박산)이라 하여 무척 신령스럽게 여겼다는 곳이다.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조」에 따르면 “신라 진평왕 28년(611) 김유신이 17세때 신라 중악산의 석굴에 들어가서 비법을 받았다. 18세때 혼자서 보검을 들고 열박산 깊은 골짜기에 들어가 향을 피우며 마치 앞의 중악산에서와 같이 기도하며 맹세하니 천관신이 빛을 내어 보검에 신령스러운 기운을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산은 열박산이라는 이두식 표현이 한자로 바뀌면서 백운산이 되었고 김유신이 수도한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 위열공 김취려(金就礪)의 묘
시 기념물 제7호로 지정된 이 묘의 주인공 김취려 장군(1172~1234)은 고려 고종 3년(1216) 거란의 왕자 금산, 금시가 압록강을 건너 쳐들어 왔을 때 이를 무찔러 큰 공을 세우고, 고종 4년(1217)에 금오위상장군(金吾衛上將軍)에 임명되고 다시 그해 5월 명주(지금의 강릉) 싸움에서 승리하여 고종 19년(1232)에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오른 분으로, 시호는 위열이다.
 
◈ 반구서원 유허비(盤龜書院遺墟碑)
고려 말 친원배명(親元排明)의 외교정책을 반대하다 우왕 2년(1375)부터 1년간 당시 언양현 요도(蓼島) 적소(귀양살이 하는곳)로 일시적인 귀양살이를 온 문춘공(文忠公) 포은 정몽주가 자주 찾은 곳이 반구대이다. 정몽주가 아름다운 경관에 매료되어 풍류를 즐기며 귀양살이의 괴로움을 달래기도 한 반구대에는 조선시대의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한강(寒岡) 정구(鄭逑) 같은 학자들도 경관을 즐기며 명시를 남겼는데 이곳을 포은대라 하며 반구서원 유허비가 있다.
 
조선 숙종 38년(1712)에 반구서원을 세워 정몽주, 이언적, 정구 등 3현을 모시고 유생들이 후학을 양성하여 오다가 영조 4년(1728)에 화재를 입어 이듬해에 다시 세웠으나, 고종 8년(1871) 서원 철폐령에 따라 문을 닫게 되었다.
 
그후 이 고장 유생들이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광무 4년(1900)에 앞의 세 선생의 유허비와 비각을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1.2. 내 고장의 역사적 인물

 
◈ 김인후(金麟厚, 1510∼1560)
자(字)는 후지(厚之) 호는 하서(河西)로 조선 11대 중종 5년에 출생하여 명종 15년에 사망한 조선 중엽의 고고한 유학자였다. 김인후는 조선 중종 35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홍문관 부수찬을 지낸 뒤 을사사화가 발생하자 병을 핑계로 관직을 그만두고 낙향하였다. 여러차례 조정의 부름을 받았지만 거절하고 전라도 장성으로 내려가 성리학을 연구, 많은 제자를 길러내며 여생을 보냈다.
 
은거생활을 하는 동안 퇴계 이황(李滉) 선생과 깊이 사귀면서 성리학에 열중하는 한편 세상을 비관하여 술을 즐겨 마시다가 퇴계 선생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김인후는 우리나라 제2대 부통령 김성수(金性洙)의 조상이기도 하다.
 
◈ 전응충(全應忠)
자(字)는 원여(元汝)이고, 호는 운계(雲溪)며 온양면(溫陽面) 출신이다. 조선 선조때 일어난 임진왜란 당시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본군 남서장(南西將)이 되어 조카 전영(全瑛)과 전개를 데리고 여러 차례에 걸친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그후 정유재란(丁酉再亂)때는 본군의 의사 5명과 더불어 병졸을 이끌고 곽재우 장군(郭再祐 將軍)의 진영에 들어가 화왕산성(火旺山城)을 지키며 싸웠다. 변방을 지키며 많은 전공을 세워 선무원종 일등공신에 훈록되었다.
 
한편 임진왜란시 언양지방의 의사로 전공을 세워 선무원종 일등공신으로 훈록된 사람은 김정서(金廷瑞), 선극례(宣克禮), 이언량(李彦良), 최환(崔環), 이섬(李暹) 등 다섯명에 이른다.
 
◈ 송석하(宋錫夏, 1904∼1948)
울주군 상북면 양등리에서 태어난 송석하는 1922년 부산제2상업학교를 졸업, 일본 동경상과대학에 유학하였으며 1922년 관동대지진으로 귀국하였다. 1933년 손진태(孫晋泰), 정인섭(鄭寅燮) 등과 함께 조선민속학회를 창립하고 민속학의 동인연구지 「조선민속」을 발행하였다. 1945년 조선산악회를 창설하여 현대 등산의 선도자가 되었다. 광복 후에는 한미 문화협력에 참여하는 한편 미군정청의 문정관으로 와 있던 인류학자(Knez, E. I.)의 도움을 얻고 자신이 수집한 많은 민속자료를 토대로 1946년에 국민민족박물관을 창설하였다. 진단학회장, 한국산악회장, 한미문화협회장, 서울대학교 강사, 민족박물관장 등을 지냈다.
 
◈ 정인섭(鄭寅燮, 1905∼1983)
시인, 평론가, 영문학자인 정인섭의 호는 눈솔. 울주군 언양에서 태어나 1929년 일본 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졸업,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한글학회 회원, 극예술 동인회 동인, 한국민속학회회원 등으로 다양한 활동을 보였다. 영국 런던대학교수, 일본 덴리대학교수 및 경도대학원 강사를 지냈으며, 1953년에 런던대학원을 수료하였다. 중앙대학교 대학원장, 외국어대학교 언어 연구소장 등도 역임하였다. 『한국문단 논고』 등의 평론집과 『애란기행』 등 수필집, 『산넘고 물건너』라는 시집 등 문학작품과 연구논문집을 비롯한 많은 저서를 남겼다.
 
◈ 오영수(吳永壽, 1914∼1979)
난계 오영수는 우리나라 단편소설의 대표적인 작가. 1949년 단편소설 「남이와 엿장수」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입선됨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하고 「현대문학」 창간에 관여했으며 『머루』 『갯마을』 등 다수의 단편소설집을 통해 모두 150여편의 작품을 남겼다. 대한민국예술원장상을 비롯하여 제1회 한국문학가협회상, 아세아 자유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1.3. 내 고장의 문화유산

 
■ 국보
 
◈ 천전리 각석 - 제147호, 두동면 천전리
 
◈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 제285호, 언양읍 대곡리
 
 
■ 보물
 
◈ 망해사지 석조부도 - 제173호, 청량면 율리
 
◈ 석남사 부도 - 제369호, 상북면 덕현리
 
◈ 간월사지 석조여래좌상 - 제370호, 상북면 등억리
 
◈ 청송사지 3층석탑 - 제382호, 청량면 율리
 
 
■ 사적
 
◈ 천왕산 요지군 - 제129호, 상북면 이천리
 
◈ 언양읍성 - 제253호, 언양읍 동?r서부리
 
◈ 검단리유적 - 제332호, 웅촌면 검단리
 
 
■ 천연기념물
 
◈ 두서 은행나무 - 제64호,두서면 구량리
 
◈ 목도 상록수림 - 제65호, 온산읍 방도리
 
 
■ 유형문화재(이하 시지정)
 
◈ 상천리 국장생 석표 - 제2호, 삼남면 상천리
 
◈ 청송사지 부도 - 제3호, 청량면 율리
 
◈ 운흥사지 부도 - 제4호, 웅촌면 고연리
 
◈ 석남사 삼층석탑 - 제5호, 상북면 덕현리
 
◈ 언양향교 - 제8호, 삼남면 교동리
 
◈ 언양현 호적 대장 - 제9호, 남구 옥동 울주군청
 
 
■ 기념물
 
◈ 박제상 유적 - 제1호, 두동면 만화리
 
◈ 언양 지석묘 - 제2호, 언양읍 서부리
 
◈ 간월사지 - 제5호, 상북면 등억리
 
◈ 위열공 김취려의 묘 - 제7호, 언양읍 송대리
 
◈ 은현리 적석총 - 제8호, 웅촌면 은현리
 
◈ 방기리 알바위 - 제10호, 삼남면 방기리
 
◈ 서생나사 봉수대 - 제15호, 서생면 나사리
 
◈ 언양 부로산 봉수대 - 제16호, 삼남면 교동리
 
◈ 언양 천전리성 - 제19호, 상북면 명촌?r등억?r산전리 일원
 
◈ 대대리 고분 - 제20호, 웅촌면 대대리
 
◈ 은편리 지석묘 - 제21호, 두동면 은편리
 
◈ 향산리 지석묘 - 제22호, 상북면 향산리
 
◈ 지내리 지석묘 - 제23호, 상북면 지내리
 
◈ 율리 영축사지 - 제24호, 청량면 율리
 
 
■ 문화재자료
 
◈ 만정헌 - 제2호, 상북면 명촌리
 
◈ 석천리 이씨 고가 - 제3호, 웅촌면 석천리
 
◈ 석남사 수조 - 제4호, 상북면 덕현리
 
◈ 천전리 공룡발자국 - 제6호, 두동면 천전리
 
◈ 서생포 왜성 - 제8호, 서생면 서생리
 
◈ 증 공조참판 엄공 원강서원비 -제10호, 삼동면 둔기리
 
◈ 학성 이씨 현령공파 절송공묘 출토유물 - 제11호, 범서면 구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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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