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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속초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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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속초시의 마을 소개
속초시의 역사문화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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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1. 01:00) 
◈ 속초시의 역사문화자원
◈ 역사적 사건과 현장 - 북한주민의 월남과 정착 / ◈ 내 고장의 역사적 인물 - 박지의(1799∼1860), 오윤환(1872∼1946) / ◈ 내 고장의 문화유산 - 향성사지 3층석탑, 조양동 선사유적, 설악산천연보호구역, 설악동의 소나무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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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문화자원

 
 

1.1. 역사적 사건과 현장

 
◈ 북한주민의 월남과 정착
한국전쟁으로 인해 500만명이라는 민족의 대이동이 발생하게 되었으며, 휴전후 월남한 북한주민은 최북단 도시인 속초에 정착하여 통일을 기다리게 되었다. 이렇게 월남한 북한주민은 속초의 청호동 지역에 집단촌락을 형성하여 일명 ‘아바이마을’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채, 독특한 문화권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속초문화원에서는 한국전쟁 당시 이북5도민의 피난과정과 휴전후 속초에 정착하는 과정에 대한 정치·경제·사회·문화분야 등 종합적인 조사·분석을 토대로 집대성한 정착사를 발간하여 통일교육자료 확보 및 이주민의 강인한 투혼 전승 및 향토애를 정착시킬 예정이다.
 
 
 

1.2. 내 고장의 역사적 인물

 
◈ 박지의(1799∼1860)
도문동 출생. 부친이 위독하자 단지(斷指)로 수혈하였으며, 헌종(憲宗)이 승하하자 상복을 입고 망곡(望哭)하여, 고종 30년(1893) 충효를 겸해 정려가 내려졌다.
 
◈ 오윤환(1872∼1946)
도문동 출생, 성리학자로서 향리에 묻혀 학문연구와 제자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3·1운동 때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여 일본경찰에 검거되어 곤혹을 치르고, 삭발령과 창씨개명을 절대 반대하였다. 또한 학무정을 짓고 제자들과 강론하며 교육의 장으로 삼았다.
 
 
 

1.3. 내 고장의 문화유산

 
■ 보물
 
◈ 향성사지 3층석탑 - 제433호, 설악동 산105-2
 
 
■ 사적
 
◈ 조양동 선사유적 - 제376호, 조양동 1529
 
 
■ 천연기념물
 
◈ 설악산천연보호구역 - 제171호, 설악동 설악산
 
◈ 설악동의 소나무 - 제351호, 설악동 20-5
 
 
■ 유형문화재(이하 도지정)
 
◈ 신흥사 극락보전 - 제14호, 설악동 170
 
◈ 신흥사 경판 - 제15호, 설악동 170
 
◈ 도문동 김종우가옥 - 제85호, 도문동 1190
 
◈ 신흥사 보제루 - 제104호, 설악동 170
 
 
■ 문화재자료
 
◈ 신흥사 - 제7호, 설악동 170
 
◈ 도문동 김근수가옥 - 제64호, 도문동 1504
 
◈ 신흥사 부도군 - 제115호, 설악동 산 26-11
 
◈ 노학동 3층석탑 - 제127호, 노학동 산433
 
 
 

1.4. 내 고장의 지명 유래

 
속초라는 명칭에 대하여 현재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조선 영조 36년(1760)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로 속초는 조선시대에 양양도호부(襄陽都護府) 소천면(所川面) 속초리(束草里)라는 한 동리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조선시대부터 면, 리제(面, 里制)가 실시되었는데, 지금의 속초지역은 양양도호부 소천면과 도문면의 2개의 면 지역(호수 : 387호, 인구 : 1,265)으로 소천면에 4개리(논산·부월·속초·속진리), 도문면에 6개리(상도문·하도문·물치·대포·옹진리·신흥사)로 구성되어 있었다. 속초지명에 관해서는 ‘묶을 속(束)’, ‘풀 초(草)’자라고 써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는데, 영금정에 연관지어진 이름이 하나요, 울산바위와 관련되어 지어진 이름이 둘이다.
 
• 풍수지리적으로 속초지형은 와우형(臥牛形) 영금정옆에 솔산이 있을 때 바다에서 포구를 들여다보면 그 솔산이 소나무와 풀을 묶어서 세워놓은 것 같은 형태라 하고, 풍수지리적으로 속초지형이 와우형으로 소가 누워서 풀을 먹고 있는 형국이므로, 누워서는 맘대로 풀을 뜯지 못하므로 풀을 묶어서 소가 먹도록 해야 한다는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
 
• 조물주가 금강산의 봉우리를 1만 2천개를 만들 계획으로 잘생긴 바위는 모두 금강산에 모이도록 했다. 울산땅에 있던 큰 바위도 금강산으로 길을 떠났는데 워낙 육중하여 지금의 울산바위가 있는 근처에서 하루를 쉬었다가 금강산에 가보니 벌써 금강산은 다 빚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울산바위는 하루를 쉬었던 곳에 머물기로 하였다. 설악산을 구경왔던 울산고을 원님이 신흥사의 중에게 울산바위는 원래 제 고을의 바위니 지세를 물라 하니, 해마다 지세를 물다 사찰의 형편이 어려워 지세를 주지 못하고 바위를 도로 울산땅으로 가져가라 하였다. 울산고을 원님은 바위를 재로 꼰 새끼로 묶어주면 가져가겠다 하니, 이에 청초호와 영랑호 사이에 자라고 있는 속새풀로 새끼를 꼬아 울산바위를 동여맨 후 불에 태워 곧 재로 꼰 새끼처럼 만들었다. 그러자 울산고을 원은 더 이상 지세를 내란 말도 바위를 가져가겠다는 말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청초호와 영랑호 사이가 한자로 ‘묶을 속(束), 풀 초(草)’로 적는 지금의 속초로 불리게 되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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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