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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양양군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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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양양군의 마을 소개
양양군의 어제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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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3. 01:02) 
◈ 양양군의 어제와 오늘
양양은 한반도의 등뼈를 이루고 있는 태백산맥의 중동부에 자리하여 강원도 영동의 설악산을 진산으로 동해를 연접하고 있어 산해가경을 집약하여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지명 그대로 ‘해돋이 고장’이다. 영동지방에서는 가장 큰 젖줄인 양양 남대천이 넓은 삼각주 평야를 이루고 기후 또한 온화하여 이 유역과 해안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많이 밀집된 선사문화의 보고이며 신석기 문화의 요람이다.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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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고장의 어제와 오늘

 
 
양양은 한반도의 등뼈를 이루고 있는 태백산맥의 중동부에 자리하여 강원도 영동의 설악산을 진산으로 동해를 연접하고 있어 산해가경을 집약하여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지명 그대로 ‘해돋이 고장’이다.
 
영동지방에서는 가장 큰 젖줄인 양양 남대천이 넓은 삼각주 평야를 이루고 기후 또한 온화하여 이 유역과 해안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많이 밀집된 선사문화의 보고이며 신석기 문화의 요람이다.
 
양양은 고예국지(古濊國地)로 고구려 때에는 익현현 또는 이문현이라 칭하고 신라시대에는 익령이라 칭하다가 고려 고종 8년(1221)부터 양주방어사로 승격되면서 양주로 이름하다가 조선 태종 16년(1416) 비로소 양양으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895년 지방제도의 개정으로 비로소 양양군으로 되었고 1919년 고성군 토성면과 죽왕면이 양양군에 편입되었다. 1945년 8·15광복은 민족해방의 기쁨도 채 느낄 틈도 없이 38선 분단으로 이어져 행정관할구역에 대한 수차의 편입환원이란 분단의 비애를 곱씹는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했다. 그리하여 동년 현남면과 현북면, 서면 등의 남쪽일부가 강릉군에 속하고 나머지 손양, 양양, 속초, 토성, 죽왕면과 현북, 서면 대부분이 이북에 들어갔다. 1950년 6·25전란이 발발하자 3·8선이 무너지고 전쟁의 와중에 휩싸이게 되었다. 1951년 7월 4일 군정을 실시하다가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된 후 본군 전역이 수복되었다. 1963년 속초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분리되고 토성면과 죽왕면이 고성군에 그리고 현남면이 양양군에 각각 환원 귀속되었다. 지금의 행정구역은 1읍 5면 120리 이다.
 
또한 지리적으로 태백산맥에서 뻗어내린 심산유곡과 임해산각에는 삼국통일 직후부터 뿌리내리기 시작한 불교문화가 고승 대덕에 의해 크게 번성함은 물론 조계종의 본원으로 선종의 근본 도량인 진전사가 자리하였었다.
 
자연 환경은 동쪽으로 동해안을 따라 좁고 긴 평야가 전개되고 서쪽에는 만첩중봉이 줄을 이어 남북으로 가로막고 있어 산과 계곡이 많다. 산으로는 서남부에 매복산(1,360m), 약수산(1,306m), 정족산(869m), 서부에 점봉산(1,424m), 북쪽에 설악산(1,708m)등이 있어 강릉시, 인제군, 홍천군, 속초시와의 경계를 이룬다. 또한 이들 산간계곡에서 발원하여 흐른다. 따라서 농경지는 계곡의 하천을 따라 좁게 형성되거나 해안지대에 한정되어 있다.
 
기후는 서쪽의 태백산맥이 차거운 북서계절풍을 막아주고 동해의 해양성을 띤 영향으로 연평균 기온이 약 11℃∼13℃, 1월 0.1℃∼3.5℃, 8월 24.1℃∼25℃, 겨울에는 서해안 보다 3℃ 영서보다 5℃나 높고, 강우량은 1,100mm∼1,200mm이며 특히 영동지방은 5·6월에 북동쪽에서 불어오는 이른바 녹새풍(높새바람)이 있다. 그리고 태백산맥에 의한 fhn 현상으로 인하여 남서풍이 강하여 이른바 ‘양강지풍(襄江之風)’이란 말까지 생겼으며 계절적으로 보면 봄이 짧고 가을이 길다.
 
주요산업은 농업, 수산업, 임업, 관광산업 등이다. 경지면적은 1999년 현재 4,312㏊로 그중 논이 2,765㏊로 64%를 차지하고 밭은 1,547㏊로 36.0%를 차지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을 비롯하여 감자, 옥수수 등이다.
 
수산업은 350여 척의 어선이 있으나 대부분 5t 미만으로 영세한 형편이며 주로 명태, 오징어, 멸치, 고등어 등을 어획하고 있으며 계절적으로 하천에 소상하는 연어, 황어, 은어 등이 있다.
 
임산면적은 534.98㏊로 전체면적의 85.11%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부분 송림으로 주로 송이버섯을 비롯한 각종 버섯과 취나물, 고사리 등 각종 산채가 난다.
 
관광산업은 연간 약 200만명의 관광객이 해수욕장과 설악산을 비롯하여 인근 명승고적을 찾아오므로 활발하다. 상업활동은 양양읍의 상설시장을 비롯하여 현남면 인구리와 강현면 물치리에 정기 5일장이 열리고 있으며 서면 오색리와 강현면 전진리에도 관광객을 위한 상설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양양을 개괄적으로 본다면 근·현대에 이르러 대내외적으로 시대적 변화와 지정학적 변천이 무상하여 한 때 엘리트 집단의 외지분산과 경제 환경의 악화 등으로 지역발전의 지체현상을 면치 못하였으나 천혜의 자연과 풍토적 특성으로 인하여 주민생활은 대체적으로 빈부의 격차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살기좋은 고장’이다.
 
특히 역사적으로 변방의 숱한 외침으로부터 끈질기게 지켜온 향토수호의 고귀한 정신이 켜켜이 쌓인 터전 위에 부식한 민족의식과 지리적으로 험준한 자연을 극복하면서 체질화된 근면 성실성과 협동 단결력 그리고 불의에는 결코 굴복하지 않는 정의감이 어느 고장보다도 강한 특성이 있다.
 
 
 

1.1. <양양군 연표>

 
고대
BC 6000 - 오산리 유적(취락)
신석기시대 - 조산리, 가평리, 송전리, 남양리, 하광정리, 지경리 유적 등
청동기시대 - 군내 각지에서 지석묘 유적 발견
초기철기시대 - 조산리, 가평리, 송전리, 여운포리, 지경리 유적
고조선 - 고예국지(古濊國地)로 한무제시에는 낙랑군 탐열현, 소제시에는 동부도위로 있다가 폐지
 
삼국
313 - 고구려에 속하여 하슬나주의 익현현 또는 이문현이라고 칭하였다
668 - 신라통일 후 익령현으로 개칭, 수성군의 영현이 됨
671 - 의상대사 낙산사 창건
 
고려
995 - 10도를 정할 때 삭방도에 속함
1007 - 익령현에 축성(양주성)
1018 - 명주의 동산현을 내속시켜 현령을 둠
1221 - 거란병의 침공을 물리친 공으로 양주방어사로 승격
1260 - 양주로 회복
 
조선
1397 - 태조의 외가 고을이라 하여 부로 승격
1413 - 예(例)에 따라 도호부가 됨
1416 - 비로소 양양도호부가 됨
1466 - 세조가 왕비 왕세자와 같이 행행(行幸), 이때 낙산사를 크게 중수하고 홍예문 축성 및 담장 축조
1498 - 무오사화로 인하여 현으로 삭강
1623 - 부로 회복
1628 - 역란으로 현으로 삭강
1637 - 부로 회복
1666 - 강릉의 강상대역사로 양양의 양(襄)자를 따서 강원도를 원양도(原襄道)라 칭함
1682 - 구교리에 소재한 향교를 현소재지인 문선왕동(임천리)으로 이전
1683 - 원주의 강상죄로 인하여 양양의 양자를 따서 강원도를 강양도(江襄道)라 개칭
 
근대
1895 - 지방제도의 개정으로 양양군이 됨
1906 - 남궁억 부사 현산학교 창설
1919 - 기미만세운동 발발(연인원 6천명 6일간 계속됨)
1919 - 간성군이 폐지되고 토성면 죽왕면이 본군에 편입
1932 - 양양농민조합의 항일운동 전모가 탄로되어 700명이 검거되고 86명이 체형
1937 - 동해북부선 철도개설(양양역 설치)
 
현대
1945 - 8.15광복과 더불어 3·8선으로 남북이 단절되어 현남면을 비롯하여 현북면과 서면 남부일부가 강릉군에 속하고 나머지 양양, 강현, 손양, 속초, 토성 죽왕면과 현북, 서면 대부분이 북 치하에 들어감
1950 - 6·25전란이 발발하여 인명·재산 등 전화가 전국에서 제일 컸다.
1953 - 휴전 협정이 조인된 후 본군 전역이 수복됨
1954 - 수복지구 임시조치법에 따라 현남면은 명주군에 편입되고 현북면과 서면 일부는 다시 환원됨.
1963 - 행정구역개편으로 속초읍이 시로 승격분리되고 죽왕면 토성면이 고성군에 편입되는 반면 명주군 현남면이 본군에 환원됨
1972 - 양양군 관할에 있던 권금성, 비룡폭포, 피골등지가 속초시로 편입됨
1973 - 양양군 서면 명개리가 홍천군 내면에 편입되고 손양면 상왕도 일부가 양양면에 편입
1979 - 양양면이 읍으로 승격
1983 - 강현면 상복리 일부가 속초시에 편입
1994 - 1차시군(속초, 양양) 통합찬반투표실시 유효투표수(8,253) 찬성(1,316-15.9%) 반대(6,937-84.1%)로 부결됨
1995 - 2차 시군(속초, 양양) 통합찬반투표실시 총유효투표수(7,696) 찬성(1,575-20.5%) 반대(6,121-79.5%)로 또다시 부결됨
2000 - 현북면 만세고개에 기미만세운동기념 유적비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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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