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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당진군 충청남도 당진군 정보
충청남도 당진군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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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2023년 12월 1일
2005년 6월
2005년 6월 3일
당진군의 어제와 오늘
about 충청남도 당진군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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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3. 01:02) 
◈ 당진군의 어제와 오늘
1. 어제와 오늘
 
 
 
충남 서북부에 위치한 당진은 다른 지역과 달리 비교적 평야가 많고 해발 400m의 낮은 파랑상(波浪狀)의 구릉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군의 중앙에는 아미산, 다불산, 이배산이 있고, 아미산은 본군 최고(最高)의 산악으로서 남북으로 분수령을 이루고 있으며, 그 외에는 야산과 평야지대이다. 특히 우강면·합덕읍에 걸친 소들강문(牛坪江門) 평야는 충남 제일의 곡창지대로 예당(禮唐) 평야의 연장선에 있으며 내포(內浦) 평야에 포함되고 유명한 당진쌀을 생산하고 있다. 당진읍·고대면·정미면에 걸친 채운들(彩雲坪)은 본군 제2의 곡창지대이다.
또한 군의 남동쪽으로는 충남 제2의 젖줄인 삽교천이 흐르고 있는데 우강면에 있었던 범근내포(犯斤乃浦)는 우리나라 중부지방 최대의 조창(漕倉)이 있었던 곳으로 옛부터 당진이 곡창지대였음을 입증하고 있다. 1979년 완공된 삽교천 방조제는 저수량 8,400만 톤의 삽교호를 만들어 반만년간 상습 한해에 시달리던 당진군을 비롯한 아산, 홍성, 예산군 일부 등 4개 시·군, 25개 읍·면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으며 1983년 지정된 삽교호 국민관광지는 서해안의 대표적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또한 1984년 준공된 대호방조제는 길이 7,808m로 당진·서산시를 연결하면서 광대한 농경지를 조성하게 했으며, 1991년 완공된 길이 10.6㎞의 석문방조제는 동양최장의 길이를 자랑하면서 농경지와 공업지대 후보지로 농·공 병진(進)이 기대되고 있다.
 
 
 
교로리 외목마을 해돋이
 
그리고 우리 당진은 옛부터 인심이 매우 순후(淳厚)하여 외지에서 왔다가는 모든 공무원들이 “울고 왔다 울고 가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 이유는 발령장을 받고 궁벽한 당진으로 오면서 여기서 어떻게 살까 하고 울고 왔다가 어느덧 몇 년이 지나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됐을 때 그 동안 순후한 인심 속에 마을사람들과 인정이 깊이 들어 떠나기 아쉬워 또 다시 눈물 흘리며 울고 간다는 데서 유래된 말이다.
 
<당진군 연표>
시 대
연 대
주 요 사 항
 
고대
삼한
 
마한의 영역
 
 
백제
 
이 지역에 혜군이 있고 그밑에 벌수지현(伐首只縣), 여촌현(餘村縣), 사평현(沙平縣)을 두었다.
 
신라
경덕왕 때는 혜성군의 영현인 당진현이었다.
 
고려
983
 
성종 2년, 전국을 12주로 나눌 때 공주에 속함
 
 
1018
현종 9년, 운주(홍성)에 속한 당진현이었다.
 
1106
예종원년, 당진현에 감무를 둠
 
1358
공민왕 7년, 홍주목에 속함
 
조선
1413
 
태종 13년, 충청도 당진현(현감을 둠)이 됨
 
1440
 
세종 22년, 당진읍성 축조
 
 
1895
고종 32년, 당진군이 되어 8개면을 관할, 해미현이 해미군으로 됨
 
근대
1914
군·면폐합으로 면천군(22개면), 해미군 일부, 예산군의 일부와 합덕현, 신평현이 당진군에 병합됨
해미군은 서산군에 병합
 
현대
1957
 
서산군 대호지면과 정미현의 18개리를 편입시킴
 
 
1963
 
당진면이 읍으로 승격
 
 
1973
 
합덕면이 읍으로 승격, 정미연 여미리 서산시로 편입
 
 
현재
2읍, 10면
 
 
 
 
 
 
 
 
 
 
2. 역사문화자원
 
역사적 사건과 현장
◈백제의 부흥운동 660년 백제가 멸망하자 전지역에서 백제부흥(독립)운동이 전개되었는데 당시 일본에서는 백제의 부흥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663년 400척의 병선(兵船)에 1만 명의 군대를 이끌고 백제의 고토(故土)에 도착하였고, 당나라는 신라를 지원하기 위하여 170척의 병선에 7천명 군사를 이끌고 역시 백제 고토에 도착하여 격전이 전개되었는데 지금까지는 그 격전지가 금강 입구로 추정되어 왔으나 금강입구가 아니고 본군(당진군) 석문면, 고대면, 아산만 해안이라는 새 학설이 제기되었다. 그 기록은 이미 1916년 조선총독부 발행 「조선보물·고적조사 자료」에 명기되어 있고 유적은 고대면 대촌리에 있다.
 
◈오페르트 도굴사건(남연군묘 도굴사건) 조선 고종 5년(1868) 4월 독일 상인 오페르트는 기선 차이나호(680t급)에 소증기선 그레타호(60t급)와 100여명을 싣고 당시 홍주목 신평현(현 당진군 신평면) 행담도에 정박했다. 얼마후 밀물에 수십명의 무장한 사람들이 그레타호를 타고 삽교천을 통하여 구만포(예산, 고덕, 구만)에 상륙, 가야동(예산, 고덕, 상가) 남연군묘(대원군 부친묘)에 도착하여 도굴하려다 실패하자 퇴거했다.
 
◈합덕농민운동 홍주목 합덕현 신남면 창리(현 합덕읍 합덕리)에 거주하던 이정규(전 전라도 병사, 덕산군수)가 합덕방죽(연호)일부를 사유화하고, 연호의 수세(水稅) 강제징수 획책, 농민착취가 극심하여 연호 몽리지역 6개 마을(합덕, 도, 옥금, 대합덕, 점원, 신석리) 농민 800여 명이 고종 30년(1893) 12월 그믐(음) 홍주목사에게 진정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정규가 농민 800여 명을 전원 학살하라는 지시에 흥분한 농민들이 그날 밤 이정규의 주택에 방화한 의거이다. 이는 동학혁명보다도 2개월 반이나 앞선 농민항쟁이다.
 
◈소난지도 150의병 투쟁 1905년 을사조약, 고종의 강제 퇴위, 한국군 강제해산에 격분한 홍일초가 지휘하는 150명의 의병들이 석문면 소난지도에 상륙한 일본군 1개 소대와의 격전 중 전멸 당했으니 때는 1908년 2월 12일(음)이었다. 1982년 8월 15일 석문중학교에서 묘소를 정화하고 의총비를 건립해, 매년 추모제를 거행한다.
 
◈대호지 4·4독립만세운동 1919년 4월 4일 면장 이인정이 주축이 되어 남주원, 송재만 등 600여명이 궐기한 항일 독립만세 운동으로 대호지면 조금리에서 정미면 천의리까지 시위를 전개하여 거의 모두 구속, 수감되어 옥고를 치룬 본군 최대 규모의 항일 독립만세운동이다. 1972년에 128명의 추모비와 만세운동 참가자 578명의 사당 창의사가 건립되었고 1995년엔 정미면 천의리에 기념탑이 건립되었다. 매년 4월 4일에 기념식과 기념행사가 거행되고 있다.
 
 
 
대호지 4·4독립만세운동 재현장면
내 고장의 역사적 인물
◈김대건(1821∼1846) 한국 최초의 신부 영세명은 앙드레. 우강면 송산리 솔뫼에서 탄생하였는데 그는 한국인 최초의 신부, 최초의 근대 유학생, 최초의 나침반 사용자로서 5개국어(라틴어, 프랑스어, 중국어, 영어, 한국어)에 능통한 어학자였다. 아편 전쟁 후 남경(난징)조약 체결시 프랑스 대표 통역관으로 참석하였고,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보다 16년 앞선 1845년 프랑스어로 표기된 「조선전도」란 지도를 제작하여 프랑스 선교사들에게 배부했고, 서양 근대 문물을 조국에 소개하여 한국의 근대화에 앞장선 선구자였다. 따라서 한국 천주교 성인 103위의 으뜸이다.
 
 
 
최초의 신부 김대건
◈김찬영(金瓚泳, 1889∼1973) 애국지사, 법조인. 호는 심농, 본관은 연안, 송악면 월곡리 출생. 고향에서 한문 수학 후 서울 법관 양성소 졸업. 대한제국 영동지원 판사로 임용되어 근무하다가 1910년 경술국치로 일제에 항거, 법복을 벗고 재야 변호사로 국내외 동포 애국지사의 변호에 앞장섰다. 8·15광복 후 검찰총장, 대법관, 헌법심사위원, 법전 편찬위원 역임. 1954년 정년 퇴임 후 성균관 부관장, 백범 김구 선생 기념사업회와 곽재우 기념사업회 고문, 대한변호사회 회장, 충남향우회 회장, 5월 동지회 회장 역임. 묘소가 천안시 삼룡동에 있다.
 
◈이괄의 난을 평정한 남이흥(南以興, 1576∼1627)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의령, 호는 성은이다. 무과에 급제한 후 포도대장, 충청·경상도 병사, 귀성부사, 안주목사, 평안도 병사가 되었다. 그 후 이괄의 난을 평정하여 1등 공신이 됐다. 인조 5년 (1627)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평안도 병사로 영변부사를 겸임하고 있었는데 안주성에서 후금(청) 군대와 싸우다 중과부적으로 안주성에서 자폭하고 말았다. 대호지면 도리리에는 그의 묘소와 정려(충신문)와 신도비와 유물관인 모충관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매년 9월 대호지면 도리리에서 충장공 남이흥장군 숭모제가 거행되고 있다.
 
◈맹사성(孟思誠 1360∼1438) 고려말 조선초 명상(名相), 호는 고불, 본관은 신창, 최영 장군의 손자 사위. 충청도 한산에서 살다가 아산군 배방면으로 이사하여 거주함. 권근의 문인. 고려우왕 때 문과 급제, 조선 건국 후 이곳 면천지군사(군수)를 지냈으며, 예조판서, 호조판서, 충청도 감사, 공조판서, 이조판서, 대제학, 우의정, 오군도진무, 좌의정, 영춘추관사를 역임하고, 팔도지리지 찬진, 청백리에 녹선, 시호는 문정. 면천지군사(군수) 재임시 그 은택이 백성에게 미친바 있어 백성들이 그를 칭송한다는 기록이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있다.
 
◈실학자 박지원(朴趾源 1737∼1805) 조선 후기의 실학자, 소설가, 호는 연암, 본관은 반남. 실학자 홍대용에게서 서양 신학문 수학, 정조 때 박명원 진하사를 따라 청나라 사람들의 이용후생 생활을 목격한 후 실학에 뜻을 두었다. 60세에 이곳 면천군수로 부임했다. 그 후 양양부사 승진. 당시 홍대용, 박제가 등과 함께 북학파의 영수로 청의 문물 수용을 주장. 그의 『열하일기』는 청의 실학사상을 잘 소개함. 허생전, 호질, 양반전 등 10편의 한문소설은 문체 혁신의 표본이 됨.
 
◈고려개국공신 복지겸(卜智謙) 고려 태조 때의 무장(武將), 면천복씨의 시조, 처음 이름은 사귀, 또는 사괴, 태봉(후고구려)의 마군장군으로 있다가 궁예가 민심을 잃게 되자 태조 1년(918) 신숭겸, 배현경, 홍유 등과 함께 왕건을 추대하여 고려를 세우고 개국공신 1등에 녹훈되었다. 환선길의 반란을 태조에게 알려 진압하도록 했고, 임춘길의 모반을 평정하는 등 공을 세움. 그후 태사(太師)에 추증되고, 태조 묘정(사당)에 배향되었고 무공의 시호가 내려졌다. 그의 딸이 심었다는 면천 은행나무가 면천초등학교 교정에 있고 그와 관련된 두견주가 민속주로 전국에 시판되고 있다. 그의 제단이 순성면 양유리에 있다.
 
◈상록수의 저자 심훈(沈熏, 1901∼1936) 소설가, 시인, 영화인으로 본명은 대섭(大燮), 본관은 청송, 호는 해풍인데 서울시 노량진동에서 출생하였다. 1915년 경성제일고보 재학 중 3·1운동에 참가하여 투옥, 퇴학당했다. 그 후 1920년 중국으로 망명했다가 1923년 귀국하여 연극, 영화, 소설 등의 집필에 몰두했다. 그 뒤 1926년 한국 최초의 영화 소설 『탈춤』을 동아일보에 연재했는데 1932년 본군(당진군) 송악면 부곡리로 내려와 집필에 전념, 『상록수』를 써서 1935년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기념 현상 소설에 당선되었고, 1936년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 우승에 감격하여 「오.오. 조선의 남아여」란 즉흥시를 호외에 쓴 것이 마지막 글이다. 1976년 7월 당진읍 남산에는 그의 기념시비 상록탑이 건립되었고 애국시 「그날이 오면」 전문이 조각되어 있다. 매년 가을 당진에서는 「상록문화제」가 거행되고 있다.
 
◈대학자 송익필(宋翼弼, 1534∼1599) 조선 중기의 학자로 본관은 여산, 호는 구봉, 현승, 신분이 미천하였으므로 관계(官界)에 나가지 못했으나 당대 학자, 정치인들과 교유하여 그 폭이 매우 넓었고 시와 문장에 능하여 당시 8대 문장가의 1인이었다. 특히 예학(禮學)의 대가, 성리학의 태두로서 명성이 대단했고 그의 문인들이 김장생, 김집 부자를 비롯하여 많이 배출되었다. 고향은 경기도 고양시 인데 안당의 화 관계로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본군 송산면 매곡리에 사는 친구인 김진려에게서 살다가 작고했는데 사헌부 지평(持平)의 증직과 문경(文敬)의 시호가 내려졌다. 묘소와 비석과 사당(입한재)이 당진읍 원당리에 있으며 매년 10월 제향이 시행되고 있다.
 
◈청백리 이안눌(李安訥, 1571∼1637) 조선의 문신, 시인, 호는 동악, 본관은 덕수. 선조 32년 문과 급제후 예조·이조 정랑, 동래·담양 부사, 경주 부윤, 숭문원 동부승지, 예조참의, 강화부윤, 예조참판, 예조판서, 공청도(충청도)감사 역임. 청백리에 녹선. 선조 때 시인 권필과 쌍벽을 이루는 시인으로 당의 이태백에 비유되었다. 좌찬성에 추증, 면천군(현 송산면 명산리)의 향현사(동악서원)와 담양의 귀산서원에 제향되고 시호는 문혜.
△저서 『동악집』 △묘소·신도비 - 정미면 사관리.
 
◈왜군을 격파한 이양원(李陽元, 1533∼1592) 조선의 문신, 호는 노저·남파, 본관은 전주. 이황(퇴계)의 문인. 문과 급제 후 종계변무사 서장관, 평안·충청·경기도 감사, 형조판서, 대제학, 대사헌, 광국3등공신, 한산 부원군, 우의정 역임. 임진왜란 당시 유도대장으로서 부원수 신각, 함경도 병사 이혼의 군사와 합세하여 해유치에서 왜군을 격파 대승하여 영의정에 승진함. 의주에 몽진중인 선조가 요동으로 건너가 내부(內附)했다는 와전된 소문을 듣고 통탄하여 단식 8일만에 절명함. 시문에 능했고 시호는 문헌이다. 묘소가 대호지면 송전리에 있으며 1999년 문헌공 이양원 영의정 기념사업회가 창립되어 활동하고 있다.
 
◈언론인 이종린(李鍾麟,1881∼1950) 독립투사, 정치가, 언론인으로 호는 황산, 도호는 보암, 본관은 성주인데 서산시 지곡면 화천리에서 출생하여 정미면 승산리에서 성장했다. 향리에서 한학 수학 후 1908년에 성균관 박사, 그후 대한협회 회보 편집, 대한민보 주필, 천도교회 월보 창간, 조선독립신문 발행, 천도교월보 사장, 개벽사 사장, 조선 기근 구제회 위원장, 조선기자 대회 대표 위원, 중앙실비 진료원 이사장, 전조선 수해 구제회 위원장, 조선물산장려회 이사장, 신간회 집행 위원장, 1929년 광주학생운동 진상보고 및 탄압 성토 민중대회 사건으로 검거당함. 그 뒤 천도교 통일 기성회 위원장, 중앙위원회 대표, 천도교 대종사장, 천도교 교령, 8·15광복후 대한민국 제헌국회 의원에 당선, 헌법기초위원 전형위원, 교통체신 위원장, 제2대 국회의원 재선, 6·25동란 당시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옥중 발병돼 출감 직후 작고함. 1967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웅변가, 단편소설가로서 그의 유고 일부가 손자(동초)에 의해 황산집으로 발간되었다. 정미면 승산리에 그의 묘소와 묘비와 고택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을 편찬한 이행(李荇, 1478∼1534) 조선의 문신, 호는 용재, 청학도인, 창택어수, 본관은 덕수, 문과급제 후 예문관 검열을 거쳐, 성균관 대사성, 좌승지, 도승지, 대사헌 역임. 조광조 등 신진 사류의 배척으로 첨지 중추부사로 좌천되자 사직하고 고향(현 송산면)으로 낙향함. 그 후 다시 이조판서, 우의정, 『신증동국여지승람』 수찬당상, 좌의정 역임. 권신 김안로의 전횡을 논박하다 도리어 판중추부사로 좌천, 평안도 함종에 유배 사망. 시호는 문정(문헌). △저서 『용재집』 △묘소 - 송산면 도문리 능안. 그가 심었다는 회화나무(천연기념물 제317호)가 송산면 삼월리에 있음.
 
◈의병장 정주원(鄭周源 1868∼1925) 항일의병장, 호는 송운, 본관은 연일로 고대면 용두리에서 출생 성장했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 1907년 고종의 강제퇴위, 군대의 강제해산 등 국권이 동요될 때 항일의병 투쟁이 거국적으로 일어나자 1907년 8월 39세의 나이로 당시 경기도 죽산군 원산면 하수리에 있다가 자진 의병에 투신, 150여명의 의병을 규합 의병대장이 되어 당년 9월 이후 경기도 죽산, 양지 2개군을 순회하며 의병을 규합한 결과 무려 900여명이 운집했다. 그는 의병운동에 박차를 가하여 1908년 7월까지 경기도 안성, 죽산, 양지, 수하, 용인, 풍도, 충청도 당진, 서산, 면천군 전지역에서 일본군과의 항일 의병전을 전개했으나 해미군 적서촌(현 대호지면 적서리)에서 위장된 일본군에게 체포당하였다. 그 후 재판에 회부되어 교수형, 종신유형, 징역 3년 선고로 감형되어 옥고를 치루고 석방되었다. 그후 송악면 가학리에서 살다가 57세를 일기로 경기도 평택군 오성면 숙성리에서 작고했다. 건국 후 대한민국 건국포장과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향토사학자 홍석표의 주선으로 지난 1984년 11월 묘소 정화와 기념비(의병장 정주원 숭의비) 제막식을 묘소 현장(송악면 가학리)에서 거행했다.
 
내 고장의 문화유산
■보물
◈안국사지 석불입상 제100호, 정미면 수당리
 
 
 
안국사지 석불입상
◈안국사지 석탑 제101호, 정미현 수당리
 
◈영탑사 금동 삼존 불상 제409호, 면천면 성하리 560
 
◈산암사 금동 좌불상 제987호, 송악면 가교리
 
 
■천연기념물
◈송산 회화나무 제317호, 송산면 삼월리
 
 
■중요무형문화재
◈기지시 줄다리기 제75호, 송악면 기지시리
 
◈면천 두견주 제86-나, 면천면 성상리
 
 
■중요민속자료
◈남이흥장군 유품 제21호, 대호지면 도리리
 
 
■유형문화재(이하 도지정)
◈영랑사 대웅전 제15호, 고대면 진관리
 
◈이만유 장군 유품 제84호, 신평면 거산리
 
◈영탑사 약사여래상 제111호, 면천면 성하리
 
 
■기념물
◈남이흥장군묘 일원 제52호, 대호지면 도리리
 
◈합덕제 제70호, 합덕읍 합덕리
 
◈면천 은행나무 제82호, 면천면 성상리
 
◈면천읍성 제91호, 면천면 성상리
 
◈필경사 제107호, 송악면 부곡리
 
 
 
필경사
◈당진 향교 제140호, 당진읍 읍내리
 
◈면천 향교 제141호, 면천면 성상리
 
 
■문화재자료
◈영탑사 7층석탑 제216호, 면천면 성하리
 
◈채운포 석교비 제217호, 당진읍 채운리
 
◈영탑사 범종 제219호, 면천면 성하리
 
◈영랑사 범종 제221호, 고대면 진관리
 
◈한음선생 영정 제298호, 송악면 금곡리
 
◈이의무 신도비 제313호, 송산면 도문리
 
◈한갑동 가옥 제330호, 우강면 원치리 145-2
※ 이밖에도 향토유적(면천군자정 등 9건)이 있다.
 
 
 
 
 
 
3. 생활문화자원
 
구전설화
◈온동방죽과 곰쇠 고대면 당진포리 서북방에 온동 방죽이 있고 그와 관련된 전설이 있다. 옛날 이 지방 토호(土豪)가 양반 행세하며 곰쇠라는 하인을 두고 있었다. 곰쇠는 항상 상전의 말고삐를 잡고 다니고 있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주인은 말을 타고 곰쇠는 말고삐를 잡고 온동마을을 지나게 됐다. 주인이 “아! 날도 무덥구나. 목이 말라 물을 먹고 싶은데 어디 샘이 없느냐?” 물었다. 이에 곰쇠 하는 말이 “상전님, 물위에 서서 물을 찾는 분이 어디 있습니까?” 지금 주인 어른께서는 물위에 떠있지 않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주인은 “이 놈, 농담을 해도 분수가 있지, 그게 무슨 주제 넘는 소리냐” 호통치며 그릇을 내어 주며 물을 떠오라고 명했다. 그 때 곰쇠는 “주인님, 저와 내기를 할까요” 하며 말채찍을 들어 말밑 길 위를 푹 찔러 구멍을 냈더니 그 구멍에서 맑은 정수가 솟아 나와 그 물을 그릇으로 떠서 주인에게 드렸다. 이에 주인은 이런 놀라운 사실을 체험하고 곰쇠가 하인(下人)이지만 보통사람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 뒤 그 물구멍은 넘치는 물로 점차 커지고 물은 점점 많이 고여서 마침내 방죽이 되었으니 사람들은 이 방죽을 온동방죽이라 불러오고 있다 .
 
◈김복선과 임진왜란 홍주목 신평현(현 당진군 신평면)에 망객산이 있다. 이 망객산 아래에 이인(異人) 김복선(金福善)이 있었는데 세상 사람들은 그를 업신여겼으나 율곡(이이)과 토정(이지함)선생은 그의 학식과 숨은 재주가 있음을 알고 가끔 찾아와 앞으로 있을 임진왜란을 크게 걱정하니 그는 “인신년(寅申年) 상사(喪事)에 왜 임진년 걱정을 하시오”하면서 서로 한탄하다가 작별했는데 과연 그의 예언대로 토정은 무인년에, 율곡은 갑신년에 세상을 떠났으므로 김복선의 예언은 적중했으며 이곳 망객산에서 두 손님의 오고감을 바라본 산이므로 이 산 이름이 망객산(望客山)이 되었다 한다.
 
◈합덕방죽 노래 연꽃일레 연꽃일레 합덕이라도 방죽 / 연꽃일레 피었네 피었네 보았더니 옴쳤네 / 옴쳤네 옴쳤네 보았더니 피었네
피었네 피었네 무슨꽃이 피었나 / 연꽃이 피었네 / 피었다고 하였더니 볼 동안에 옴쳤네 / 피었네 피었네 무슨 꽃이 피었나 / 무슨 꽃이 옴쳤나, 연꽃이 옴쳤네 / 옴쳤다고 하였더니 볼 동안에 피었나.
 
◈향언(鄕言, 지방속담) ‘합덕방죽에 줄남생이 늘어 앉듯’이라는 이 지방의 속담이 있다. 합덕읍 성동리에 있었던 합덕방죽(연호, 연지, 합덕지, 합덕제)가에 무수히 많은 낚시꾼들이 앉아 있는 모습을 표현한 당진군 합덕지방 관련 속담이다.
 
주민의 종교생활
◈전통적인 마을 신앙이 곳곳에 아직 남아 있는데 대표적인 것은 내도(안섬) 풍어제이다.
현재는 불교 사찰 17개소, 개신교 교회 144개소, 천주교회 4개소, 향교 2개소, 천도교 1개소, 기타 종교 1개소가 있다.
 
◈구합덕 천주교회 고종 27년(1890) 예산군 고덕면 상궁 2리에 세운 양촌 성당이 효시로, 1899년 현 합덕읍 합덕리 구합덕으로 이전, 1929년 현재의 건물을 지었다. 당진군 최초의 천주교 성당이다.
 
◈솔뫼성지(聖地) 우강면 송산리 솔뫼는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 김진후(1738~1814, 면천군수 역임) 조부 택현, 종조부 한현, 부 제준, 자신(대건)등 4대가 살던 곳이다.
 
 
 
솔뫼성지
◈신리 성지 합덕읍 신리 소재 신리 공소는 순조 16년(1816)에 건립되었는데 5명의 성인(순교자)이배출되었다.
 
◈난지도 교회(감리교회) 석문면 난지도리에 1903년 로버트 아더 샤프 선교사의 전도가 효시
 
◈삼화교회(감리교회) 석문면 삼화리 외창 삼화 감리교회가 1905년 4월 설립됨
 
주민의 생활권역
◈당진읍 읍내리 푸른병원 부근 일대에 상가가 조성되고 있으며 부근이 아파트 지역으로 인구가 밀집되어 있다. 또한 신평면 거산리가 아파트 지역으로 부상하며 상가 지역으로 인구 집중이 가속화되었고, 석문면 교로리에 당진 화력발전소가 건설되면서 부근 일대에 새로운 상가가 조성되어 인구가 집중되었다. 송산면, 송악면의 아산만 해안에 한보철강, 동부제강 등 대규모 공장이 건설되어 그 일대에 아파트 지역이 형성되고 수많은 음식점(가든)이 집중되어 있다. 석문면 교로리 왜목마을이 서해안 유일의 해뜨고 지는 마을로 부상되어 상가·식당이 들어섰다.
 
◈대호지면 도리리 의령남씨 종족마을 임진왜란 때 순국한 나주목사 남유(南瑜)의 아들 남이흥(南以興)은 정묘호란 때 순국했다. 이곳 대호지면 도리리에 의령남씨의 종족마을이 형성된 것은 남이흥 장군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그의 순국 후 인조가 「충장」이란 시호를 내리고, 당시 해미현 서면(현 대호지면 전역과 정미면 일부)을 사패지로 지급했기 때문이다. 그후 남이흥 장군 미망인(정씨)은 인조 19년 (1641) 사패지의 일부인 대호지면 도리리에 종가(宗家) 고택(故宅)을 짓고 거주하기 시작했으니 이것이 도리리에 의령남씨가 거주하게 된 효시이다. 의령남씨 충장공파 종계(宗契)는 충장공(남이흥)의 현손 의안군 익화(1667∼1733)가 중심이 되어 창립한 것이다. 현재 의령 남씨는 64명이 대호지면에 거주하고 있다 (1996년 기준) .
 
지역의 별미음식
◈면천 두견주 면천면 성상리 693-1, 박승규가 기능 보유자로서 지난 1986. 11. 1 대한민국 중요무형 문화재가 86-나로 지정되어 전국 각지로 보급 판매되고 있다. 고려 개국공신 복지겸이 중병으로 고생 할때 그의 딸이 아미산에 올라가 백일기도를 드렸다. 마지막 날 현몽하기를 아미산의 진달래꽃을 따다가 안샘물로 술을 빚어 100일 지난 뒤 아버지께 드리라는 꿈을 꾸고난 후 두견주를 빚어 아버지께 드려 병이 완치됐다는 전설이 있다.
 
◈학유주(鶴遊酒) 당진읍에서 만드는 술에 학유주가 있다. 찹쌀 100%, 홍삼도 함께 넣어 만든다. 값이 저렴하고 맛이 순하여 애용되고 있는 청주이다.
 
지역의 토산품과 특산품
◈당진쌀 당진하면 쌀, 쌀하면 당진쌀, 단보당 생산량이 1997∼98년 2년 연속 국내 1위(단보당 597 kg∼560kg 생산) △생산지 - 소들강문(예당평야), 채운평 등
 
◈꽈리고추 당진 전지역에서 생산되는데 130.5ha의 재배면적에 연간 6,003t을 생산하여 97억원의 농가소득을 올리고 있다. 전국 생산량의 60∼70%점유하고 있다.
 
◈고대 삼베 △주요 생산지 - 고대면 슬항리, 용두리, 대촌리, 대마 재배 및 삼베 생산 농가 147가구, △재배면적 - 7ha(211,113평) △삼베 생산량 - 연간 802필
 
 
 
 
 
 
4. 예술문화자원
 
지역문화예술행사
◈상록문화제 [상세정보] △주최 : 상록문화제 집행 위원회 △개최시기 : 매년 가을(9월) △개최장소 : 당진읍 읍내리, 채운리 등 당진읍 시가지 일원 △행사내용 : 궁도, 농악, 씨름, 그네뛰기, 시조경창, 미술실기, 한시 백일장, 상록수 독후감 쓰기, 창작시 현상 모집, 한복 바르게 입기, 가훈짓기, 민요경창, 문학강연, 군민어울마당, 심훈 문학상, 서예, 주부백일장, 등불행진 등.
 
◈기지시 줄다리기 [상세정보] △개최시기 : 매 음력 윤년(양력 삼월) △개최장소 : 송악면 기지시리 △주관 : 기지시 줄다리기 집행 위원회 △행사내용 : 줄다리기, 농악, 그네뛰기
 
◈안섬 풍어제 △주최 : 안섬풍어당굿놀이 보존회 △개최시기 : 음 정월 첫진일 △개최장소 : 송악면 고대리(안섬) △행사내용 : 풍어 기원 당굿 놀이
 
◈아라 음악회 △주최 : 아라관광 △개최시기 : 10월 △개최장소 : 군민회관 △행사내용 : 가곡
 
◈충장공 남이흥 장군 문화제 [상세정보] △주최 : 남이흥장군 문화제 집행위원회 △개최시기 : 매년 9월 △개최장소 : 대호지면 도리리(충장사 경내) △행사내용 : 기념식, 궁도대회, 백일장(학생), 씨름, 미술실기, 국악
 
◈대호지4·4독립만세운동 기념행사 △주최 : 대호지4·4독립만세운동 기념사업회 △개최시기 : 매년 4월 4일 △장소 : 대호지면 조금리(창의사 경내) △행사내용 : 기념식, 백일장, 만세재현, 만세거리달리기대회.
 
◈가화포도축제 △주최 : 작목반 △개최시기 : 매년 9월 △개최장소 : 순성면 본리(가화 마을) △행사내용 : 가화포도 아가씨 선발, 가수 초청 노래자랑.
 
지역문화예술단체
◈한국 미술협회 당진지부 △당진군 순성면 성북리 △회원 : 22명 △지부장 박기호 ☎ (041)353-5106
 
◈기지시 줄다리기 보존회 송악면 기지시리 기지시 줄다리기 전수회관내에 있음. ☎ (041)355-8118, 회장 이우영
 
지역언론기관
◈충남 방송국(CNK) 당진읍 채운리 123-6, 채널-5 ☎ (041)357-0102∼3, △가시청지역-당진, 서산, 홍성, 예산 등.
 
◈당진뉴스 당진읍 계성1리 273-5 ☎ (041) 357-4710∼2 FAX 357-4713
 
◈당진시대 당진읍 채운리 267-4 ☎ (041) 355-1434/5440, 352-4598, FAX 355-2842
 
문화예술교육, 연구기관
◈내포문화연구원 △당진읍 중앙리 156-1, △원장-홍석표(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 위원) △회원수-65명 ☎(041)355-2893
 
◈당진향토문화연구소 △당진읍 읍내리 △회원수-19명 △회지-내포문화(11호 발간) ☎ (041) 353-4713
 
◈당진지역사회연구소 △당진읍 읍내리 △소장 - 이익주 △회원수-20명, ☎ (041) 355-5941
 
지역문화예술 시상제도
◈당진군민대상 당진군내에 계속 5년 이상 거주한 자로서 지역사회개발, 향토문화 선양, 사회 윤리 부문등 4부문에 시상. 심사위원 2/3 이상의 득표자에게만 시상한다. 수여자는 당진군수이며 부상은 순금 40돈인 당진군 최대 최고의 영예가 되는 상이다.
 
◈초부 김용재 향토문화상 당진 향토문화 발전에 공적이 있는 지역 인사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학술, 예술 등 8개 부문으로 나뉘어 시상한다. 초부 김용재 교육문화재단에서 접수하여, 부문별 1명씩 매년 시상한다.
 
지역출신 예술인
◈신영상 1935년 당진 출생,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국전 초대작가 심사위원, 한국미술대전·중앙미술대전·MBC미술대전 심사위원, 인디아 브리엔날 국제전·아시아현대 미술전·현대작가 초대전 등 수많은 국내외 미술전람회에 출품하였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교수로 재직중.
 
◈김창희 1938년생, 당진군 대호지면 장정리에서 출생. LG트윈타워 빌딩 아트룸에 「화합과 조화」 조각작품 세움(12명의 남녀 군립 형태). 현재 서울시립대 환경조각학과 교수로 재직중
 
◈박기호 1956년생, 추계예술대 서양화과 졸업, 파리 국립 미술학교 졸업, 대한민국 미술대전 대상 수상(1983년), 서울신문사 정예작가 초대전, 3대 수상 작가 초대전, 한국 미협 당진지부장.
 
◈이근배 1940년 당진군 송산면 삼월리에서 출생.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1961∼1964년 경향, 서울, 조선, 동아, 한국 등 일간지 신춘문예에서 시조 등 당선으로 문단데뷔. 1963∼1964년 제2회, 제3회 문공부 신인예술상 수상. 저서로는 시집 『노래여 노래여』 등 다수. 현재 재능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중.
 
◈박영진 충남 당진에서 출생하였다. 1981∼1987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 2회, 입선 6회, 1997∼1999경기대학교 디자인·미술 학부상 수상, 현재 사단법인 한국서가협회 부회장, 경기대학교 전통예술감정대학원 원장, 경기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
 
◈최영근 본적 충남 당진. 사진작가, 개인전 1회, 「문화재 전국사진 공모전」 특별상 수상, 「충청남도 미술대전」 대상 수상, 「월간사진 콘테스트」 금상 수상, 현재 사단법인 한국사진작가 협회 국제분과 위원·당진문화원 이사·아미사진 연구회 회장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송봉화 충북 청원 출생의 사진작가, 한국사진작가협회 회원, 한국민사협회원, 한국역사민속학회 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우리 민족문화를 사진 영상작업으로 정리하고 있다. 사진집으로는 『당진의 재발견, 살아있는 문화유산』, 『기지시줄다리기』, 『솟대』,『장승과 벅수』, 『다비와 사리』, 『서낭당』, 『충청마을지킴이』가 있으며 충남 미술 대전 초대작가로 활동 함.
 
지역소재 예술작품
◈김창희의 조각작품 당진군 정미면 「4·4기념탑」, 당진읍 읍내리 당진문화원 「고향마을」, 당진군 도암공원 「당진인상」 등이 있다.
 
 
 
 
 
 
5. 관광, 여가문화자원
 
관광자원
◈아미산 면천면 죽동리. 당진읍 → 면천방향 → 전죽동초등학교, 당진군 최고봉(345m)
 
◈송산 회화나무(천연기념물 제317호) 송산면 삼월리, 조선 중종때 좌의정이었던 이행이 460여년전 심었다는 회화나무.
 
◈안국사터 정미면 수당리 안국사지 석불입상(보물 제100호), 안국사지 석탑(보물 제101호)
 
◈합덕제 합덕읍 합덕리∼대합덕리 충청남도 기념물 제70호.
 
◈쌉싸리방죽(백미제) 합덕읍 대전리, 후백제때 견훤이 축조했다는 설이 있는 당진군 최고(最古)의 저수지로 원형이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관광시설
◈삽교호 국민관광지 신평면 운정리 삽교호 옆 1979년 10월 삽교천 방조제(길이 3,360m)의 준공으로 서울과 당진간이 2시간대로 교통이 원활해진 결과 담수호인 삽교호와 제방밖의 서해 아산만 바다가 펼쳐지고 유람선이 왕래하며 전망대, 휴게소, 생선횟집, 농수산물 판매 등 각종 편의시설이 구비되어 관광 명소로 국내·외 경향 각지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붐비고 있다. 2000년 10월 개통 예정인 서해대교가 준공되면 행담도 국제 관광지와 함께 부근에 개관될 함상 박물관까지 있어 국내외의 수많은 관광객이 쇄도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삽교호
◈대호 농어민 휴양단지 석문면 난지도리(옛 도비도) △개설 : 1998.6.25 △주관 : 농업기반공사. △시설내용 : 대호암반 해수탕, 수산물 직판장, 전망대, 상가(회센터, 식당, 편의점), 교육관(세미나실, 강의실, 대강당, 체력단련실, 구내식당), 생태체험 학습장, 영농 체험장, 갯벌 체험장, 관광 유람선 ☎ (041)351-9200
 
◈왜목마을 석문면 교로리 왜목마을은 서해안에서 유일하게 해뜨고 지는 모습을 함께 볼 수 있는 곳으로 지난 1월 1일에는 10만 이상의 인파가 몰려온 곳이다. 동해안의 정동진과 같이 서해안 유일의 해뜨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식당, 여관, 횟집, 상점 등이 있다.
 
관광코스
◈제1코스 영랑사 → 보덕사 → 석문방조제 → 대호방조제 → 충장사 → 안국사지 → 영탑사 → 솔뫼성지 → 삽교호 국민관광지 → 필경사 → 회화나무
 
◈제2코스 상록탑 → 삽교호 국민관광지 → 솔뫼성지 → 영탑사 → 안국사지 → 4·4독립운동 기념탑 → 충장사 → 보덕사 → 영랑사
 
관광쇼핑
◈면천 두견주 면천면 성상리 면천 두견주 생산 공장 ☎ (041) 356-4555, FAX (041)356-6555
 
◈학유주 당진읍 읍내리 ☎(041)355-1488
 
관광안내소
◈당진군청 문화공보실 당진읍 군청내 ☎ (041) 350-3224, http//www.tangjin-gun.chungnam.kr
 
◈대호관광 당진읍 읍내리 489-3 ☎ (041)355-0374
 
◈당진우등관광여행사 당진읍 읍내리 224-8 ☎ (041)352-2141
 
여가시설
◈아미산 삼림욕장 면천면 죽동리 아미산 삼림욕장 겸 등산코스가 있다. 당진읍 → 면천면 죽동리 죽동학생수련장 → 아미산
 
◈난지도 해수욕장 석문면 난지도리 대난지도에 있다. 코스는 석문면 도비도 선착장 여객선 승선 → 난지도 해수욕장 도착. 매일 여객선 운항 인천항에서 선편으로 왕복 가능. 청소년 수련장 시설.
 
◈청소년 수련장 난지도 해수욕장 경내에 있으며 청소년 수련장, 여관, 식당, 목욕실, 휴게시설 등이 있어 가족피서, 학생 단체 수련장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6. 문화시설자원
 
도서관
◈당진 군립도서관 건평 - 130평 / 138석, 3,200권 / 당진읍 읍내리 남산 ☎ (041) 352-5918
 
◈합덕도서관 건평 - 990㎡(300평) / 310석 , 14,237권 / 합덕읍 운산리 ☎ (041) 362-4192
 
전수회관
◈기지시 줄다리기 전수회관 건평 - 72평. 송악면 기지시리 ☎ (041)355-8118
 
영화관
◈당진시네마 210석 당진읍 읍내리 ☎ (041)355-2116
 
문화원
◈당진문화원 당진읍 읍내리 △건평 : 1,130.16㎡(341.8평) △시설 : 지상 3층(문화공연장, 문화관람실, 창작실 공연연습실, 사무국, 자료실, 각종문화 이용시설) ☎ (041)354-2367/357-2367, FAX (041)356-3850 / E-mail : cc343dj @chollian .net 원장 민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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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