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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단양군 충청북도 단양군 정보
충청북도 단양군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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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2005년 6월 4일
단양군의 역사문화자원
2005년 6월 3일
about 충청북도 단양군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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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2. 16:32) 
◈ 단양군의 역사문화자원
◈ 역사적 사건과 현장 -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과 도담삼봉, 전국 최장수 군청소재지 이전 , 1972년 대홍수, 1988년 수해 / ◈ 내 고장의 역사적 인물 - 고려 문신 우탁(1263∼1343), 단양 장씨 장하 / 초대 조계종 종정 하동산 / ◈ 내 고장의 문화유산 - 단양적성비 제198호
목   차
[숨기기]
 

1. 역사문화자원

 
 

1.1. 역사적 사건과 현장

 
◈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과 도담삼봉
정도전은 단양읍 도전리에서 태어나서 단양소재지의 지명이 도전리이며 정도전이 어린시절을 단양의 수려한 산수를 벗삼아 살았기에 정도전의 호가 단양팔경의 하나인 도담삼봉을 따라 삼봉(三峰)이다.
 
정도전은 어린 시절 도담삼봉과 도전리를 오고가며 단양산천에 많은 영향을 받아 자(字)를 종지라 하였다. 고수에 있는 종지봉에 심취하여 자(字)를 종지라 하였음은 아름다운 단양의 산수경관에 심취되었음을 알수 있다. 단양에는 정도전의 출생에 관한 많은 전설과 어머니에 대한 일화도 있지만 정도전의 어릴 때 총명하고 재치있는 전설이 많이 전해온다.
 
◈ 전국 최장수 군청소재지 이전
1985년도 충주다목적댐이 건설됨에 따라 충숙왕 5년, 군이 설치된 이후 666년간 군청소재지였던 단양읍 상방리에서 매포땅 별곡리로 옮기는 대역사를 진행하였다.
 
2읍 3면 26리에 168만 평이 수몰되었으며 1,494세대 7,369명이 수몰의 아픔을 겪었다. 새로 이주된 신단양건설지구는 32만 5천 평이고 사업비는 103억 9천만 원에 2천 80세대가 입주할 단지로 8년에 걸쳐 한라건설에서 공사를 진행하였으며 기관단체가 한 개의 단지를 이루어 주민 편익을 고려한 계획도시로서 차를 타고 번지가 있는 집은 어디라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시가지 전역 100%가 차를 이용할 수 있다.
 
◈ 1972년 대홍수
1972. 8. 17 내린 폭우는 217mm, 8. 18일에는 98mm, 19일에는 32mm, 20일에는 87mm가 집중하여 내렸고 남한강 상류인 영월지방의 강우가 가세되어 단양의 크고 작은 하천이 범람하여 수위는 급상승되고 강폭이 좁은 지역은 해발 136m, 넓은 곳은 125m까지 홍수위가 올라가 단양읍 시가지가 8. 19일 오후부터 8. 20일 10시까지 20시간이 잠기는 바람에 교량도로가 완전히 유실되었고 통신, 전기가 두절된 상태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수해지역을 직접 방문, 응급복구 및 항구복구대책을 긴급 지시하여 월동기 전에 새 보금자리에 갔다.
 
◈ 1988년 수해
1988. 7. 9∼7. 20까지 단양지역 집중호우는 536mm였다. 집중호우로 10개지역에서산사태가 나서 하천이 범람하고 도로교량이 유실되는 큰 피해를 보았다. 당시 수해가 가장 큰 지역은 영춘면 61억 4천, 매포읍 58억 8천, 어상천 57억의 수해피해를 보았다. 복구비는 367억원이 투입되어 10년간의 개발을 앞당기는 전화위복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1.2. 내 고장의 역사적 인물

 
◈ 고려 문신 우탁(1263∼1343)
우탁은 태어나서 3일간을 울었다. 마을 사람들이 못나을 아이를 나았다고들 수근거릴 때 도승이 지나면서 “그 놈 벌써 주역을 외우고 있구만”하는 것이 후일 역동(易東)으로 호를 쓰게 한 연유라고도 한다.
 
27세에 문과에 급제, 영해사록을 지냈고 47세 때는 감찰규정에 있을 때 충선왕이 선왕의 후비와 가깝게 지내자 흰옷에 도끼를 메고 들어가 잘못을 간하니 왕이 뉘우치고 다시 벼슬을 내렸으나 나가지 아니했다. 사인암리에 자주 들러 단양의 수려한 경관을 즐긴 관계로 사인(舍人, 4품)이라는 벼슬의 이름을 따라 마을 명칭이 현재도 사인암리이고 단양팔경의 하나이기도 하다.
 
◈ 단양 장씨 장하
고려 공민왕 10년 홍건적 침입 때 나가 싸워 개경을 회복하고 우왕 9년 한양부윤 평양부윤 때 왜구를 물리치고 도관찰출척사를 거쳐 창왕 1년 문하평리가 되었다. 그 후 경상도 도관찰축척사가 되어 부사판관을 직접 데리고 세금의 기본인 논밭의 측량을 완료하는등 개혁운동에 앞장섰다. 조선 개국후 등용되지 못하고 단산백 결성군에 봉해지기도 했다.
 
◈ 초대 조계종 종정 하동산
대선사 하동산 대선사는 단양군 단성면 상방리에서 출생하여 총독부 산하 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의사로서 대성할수 있었으나 범어사 백용성 스님을 은사로 오성월 스님을 계사로 하여 득도한 후 사분율 사교과를 마친후 33세에 구족계 화엄경을 배웠고 40세에 천불선원에서 3년결사를 마치고 범어사 금강계단의 전계화상이 되었다.
 
1958년 통합종단 초대종정에 취임하여 네팔세계불교도대회, 일본불교시찰 등 불교계에 많은 업적을 남겼고 6·25동란 중 이승만 대통령이 외국인에게 부처님을 소개할 때 손가락으로 했다하여 “한 나라의 대통령이 어디 부처님께 손가락질을 하고 있소”하고 대통령께 말하자 대통령은 “이분들에게 부처님을 소개하려다 그만 실수를 했소”하고 정중히 사과하였다.
 
그 후 장관 자리에 친구를 통하여 발탁되었으나 나가지 아니했다. 스님의 제자로 이성철, 김자운, 김지효, 이능가, 고광덕 스님이 있으며 이외에도 우리나라 큰스님을 제자로 많이 배출한 단양이 낳은 큰 스님이다.
 
 
 

1.3. 내 고장의 문화유산

 
■ 국보
 
◈ 단양적성비 제198호, 단성면 하방리 산 3-1
 
■보물
 
◈ 향산리 3층석탑 제405호, 가곡면 향산리 471-1
 
■ 사적
 
◈ 온달산성 제264호, 영춘면 하리 산 67.
 
◈ 적성산성 제265호, 단성면 하방리 산 3-1.
 
◈ 수양개 유적지 제398호, 적성면 애곡리 182-2.
 
■ 천연기념물
 
◈ 영천리 측백수림 제62호, 매포읍 영천리 산 38.
 
◈ 소백산 주목군락 제244호, 가곡면 어의곡리 산 59-1.
 
◈ 고수동굴 제256호, 단양읍 고수리 산 4-2.
 
◈ 온달동굴 제261호, 영춘면 하리 산 62.
 
◈ 노동동굴 제262호, 단양읍 노동리 산 74.
 
■ 유형문화재(이하 도지정)
 
◈ 우화교 기사비 제80호, 단성면 하방리 수몰이주기념관.
 
◈ 탁오대 암각자 제81호, 단성면 하방리 수몰이주기념관.
 
◈ 복도별업 암각자 제82호, 단성면 하방리 수몰이주기념관
 
◈ 영춘향교 제106호, 영춘면 상리 461.
 
◈ 단양향교 제107호, 단성면 상방리 137-1.
 
■ 기념물
 
◈ 천동동굴 제19호, 단양읍 천동리 17-1.
 
◈ 금굴 유적지 제102호, 매포읍 도담리 산 4-18.
 
◈ 구낭굴 유적지 제103호, 가곡면 여천리.
 
■ 민속자료
 
◈ 죽령산신당 제3호, 대강면 용부원리 산 49-9.
 
◈ 조자형 가옥 제145호, 가곡면 덕천리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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