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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임실문화원의 지식창고 임실의 정자 (2013)
임실의 정자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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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임실의 정자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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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정(樓亭) 임실군(任實郡) # 팔초정
【향토】
(2018.07.16. 02:38) 
◈ 14. 팔초정(八樵亭) - 지사면 관기리
팔초정은 관기마을 뒤쪽 재실 앞 논 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1950년에 지은 정자로서 팔작 시멘트 기와지붕에 정 측면 각각 2칸이다. 팔초정(八樵亭)이란 명칭은 노초 안병용(老樵 安炳龍), 관초 전병두(冠樵 全秉斗), 벽초 이명복(碧樵 李命福), 가초 안성수(可樵 安晟洙), 덕초 이점용(德樵 李占龍), 만초 전병택(晩樵 全秉澤), 석초 안도수(石樵 安道洙), 은초 안명진(隱樵 安明鎭) 등 8명의 계원들이 풍류를 즐기기 위해 지은 것에서 유래한다.
목   차
[숨기기]
팔초정은 관기마을 뒤쪽 재실 앞 논 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1950년에 지은 정자로서 팔작 시멘트 기와지붕에 정 측면 각각 2칸이다. 팔초정(八樵亭)이란 명칭은 노초 안병용(老樵 安炳龍), 관초 전병두(冠樵 全秉斗), 벽초 이명복(碧樵 李命福), 가초 안성수(可樵 安晟洙), 덕초 이점용(德樵 李占龍), 만초 전병택(晩樵 全秉澤), 석초 안도수(石樵 安道洙), 은초 안명진(隱樵 安明鎭) 등 8명의 계원들이 풍류를 즐기기 위해 지은 것에서 유래한다. 원래 안병용 등 8초는 일제 강점기에 뜻있는 일을 하기 위해 결의하고 10년 동안 각자가 매 끼니마다 쌀 한 숟갈씩을 모아 50여가마를 마련하고 그 쌀로 논을 사서 공동재산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해방이 되자 정자를 짓기로 하고 1947년 3월에 착공하여 3년 5개월 만에 완공을 하였다고 한다. 현재 정자에는 주련이 4개가 있고, 팔초(八樵)들이 짓고 쓴 팔초정기 등 10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팔초들이 돌아가신 뒤에도 그 자손들이 해마다 음력 7월 15일 팔초계의 날로 정하여 이곳에서 잔치를 벌였는데 동네잔치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마저 이행되지 않고 있으며, 정자와 정자 터는 논 가운데 습지에 폐허 상태로 서있다.
【개요 - 2014.11 자료 추가】
 
 
 
 
 
 

1. 1. 八樵亭記

朝嶺將西爲大峙 而一峯崒
然而南 逶迆低回 展開爲墅
而谷之委會 堰而爲潭 一條
淸流 抱野而流 登臨漁樵 頗
有隱居之樂 全君秉澤安君
明鎭晟洙與五人 醵金殖之 旣
裕 作亭於斯 扁之以八樵 蓋
託漁樵而隱者也 亭製頗
精 瓦檐粉壁室堂牖戶 咸
得其宜 而花藥紛如 高原橫
麓 迭顯錯出 無不合形輔
勢 而西南諸峯 參差於煙
靄渺茫有無之間 尤蒼蒼未
已 八人之中 余與全君安君
從叔姪相知 而皆嘉遁貞吉
漁樵耕讀 優遊卒歲 不求聞
知之人 知其人則可以知其取
友 觀其取友而作亭 則可以
知其志之所藏矣 顧此風
蓬之漂泊者 何以則厠身其
間 柴與黃犢 往來山澤間 叩
角而歌 以送餘年也 可慨也已
屠維赤奮若 仲秋上澣洪淳柱
 
 
팔초정기(八樵亭記)
 
조령(朝嶺)이 서쪽으로 가서 큰 고개가 되고, 한 봉우리는 우뚝 솟아 남쪽으로 구불구불 낮게 내려가다가 넓게 펼쳐진 곳이 들판이 되었다. 골짜기가 모인 두둑은 연못이 되었는데, 한 줄기 맑은 물줄기가 들판을 안고 흘러간다. 이곳에 오르면 어부와 땔나무군도 자못 은거하는 즐거움이 있다.
그래서 전병택(全秉澤)군, 안명진(君明鎭)· 안성수(安晟洙)군이 다른 다섯 사람과 돈을 갹출하여 식리(殖利)하였다. 이미 돈이 넉넉하게 모아지자, 이곳에 정자를 지어 ‘팔초(八樵)’라 는 편액(扁額)을 내걸었으니 대개 어부와 땔나무꾼을 의탁하여 은거한 것이다.
정자는 자못 정교하여 기와와 처마, 분칠한 벽, 그리고 집과 창문이 모두 짜임새 있게 지어졌다. 화초(花草)와 약초(藥草)는 널려있고, 높은 언덕과 가로지른 산기슭이 번갈아 교차하여 드러나면서 형체가 합해지고 도왔다. 그리고 서남쪽 여러 산봉우리는 아지랑이가 자욱한 중에 들쭉날쭉 끝없이 창창(蒼蒼)할 뿐이다.
여덟 사람 중 나와 전군(全君)·안군(安君)은 종숙질(從叔姪)간으로 서로 아는 사이이다. 모두 은둔하면서 바르게 살며 고기 잡고 땔나무하고 밭 일구고 글 읽으며 산다. 유유자적하게 살며 생을 마치기를 원하고 세상에 이름을 알려지기를 구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 사람을 알면 그가 벗을 취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벗을 취하고 정자를 짓는 것을 보면 그가 마음에 품은 뜻을 알 수 있다.
돌이켜보면 나처럼 바람이나 풀처럼 떠도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하면 팔초정(八樵亭)같은 곳에 몸을 맡길 수 있을까. 땔나무하고 송아지를 기르며 산택(山澤)을 왕래하기도 하고 뿔피리 불며 노래하고 살다가 남은 생을 보낼 수 있겠는가. 개탄스러울 뿐이다.
 
기유(己酉)년 중추(仲秋) 상한(上澣)에 홍순주(洪淳柱).
 
 
 

2. 2. 八樵亭記

亭旣成而講其實 則人八志一 多年
匙米貯蓄 心田節宣之功 以備搆亭
之資也 夫天下事 謀始易善終難矣
而惟吾八友者 志氣相孚 資質同耦
以樵各自其號 樂與之終者也 隱於
山耕於野 夜歸讀 材不加長智不加
短 安於分樂於樵 囑余監督 工役完
了 晩年棲息於斯足矣 高峯南聳而
天皇 溪流東而綿浦 五柳暮煙 織柳
千絲 十二峯鴈飛落圓村 八公月出
影射淹峀 廣岩瀑布 激助豪氣 聽寒
鍾於城寺 嘗碧桃於仙源 千萬氣像
開通胸海之淸曠 二四景槪 彰明眼
花之精彩 咏鹿呦而詩成 浩歌長嘯
嘉肥遯之風致 花塢靜而日暖 古陌
翠而風輕 戴月荷鋤 何嫌麀鹿之
伴 披雲樵巷 惟宜猿鶴之友 佳賓
登臨時 適蘭亭之會 驚風驚雨 第
看韓石峰之遺墨 泣鬼泣神 賡鳴
車鰲山之鼓鞁 嗚呼 明鎭一世蒙
學 心地茅塞 忘其愚拙 敢揭淺識
以敍實情 繼之以詩
雲南龍北八樵亭 貯蓄匙米本是營
臨戶淸聲淺澗落 滿簾畵色四山靑
貪唫詩客頻來去 看刻路人數步停
隱此閒棲吾意足 豈怍富貴與功名
隱樵安明鎭
 
 
팔초정기(八樵亭記)
 
정자는 이미 낙성되었다. 그 실상을 말해보면 여덟 사람이 뜻이 하나가 되어 다년간 쌀 한 숟가락씩 저축하여 애써 절약한 공력으로 정자를 얽을 수 있는 자본을 준비하게 된 것이다. 저 천하의 일이라는 것은 시작을 꾀하기는 쉽지만 끝마무리를 잘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오직 우리 팔우(八友)는 지기(志氣)가 서로 부합되고 자질(資質)이 서로 같았다. 그래서 ‘초(樵)’라는 글자로 각자 자기 호(號)를 삼고 즐겨 더불어 생을 마치고자 하였다. 산에 은거하다가 들에 나가 밭 갈고 밤에 돌아와 글 읽으며, 재주는 더 키우지 않고 지혜는 더 못하지도 않으며, 분수에 편안하고 땔나무하는 것으로 낙을 삼는다는 것이다.
나에게 공사를 감독해 줄 것을 부탁하기에, 공역(工役)를 완료하였으니, 말년에 이곳에 깃들어 살기에 족하다. 높은 산봉우리가 남쪽으로 솟은 곳이 천황(天皇)이며, 시냇물이 동쪽으로 흐르는 곳이 면포(綿浦)이다. 오류(五柳)의 저녁 안개는 천 갈래 버들 잎으로 짠 듯하며, 십이봉(十二峯)의 기러기는 원촌(圓村)에 오르락내리락한다. 팔공(八公)에 달이 떠오르면 달 그림자가 산굴에 잠기며, 광암(廣岩)의 폭포는 호방한 기운이 세차다. 도성의 절에서 차가운 종소리가 들려오며, 벽도(碧桃)를 선원(仙源)에서 맛보는구나. 천만가지 기상(氣象)은 바다처럼 가슴을 시원하게 트이게 하고, 이십사절기 경치는 눈에 정묘한 채색으로 밝게 드러난다. 녹명(鹿鳴)시를 읊조리며 시(詩)가 지어지니 호탕하게 노래하고 휘파람을 불며 은둔하는 곳의 경치를 아름답게 여긴다.
꽃피는 언덕은 조용하며 날씨가 따뜻하다. 옛길은 푸르고 바람이 살랑거리는데 달뜨면 호미 매고 돌아오니, 사슴과 동무한들 뭐가 껄끄럽겠는가. 구름을 헤치고 마을에서 땔나무하니, 원숭이와 학을 벗하기에도 좋다. 훌륭한 손님들이 정자에 오르니 난정(蘭亭)의 계모임 때 였다. 비와 바람에 놀라듯 하니 한석봉(韓石峰)의 유묵을 바라보고, 귀신(鬼神)을 울리듯 하니, 명거(鳴車)와 오산(鰲山)의 노래에 화답하는구나.
오호라, 나 명진(明鎭)은 한 세대의 몽학(蒙學)으로 심지(心地)가 띠처럼 막힌 사람인데, 자신의 우졸(愚拙)함을 망각하고 감히 짧은 지식을 드러내어 실정(實情)을 서술하고 이어 시를 적노라.
 
운수 남쪽 용성 북쪽에 지어진 팔초정은, 雲南龍北八樵亭
십시일반 저축한 자본으로 건립했노라. 貯蓄匙米本是營
문에 들리는 맑은소리는 시냇가에 떨어지는 물소리이고, 臨戶淸聲淺澗落
문발 가득한 그림은 사방 산의 푸르름이네 滿簾畵色四山靑
읊조림을 탐하는 시객(詩客)은 자주 왕래하고, 貪唫詩客頻來去
구경하러 온 행인은 몇 걸음 걷다가 멈추네 看刻路人數步停
이곳에 한가로이 은거하니 내 마음 족한데, 隱此閒棲吾意足
어찌 부귀와 공명 따위를 부러워하겠는가. 豈怍富貴與功名
 
은초(隱樵) 안명진(安明鎭)
 
 

3. 3. 原韻 附小敍

風雨無愁可笠亭 謀拙人笑一枝營
窓間點綴雲惟白 枕底琮琤水自靑
共把米鹽心手役 好將茶酒客鞭停
杖巾露髮如圖畵 愧復頑吾板上名
余是八樵之一也 樵之爲名 蓋因吾之
質朴而無文而已 未嘗與於古之隱於
居隱於樵而自保者也 然則斯之爲號
乃不見怪矣 契今緣起 必有會數 會
數而意厚 意厚而謀同 月捐升粟 經
歲年而向之升斗 猶以釜斛不可勝量
夫事之謀始固重 而或易廢於久 不
可以加久 則莫若以爲遲暮行藏之
所也 用之之計定矣 於是 蠲穢撞地 鳩材
運瓦而營 治功 斯速於日月 乃居然三
架也 彼崇臺侈節 自非以華麽見稱
因人得以爲美斯亭也 有蒼松白雲
之窈窕 有將騷人文士之往往憑眺
者 余以爲欣喜 不辭其勞而共樂
之也
乙丑仲春上澣石樵安道洙 謹稿
 
 
원운(原韻)시에 소서(小敍)를 붙임
 
풍우에 걱정없는 삿갓 모양 정자 風雨無愁可笠亭
졸렬하여 사람이 웃노니 나뭇가지 하나로 지었네 謀拙人笑一枝營
창 사이로 스쳐가는 구름은 희고 窓間點綴雲惟白
베개 밑에 졸졸 흐르는 물은 절로 푸른데, 枕底琮琤水自靑
쌀과 소금 함께 모으니 마음과 손으로 일하고 共把米鹽心手役
차와 술이 좋아 나그네가 말을 멈추네 好將茶酒客鞭停
지팡이 짚고 머리털 드러난 모습 그림과도 같은데 杖巾露髮如圖畵
부끄럽다, 완고한 내 이름이 현판에 새겨지다니 愧復頑吾板上名
 
나는 팔초(八樵) 중의 한 사람이다. 초(樵)라고 이름 지은 것은 대개 우리가 질박하고 문채가 없기 때문이다. 옛적에 일찍이 고기잡는 사이에 숨거나 땔나무 꾼 사이에 숨어서 (樵)에 숨어서 자보(自保)했다는 사람은 아직 없었다. 그렇다면 초(樵)로 호(號)하여도 괴상하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계(契)를 지금부터 인연하여 조직하면 반드시 자주 모임이 있을 것이고, 자주 모임을 가지면 뜻이 돈독해질 것이고, 뜻이 돈독해지면 꾀하는 것을 함께 할 것이다. 매월 한 되[升]씩 벼를 출연하여 1년이 경과하면 접때의 되와 말이 오히려 열 말 너 되로 불어나 수량을 이루 헤아릴 수 없게 될 것이다.
저 일의 시작을 꾀하는 것은 진실로 중요하지만 혹여 오래되면 쉽게 폐기되니, 더 오래 지속할 수 없다면 노년에 행장(行藏)하는 장소를 짓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곗돈을 사용하는 계획이 결정되었으니, 이에 거친 잡초를 치고 땅을 다지고, 목재를 모우고 기와를 운반하여 지었다. 공사가 이에 일월(日月) 보다 신속하게 이루어지니 거연(居然)히 세 칸 집이 지어졌다.
저 높은 대와 사치스러운 장식은 화려하다고 칭송되지 않았으니, 사람을 얻어서 이 정자를 아름답게 하였기 때문이다. 창송(蒼松)과 백운(白雲)이 요조(窈窕)하고, 장차 소인(騷人)과 문사(文士)가 종종 팔초정에 올라와 경치를 조망할 것이니, 나는 이를 기쁘게 생각하여 노고를 사양하지 않고 함께 즐기노라.
 
을축(乙丑) 중춘(仲春) 상한(上澣)에 석초(石樵) 안도수(安道洙)는 삼가 짓노라.
 
 

4. 4. 八樵亭記

同吾八樵 每値春和景明 樹林
蓊蔚 鳥聲嘲哲 烟霞間幅巾杖
屨 徜徉於山巔水涯 與草童牧
兒 伍心無厭 故以樵自號 而告
諸賢曰 各畜匙米幾年 將成遊
息之資 咸曰可 而合八爲一 一
言相孚 勤畜數年 果成一亭 以
樵扁之者 余雖不躬樵者之事
而能得其樂 白雲溶溶 彌布崖
谷 隴樹排靑 林溪蒼綠 出入烟
霞 友于麋鹿 而了不知塵世之
榮辱 若夫山林搖落 潭澗澄澈
霜呈錦繡 壑殷秋聲 砉然長嘯
谷應山鳴 而杳不知寒暑之變
更推四時之景 豈不壯哉 園蔥
鬱而夏栗 池爛熳而秋蓮 登高
寺 證心問 如來之空空 山秋月
而影輪 水靈泉而盈科 然溪岑
以外之八景 聊與衆而共之
 
水氣山精供一亭 一亭也是八心營
淸晨鶴淚松枝舞 斜日馿歸客杖亭
數谷溪聲鼓枕冷 天皇峯色簾映靑
林泉自有无窮樂 不願將相不要名
晩樵 全秉澤
 
謹次
一生高趣付斯亭 八友同心夙是營
簾外平原鷗点白 松間迷路鹿登靑
烟雲入夢樵夫下 海岳傳神一客停
淸景元來胸內事 只求風月不求名
南湖 崔性植
 
 
팔초정기(八樵亭記)
 
우리 팔초(八樵)는 매년 봄 날씨 화창하고 수목이 울창하게 우거지고 새가 우짖으면 노을사이에 폭건(幅巾)을 착용하고 지팡이 짚고 나막신 신고 산꼭대기나 물가에 가서 노니는데 초동(草童)·목아(牧兒)들과 동무하여도 싫다는 마음이 없었다.
그러므로 ‘초(樵)’로 자호(自號)하고 제현(諸賢)들께 고하기를, ‘각각 한 숟가락씩 쌀을 몇 년 동안 모으면 장차 놀고 휴식하는 장소를 지을 만한 자본이 모아질 것입니다.’고 하였더니, 모두 ‘좋다.’라고 하셨다. 그래서 여덟 사람이 하나로 합쳐지고 한마디 말로 부합되어 부지런히 몇 년 동안 저축한 결과 과연 한 정자를 완성하고 ‘초(樵)’라는 편액을 내건 것이다.
나는 비록 몸소 땔나무를 하는 일은 하지 않지만 그 낙은 즐길 수 있다. 흰 구름이 뭉게뭉게 벼랑 계곡까지 피어나가고 언덕에는 푸른 나무가 즐비하게 있고 숲과 시내에는 신록이 울창하게 우거지면 노을 속을 출입하면서 미록(麋鹿)과 벗하고 마침내 티끌 속세의 영욕(榮辱)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저 산의 숲에 낙엽이 지거든 깊은 물가는 맑고 깨끗하며, 서리가 내리면 비단처럼 수를 놓 을 것이고, 산골짝이에는 가을소라가 무성하니 길게 휘파람을 불면 계곡이 응하고 산이 울릴 것이며, 아득히 한서(寒暑)가 변화하여 사시사철 경치가 바뀌는 것도 까맣게 모르고 지낼 것이니 어찌 장관이 아니겠는가.
여름에 동산에 울창하게 밤이 열리고 가을에 연못에 흐드러지게 연꽃이 피면, 높은 사찰에 올라가서 마음을 깨끗이 하여 여래(如來)의 공공(空空)함을 묻는다. 산에는 가을 달이 둥글게 떠오르고 물에는 신령한 샘이 용솟아 웅덩이를 채우고 흘러간다. 그러나 시내와 산봉우리 이외의 팔경(八景)에 대해서는 에오라지 무리와 함께 하겠노라.
 
산수(山水)의 정기가 정자 앞에 모이니 水氣山精供一亭
한 정자를 팔초(八樵)가 동심하여 지었네 一亭也是八心營
맑은 새벽에 학이 우니 소나무 가지가 춤을 추고 淸晨鶴淚松枝舞
석양에 나귀 돌아가니 나그네도 가는 길 멈추었구나 斜日馿歸客杖停
두어 계곡 냇물소리는 베게에 차갑게 울리고 數谷溪聲鼓枕冷
천황의 산봉우리 빛깔은 문발에 비춰 푸르네. 天皇峯色簾映靑
수풀과 시내에는 절로 무궁한 낙이 있으니 林泉自有无窮樂
장상(將相)을 바라지 않으니 명예도 필요 없네 不願將相不要名
 
만초(晩樵) 전병택(全秉澤)
 
근차(謹次)
 
일생의 고상한 취미를 이 정자에 붙였으니, 一生高趣付斯亭
여덟 친구가 동심하여 일찍이 건립했노라. 八友同心夙是營
문발 밖 평원(平原)에는 갈매기가 점점이 하얗고, 簾外平原鷗点白
소나무사이 미로(迷路)는 사슴 길이라 푸르네 松間迷路鹿登靑
꿈결같은 연운(烟雲)속에 초부(樵夫)가 내려가고 烟雲入夢樵夫下
신령스런 해악(海岳)에 나그네가 멈춰 있네 海岳傳神一客停
청경(淸景)은 본래부터 가슴속에서의 일이니, 淸景元來胸內事
풍월(風月)을 찾을 뿐 명예는 구하지 않으리라. 只求風月不求名
 
남호(南湖) 최성식(崔性植)
 
 
 

5. 5. 八樵亭記

亭以八樵名者 八人皆以樵
爲號故也 亦將以圖不忘
矣 吾八人暇日登臨 詩者詩
棋者棋 飮者飮 消遣世慮 而
楹軒不侈不陋 數谷淸澗 縈
回庭前 十丈奇巖散左右 紫
葛蒼藤上紆下縈 環看佚覽
之美 有不可勝狀 顧而樂之 山
肴野蔬 亂酌无巡 酒酣耳熱 相
與談笑 聊不知日之已西 暮年
棲息之樂 其在此乎
 
八公來作八樵亭 泉石烟霞取次營
數曲溪聲鼓枕冷 四圍山色入簾靑
雙行高鷺隨雲沒 一鉢茗茶挽客停
不識炎凉能避世 靈源自得隱居名
德樵 李点相
 
 
팔초정기(八樵亭記)
 
정자를 ‘팔초(八樵)’라고 이름 지은 것은, 8인이 모두 ‘초(樵)’라는 글자로 호(號)를 지었기 때문이고 또 장차 잊지 않으려는 것을 꾀한 것이다. 우리 여덟 사람이 한가한 날 정자에 올라와서, 시(詩)하는 사람은 시를 짓고, 바둑 두는 사람은 바둑을 두고, 술 마시는 사람은 술 마시면서, 세상 걱정을 삭혀 보낸다.
기둥과 추녀는 사치스럽지도 않고 누추하지도 않으며, 두어 골짜기에 깨끗한 시냇물은 뜰 앞을 돌아서 흐르며, 열 자쯤 높은 기이한 바위는 좌우에 산재해 있으며, 자색 칡과 푸른 등나무가 위 하래로 얽혀져 있으니, 빙 둘러 눈여겨 살펴보는 아름다움은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돌이켜보니 그 즐기는 것은 산의 안주거리와 들의 나물이다. 술을 진탕 돌아가며 따르고 마시다가 거나하게 취하여 귀에 열이 오르거든, 서로 담소하면서 에오라지 해가 이미 서쪽에 저물었는지도 모르는 곳이니 말년에 깃들어 사는 낙이 그 여기만한 곳이 있겠는가.
 
여덟 명이 와서 팔초정(八樵亭)을 지었고, 八公來作八樵亭
샘·돌·안개·노을 차례로 가져다가 지었네. 泉石烟霞取次營
몇 굽이 시냇물소리 베개까지 차갑게 울리고, 數曲溪聲鼓枕冷
사방을 에워싼 산색은 문발에 푸르게 들어오네. 四圍山色入簾靑
쌍쌍이 날아가는 해오라기는 구름을 따라가건만, 行高鷺隨雲沒
한 사발 시원찮은 차로써 손님을 잡아 만류했네. 一鉢茗茶挽客停
모르겠다, 염량세태(炎凉世態)를 피하여, 不識炎凉能避世
영원(靈源)에서 은거했다는 이름 얻을지. 靈源自得隱居名
 
덕초(德樵) 이점상(李点相)
 
 

6. 6. 八樵亭記

亭者停也 人所停住之地也 無論何
人 起於挾泉石卉木之境 則人自停
住焉 若曰作者獨專 甚无謂也 今吾
亭大意亦然 而署八樵者 八人自道
其不才也 然樂夫泉石卉木 皆聾
於俗樂於古者也 吾觀登斯 嘯咏
者太半 若樵夫之趣 而釣烟耕雲
以爲逍遙之課 訪花隨柳 以爲吟詠
之樂 樹多百年之陰 鳥多未聞之聲
枕碧流伴白鷗 臥白雲弄明月 睡則
徘徊于欄頭 彷徨於物外 自怡之趣
却使人忘歸者深矣 而俯仰左右山
水縈廻 其形也特著 其名尤美 望東
則八公萬仞 巍巍然儼鎭群峯 其南
則天皇亭亭 如玉女揷花臨水 聽武
夷棹歌 北望則漢峙鳳飛 蔚然碧秀
蒼屛列立 其西則十二珠峯翩翩翶
翔 廻落平沙 枕下泉聲 曲曲淙淨 洞
前溪堂 絃誦文物 完接乎洙泗之
遺風焉 有時乎促席而坐 反親靜
聽 體道凝神 窅然忘歸 斯謂
一趣也 寄趣於嘉木名石 而八友
同志 喜笑眷戀之樂 吾何辭焉
遂爲之記
 
八友樵餘起此亭 地藏千載貽謀營
一瓢泉響琴棋冷 千笏山光几案靑
漆室看心圓月上 紅塵脫屐曳筇停
昇平身世烟霞裏 永守淸閒不要名
可樵 安德洙
 
 
팔초정기(八樵亭記)
 
‘정(亭)’이라는 것은 머문다는 뜻이니 사람이 머물러 사는 곳이다. 어떤 사람이든 막론하고 샘물·돌·꽃·나무가 있는 지역에 정자를 지으면 사람이 자연스럽게 머물러 주거한다. 만약 정자를 지은 사람이 혼자 전용하겠다고 한다면 무슨 할 말은 없다. 지금 우리가 정자를 지은 큰 뜻 또한 그러하다. 현판에 ‘팔초(八樵)’라고 적은 것은 여덟 사람이 그 스스로 부재(不才)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저 샘물·돌·꽃·나무를 좋아하는 것은 모두 세속 물정에는 어둡고 옛것만 좋아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곳에 올라와보니 읊조리는 사람이 태반이다. 저 초부(樵夫)의 취향으로서 안개 피는 물에서 낚시하고 구름을 헤치고 밭 갈면서 매일 소요하는 것을 일과로 삼고, 꽃을 구경하고 버들을 찾아서 읊조리는 것을 낙으로 삼고, 수풀은 백년이나 우거져 그늘이 만들어진 것이 많고, 새소리는 평소 못 들어보던 소리가 들리고, 벽류(碧流)를 베개하고 백구(白鷗)와 동무하고 백운(白雲)에 누워서 명월(明月)과 놀다가 졸음이 오면 난간머리에서 배회하고 물외(物外)에서 방황하는 등 스스로 기뻐하는 취향이, 도리어 사람으로 하여금 돌아갈 것을 잊고 심취하도록 한다.
그리고 올려다보고 내려다보고 좌우를 보니 산에 물이 굽이쳐 흘러 그 형태가 특이한 모습이고 그 이름은 더욱 아름다웠다. 동쪽을 바라보니 만 길[仞]이나 높은 팔공산(八公山)이 외외연(巍巍然)하여 공손히 뭇 봉우리를 누르고 있는 듯하고, 그 남쪽을 바라보니 천황(天皇)이 우뚝하여 옥녀(玉女)가 꽃을 꽂고 물가에서 무이도가(武夷棹歌)를 듣고 있는 것 같고,
북쪽을 바라보니 한치(漢峙)에 봉황이 날아와 울연(蔚然)히 푸른빛이 수려하여 푸른 병풍이 펼쳐진 것 같고, 그 서쪽을 바라보니 십이주봉(十二珠峯)이 거듭거듭 높낮이로 평평한 모래사장을 돌아서 수습되었고, 베개에 들리는 샘물소리는 계곡마다 철철 흐르고, 마을 앞 계당(溪堂)에서는 거문고를 타고 글을 외우는 것이, 꼭 수사(洙泗)의 유풍(遺風)을 접하는 것 같고, 때로는 자리를 바싹 붙어 앉아서 등 돌리고 고요하게 듣다가 도(道)를 본받아 정신을 집중시켜 빠져들면 돌아가는 것을 잊어버리게 되니 이를 일컬어 일취(一趣)라고 한다. 취미를 가목(嘉木)과 명석(名石)에 붙이고 여덟 친구가 뜻을 같이하여 기뻐서 웃고 되돌아서서 또 그리워하는 낙을, 내가 어찌 사양하겠는가. 마침내 기문(記文)을 적노라.
 
8명 벗이 땔나무하고 여가에 이 정자 지었으니, 八友樵餘起此亭
땅이 천년 감췄다가 정자를 짓도록 주신 것이네. 地藏千載貽謀營
한 표주박 샘물소리에 거문고·바둑도 냉랭하고, 一瓢泉響琴棋冷
줄줄이 빗긴 산 광채로 안석·책상도 푸르더라. 千笏山光几案靑
칠실(漆室)에서 마음을 보니 둥근달이 떠올랐고, 漆室看心圓月上
홍진(紅塵)에서 나막신 벗으니 짚던 지팡이 멈춘 듯. 紅塵脫屐曳筇停
노을 속에서 태평시대를 살아가는 신세, 昇平身世烟霞裏
길이 청한(淸閒) 지켜 명예 바라지 않으리. 永守淸閒不要名
 
가초(可樵) 안덕수(安德洙)
 
 

7. 7. 八樵亭記

八公一枝西行逶迆數里 作大山
山下館基之陽數武許 有石坮土
邱 宛然轉北南回 蒼岩翠崖 固天
作地生者 等似人作然 西有十二
珠峯亭亭列立 東有錦浦廻抱洞
口 通敞灑落 能使人悅耳目之勝
區也 同志人八 暇日相聚于斯 嘯咏
臥起 不知日入而月又東日復日 久
而不厭焉 命名以八樵者 其志在於
仁山智水 而吾無仁智之實
則雖有山水惡得而樂之哉 有
諸己者何事乎 爲號揭楣
者 自戒謀進者也 無他岐
惑而修德焉 則務本之
事 求仁之道 亦何嘗不由
於此乎
 
八樵同一一成亭 物外閒情所以營
朝日升空烟霞紫 暮鐘遠出竹林靑
紅塵脫屐佳賓到 靜室看心素月停
若使兒孫能繼葺 應知求道不求名
 
碧樵 李命福
 
 
팔초정기(八樵亭記)
팔공(八公) 한 줄기가 서쪽으로 뻗어 구불구불 몇 리쯤에 대산(大山)이 있고, 대산 아래의 관터[館基] 남쪽 몇 무(武) 쯤에 석대(石坮)와 토구(土邱)가 완연히 굴러서 북쪽 남쪽으로 돌아가면 푸른 바위 비취빛 벼랑은 진실로 하늘이 땅에 탄생시킨 것인데 사람이 만든 것과 흡사하다. 서쪽에는 열 두 개의 구슬봉우리[珠峯]가 정정(亭亭)하게 나열하여 서 있고 동쪽으로 금포(錦浦)가 빙 둘러 동구(洞口)를 안고 탁 트여 시원하니, 사람의 이목(耳目)을 기쁘게 하는 승구(勝區)이다.
동지(同志) 8명이 한가한 날 이곳에 모여서 읊조리며 유유자적하게 노닐면, 해가 지고 달이 뜨는 줄도 모르고, 또 동쪽에서 해가 다시 떠올라서 오래되어도 지루하지 아니하다. ‘팔초(八樵)’라고 명명한 것은 그 뜻이 인산(仁山) 지수(智水)에 있기 때문인데, 우리에게 인산(仁山) 지수(智水)의 실상이 없다면 비록 산과 물이 있다한들 어떻게 얻어 즐기겠는가. 하지만 자기에게서 인지(仁智)를 구하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호(號)를 문미(門楣)에 드러낸 것은 스스로를 경계하고 전진을 꾀하려는 것이다. 달리 마음이 현혹되는 것이 없이 덕을 닦는다면 근본에 힘쓰는 일과 인(仁)을 구하는 방법 또한 어찌 일찍이 자신으로 말미암아 구하지 않았던가.
 
팔초(八樵)가 일심동체로 한 정자 지었으니, 八樵同一一成亭
물외의 한가로운 심정으로 지었기 때문이네. 物外閒情所以營
아침 해는 연하(烟霞)가 붉은 허공에서 떠오르고, 朝日升空烟霞紫
저녁종소리 죽림(竹林)이 파란 멀리에서 들리더라. 暮鐘遠出竹林靑
홍진(紅塵)에서 나막신 벗으니 좋은 손님이 오고, 紅塵脫屐佳賓到
정실(靜室)에서 마음을 보니 하얀 달이 머물렀네. 靜室看心素月停
만약 후손에게 이어서 정자를 수리하게 하다면, 若使兒孫能繼葺
도(道)는 구하고 명예는 구하지 않을 것 알리라. 應知求道不求名
 
벽초(碧樵) 이명복(李命福)
 
 
 

8. 8. 八樵亭記

亭者停也 人所停住之地也 无論何人 起之
而挾泉石卉木之境 則人自停愛焉 若
曰作者獨專而有之 甚无謂也 凡吾八人
資質相同 長於斯老於斯 未嘗有間於貧
富憂樂之際 又未嘗有離於樵山漁水耕
讀之間 每臨於會心之境 呀然喟然曰 人
之於世 豈非忽然來而忽然往者歟 與其
各自逍遙 以送餘年 孰若合八爲一於是
乎 八心同日 經始數年 完得一區於家 北
數武許 庄不高而不低 幽闃而敞然豁然
淸澗石坮 蒼屛奇絶 宜爲有眼者所占去
而後 幾百年閒曠 儻或有待耶 登臨渾无
坋埃 令人塵累自却 如蟬蛻然耳 仰而觀
之 翔鶴在天 俯而視之 躍於在淵 上下之
際 天理昭著 以外八景 呈奇於遠近 名楣
曰八樵 而修齊之餘以爲吟詠納涼之
所 胸次昭曠 晩年棲息於斯足矣
 
八樵同志起斯亭 留待勝區始占營
絶澗波鳴琴瑟奏 層嶂霞晴客筇停
繞庭蘿月從心潔 深院杉松守性靑
戶外風塵千里遠 暮年棲息保身名
冠樵 全秉斗
 
 
팔초정기(八樵亭記)
 
‘정(亭)’이라는 것은 머문다는 뜻이니 사람이 머물러 주거하는 곳이다. 어떤 사람이 지었든 간에 천(泉)·석(石)·훼(卉)·목(木)이 있는 지역에 지었다면 사람들이 자연히 이 정자에 머물러 애지중지할 것이다. 만약 정자를 지은 사람이 전용하여 사용하겠다고 한다면 뭐 할 말은 없다.
무릇 우리 팔인(八人)은 자질(資質)이 서로 같고 또 이곳에서 성장하고 이곳에서 늙었다. 빈부(貧富)·우락(憂樂)으로 인하여 서로 사이가 벌어진 적도 없었고, 또 산에서 나무하고 물에서 물고기 잡고 낮에 밭 갈고 밤에 글 읽으며 서로 헤어져본 적도 없었다.
늘 모이자고 해서 모이면 감탄도 하고 탄식도 하면서 말하기를,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뭐 홀연히 왔다가 홀연히 떠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렇다면 각자 소요하면서 남은여생을 보내는 것 보다는, 8명이 한마음으로 합심하여 보내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라고 하고, 8명이 마음을 모아 동시에 공사를 시작하여 몇 년 만에 한 구역에 집을 완성하였다.
북쪽으로 몇 무[武]쯤 농막이 있는데 높지도 낮지도 아니하되, 고즈넉하면서도 탁 트여 시원하고, 맑은 골짜기에 돌로 지은 집이 푸른 병풍처럼 펼쳐져 기이한 절경이다. 마땅히 안목이 있는 사람이면 점찍어 두고 가서, 이후에 몇 백 년 동안 빈 공간이라서 혹여 기다려주겠지 생각했을 것이다. 올라가보니 전연 티끌이 없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풍진세상을 스스로 벗어나게 하는 것이, 마치 매미가 허물 벗는 것 같았을 뿐이다.
우러러보니 솔개·학이 하늘에서 날아다니고 굽어보니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놀고,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에는 천리자연의 현상들이 환하게 드러나 있었다. 이 이외에 팔경(八景)도 멀고 가까운 곳에 기이한 절경을 드러내보였다. 문미(門楣)를 ‘팔초(八樵)’라고 이름 짓고 그리고 수신제가(修身齊家)를 하고 남은 시간에 읊조리고 바람 쏘이면 가슴이 시원하니 말년에 이곳에 깃들어 살기에는 족하다고 하겠다.
 
팔초(八樵) 동지(同志)가 이 정자를 건립했으니, 八樵同志起斯亭
좋은 경치 기다렸다가 비로소 터 잡아 지었노라. 留待勝區始占營
골골이 계곡에 물결 울리니 거문고·비파 연주일까, 絶澗波鳴琴瑟奏
층층이 가려진 노을 걷히니 나그네지팡이 멈춘 듯. 層嶂霞晴客筇停
뜰에 뻗은 등덩굴에 달을 보니 마음도 깨끗하고, 繞庭蘿月從心潔
깊은 정원에 삼나무·소나무는 본성 지켜 푸르네. 深院杉松守性靑
풍진(風塵)은 문 밖에 천리나 멀리 있어, 戶外風塵千里遠
모년에 깃들어 살면 보신(保身)했다 하리라. 暮年棲息保身名
 
관초(冠樵) 전병두(全秉斗)
 
 
 

9. 9. 八樵亭記

楣之以一樵 猶或招疑 況八樵
乎 今與八友同是一志 擧其志
一 則无事不同 無所不合 故八
樵同居此山之下 自少至老 耕
讀有恒度 夙晨月夕 聞絃誦之
聲 則喜間 聞嬉笑俚語 則甚不
樂 頗嗜遊觀 春和景明節 卽幅
巾杖屐 徜徉於山巓水涯 與樵
童牧兒 伍心無厭 浩浩自樂焉
因以樵自處 夫其操網罟出沒
烟波 雖不自謂之漁人 以漁目
之 扶耒耜往來畎畝 則雖不自
謂之農人 以農目之 然則吾儕
以樵自號 名實相符 何足疑哉
繼之以詩
 
館洞之陽闢一亭 早年占得老來營
觀魚活潑秋潭淨 喚鶴飛還暮山靑
座上仙遊琴上樂 景中人到畵中停
林泉自有天然趣 耕讀漁樵不愧名
老樵 安炳龍
 
 
팔초정기(八樵亭記)
 
문미(門楣)에 ‘일초(一樵)’라고 했더라도 오히려 혹여 의혹을 불러일으킬 것인데 하물며 ‘팔초(八樵)’라고 했으니 더 말할 게 있겠는가. 지금 팔우(八友)와 뜻을 한가지로 같이하여 한 동지(同志)가 의견을 거론하면 그 사안에 대해서 부동(不同)한 사람도 없고 불합(不合)한 사람도 없다. 그러므로 팔초(八樵)가 이 산 아래에서 동거(同居)하게 되었다.
소싯적부터 늙을 때까지 낮에 밭을 경작하고 밤에 글 읽었는데 항상 법도가 있었으니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밭을 일구고 달이 뜨는 밤에 글을 읽은 것이다. 거문고 뜯는 소리 글 외우는 소리를 들으면 한 동안 기뻐하다가도, 농담 짓거리하면서 웃는 소리가 들리면 매우 불쾌해하기도 하였다. 자못 놀러 다니는 것을 즐겼는데 봄에 날씨가 화창하고 햇볕이 좋은 계절에는 폭건(幅巾)을 착용하고 지팡이 짚고 나막신 신고 산 정상이나 물가에 가서 노닐되, 초동(樵童)·목아(牧兒)와 함께 놀아도 싫은 마음이 없이 의기양양 즐거웠기에, 인하여 초부(樵夫)로 자처한 것이다.
저 그 물고기 잡는 그물을 가지고 물결치는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으면 비록 스스로 어부라고 할 수는 없으나 어부로 지목받게 되고, 쟁기와 보습을 가지고 밭도랑을 왕래하면서 농사를 지으면 비록 스스로 농부라고 할 수는 없으나 농부로 지목받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무리가 ‘초(樵)’로 자호(自號)한 것은 명(名)·실(實)이 서로 부합한 것인데 뭐 족히 의심하겠는가. 이어서 시(詩)를 적노라.
 
관동(館洞)의 남쪽에 한 정자를 지었으니, 館洞之陽闢一亭
젊을 적 터 잡아놨다가 늙어서 지었노라. 早年占得老來營
물고기 활발한 것 보니 가을 연못이 깨끗해서이고, 觀魚活潑秋潭淨
날아가는 학이 서로 부르니 저녁 산이 푸르러서네. 喚鶴飛還暮山靑
앉아서 신선놀음은 거문고가 최상의 낙인데, 座上仙遊琴上樂
그 경치에서 사람이 오니 한 폭 그림이더라. 景中人到畵中停
수풀·샘물에는 자연히 천연의 정취가 있으니, 林泉自有天然趣
주경야독하는 어부·초부 이름 부끄럽지 않네. 耕讀漁樵不愧名
 
노초(老樵) 안병용(安炳龍)
누정(樓亭) 임실군(任實郡) # 팔초정
【향토】 임실의 정자 (2013)
• 13. 덕옥재(德玉齋) - 지사면 계산리
• 14. 팔초정(八樵亭) - 지사면 관기리
• 15. 비암정(比巖亭) - 지사면 관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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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