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친구와 함께 경기도 양평 청계산 하산길에 몽양 여운형 呂 運 亨(1886~1947) 기념관이 보여 소개합니다. 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일생을 바친 여운형 선생에게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2008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했습니다. 모친이 치마폭으로 태양을 안는 태몽을 꾸었다 하여 몽양(夢陽)이란 호를 지었다고 하며, 기념관(성인 1000원 입장료)은 용산에서 용문으로 가는 중앙선 신원역에 하차하여 오른쪽으로 약 500m 거리에 위치하며 매주 월요일, 설날, 추석날은 휴관입니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몽양 여운형 선생 생가와 기념관 가는 길
중앙선 신원역
신원역에서 내려 오른쪽 방향의 담장 벽입니다.
'혈농어수血濃於水(피는 물보다 진하다)
기념관 올라 가는길에서 내려다 본 한강
몽양 유객문夢陽 留客文
몽양기념관
생가
●전시관
전시실 중앙에 동으로 제작된 몽양 선생의 좌상이 설치되어 있어 관람객들이 선생의 옆에 앉아서 함께 책 읽는 모습으로 사진을 촬영할 수 있습니다.
여운형 선생의 사진, 친필과 함께 선생에 관한 도서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선생의 친필 중 대표적인 것은 조선중앙일보 사장 시절인 1936년 정월에 쓴 ‘正觀邁進’(바로 보고 힘써 나아가자), 1941년 일본 사이타마에 있는 고려신사에 들렀다가 남긴 ‘血濃於水’(피는 물보다 진하다), 1944년 신년에 김문갑에게 써준 ‘分則倒合必立’(나뉘면 쓰러지고 합치면 반드시 일어선다) 등이 있습니다.
크로마키 시스템을 이용하여 선생의 모습이 담긴 18매의 사진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촬영하면 마치 여운형 선생과 함께 찍은 것 같은 사진을 1매씩 출력해주고 있어 관람객들의 많은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생가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묘골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선생의 생가는 함양 여씨가 양평에 입향한 1715년(숙종 41년)에 처음 지어졌습니다. 여운형 선생은 1885년 태어나서 1908년 부친 탈상을 끝내고 서울로 이사 갈 때까지 이 집에서 살았으며, 해방 전후인 1940년대 초중반에도 종종 내려와서 지내셨습니다. 선생이 떠난 후 집은 점차 퇴락하여 바깥채 지붕이 초가로 변경되었다가 6·25 전쟁 와중에 소실되었습니다. 2001년 양평군민들의 노력으로 생가터가 정비되었고 2011년 복원되었습니다.
집은 기역자 기와집 안채와 기역자의 기와집 바깥채로 되어 있고, 안채는 돌층계 위에 자리 잡았으며 뒷마당에는 디딜방아가 있습니다. 안채 방안에는 여운형 선생이 속옷 차림으로 앉아서 면도하는 모습의 모형이 설치되어 있어 관람객들로 하여금 친근감을 느끼게 합니다. 집안에 전시된 가구들은 1930년대 이후 선생이 사셨던 서울 계동 집에 있던 것들로 후손들이 기증했습니다.
★ 몽양 여운형 선생 묘소는 서울 우이동에 있습니다.
후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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