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사육신 공원을 포스팅하면서 사육신 인물을 제대로 소개하지 못하였다. 39세로 죽임을 당한 사육신 대표격인 성삼문에 대하여 포스팅한다. 성삼문하면 학창시절에 배운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고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落落長松) 되었다가, 백설(白雪)이 만건곤(滿乾坤)할 때 독야청청(獨也靑靑)하리라.>가 떠오른다.
옛말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사육신 공원을 포스팅하면서 사육신 인물을 제대로 소개하지 못하였다. 39세로 죽임을 당한 사육신 대표격인 성삼문에 대하여 포스팅한다. 성삼문하면 학창시절에 배운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고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落落長松) 되었다가, 백설(白雪)이 만건곤(滿乾坤)할 때 독야청청(獨也靑靑)하리라.>가 떠오른다.
단종 복위를 주도한 성삼문은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신숙주처럼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겠지만 매죽헌(梅매화나무 매, 竹대 죽, 軒추녀 헌)호에 나타난 것처럼 그렇지 못하였다. 사군자의 <메란국죽>의 2가지가 성삼문 호에 있으니 어찌 가만히 지켜볼 수 있었겠는가?
\na-;▼성삼문 요약
\na-;▼노량진 성삼문 묘
\na-;▼충남 홍성 유허지(노은단)
\na-;▼충남 논산 성삼문 유적 및 묘
성인각
묘소
\na-;▼논산시 부적면 충곡리 충곡서원(충청남도 지정 기념물 제12호)
충곡서원은 백제 장군인 계백을 중심으로 하고 박팽년, 성삼문, 이개, 유성원, 하위지, 유응부 등
사육신을 추모하기 위해 1680년(숙종6)에 유림들에 의해 세워졌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1868년(고종5) 폐쇄되었고 1933년 다시 옛날 위치에 재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