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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늑약(조약) 장소, 중명전(重眀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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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역사·전     고재완의 지식창고 2019.11.21. 19:07 (2019.11.21. 19:07)

【여행】을사늑약(조약) 장소, 중명전(重眀殿)

올 11월 17일은 을사늑약(乙巳勒約, 1905년 대한 제국과 일본 사이에 강제로 맺은 무효 조약으로 학창시절 을사보호조약이라 배움)이 체결된 지 114년 되는 날로 이날을 잊지말자고제정한 순국선열의 날이기도 하다.
올 11월 17일은 을사늑약(乙巳勒約, 1905년 대한 제국과 일본 사이에 강제로 맺은 무효 조약으로 학창시절 을사보호조약이라 배움)이 체결된 지 114년 되는 날로 이날을 잊지말자고제정한 순국선열의 날이기도 하다.
대한 제국 황제의 군대는 없고 일본 군인의 총칼 아래 일본은 대한 제국의 외교권을 침탈당하는 을사늑약(乙巳勒約)을 1905년 11월 18일 새벽 덕수궁 중명전(重眀殿)에서 고종황제가 반대함에도 강제로 체결하였다.
중명전은 정동여학당터에 수옥헌(漱玉軒)이라는 대한제국 황실 도서관 건물로 1899년 세워졌고 1901년(광무 5) 화재로 많은 도서와 함께 소실 후, 다시 재건되었다.
▼1903~1904년경 촬영된 중명전 건물
 
경운궁(덕수궁) 함녕전에 계시던 고종황제가 1904년 대화재로 수옥헌으로 옮겨 중명전이라 하였다. 이곳에서 1905년 11월 18일 새벽에 이토 히로부미가 대한제국 8 대신들에게 조약 찬반을 일일이 확인한 후 을사 5적의 찬성으로 대한제국 외부대신 박제순과 일본 정부의 특명 전권공사 하야시 곤스케가 을사늑약을 체결(문서상 1905.11.17일) 하였다. 1907년 고종황제가 헤이그 특사(이준, 이상설, 이위종)에게 네덜란드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도록 지시한 장소이기도 하다.
1925년 화재가 났고 다시 지어 1960년대까지 서울 주재 외국인을 위한 서울 클럽(경성 구락부)으로 사용되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복원한 중명전은 현재 덕수궁 구역에 포함되어 일반인에게 무료 개방하고 있다.
▼2017년 다시 복원한 중명전(지상 2층, 지하 1층)
 
▼중명전(광명이 계속 이어져 그치지 않는 전각이라는 뜻) 현판 : 명자가 日+月이 아닌 目+月(眀)
 
▼1905년 경운궁 중명전의 고종 황제사진(미국 박물관 소장)
▼고종 사진에 보이는 중명전 1층 바닥 타일은 118년 이상 된 타일이라 유리로 덮어 보호하고 있다.
 
▶을사늑약
①을사늑약은 을사년인 1905년 11월 18일 새벽 대한 제국과 일본이 맺은 을사조약을 강제할 늑(勒) 자를 써서 "을사늑약"이라 고쳐 부르며 모두 5개 조로 되어 있다.
②일본이 대한 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며, 통치기구인 통감부를 설치해 내정을 장악하고, 대한 제국은 일본 정부의 중재 없이 절대로 국제 조약을 맺을 수 없다는 것이 내용의 골자다.
③을사늑약 체결 현장 재현
고종이 주재하는 어전회의에서 조약 체결 불가라 결정하였는데 불구하고 일본군이 중명전 일대를 에워싸고 일본(이토 히로부미, 하야시)와 대한제국 8대신이 있는 회의장 모습을 재현하였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근택(군부대신), 권중현(농상공부대신), 이지용(내부대신), 이완용(학부대신), 하야시, 이토, 박제순(외부대신), 한규설(참정대신, 국무총리에 해당), 민영기(탁지부 대신), 이하영(법무대신)이다.
찬성자는 을사 5적이며 반대자(3명)는 한규설, 민영기, 이하영이었으나, 이후 민영기와 이하영은 친일파로 변절하였다.
 
④을사늑약 회고담 -한규설 전 참정대신, 1930년 동아일보-
당시 조약 체결의 실무대표인 박제순 외부대신은 11월 16일까지만 하더라도 조약 체결을 반대하며 “외부대신의 인장(印章)을 뺏길 것 같으면 자결하는 게 낫다”고 말해 조정 대신 중에서도 한규설의 신망을 크게 받았다. 그러나 다음날 회담장에서 박제순은 태도가 돌변, 인장을 건네주고 말았다.
한규설은 또 처음에는 내각 대신들이 모두 조약 체결 불가를 말했으나 고종의 어전회의가 진행되면서 일제의 외교관, 군인들이 고종황제의 거처였던 덕수궁 수옥헌(漱玉軒) 근처까지 들어오며 압박하자 이완용, 권중현, 이지용 등이 태도를 바꾸게 되었다고 전했다. 한규설은 18일 오전 1시 30분께 외무대신의 날인으로 조약이 체결된 뒤 조약 무효를 위해 각 대신들에게 면직 조치를 취했으나 다음날 오히려 자신이 면직되어 무위로 끝났다고 회고했다.
▼한일 병탄 과정
 
▼을사 5적 등 매국노
 
▼중명전의 과거
 
 
▼왜 을사 늑약은 무효인가?
☞조약 제목이 없음
☞조약 체결자에게 주는 전권위임장이 없음
☞고종의 어새와 비준 절차가 없음
 
 
☞을사늑약 체결 당시 이상설(의정부 참찬이나 회의 참석하지 못했고 추후 헤이그 특사)은 '황제가 인준을 해도 나라가 망하고 인준을 하지 않아도 망하니 인준을 거부하고 사직을 위하여 순사(殉死) 할 것과 을사오적을 처단하고 조약을 파기하라'는 상소를 올렸다.
▼1906년 (개국 515년) 6월 22일 이태리 군주에게 보낸 친서 카피본에 황제어새를 직접 찍어 갈 수 있다.
▼고종 황제어새(皇帝御璽)
 
 
☞ 고종 황제가 헤이그 특사에게 한 말
"내가 살해당해도 나를 위해서 아무런 신경을 쓰지 마라. 너희들은 특명을 다하라. 대한 제국의 독립주권을 찾아라." -로이터 통신 인터뷰-
▣중명전 정보
☞ 중명전
☞ 1899년 준공된 옛 전각(수옥헌)은 서양식 1층 황실 도서관 건물이었으며 한성부 건축기사로 초빙된 다이(J.H. Dye)가 설계하였다.
1901년 화재로 수옥헌이 전소되자 독립문, 정관헌 등을 설계한 러시아 건축가 사바친(A. I. Sabatin)의 설계로 2층 벽돌 건물로 재건되었다. 1904년 4월 14일 덕수궁 대화재가 일어나자 고종황제가 거처를 수옥헌으로 옮기고 이름을 중명전으로 바꾸어 사용하였다.
☞ 중명전옆에 미국 공사관과 러시아 공사관 등 외국 공사관이 많아 일본의 감시와 압박에서 벗어나려 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건물 외관이 덜 복원됐다?
중명전 건물은 정면 가운데 부분이 1층 현관과 2층 베란다까지 함께 튀어나온 포치(porch)를 두고 있다. 그러나 현재 복원된 중명전은 1층 현관만 튀어나와 있고, 2층 부분은 다른 면의 테라스와 같이 돌출되지 않은 구조라 복원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1905년 미국에서 출간된 러일전쟁 사진집-
복원된 현재 사진
 
▼1층의 4개 전시실(지하 1층, 2층은 공개 안 함)
▼중명전 뒤 고종황제의 침전인 만희당터는 잔디밭으로 조성
 
☞ 09:30~17:30 무료 관람(1층 4개 전시실)
☞ 매주 월요일 휴관, 2019년 11월 17일 휴관(순국선열의 날)
☎ 02-751-0734
☞홈페이지 : http://www.deoksugung.go.kr
☞ 안내 (한국어) :1130(주말).1400.1500(주말),1530(평일, 공휴일)
☞ 서울시 중구 정동길 41-11
☞ 덕수궁과 중명전 주변도
 
1905년 을사늑약이 주는 시사점은 한마디로 국가는 힘이 없었고 도와줄 우방 국가도 없다는 것이다.
대한 제국의 8 대신들은 고종의 어전 회의 때와 달리 일본의 강압적 무력과 돈 앞에 무너진 것이다. 국가의 힘(군사력, 경제력, 외교력 등)은 약하고 대신들과 왕족들은 재산과 이권 불리며 혼자 잘 살기에 몰두해 백성들은 죽든 살든 나 몰라 한다면 어떤 국가라도 안 망하는 것이 이상하다.
왜 을사 늑약처럼 불평등 조약을 당했는지 망각하고 대비가 약하면 몽고 강점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및 일제 강점기처럼 주변국의 침탈과 점령은 반복될 것이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영원한 우방은 없다는 것이며 나라가 없으면 국민과 기업도 있을 수 없다.
약소국의 설움을 벗어나려면 내적으로 부국강병, 인재 양성, 올바른 국민 의식, 첨단 과학과 미래 신기술 등을 개발하며 외적으로 강대국과 외교 강화, 세계 각국과 주변국의 정치, 경제, 문화, 군사 등의 변화에 국익 우선으로 적극 대처하는 국가운영 시스템을 운영하는 지혜를 지속해야 할 것으로 본다.
고슴도치가 스스로 자기를 지키듯 다른 나라가 대한민국을 지켜줄 거란 생각을 가진 국민은 없을 것이다. 다른 국가와 공존하되 특정 국가에 많이 의존한다면 약소국의 설움은 계속될 것이다.
출처: 식민지 역사박물관, 문화재청, 네이버, 구글, 경향신문, 문화유산 채널, 덕수궁, 나무 위키, 한겨레신문
https://jawkoh.blog.me/220593259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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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jawkoh.blog.me/220450919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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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5년 7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