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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靑瓦臺) 터 변천사
2022년 3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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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靑瓦臺)
【여행】
(2022.04.13. 21:11) 
◈ 청와대(靑瓦臺) 터 변천사
윤석열(尹錫悦. 1960년생)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 당선인은 청와대(靑瓦臺)에 들어가지 않고 용산 국방부 건물로 이전하기로 결정하고 당분간 통의동에서 집무를 하겠으며 청와대를 국민들께 개방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문재인(文在寅. 1953년생) 대통령도 청와대를 벗어나 광화문(光化門)에서 국민과 소통하겠다고 했지만 경호 등 여러 문제로 결국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궁금한 청와대 터와 변천사에 대해 알아봅니다.
윤석열(尹錫悦. 1960년생)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 당선인은 청와대(靑瓦臺)에 들어가지 않고 용산 국방부 건물로 이전하기로 결정하고 당분간 통의동에서 집무를 하겠으며 청와대를 국민들께 개방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문재인(文在寅. 1953년생) 대통령도 청와대를 벗어나 광화문(光化門)에서 국민과 소통하겠다고 했지만 경호 등 여러 문제로 결국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궁금한 청와대 터와 변천사에 대해 알아봅니다.
▣ 청와대의 역사
①청와대 터의 기원인 "도선비기(道詵秘記)"에 이르길 고려 수도 송악(松岳. 개경)은 그 기운을 삼각산(三角山. 북한산) 즉 한양에게 빼앗긴다고 했고, 고려 숙종(재위 1095~1105) 때 관리 김위제는 삼각산에 기대어 도읍을 정한다면 온 세상의 신령스러운 물고기들(神魚)이 한강으로 모일 것이라며 천도(遷都)를 주장했는데, 점복(占卜)을 관장하는 일관(日官)도 김위제를 지지하자 "남경 개창도감(南京開創都監)"이 설치되었습니다.
1104년 남경 궁궐이 완성됐고, 숙종이 직접 남경에 행차하기도 했었으나, 이때 남경은 당시 서경(西京. 현재 평양)처럼 정치적인 중요성이 크지 않아 천도는 논의만 하다가 흐지부지 끝났다. 당시 남경 궁궐은 조성을 했는데, 남경 궁궐터가 바로 경복궁 후원 자리로 현재의 청와대 자리입니다.
②1382년 2월 고려 우왕 때 천문과 역술을 관장하던 서운관(書雲觀)에서 또다시 "도선비기"를 들어 남경으로 천도를 주장했고, 1382년 9월 실제 천도가 이루어져서 우왕도 남경 궁궐에서 머물렀으나 1383년 2월 다시 개경으로 환도했다. 1387년 우왕은 다시 남경으로 천도를 추진했으나 이루지 못했습니다.
③1392년 조선이 개국해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고 1394년 경복궁(景福宮)을 창건하였다. 경복궁은 원래 남경 궁궐터에 지으려고 했는데, 터가 협소하여 경복궁은 더 남쪽에 자리를 잡고, 남경 궁궐터는 경복궁 후원에 있게 됐다. 남경 궁궐터인 현재 청와대 자리는 경복궁과 북악산(백악산) 사이에 마치 공터처럼 남겨졌는데, 그래서 아마 일부러 풍수적 이유에서 남겨뒀을 것이니 이곳에 청와대가 들어서면 안 된다는 의견과 고려 때부터 이어진 궁궐터로 길지(吉地)라는 의견 등 논란이 있어왔습니다.
④ 그렇게 현재 청와대 자리는 경복궁 후원에 위치하다가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소실된 후 약 270년 방치되었다가 고종 때 경복궁을 중건(1865~1868) 하고, 고종이 창덕궁(昌德宮)에서 경복궁으로 이어(移御) 하면서 창덕궁 춘당대(春塘臺, 과거 시험 장소)와 같은 기능으로 사용하기 위해 신무문(神武門) 북쪽에 넓은 공간을 확보하여 이곳을 경무대(景武臺 = 경복궁의 景 + 신무문의 武 )라고 했습니다.
경복궁 중건 뒤 제작한 배치도인 "북궐후원도형(북궐은 경복궁을 말함)"을 보면 경복궁 후원(後苑)은 건물 32동, 면적 203,905㎡로 창경궁 정도의 크기입니다. ⓐ 경무대의 중심 건물은 융문당(隆文堂.왕 또는 문관들이 모여 글을 지으며 연회를 하던 곳)과 융무당(隆武堂.과거 시험의 무과와 활쏘기 시합, 군사들의 교체 훈련 및 사열 장소)이고 행각으로는 춘안당(春安堂)이 있었다. ⓑ융문당의 서쪽에는 15칸 규모의 수궁(守宮. 궁궐 수비 군인)이 있었다. ⓒ융문당의 북쪽으로 깊숙한 곳에는 왕의 휴식을 위한 곳으로 옥련정(玉蓮亭), 온돌방과 누마루, 휴식공간은 대청으로 구성된 오운각(五雲閣), 행각인 벽화실(碧華室) 등의 소규모 건물들과 권농(勸農) 장소인 경농재(慶農齋), 대유헌(大有軒)이 있었다.
 
☞ 왕이 경무대에 나가서 경과정시(慶科廷試)를 행했다. 문과에서는 도석훈 등 15명, 무과에서는 원세욱 등을 뽑았다 -1869년(고종 6) 3월 20일-
이 "경무대"가 훗날 이승만 대통령의 경무대라는 명칭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융문당(좌)과 융무당(우) 원경(1910년쯤). -문화재청-
 
▼융문당(왼쪽 위 사진)과 융무당(왼쪽 아래 사진)의 어제와 오늘. 전남 영광의 원불교 성지에 옮긴 융문당 (오른쪽 위 사진)과 융무당(오른쪽 아래 사진). -조선고적도보-
 
⑤일제 강점기에 일본은 후원의 전각들을 헐고 공원 부지로 만들며, 1937년에 이 지역을 조선총독부 총독 관저 부지로 선정하여 오늘날의 청와대 구 본관 자리(수궁 터)에 관저를 세우게 되었다. 이때 지붕은 정읍 보천교(普天敎) 본당이던 십일전(十一殿)의 화려한 청기와를 가져와서 관저 지붕은 푸른색(靑瓦) 이었다. 1939년 완공 후 조선 총독부 총독 관저로 사용했습니다.
⑥해방 후 미 군정 하지 장군의 관저로 쓰다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하지 장군이 물러나며 이승만 대통령(재임 1948∼1960)이 사용하면서 대한민국 대통령의 집무실과 관저로 쓰게 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 건물을 과거 경복궁 후원에 있던 넓은 터의 이름인 경무대(景武臺)로 정하였습니다.
⑦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당 정권에 대한 반감 의식과 3.15부정 선거 때문에 "경무대"라는 이름은 원성(怨聲)의 대상이 되었고, 결국 4.19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한 후 윤보선 대통령(1960~1963)이 취임하면서 "경무대"라는 이름을 청기와 건물로 이뤄져 미국처럼 "청와대(Blue House. BH 약자)"로 변경하였습니다.
▼1962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위원들의 청와대 방문 기념사진을 보면 큼지막하게 ‘靑瓦臺’라는 글자가 새겨진 바위가 있었다. 그리고 그 큰 글자 왼편으로는 일종의 관지(款識)인 ‘1961년 4월 해위(海葦.바다 갈대)’라는 글자도 각자(刻字) 돼 있었다. ‘해위’는 윤보선 전 대통령의 호이므로 이 각자가 윤 전 대통령의 글씨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국가 기록원-
 
⑧일제 강점기에 총독부 총독 관저로 지어진 건물이었던 만큼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로 사용하기에는 협소하고 노후화되어 재건축하자는 의견이 여러 차례 있었으나 이승만이나 윤보선은 청와대 건물에 별로 손을 대지 않았다. 이후 취임한 박정희(재임 1963∼1979년)는 청와대를 대대적으로 개보수, 증축하였다. 당시 청와대 1층은 집무 공간으로 대통령 집무실과 서재 등이 있었고, 2층은 대통령 가족의 생활공간이 있었다. 그러나 이후 건물이 노후화되고, 협소하여 외국 정상 방문 시 수행원이 머물 공간조차 없어서 청와대를 재건축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박정희는 재건축 건의는 무시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전두환(재임 1980∼1988년) 때 청와대 구 본관을 다시 리모델링하였다.
▼구 본관
 
⑨이후 노태우(재임 1988∼1993년) 때 본관과 관저, 프레스센터인 춘추관을 신축하여 2년 2개월간의 공사 끝에 1991년 9월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청와대 관저를 신축하는 과정에서 300~400년 전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는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라고 각자(刻字. 가로 250㎝, 세로 120㎝ 크기) 된 바위가 발견되었습니다. -월간중앙-
 
⑩1993년 2월 25일 취임한 김영삼 대통령(재임 1993∼1998년)의 지시로 그 해 10월 구본관이 전부 철거되었다. 현재는 '청와대 구 본관 터'라는 표식을 남겼다. -나무위키-
 
⑪1998∼2003년(제15대) 김대중(金大中), 2003∼2008년(제16대) 노무현(盧武鉉), 2008∼2013년(제17대) 이명박(李明博), 2013~2017년(제18대)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이 거쳐고 2017~2022년(제19대) 문재인(文在寅) 대통령이 살고 있다.
▣ 배치도와 건물들 -나무위키-
 
1. 영빈관 -나무위키-
 
▶ 대규모 회의와 외국 국빈들을 위한 공식행사를 개최하는 건물로서 1978년 1월에 착공해 12월에 준공되었다.
▶ 공식행사장 또는 100명 이상 대규모 회의 및 연회를 위한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2층에도 1층과 똑같은 홀이 있는데 1층은 접견장으로, 2층은 만찬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영빈관은 18개의 돌기둥이 건물 전체를 떠받들고 있는 웅장한 건물이고, 특히 전면에 있는 4개의 돌기둥은 2층까지 뻗어 있는 높이가 13m, 둘레가 3m인 기둥이며 내부는 무궁화·월계수·태극무늬가 형상화되어 있다.
2. 본관 -나무위키-
 
▶대통령의 집무와 외빈 접견 등에 사용되는 건물이며, 1989년 자문위원회를 구성하여 많은 의견을 수렴한 뒤 1991년 9월 4일 신축되었다.
▶이 건물은 정부와 국가를 대표하는 얼굴과도 같은 곳이기 때문에 전통 목조 구조와 궁궐 건축양식을 기본으로 하여 내부 구조는 현대적인 감각과 시설을 갖추도록 하였으며, 우리나라 건축양식 중 가장 격조가 높고 아름답다는 팔작(八作) 지붕에 한식 청기와를 올렸다.
▶약 15만 장이나 되는 청기와는 일반 도자기를 굽듯이 한 개 한 개 구워 내어 100년 이상을 견딜 수 있는 강도를 지녔다고 한다.
▶2층에는 대통령의 집무실과 접견실, 회의실이 있고 건물 앞의 넓은 잔디마당은 국빈 환영행사와 육·해·공군 의장대, 전통복식을 입은 전통 의장대의 사열 등이 행해지는 곳입니다.
 
3. 수궁(守宮. 궁궐을 지키는 군사들을 위한 건물) 터
▶수궁 터는 옛부터 풍수지리학상 길지(吉地)로 알려져 고려 시대에 이곳에 남경의 이궁(離宮)이 있었다.
▶그러다가 조선시대 경복궁이 창건되면서 이곳은 경복궁의 후원이 되었으며, 그 뒤 1868년(고종 5)에 경복궁이 중건되면서 융문당·융무당·오운각 등의 건물이 들어서고 과거시험이나 무술대회가 열리기도 했고 또한 농사가·국사의 근본임을 일깨우기 위해 왕이 손수 가꾸던 논이 있던 역사적으로 유래가 깊은 장소이기도 합니다.
4. 비서실 별관(신관) 및 등 별관은 비서실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로서, 신관은 1969년에, 등 별관은 1972년에 건립되었다.
5. 상춘재(常春齋) -나무위키-
 
▶1983년 4월 준공된 전통적인 한식 가옥으로 외빈 접견 등에 사용되고 있는데 그 당시만 해도 청와대 경내에는 전통 한옥식 건물이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외국에서 손님이 와도 우리나라 가옥 양식을 소개할 길이 없었던 차에 200년 이상 된 춘양목(春陽木: 경북 봉화군 춘양면 일대에서 자생하는 소나무)을 사용하여 전통 한식 가옥인 상춘재를 짓게 되었다.
▶현재 외빈 접견이나 비공식 회의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현 상춘재 자리에는 일제 때 조선총독부 관사로 건축된 일식 목조건물인 상춘실(약 20평)이 있었으나 1977년 12월에 철거하고, 이듬해 3월 천연 슬레이트 지붕으로 된 양식 목조건물(약 22평)로 개축하여 상춘재(常春齋)라 명명하였다.
▶그 뒤 전통 한식집을 형태 변경 없이 목재로 보수하는 공사를 1982년 11월 20일 착공하여 온돌방 1개와 대청마루가 있는 연건평 116평의 건물을 1983년 4월 5일 완공하였다.
6. 녹지원(綠地園) -나무위키-
 
▶청와대 경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약 180년 된 반송(盤松) 등 120여 종의 나무가 있으며 역대 대통령들의 기념 식수가 있는 곳이다. 이곳은 원래 경복궁의 후원으로 농사를 장려하는 채소밭이 있었고 일제 총독관저가 들어서면서 가축 사육장과 온실 등이 조성되었는데 1968년에 5289㎡(약 1,600평) 규모였으나 야외행사의 빈도가 높아져 1985년에 5620㎡(약 1,700평)으로 확장했다.
▶매년 봄 어린이날, 어버이날, 장애인의 날 등 각종 다채로운 행사가 이곳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7. 관저 -나무위키-
 
대통령과 그 가족이 생활하는 대통령 관저는, 대통령의 공적인 업무공간과 사적인 업무공간을 구분할 필요성을 느껴 1990년 10월 25일 완공되었는데 형태는 전통 한식(본채는 팔작八作 지붕의 겹처마에 청기와를 얹은 ‘ㄱ’자형 지붕 형태)이며 구성은 정문(인수문)·본채·별채·대문채·사랑채·회랑으로 되어 있습니다.
8. 춘추관(春秋館) -나무위키-
 
▶ 춘추관은 1990년에 완공되었으며, 주위 경관과 잘 어울리도록 맞배지붕에 토기와를 올려 전통적인 우아한 멋을 살린 건물입니다.
▶현재 대통령의 기자회견 장소와 출입 기자들의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는데 우리나라 언론사 기자들이 상주하는 청와대 프레스센터로서 1층은 기자들이 사용하는 기자실과 담화 발표 등을 하는 소회견실로 구성되어 있고, 2층에는 대통령 기자회견과 각종 문화행사 등을 하는 다목적실이 있습니다.
▶춘추관이라는 명칭은 고려와 조선시대의 역사기록을 맡아보던 관아인 춘추관·예문춘추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엄정하게 역사를 기록한다는 의미가 오늘날의 자유 언론의 정신을 잘 상징한다는 뜻에서 채택되었습니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424954
▣ 주요국 지도자 집무실과 공관 -중앙일보-
 
 
 
 
▣ 청와대 수목들
700년 된 주목, 100년 된 소나무들, 180년 된 반송(盤松), 학자(學者) 나무인 회화나무, 천연기념물이 제일 많은 느티나무, 창경궁에서 옮긴 향나무, 꽃이 100일 가고 껍질이 매끄러운 배롱나무, 향기 좋은 모과나무, 검정 열매를 염주로 쓴다는 모감주나무, 크리스마스트리인 구상나무, 한약재로 쓰는 만병초, 나라꽃 무궁화 등 다양한 나무들로 숲과 정원을 이뤄 수목원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OkLe6Zge0gU (51분, 2018년)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나무위키,유튜브,월간중앙,문화재청,중앙일보,대통령경호처
▣ 주변 볼거리
★칠궁과 무궁화 동산(10.26의 궁정동 안가 터) https://blog.naver.com/jawkoh/222495212656
★청와대 사랑채 https://blog.naver.com/jawkoh/220464069657
▼청와대 분수 앞에서 백악산을 배경으로 한 컷
 
★경복궁 건청궁 https://blog.naver.com/jawkoh/222554901620
★경복궁 향원정 보수와 복원한 취향교 https://blog.naver.com/jawkoh/222553797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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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靑瓦臺)
【여행】 문화재·역사·전
• 서울 용산(龍山) 정상을 찾으니 용산성당(聖堂)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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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