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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황제릉과 조선 왕릉 다른 점
2022년 9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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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朝鮮王陵) # 대한제국 황제릉 # 홍릉
【여행】
(2022.09.12. 19:10) 
◈ 대한제국 황제릉과 조선 왕릉 다른 점
1392년 이성계가 개성 수창궁에서 조선을 개국하여 1394년 한양으로 천도한 후 1592년 임진왜란(선조 재위, 동구릉 내 목릉), 1636년 병자호란(인조 재위, 파주 장릉) 등을 겪었다.
1392년 이성계가 개성 수창궁에서 조선을 개국하여 1394년 한양으로 천도한 후 1592년 임진왜란(선조 재위, 동구릉 내 목릉), 1636년 병자호란(인조 재위, 파주 장릉) 등을 겪었다.
왕들은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은 후에도 정신을 못 차리고 부국강병을 제때,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 결과 서양 문물을 빨리 도입해 근대화한 일본 제국은 무능하고 왕실만 챙기는 군주, 군주의 친·인척 비리 및 부정부패하고 사리사욕을 챙기는 관리들의 조선을 침략 · 강점하려고 1876년 병자수호조약을 시작하여 1895년 낭인들을 시켜 궁궐까지 난입해 친러파인 왕비를 시해하고 시신을 불태운 을미사변을 일으켰다.
근대화로 군사력을 강화한 일본은 1894년 청일전쟁과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였다. 이어 1905년 을사늑약(고종 재위 1863~1907)으로 외교권 침탈, 1907년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고종은 순종에게 강제로 양위하게 하였으며, 또한 군대를 해산해야만 했다. 결국 1910년 한일 병탄 조약을 체결하여 조선은 망하고(1392~1910)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었다.
 
일제에 나라 잃은 백성들의 가난과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호의호식(好衣好食)하던 "조선국 이태왕(李太王)"이라 불린 조선 26대 왕 고종은 1919년 1월 덕수궁에서 사망하였고 고종 장례 이후 3.1운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1926년 "조선국 이왕(李王)"이라 불리던 순종도 창덕궁에서 세상을 떠나 유릉에 묻혔다. 순종 장례식에 맞춰 6.10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고종은 1897년 원구단에서 나라 이름을 조선에서 대한 제국으로 선포하고 대한제국의 황제에 올랐다. 따라서 사망 후 왕릉이 아닌 황제릉으로 경기도 남양주에 홍릉(洪陵, 1895년 죽은 명성황후와 합장릉)을 만들었고 아들인 순종도 홍릉 옆에 유릉(裕陵)을 묻혔다. 현재 조선왕릉과 대한제국 황제릉(홍릉과 유릉)은 조선 왕릉이란 이름으로 2009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 홍릉은 고종이 1895년 을미사변으로 사망한 왕비(명성황후로 추존)를 1897년 청량리(현재 홍릉 수목원 내)에 홍릉을 마련해 장례를 치렀지만, 1919년 고종이 세상을 떠났을 때 현재 남양주 자리로 옮긴 합장릉이다.
☞유릉은 순명비(황태자 비)가 1904년 사망해 묻힌 유강원(裕康圓, 현 능동 어린이 대공원 근처)을 조성하였다. 1907년 순종이 왕위에 오르자 유강원은 유릉으로 바뀌었고 1926년 순종이 세상을 뜨자 유릉을 남양주로 옮겨 합장했다.
☞ 조선 왕족의 무덤은 왕실의 위계에 따라 능(陵), 원(園), 묘(墓)로 분류합니다.
ⓐ능(陵): 왕과 왕비, 추존왕(追尊王, 실제로 왕위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죽은 뒤에 묘호가 내려진 왕)과 추존 왕비의 무덤
ⓑ원(園): 왕세자와 왕세자비, 왕의 사친(私親 : 종실로서 임금의 자리에 오른 임금의 생가 부모)의 무덤
ⓒ묘(墓): 나머지 왕족(왕의 정궁의 아들, 딸인 대군과 공주, 왕의 서자와 서녀인 군과 옹주, 왕의 첩인 후궁, 귀인 등의 무덤)과 폐위된 왕(연산군, 광해군)
▣대한 제국 황제릉(홍·유릉)과 조선 왕릉은 크게 2가지가 다르다.
1. 제향을 지내는 공간인 능 앞의 정자각(丁字閣, T자형으로 정면 3칸 건물) 대신 일자형 침전(정면 5칸)을 만들었다.
▼ 제향 공간 정면
ⓐ 어로(御路,어도)를 따라가면 왕릉은 우측으로 돌아 계단을 밟고 올라가지만, 황제릉은 직진하여 오를 수 있는 계단이 있다.
ⓑ 지붕 형태가 왕릉은 맞배지붕, 황제릉은 팔작지붕이다.
ⓒ 추녀마루의 잡상(삼장법사,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마화상)이 왕릉은 3개, 황제릉은 5개이다
 
 
▼측면
 
▼황제릉 침전 앞의 동계(東階,향로와 어도)와 서계(西階) 모두 2개씩(계단 수도 4개로 왕릉의 3개보다 많다) 이지만, 왕릉의 정자각 동쪽 계단은 2개, 서쪽 계단은 향로가 없어지고 어도(御道) 1개 만 있음
 
▼잡상(좌측부터 ①삼장법사, ② 손오공, ③저팔계, ④사오정, ⑤마화상)
 
2. 석상의 종류와 석상 놓인 위치가 다르다.

구분

대한제국 황제릉

조선 왕릉

석상 종류

①문석인(文石人) x 2 (좌우)

②무석인(武石人) x 2

③기린석(麒麟石) x 2

④코끼리석(象石) x 2

⑤사자석(獅石) x 2

⑥해치(해태)석(獬豸石) x 2

⑦낙타석(駱駝石) x 2

⑧석마(石馬) x 4

①문석인(文石人) x 2(좌우)

②무석인(武石人) x 2

③석양(石羊 ) x 4

④석호(石虎) x 4

⑤석마(石馬) x 4

(왕릉에 따라 차이 남)

석상 수

18개(9개씩 좌우)

16개(8개씩 좌우)

석상 위치

침전 앞 좌우

봉분(무덤) 좌우

석마 위치

문·무석인과 같은 라인 끝에 배치

문·무석인 뒤쪽에 배치

▼석상 위치와 석상 수
 
▼석상 종류와 석마 위치
 
▣ 조선 왕릉 상설도(象設圖)
 
▣ 대한제국 황제릉(순종의 유릉) 상설도
ⓐ재실이 왕릉과 달리 능과 가까이 있다.그래서인지 수라간이 보이질 않는다.
ⓑ 판위의 위치도 홍살문기준으로 좌측과우측으로 다르다.
 
▣ 주요 차이점

조선 왕릉

황제릉

제향 공간

정자각(맞배지붕 3칸)

침전(팔작지붕 5칸)

석상

5종류 16개(좌우 8개씩)

8종류 18개(좌우 9개씩)

 
★ 조선 왕릉의 길잡이 https://blog.naver.com/jawkoh/220388670622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북한 제외) 된 조선왕릉
▣ 왕릉(王陵)과 종묘(宗廟)의 차이
왕(비)이 돌아가시면 왕릉을 만들어 시신을 묻고 종묘에 위패를 모신다. 이는 사망하면 육체와 정신이 분리된다는 생각에서 시신은 능(陵)으로, 혼백은 종묘(廟는 사당으로 무덤 墓가 아님)로 모신다. 왕의 혼을 대신하는 위패(位牌)를 모시고 매년 봄에 종묘대제를 올린다.
출처: 문화재청, 문화유산 채널, 네이버, 구글
 

 
※ 원문보기
조선왕릉(朝鮮王陵) # 대한제국 황제릉 # 홍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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