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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18일
왕의 길을 제설(除雪) 안 해 잘린 한성판윤(漢城判尹, 서울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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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鍾路區) 창경궁(昌慶宮) 홍화문(弘化門)
【문화탐방】
(2023.02.20. 11:22) 
◈ 왕의 길을 제설(除雪) 안 해 잘린 한성판윤(漢城判尹, 서울 시...
겨울에 눈이 내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지금도 눈이 많이 내리면 치우기가 쉽지 않은데 조선시대에는 눈 치우기가 더욱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정조실록을 보면 왕의 행차로에 쌓인 눈을 치우지 않아 한성판윤(서울 시장) 구익(具㢞,1737~1804)이 파직되었다고 적혀있다.
겨울에 눈이 내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지금도 눈이 많이 내리면 치우기가 쉽지 않은데 조선시대에는 눈 치우기가 더욱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정조실록을 보면 왕의 행차로에 쌓인 눈을 치우지 않아 한성판윤(서울 시장) 구익(具㢞,1737~1804)이 파직되었다고 적혀있다.
▼창경궁 명정전(明政殿) -문화재청-
 
1790년 음 11월 4일 한성판윤(정 2품. 서울 시장)에 임명된 구익(具㢞)은 40일 만에 12월 15일(음) 파직당하였는데 창경궁 홍화문(弘化門) 밖 연로(輦路. 가마 輦, 길 路. 임금이 거동하는 길) 앞길의 눈을 치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漢城府判尹具㢞罷。 以弘化門外輦路不除雪也。-정조실록-
창덕궁 희정당에 있던 정조는 12월 15일(현재 1월 중순 경) 묘시(아침 5~7시)에 익선관을 쓰고 용포를 입고 가마인 여(輿)를 타고 창경궁 월근문(月覲門)을 통해 부친 사도세자 사당인 경모궁 유첨문(逌瞻門)으로 들어가 제실(齊室)에 재배하고 유첨문으로 나와 홍화문 앞길(弘化門 前路)까지 갔다. 홍화문 前路 동쪽 방향(東邊)에 눈이 쌓여 있고 치워지지 않아 한성판윤 구익(具㢞)을 파직하였다. -승정원일기-
▼창경궁 홍화문(弘化門)과 월근문(月覲門) 및 경모궁(景慕宮)과 유첨문(逌瞻門) -수선전도-
☞월근문은 ‘매달 뵙는다‘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창경궁 홍화문 북쪽에 있는 이 문은 정조가 부친 사도세자의 사당(廟)인 경모궁(여기서 궁宮은 궁궐이 아닌 사당을 높여 부를 때 사용하며 청와대 옆의 "칠궁도" 마찬가지다. 현재 서울대 병원 자리)에 참배하러 가기 위하여 1779년(정조 3)에 세웠다. 정조가 매달 초하루 경모궁에 참배하러 갈 때에는 반드시 이 문을 경유하였기 때문에 월근문(月覲門)이라 하였다.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弘化門)
 
▼일제 강점기 홍화문 -조선고적도보-
 
▼ 창경궁 월근문(月覲門) -문화재청-
 
※한성판윤(서울시장) 하는 일과 평균 재임기간
ⓐ 국정 운영 전반에 참여
ⓑ 중국 사신을 영접하고
ⓒ 한성부 내의 사법권을 행사하며
ⓓ 금화(禁火)와 하수(下水) 관리 등 업무가 과중하여 서로 기피했으며
ⓔ 조선 시대(1395년 ~1907년)의 한성판윤 임기는 평균 3개월에 불과해 업무 파악하다 끝났고
ⓕ 특히 고종 재위 43년간 한성판윤의 평균 임기는 1달 6일이었으니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수선 전도의 한성. -국립중앙박물관-
 
▼구익(具㢞,1737~1804)에 대하여
파직당한 구익은 한성판윤뿐만 아니라 1790년 도총부 도총관, 1794년 대사헌, 1799년 함경도 관찰사, 공조판서(국토 건설부 장관), 형조판서(법무장관), 병조판서(국방장관), 판의금 부사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의정부 좌 ·우참찬, 6조 판서와 한성판윤의 관직을 돌아가며 경력 쌓는 9경(卿)를 하려 했다는 생각도 든다. 인사권자는 왕이지만.
 
정조실록에 의하면 구익(具㢞)은 한성판윤을 무려 5번 임명되었다. 물론 할아버지 구택규(具宅奎)와 아버지 구윤옥(具允鈺)도 한성판윤을 했었다.

1790년 11월 4일

1791년 12월 9일

1794년 10월 18일

1795년 5월 10일

1798년 8월 28일

출처: 민족문화 대백과, 조선왕조실록, 문화재청, 중앙도서관
▼정조(표준 영정)와 반차도(班次圖) 속의 가마(輦) -한국 조폐공사-
 
● 생각하며
아침에 쌓인 눈을 치우지 않아 자른 정조와 잘린 한성판윤 구익은 임금과 신하로 만났다. 1월 중순 경 정조는 아침 6시 전후에 궁을 출발해 부친 사당 경모궁에 재배하고 궁궐로 돌아가는 길에 홍화문 앞 연로(輦路) 제설을 안 해 구익을 파직했지만 5차례나 한성 판윤에 임명한 것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든다. 인재가 부족해서 계속 돌려쓴 건지, 아니면 믿을 만한 사람이라 판단해 그런 것인지 정조의 속마음이 궁금하다.
★정조 임금에 개긴 사내, 이옥李鈺
https://blog.naver.com/jawkoh/220226715801
"왜 술을 마시는가?"
"내가 마시는 것은 맛을 얻으려 하는 것이 아니요,
취함을 얻으려 하는 것도 아니요,
배부름을 얻으려 하는 것도 아니요,
흥을 얻으려 하는 것도 아니요,
이름을 얻으려 하는 것도 아니다.
걱정을 잊기 위해 마시는 것이다." -이옥-
★https://blog.naver.com/jawkoh/220226792627
★https://blog.naver.com/jawkoh/220226802768
★ https://blog.naver.com/jawkoh/220203911063
 

 
※ 원문보기
종로구(鍾路區) 창경궁(昌慶宮) 홍화문(弘化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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